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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Macedonia)

104. 조각공원 스코페의 노부부

  1월 21일. 드디어 마케도니아(Macedonia)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 앞 코소보-마케도니아 중립지대>

  마케도니아 역시 들리는 소문으로는 입국이 까다롭다고 한다. 우선 한국과는 공식 수교가 없는 나라이지만 한국인에 대해 무비자 입국을 허용한다.

  하지만 여행자 보험을 심사하고 국경에서 강매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니쉬에서 만난 승현군 역시 보험을 갖고 있었으나 여행자 보험을 강매했다고 한다. 여권을 제시하니 모니터에 최근 입국일자가 나타났고, 행선지만 확인한 후 바로 도장을 찍어줬다.

  며칠전에 들어왔었기 때문인지, 보험 확인 규정이 없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행여나 다시 잡지 않을까 여권을 돌려받자마자 잽싸게 심사대를 빠져나왔다.

<비에 젖은 도로>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Skopje)로 가는 길 역시 산길이었으나 전체적으로 내리막이었다. 코소보 프리슈티나의 고도가 높았나보다. 짧은 터널을 지나니 비는 그쳤고, 길 곁의 진흙을 제외하면 달릴만 한 상태였다.

<터널을 지나고><드디어 비 그쳤다>

  알렉산더 대왕의 나라 마케도니아. 그 첫인상은 세르비아와 큰 차이는 없었다.

<마케도니아의 들판>

  산지의 연속. 길가의 작은 마을. 그리고 키릴(Cyrillic)문자.

<작은 마을에서><스코페를 약 10여km 남겨두고 총 주행거리 8,000km 도달>

  하지만 스코페 시내에 도착하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마침내 스코페 시내>

  우선 눈에 들어온건 넓게 잘 정비된 도로. 그리고 길가의 자전거길.

<넓찍한 도로. 현대 마크가 보이네?>

  구 공산권 국가의 상징과도 같은 콘크리트빛 건물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뭔가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비가 그쳐서인지 더 기분좋은 스코페 시내>

  또 교통 시스템이 특이했는데, 신호등이 중앙선을 기준으로 따로 작동하고 있었다.

  차량이 좌 우회전 하는 사이에도 보행자들은 도로의 절반을 건널 수 있는 체계. 확실히 횡단보도에서 대기 시간이 짧은 효과가 있는듯 하다. 서울처럼 버스가 중앙차선에서 다닌다면 더욱 좋은 체계인듯 하다.

  반면 단점도 있다. 절반 남은 도로를 빨리 건너고 싶은게 인지상정. 차가 없으면 무단횡단도 빈번해 보였다.

<절반으로 나눠어 따로 작동하는 신호등>

  어쨌든 스코페 중심가에 진입. 히로유키와 만나기로 약속한 호스텔로 향했다.

  길가에 있어 찾기도 쉬웠다. 직원들은 친절하게 맞아주고. 드디어 스패츠 대용으로 다리에 감은 비닐봉지를 걷어내고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게 되었다.(주행거리 24.86km, 누적거리 8,007km)

  짐을 풀고 샤워한 후, 스코페에 대한 이런저런 소개를 듣고 시내 구경 시작.

<편안한 스코페 Unity Hostel>

  스코페를 남북으로 나누는 Vardar 강 북쪽에는 Tvrdina Kale라는 이름의 성이 자리잡고 있었다. 칼레라는 이름을 쓴 것으로 보아 오스만 제국 통치시기에 지어진게 아닌가 싶다.

<스코페의 Tvrdina Kale 성벽><딱 사람한명 크기의 창><성벽에서 내려다본 스코페 시가지>

  그리고 마케도니아에는 동상이 많다는 말은 들었는데 이건 생각 이상이다. 시내에는 수많은 동상이 들어서 있어서스코페 전체가 거대한 조각공원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강변의 하얀 조각><공원의 금빛 조각><검푸른 청동상도 있다. 연설중인가?>

  동상의 주인공들은 나로서는 도무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복장과 상황을 보니 대충 정치인 또는 장군들이 대부분인듯 하다.

  하지만 마케도니아의 위인들 뿐만이 아니다. 큰 의미없어 보이는 상도 많았다.

<4명의 음악가, 손에든건 술병과 돼지머리?><심지어는 구두닦이 소년까지>

  그 중, 마케도니아가 낳은 유명한 인물.

  먼저 키릴 형제(St. Kiril and Metodij).

  바로 동유럽에서 널리 사용되는 키릴 문자(Cyrillic)를 만든 사람들이다. 물론 국가 영역이 현재와 달랐으므로 마케도니아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키릴 형제는 동로마(비잔틴) 제국 사람으로 불가리아 그리스 등 발칸반도 여기저기서 자기 조상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의 주 활동 무대는 오늘날의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였으며, 키릴 문자를 만든 이유는 기독교 포교를 위해서였다.

<나랏말싸미 서유럽에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할쎄>

  또 마케도니아 하면 마더 테레사 수녀도 빼놓을 수 없다. 동상 옆에는 테레사 수녀 기념관(Memorial House of Mother Teresa)가 서 있었다.

<테레사 수녀 기념관>

  입장료는 무료이며 테레사 수녀의 활동 사진과 유품등이 정리되어 있고, 2층에는 작은 성당이 서 있었다. 음. 테레사 수녀의 본명이 Gonxhe Bojaxhiu이었구나.

<젊은날의 테레사 수녀와 가족>

  테레사 수녀는 스코페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알바니아계라고 한다. 또한 활동무대는 인도였다.

  그러고 보니 마케도니아는 국교가 정교회(Orthodox)이고, 알바니아인들은 대부분 이슬람(Islam)을 믿는데 테레사 수녀는 가톨릭(Catholic) 신자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함께한 사진도 전시되어 있었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스코페 시내를 둘러보니 금세 날이 저물었다. 수많은 조각 사이로 조명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야경 또한 멋졌다.

<스코페에는 개선문도 있다.><조명을 받아 더 멋진 Tvrdina Kale>

  Vardar 강변에서 야경도 보고, 사진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나를 부른다.

  '무슨일일까?' 돌아서보니 한 노부부가 있었는데 어디에서 왔는지 물어보더니, 다짜고짜 100디나르(약 2,500원)를 손에 쥐어준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이유를 물어보니

  "마케도니아에 들러줘서 고맙다.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

  는 말을 남기고 돌아서는 어르신.

  사양을 해도 막무가내이고, 그냥 마케도니아 사람이라면서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마케도니아 사람들의 친절함을 기억하고 싶다고 하자 사진 촬영에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친절한 스코페의 노부부>

  노부부가 떠나고 손에 남겨진 지폐 한 장.

  사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액면으로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마음이 담긴 지폐 한 장은 추운 겨울밤, 낯선 곳에서 영혼없는 조각 사이를 헤매이는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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