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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Albania)

112. 티라나 둘러보기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나(Tirana) 구경길에 나섰다. 시내는 머물고 있는 호스텔에서 5km가량 떨어져 있었으나, 자전거를 이용하면 금방이다.

  티라나 시가지는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티라나 외곽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넓찍한 도로 중앙에는 자전거 도로도 설치되어 있었다.

<중앙 자전거 도로>

  티라나는 어떤 곳일까 기대를 품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피라미드. 처음 피라미드가 있다는 말을 듣고 많이 놀랐다. 이집트나 마야에 있다는 말은 들었봤어도 알바니아에도 피라미드가?

  원뿔 모양의 피라미드는 멀리서 보니 그럴듯했다. 그런데 직접 가 본 피라미드는 실망을 금할 길이 없었다. 고대 무덤은 전혀 아니고 현대식 건물이었는데, 진입로의 깨진 보도블럭을 시작으로 유리창은 깨져 있고, 벽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물론 출입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알바니아 티라나의 피라미드>

  알고보니 이 건물은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기념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그의 딸과 사위가 만들었다고 하지만 현재는 흉물처럼 남아 있었다. 피라미드 주변은 공원처럼 가꾸어 놓았다. 어쩌면 과거를 기억하기 위해 일부러 남겨놓았는지도 모르겠다.

  티라나는 Lana River라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이라고 말할수도 없을만큼 폭은 좁았지만, 강변 도로 사이에 잔디밭을 잘 가꾸어놓아서 보기 좋았다.

<티라나를 가로지르는 Lana 강? 개울?>

  강 건너편에는 성당이 보인다. 이슬람 국가인줄 알았는데, 시내 한복판에 성당이 있다니? 들어가 보니 가톨릭 성당으로 벽면에는 테레사 수녀의 모자이크와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었다.

<테레사 수녀의 초상이 걸린 성당>

  가톨릭 성당 뿐만이 아니다. 근처에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정교회 성당이 서 있었다. Resurrection of Christ Orthodox Cathedral이다. 성당은 푸른 하늘과 무척 잘 어울렸다.

<현대적 분위기의 정교회 성당><파란 하늘과 멋지게 어울리는 성당의 시계탑>

  내부에는 비계가 설치되어 있고 벽면 도색작업 중이었다. 특이한건 의자. 정교회 성당에 의자가 놓인것은 흔치 않은 모습이다.

<공사중인 성당내부>

  성당에 딸린 서점에 들어가니 정교회 달력(Kalendari Orthodhoks)이 있었다. 글자는 모르지만 신기해서 훑어본다.

<정교회 달력 발견>

  교회 달력의 가장 큰 기념일은 성탄절과 부활절이겠지? 정교회도 성탄절은 12월 25일이었는데, 부활절은 언제일까? 달력을 넘겨본다.

  Prill이 4월(April)이구나. 날짜 옆의 빨간 D는 일요일이겠지? D가 뭘까? A.D.에 쓰는 Domini인가?

  화성(Mars)에서 M, 수성(Mercury)에서 M, 토성(Saturn)에서 Sh이겠지? 목성(Jupiter)과 금성(Venus), 달(Lunar, Moon)은 왜 E, P, H일까? 어원이 다른가?

  13일에는 Hyrja e Krishtit në Jerusalem. 음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그리고 1주일 후 가장 굵게 표시된 4월 20일. Pashka e madhe, Ngjallja e zotit Jisu Krisht. 아. 부활절이구나!

  정교회력이 그레고리력보다 13일 느리니까 5월 3일이 정교회 부활절이군. 이날 발칸반도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겠구나! 알바니아어를 전혀 모르지만, 여행을 지속하다보니 잔머리만 늘어간다. 늘 생각하지만 이런 감은 시험칠때 나와야 하는건데….

<천장 돔의 이콘은 정교회 스타일이다>

  성당 근처에는 Fortress of Justinian이라는 성벽의 잔해가 있었다. Justinian이라는 이름답게 비잔틴 시대에 지어진 성벽이다. 얼마 남지 않은 성벽의 일부는 현재도 건물외벽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조금 남은 성벽만으로는 과거 티라나의 영화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이게 유스티니아누스 성벽이라고?><유스티니아누스 성벽 옆 광장>

  성벽 근처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성벽 뿐만이 아니다. 티라나 시내 곳곳에 공원이 있었고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시민들은 정말 여유로워 보인다.

<장난감을 팔고 있는 공원><체스 두는 할아버지>

  공원을 따라 이동하다 보니 거대한 모자이크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국립역사박물관(National Historical Museum)이다. 박물관은 알바니아의 역사를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었다.

<투쟁의 역사? 전사들이 새겨진 모자이크>

  간략히 알바니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2,000경 일리리아인들이 이주하여 왕국을 구성하고 해양민족으로 발전해 나가며 고대 그리스와 교류하였다. 이후, 로마제국에 합병되고, 비잔틴 제국의 일부로 이어진다.

  당시 일리리아에서는 비잔틴 제국의 황제까지 배출하는데 그 중 한명이 법전을 만들고 성 소피아 성당을 완공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Justinian I)이다.

<국립 역사박물관 전경>

  중세에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도 하지만, 발칸지역의 대부분의 나라처럼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다가 1차대전 직전에 독립한다. 독립한 알바니아에는 Zogu라는 지도자가 등장하여 알바니아 왕국을 세웠으나 그 수명은 길지 않았고, 곧 공산 혁명이 일어나 1941년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공산당 정권이 들어선다.

  이후 1991년 공산주의가 붕괴되며 민주화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알바니아로 부르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Shqipërisë(슈치퍼리스)라고 한다.

  가만히 보면 이 동네는 비슷비슷한 역사의 연속이다.

<스트라이크! 총들고 볼링치는듯한 이름없는 빨치산(Statue of the Unknown Partisan)>

  역사박물관 앞에는 잔디밭이 가꾸어져 있었다.

  도심에 이렇게 공원과 녹지가 많은게 참 좋아보이는데 그 중 가장 넓은 잔디밭이 바로 이곳 Skanderbeg 광장이다. 넓은 잔디밭 한가운데 Skanderbeg의 기마상이 서 있다. 코소보 프리슈티나에도 서 있던 중세 알바니아의 영웅이다.

<역사박물관 앞 Skanderbeg 광장>

  역사박물관에서 본 스칸데르베그(Skanderbeg, 1405-1468)의 본명은 Gjergj Kastrioti로 비잔틴 제국의 유서깊은 귀족인 Kastrioti가문에서 태어났다. Kastrioti 가문의 독수리 문장은 비잔틴 제국의 고위 관료임을 뜻한다.

  어릴 때 오스만 제국(Ottoman)에서 인질 생활을 한 것은 드라큘라로 알려진 왈라키아(루마니아)의 블라드 쩨페쉬와 비슷하다. 오스만 제국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Iskander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이는 알렉산더 대왕을 이슬람식으로 표현한 것이다.(알렉산더≒이스칸더)

<잔디밭 가운데 서 있는 스칸데르베그>

  그는 이후 Beg라는 직책을 받는다.("Beg" of Sandjak of Nikopol in Bulgaria)

  Beg가 어느정도 위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영어로는 어감이 좋지 않다. 아무튼 Beg가 된 Iskander(Iskander Beg)는 나중에 Skanderbeg로 불린다.(대체 I는 어디로 증발한걸까? April→Prill에서 보듯 단어 처음에 모음을 잘 안쓰나보다.)

  그는 세력을 키워 오스만 제국에 대한한다. 알바니아 중부의 Kruja를 수도로 삼아 영토를 확장하고, 25년간 수차례 오스만 제국과 싸우며 자신의 주권을 지켜나간다. 심지어는 당시 최강의 요새이던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정복한 술탄 메흐메드 2세도 물리쳤다. 후대의 평가로는 오스만 제국의 전 유럽 지배를 막았다고 한다.

<스칸데르베그는 장식으로도 사용된다.>

  그는 지금도 알바니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민족 영웅으로 그의 가문의 검은 독수리 문장은 지금도 알바니아 국기에서 사용하고 있다. 알바니아에서 뿔 두개가 달린 투구를 쓴 사람의 초상을 본다면 그가 바로 스칸데르베그다.

<스칸데르베그의 염소뿔 투구를 상징으로하는 Kastrati 주유소>

  Skanderbeg의 동상 주위에는 Et'hem Bey Mosque라는 작은 모스크가 있다. 티라나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모스크라는데 18세기에 설립된 건물이다.

  어라? 비잔틴 제국의 성벽도 남아있는데, 18세기 모스크가 가장 오래된거라고?

<초라하지만 티라나의 가장 오래된 Et'hem Bey 모스크>

  이유는 놀라웠다. 1967년, 엔베르 호자는 중공의 문화혁명의 영향을 받아 종교 탄압에 들어갔고, 각종 종교시설을 파괴하거나 용도변경을 시도한다. 마침내 세계 최초로 종교가 없는 국가를 선포한다.

  뭐,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를 아편에 비유할 정도지만, 국가 차원에서 무종교를 선포한건 알바니아뿐이었다고 한다. 하긴, 그동안 거쳐 온 발칸의 구 공산권 국가들도 오래된 성당이나 모스크는 남아있었으니까.

  이 소박한 모스크는 그 사이에서 살아남은 것이다.

<넓은 도로 Blvd Deshmoret e Kombit>

  공산주의가 붕괴된 후, 현재는 종교를 허용하고 있으며, 국민의 약 70%가 무슬림이지만 그다지 독실해 보이지는 않는다. 히잡을 쓴 여자들도 별로 없고, 가게마다 티라나 맥주가 보일 정도니까.

  날마다 시간에 맞추어 아잔 소리가 울려퍼지기는 하지만, 이슬람은 한국의 유교문화 정도로 종교라기보다 문화와 전통으로만 남은 듯 하다.

<거대한 분수대><자전거 대여소>

  사람들은 매우 개방적이고 늘 미소를 띄고 있다. 기존에 갖고있던 알바니아의 이미지(유럽의 별종인 폐쇄적이고 가난한 이슬람 국가)는 완전히 깨어지고 있다.

<자전거 도로에서 만난 할아버지><축구장 앞. 빨치산이 축구팀 이름이라니! FK. Partizani>

  생각만큼 무서운 나라는 아니구나. 알바니아에도 흥미가 생긴다. 한동안 머물면서 이 나라에 대해 더 알아보기로 했다.

<티라나 시내. Et'hem Bey Mos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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