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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Albania)

115. 따뜻한 알바니아 사람들

  알바니아로 넘어오자 확실히 날씨가 덜 추웠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는 바로 비.

  장댓비가 굵고 지루하게 쏟아진다. 잠깐씩 갤때는 더없이 화창하지만 곧 비의 반복. 이런 강한 비의 영향인지 집 베란다마다 파라솔을 비스듬하게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기온 자체가 낮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춥다. 두꺼운 외투를 필요로 할 정도는 아니지만 가만히 있으면 으슬으슬 떨리는 기분 나쁜 추위다. 겨울에 비가 많이오고 습한 영향이 아닐까 싶다.

<빗물을 흘려 보내는 비스듬한 햇빛가리개>

  처음에는 빨리 출발하기위해 조바심을 내었지만, 좀처럼 비가 그치지 않는다. 다행인건 숙소도 좋고 알바니아의 저렴한 물가는 부담도 덜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물가 비싸고 추운 나라에서 계속 비맞으며 고생하느니 여기서 비 그치고 날씨가 풀릴때까지 머루르는것도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점차 알바니아가 마음에 들고 있다.

<저렴한 티라나 북쪽의 시장>

  한동안 Sauk 마을에 머무르자 동네 주민들과도 친해졌다. 낮에 공터에 나가보면 어르신들이 늘 체스나 카드놀이, 도미노 게임을 하고 있다. 볼때마다 같이 하자면서 자리를 비워준다.

  도미노 게임은 0~6까지 양쪽애 주사위 단면이 그려진 패를 사용한다. 0,0 에서 6,6까지 28개의 패를 사용하는데 순서대로 같은 숫자끼리 이어나가며 먼저 패를 다 버리는 쪽이 이기는 게임으로 여기서 매우 인기있는 놀이다.

<도미노 게임을 즐기는 어르신들>

  말은 거의 통하지 않지만, 그 와중에 조금 영어를 하는 분이 있으면 알바니아 좋냐로 시작해서 자국 홍보에 열을 올리고, 근처 멋진 모스크가 있다면서 구경하라고 잡아끈다.

<사진찍는 순간 바람이 불어서 표정이~>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르신들이 여가를 즐기는 곳은 쓰레기가 널려있고, 의자와 탁자 대신 빈 플라스틱 박스, 폐 CRT 모니터 등에 앉아서 쉬는 것이다.

<도미노 게임패와 게임 테이블>

  내 눈에 보이는 알바니아는 매우 가난하고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다. 호텔 직원 Moni는 성실하고 친절한 친구였는데 한 달 임금은 30만원이 채 안된다고 한다. 그는 이 나라에서 미래가 없다면서 돈을 모아 영국으로 갈 계획을 갖고 있었다.

<성실하고 착한 친구 Moni><다 허물어져 가는 동네 잡화점>

  마을 주민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쓰레기통을 뒤져 PET병, 유리병, 캔 등 자원을 채취하는 사람들도 있다.

<쓰레기통 광산 발굴중>

  티라나(Tirana) 시내는 얼핏 보면 번듯하게 꾸며 놓았지만, 조금만 외곽으로 가면 빈부격차가 몸으로 느껴진다. 특히 인공 호수(Artificial Lake) 주위의 빈민가는 한숨만 자아낼 뿐이다.

  호수주변 쓰레기 더미에서 판자를 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여기가 과연 유럽이 맞는가 싶을 정도이다. 아니, 유럽보다는 인도에서 자주 보던 모습이다.

<인공호수 주변의 빈민가>

  반면 인상적인건, 알바니아 사람들은 내 느낌상 매우 부지런하다. 

  05:45~06:00 사이에 거리를 돌아보면 많은 가게가 벌써 문을 열고 영업중이다. 그 시간에도 손님이 있다는 소리다. 실제로 거리에는 출근, 등교를 위해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4월부터는 섬머타임이 시작되어서 기상시간이 더 빨라졌다.

  마침내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정들었던 티라나를 떠난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으나 너무 지체했다. 친절한 호텔 직원들과 작별하고 길을 나섰다.

  티라나를 떠나는 아쉬움에 그동안 다녀보지 못한 길을 이용했다. 어딜가나 역시 티라나는 알록달록하고, 시가지가 복잡한건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다. 한참이 지나서야 티라나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마음껏 달릴 수 있겠구나.

<건물마다 화살표가. 우회전 하라고?>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포장 상태도 좋아 달리기 좋다. 티라나에서 뵌 선교사님 말씀으로는 도로를 새로 포장한건 최근의 일로, 몇년 전만 하더라도 차를 타더라도 알바니아를 벗어나는게 힘들 정도였다고 한다. 길은 새로 닦았지만 길 가장자리에 뚜껑 없는 배수로와 맨홀이 많아 방심하면 위험하다. 늘 사주경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알바니아 독수리가 서 있는 회전 교차로>

  이날 눈 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개 한마리가 길을 건너다 마주오는 차에 부딪힌 것. 속도를 내고 있던 차는 범퍼가 부숴져 버렸다. 사고를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아 한동안 걸음을 멈췄다. 위험한 길이다. 늘 조심 또 조심 해야한다.

<설마 방공호가 마굿간은 아니겠지?>

  스칸데르베그(Skanderbeg)의 도시 Kruja도 지나고, 아름다운 농촌이 펼쳐진 알바니아 중부를 달리고 있다.

<소몰고 가시는 어르신><멀리 산이 보이는 알바니아 중부 농촌 풍경>

  평지로 시작한 길은 Lezhe를 기점으로 산지로 바뀌었다. 길이 그리 험하지는 않지만 슬슬 힘이 빠지기 시작한다.

<부쩍 가까워진 산길>

  길가 식당에서 사과와 바나나로 식사하여 에너지를 보충한다. 주인은 물을 틀어주어 세수도 하고 사과도 씻을 수 있었다.

<국도변 구멍가게에서 식사 끝>

  한참 달려 Kodhel과 Dajç이라는 마을 중간 지점에 짓다 만 집이 보인다. 1층에서 쉬며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건물도 없고 이보다 더 좋은 숙소가 없을 듯 하다. 해가 지려면 한 시간 가량 남았으나 여기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벽이 있는 2층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정리했다. (4월 14일 주행거리 78.84km, 누적거리 8,583km)

<오늘도 좋은 휴식처 등장>

  잠자리가 밖에서 눈에 띄지 않으니 더욱 편안하고 여유있다. 식빵으로 조식을 해결하고 길을 나서는데 전날 그렇게도 화창하던 날씨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먹구름이 가득하다.

<먹구름과 어우러진 태양은 비현실적인 색감을 선사한다><알바니아의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듯한 헐벗은 나무>

  아니나다를까,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고, 비는 금새 폭우로 돌변했다. 우선 주위를 살피다 작은 까페를 발견, 일단 비를 피하며 추이를 살피기로 했다.

  비는 종일 그치지 않고 계속하여 쏟아진다.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데 주위 손님들이 하나씩 말을 건다.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았으나 까페 한켠의 PC를 이용하여 구글 번역기를 통해 말을 이어갔다.

  사실 이곳은 분위기 있는 까페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의 마실 같은 곳이었다. 동네 주민들과 도미노 게임도 하고 약간의 대화도 하며 비가 약해지기를 기다리는데 어느새 까페 문 닫을 시간이 다가온다. 누군가 어디에서 잘 거냐고 묻는다. 쉬코드라(Shkodra)로 갈건데 폭우 때문에 조금 더 기다리겠다고 하니 자신의 집에서 자라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까페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자기 집에 오라는 것이다.

<도미노 게임을 즐기는 주민들>

  조셉이라는 친구는 비 한방울도 맞지 않을거라면서 차를 끌고왔다. 하지만, 자전거를 싣기에는 무리다. 이제는 까페 주인까지 나섰다. 비오는데 다른데 가지 말고 여기서 자라면서…….

  결국은 까페에서 자기로 했다. 밖에는 계속해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Bërdicë e Sipërme, 주행거리 17.17km, 누적거리 8,600km)

  식사를 못했는데, 조셉은 빵 하나를 주고 갔고, 까페 주인도 집에서 음식을 차려 왔다. 까페 손님일때는 커피값을 받았는데, 초대한 손님이 되자 모든게 무료로 변해버렸다.

<비맞으며 챙겨준 저녁식사. 정말 감사합니다>

  밤새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면서 집에서 매트리스를 가져와서 그도 함께 바닥에서 잔다. 매우 불편할텐데 전혀 괘의치 않는 눈치다.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다.

  다음날 아침 06:00. 알바니아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는 벌써 영업 준비를 끝마쳤고, 세숫물과 보송보송한 새 수건, 아침 식사를 대접했다. 식사를 마치기 무섭게 첫 손님이 들어왔는데 시간은 06:25 경이다.

  대체 왜 이 꼭두새벽부터 동네 까페에 들어오는 것일까? 혹시 직업이 없어서일까? 아니, 한가하면 차라리 늦잠을 자고 천천히 나올텐데. 아무튼 모를 일이다. 까페는 금새 손님으로 가득 찼고, 손님들은 간밤에 아무 문제가 없었음을 확인했다.

  얼마 지나니 다행히 비가 그치고 있다. 고마운 까페 주인과 동네 주민들에게 인사하고 쉬코드라를 향해 길을 나섰다.

<출발 전 다함께. 그런데 어째 표정이 모두 굳어있네>

  알바니아에는 카눈(Kanun)이라는게 있다고 한다. 영어 번역은 Code를 주로 사용한다. 흔히 명예살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 카눈은 가족, 결혼, 주거, 근로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의 관습법으로 가장 특이한 부분은 명예(Honor)와 손님 접대(Hospitality)라고 한다.

  카눈은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 시절에 금지당했으나 아직도 알바니아 북부에는 카눈이 존재한다고 한다. 카눈이 명예살인으로 알려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면 그 가문 모든 남자들은 피의 복수를 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 이는 복수당한 사람도 마찬가지로 심할 경우 한 가문이 멸문할때까지 보복(명예살인)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손님에게도 마찬가지로 만약 자신의 손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면, 가족과 마찬가지로 주인은 복수의 의무를 갖게 된다.

  손님은 신이 보낸 선물이며, 손님에 대한 보호는 자신의 명예와도 직결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접대(Hospitality)를 실천한 고마운 까페 주인과 그 친구>

  혹시 알바니아 북부인 이곳에서 받은 대접이 카눈이 아니었을까? 서로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하던 마을 주민, 조건없이 베풀어 주던 따뜻한 대접과, 밤새 무슨 일이 생길까봐 일부러 옆에서 함께 자던 주인. 다음날 동네 주민들의 이상유무 확인까지.

  쓰레기통을 뒤질 정도로 가난하기 짝이 없는 나라 알바니아.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넉넉한 알바니아 사람들. 그 친절한 마음을 가슴에 새기고 쉬코드라를 향해 길을 나섰다.

<잊지 못할 Bërdicë e Sipërme의 작은 까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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