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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Montenegro)

118. 하이 파이브와 윙크

  몬테네그로(Montenegro)는 현지에서는 Crna Gora(츠르나 고라)라고 부른다. Monte(산) Negro(검정색). 이름 그대로 검은 산(山)이라는 뜻이다. 어라? 이건 스페인어인데? 독일어나 터키어면 모를까, 왜 이 나라를 스페인어로 부르는지는 미지수이다.

<몬테네그로 - Crna Gora 입국><국경에서 만난 프랑스 자전거 여행자>

  국경을 넘어서니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회색빛 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흙 대신 바위로 구성된 산이 어두운 색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런데 허풍이 심했다. 아무리 바위산이라도 검은 산이라니. Monte Gris(회색 산)이 더 어울린다. 혹시 내륙에 더 들어가면 정말 검은 바위 산이 나오려나? 그렇다면 이 나라의 특산물은 벼루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몬테네그로가 아니다. 회색 산 Monte Gris>

  하지만, 내륙으로는 가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 계속 산을 넘어왔기에, 또 이 나라의 수도인 포드고리차(Podgorica)는 별 매력이 없다고 한다. 대신 그리웠던 바다를 향해 달리기로 했다.

<주택가에 양도 있네>

  그런데 나라이름에 산이 들어있는 나라 아니랄까봐 계속 오르막 내리막의 반복이다. 고도가 높지는 않지만, 조금 달릴만 하면 다시 오르막이 나온다. 덕분에 발 뿐만 아니라 기어 변속을 하는 손가락도 늘 분주하다.

<속도감속 신호대신 소 건널목 표지>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오르막의 연속이지만 짜증나지 않고 신나게 달릴 수 있는 이유는 친절한 사람들 때문이다.

  몬테네그로 사람들 역시 그동안 만난 발칸 반도의 여느 나라처럼 친절했다.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하는 사람들, 자동차는 경적을 가볍게 누르며 힘내라고 응원해 준다. 위험하게 추월하지도 않아 더없이 즐겁게 달릴 수 있었다.

<바위산으로 구성된 몬테네그로><검은 산 몬테네그로의 속살은 황토색>

  특히 마을 근처 아이들은 하나같이 손을 내민다. 달리면서 하이 파이브를 몇번이나 했는지 모를 정도다. 개중에는 학교에서 배운 짧은 영어로 말을 걸어보는 용감한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또 수줍음은 많아서 카메라는 피한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관광지가 아닌, 이런 이름모를 작은 마을은 진짜 그 나라를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서 좋다. 지금까지 이 나라 사람들의 인상은 밝고 유쾌하지만 수줍음도 갖고 있는, 정말 때묻지 않은 사람들인것 같아서 참 좋다.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학생들>

  잠시 쉬는데 사람들이 또 키나 키나 하는 것이다. 키나라는 말은 정말 중립적인 의미로 '중국인'을 뜻할때도 있지만(마치 우리가 외국인을 미국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처럼), 그보다는 무시하는 느낌일 때가 있어 듣고싶지 않은 말이다. 야빤(일본)이라는 말을 들을때와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잘린 고목에 다시 자란 새 잎>

  하지만 이 아이들의 태도로 보아 아무 선입견도 없고, 정말로 동양인을 처음 본 듯한 반응이다. 그렇지만 키나 소리를 듣고 싶지는 않으므로 태극기를 게양하고 달리기로 했다. 그리고 '꼬레'(한국)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럴 때는 정말 조심스럽다. 내가 한 말 한마디 무심코 한 행동 하나가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로 고정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국기 게양. 몬테네그로에 휘날리는 태극기>

  한참 즐겁게 잘 쉬었으나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생겼다. 몇몇 사내녀석들이 느닷없이 윙크를 하고 가는 것.

  그동안 수차례 게이를 보았고, 심지어 트랜스젠더의 유혹도 받았기에 윙크만 보고도 바로 감이 왔다. 가만보니 기생오라비 같은 외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갑지 않은 녀석들과 시비붙고 싶지 않았기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샛길로 접어들고>

  주 도로인 E851을 계속 달리면 울치니(Ulcinj)라는 항구도시다. 알바니아인들이 대부분인 곳이라는데 난 알바니아에 오래 머물렀으므로 울치니는 생략하기로 했다.

  Krute라는 마을을 지나 E851 유로 도로 대신 샛길로 빠졌다. 경치도 좋고 차량 통행도 거의 없어 달리기는 훨씬 쾌적하다.

<구름이 걸려있는 회색 산><몬테네그로를 배경으로 사진 한 컷>

  한참 달리자 Bar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의 Starigrad도 볼 만 하다는 말을 들었기에 잠시 들렀다 가기로 했다. Stari는 오래된, Grad는 도시라는 뜻이다.

<멀리 보이는 Starigrad 성벽>

  Starigrad는 상당히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낑낑거리며 올라가는데 자전거 여행자가 눈에 띈다. 오늘 만난 세 번째 자전거 여행자다. 잠시 쉬며 이야기를 나눠 보니 호벳 오스트리아인으로 Starigrad에서 막 내려왔다고 한다.

<호벳과 그의 자전거>

  호벳과 헤어지고 좁은 마을길을 올라가니 마침내 Starigrad 성벽이 나타났다.

<가파르고 우둘투둘한 돌 포장길>

  Wing은 성밖에 세워두고 홀로 입장, 입장료는 학생 할인하여 1유로다. 참, 몬테네그로는 자국 화폐 대신 유로화를 사용한다.

<그나마 잘 보존되어있는 외벽>

  Bar는 B.C. 800년경 일리리아인에 의해 세워진 도시이며 슬라브인, 베네치아인, 오스만(Ottoman)의 통치를 받으며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성 밖에 보이는 이건 로마시대 수도교로 보이는데?>

  성은 오스만 제국 치하에 증축했으나 현재 Starigrad는 폐허만 남아 박물관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폐허로 남은 Starigrad>

  지금은 파괴된 돌무더기였지만, Bar가 한창 발전했을때는 항구를 낀 거대한 성채였을리라. 한참을 머물며 Starigrad를 둘러보았다.

<잔디만 가득한 성벽 잔해에서><온전하게 보존된 시계탑>

  Starigrad를 둘러본 후, 내친김에 항구까지 내려갔다. 항구에는 이탈리아로 향하는 국제 여객선 터미널이 있고,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여가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여객선 터미널 앞, 경비정과 Wing><빽빽한 요트 마스트는 밀집한 팔랑크스의 창을 연상시킨다>

  공원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알바니아에서 삶아 온 계란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젊은 아가씨들이 윙크를 하며 지나간다. 왜 갑자기 나에게? 그러고 보니 몬테네그로 아가씨들은 참 예쁘다. 키는 거의 나만한데 늘씬하고 이목구비가 또렸하다.

  윙크를 두어번 받자 쓸데없는 생각이 든다. 혹시 동양인의 외모가 어떤 매력 포인트로 작용한건가? 이참에 몬테네그로 아가씨들을 만나봐?

  괜히 혼자 들떠 화단 뒤에서 팔굽혀펴기도 하고 가슴에 힘 주고 앉아있는데 어떤 남자가 윙크를 한다. '방금 펌핑했는데 왜 하필이면 호모야?' 생각하며 이유를 물어봤다.

  "너 대체 왜 나한테 윙크하냐?"

<구 시가지의 모스크>

  그런데 이유는 뜻밖이었다. 여기서 윙크는 그저 'How are you?' 또는 목례 정도의 가벼운 인사라는 것이다. 답례도 윙크를 하거나 살짝 웃으면 된다는 것. 그는 절대 게이가 아니었다.

  이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했구나. 참을 수 없는 민망함에 다시 자리를 떴다.

<항구도시 Bar의 해변 공원>

  그새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오늘 목적지는 Budva라는 항구도시로 약 40km가량 남아있다. 부지런히 달려야 한다. 

  그런데 이 꼬부랑 도로는 도무지 끝날줄을 모른다. 해안도로가 의외로 험하다는것은 알고 있었으나 상당히 가파른 경사도의 오르막이 이어진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한다.

  중간 중간 캠핑할 만한 곳도 보였지만 달려야만 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Budva에 특가 상품으로 싸게 나온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기 때문이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도 이유 중 하나다. 빨리 도착하지 않으면 하루치 숙박비가 날아간다. 이런 괜히 예약을 해가지고는…….

<아드리아해 너머로 넘어가는 해>

  마침내 Budva 표지판이 나오고, 얼마 후 성벽이 나타났다. 성 안 구시가지는 좁은 도로가 이어졌다. 도로 포장도 돌 포장이라 자전거 끌기에 좋지 않다. 호스텔에서 보내 준 안내메일에는 약국 근처라고 했는데 간판 불이 다 꺼진 시간이라 찾기가 쉽지 않다.

<섬을 연결해 만든 특급호텔 리조트 Sveti Stefan>

  한동안 헤맨 끝에 22:45분 Montenegro Hostel Budva 발견. 15분만 늦었으면 직원이 없었을 거라고 한다. 다행히 저렴한 가격에 편안히 쉴 수 있게 되었다.

  와! 일단 샤워부터 하고 보자.(4월 24일 주행거리 93.50km, 누적거리 8,719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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