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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네그로(Montenegro)

121. 몬테네그로=코토르

  날은 잠시 개는 듯 했으나 금세 흐려지고 비가 쏟아진다. 간만에 우리말을 쓰면서 많은 대화를 했던 경호형님은 크로아티아로 떠났고, 나는 비를 핑계삼아 코토르(Kotor)에 하루 더 머무르기로 했다. 다행히 숙박비가 저렴한 편이라 그나마 부담은 덜하다.

<경호형님 떠나기 전 마지막 사진>

  코토르의 마지막 날에는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Jean Claude Badoux를 만났다. Jean은 부드바(Budva)를 거쳐 알바니아로 향할 예정이지만 비가 많이와서 자전거도 정비할 겸 하루 쉬어간다고 한다. 함께 달릴 수 있으려나 기대를 했으나 이 친구 역시 나와 경로가 반대다.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 장 끌로드 바둑?>

  이 친구는 자전거도 좋고, 장비 하나하나 매우 좋은 제품이다. 특히 완전 방수되는 트렁크백은 참 마음에 든다. 나는 침낭과 겨울 자켓을 배낭에 넣고 다니는데 배낭커버 방수능력도 제한적인데다가 코팅이 다 벗겨져서 비만 오면 젖는다. 내용물을 각각 비닐봉지로 포장했지만 배낭 자체가 젖는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자전거와 부가장비만 2,000유로가 넘는다는 초호화판 업그레이드 셜리>

  그런데 이 친구가 멋진 선물을 주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바로 60ℓ나 되는 쓰레기봉투!

  커다란 배낭이 쏙 들어간다. 비닐이지만 제법 두껍고 자체적으로 결속할 수 있는 끈도 내장되어 있다. 스위스제라니까 시계나 칼처럼 괜시리 신뢰가 간다. 이게 브랜드와 이미지의 힘인가 보다.

<스위스제 쓰레기봉투와 배낭>

  오호! 이제 배낭 방수문제도 해결되는구나. 이제 어느정도 비는 문제없겠다. 선물을 고맙게 받아들고 정들었던 코토르를 나선다.

  길은 몇 가지가 있다. Tivat이라는 또다른 항구 도시를 거쳐 가는 방법도 있고, 코토르 만 동쪽길로 돌아 나가는 방법도 있다. 나는 Jean이 추천한 길-코토르 남서쪽으로 만을 따라 돌아가기로 했다.

<코토르 외곽 해변>

  코토르 성벽 내 Stari Grad는 중세 모습이 남아있고, 대부분 숙소, 레스토랑, 상점 등 관광지라면, 실제 주민들이 살고 있는 곳은 성 바깥쪽 마을이다. 특히 해안도로를 따라 위치하고 있는 주택은 하나하나가 그림같은 곳이다.

<멀리 보이는 Stari Grad와 Lovćen산>

  리본처럼 생긴 코토르 만은 그 자체로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서 해일의 위험도 없고 파도는 오히려 호수보다도 잔잔하다. 고인 물 같지만 부유물 하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끗하다.

<해안의 성당>

  야자수는 이국적인 색채를 더해주고, 여기에 집 앞 좁은 도로를 지나면 부두. 보트 계류시설로 이어지는데 여기에서 낚시를 하거나 담소를 나눈다. 날씨가 조금 더 따뜻해지면 여기서 멱도 감고 보트도 띄울 것이다.

<보트 계류장>

  이 깨끗한 물에 한번 들어가보지 못한건 정말 아쉬움으로 남는다. 춥더라도 들어갔어야 하는건데…….

  여행 중 많은 좋은 곳을 지나쳤지만 이곳은 정말 마음에 든다. 기가막힌 경치에 사람들까지 친절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코토르 외곽에 작은 집 지어놓고 살고 싶을 정도다.

<아, 코토르. 여기서 살면 좋겠다>

  사진을 찍는 중 갑자기 나한테 관심을 보이는 소녀.

  한살이라는데 우리나이면 2~3살이겠지? 코토르의 이름모를 소녀에게 토끼풀 꽃을 받아 Wing의 핸들에 고이 걸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

  마치 호수같은 코토르 만에는 요트도 떠다니고 만 사이 작은 섬에는 성당도 보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달릴 수 있는 길이다.

<두둥실 떠다니는 요트와><마치 배처럼 떠있는 두 섬>

  잠시 후 이번에는 게임 대항해 시대에 나올 법한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가 부두다. 리본을 따라 돌아가는 대신 매듭 부분을 가로지르는 페리를 이용하는 경로다.

<게임의 배경인듯한 부두를 낀 마을>

  페리 운임은 자전거 포함 단 1유로. 페리는 쌍동선(Catamaran)이라 갑판을 넓게 쓸 수 있고, 차도 많이 실을 수 있다. 또, 갑판 위치가 낮아서 물 위를 걸어가는 느낌을 준다. 물 위에 서있는듯 눈 높이에서 바라보는 항구마을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승선 준비>

  쌍동선 두 척이 교대로 승객과 차량을 실어나르는데 화객이 많지 않아 과연 1유로에 유지가 가능할까 싶을 정도다. 운항 거리가 짧으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교량을 건설하는게 연료비나 시간절감 등 더 저렴할텐데 전혀 그럴 계획은 없어 보인다. 한국은 인구나 통행량이 적은 섬조차 다리를 건설하는데…….

<쌍동선 갑판의 Wing>

  하긴 조금 돌아가긴 하지만 우회로가 있으니까! 이 경관을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서일까?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건 이 사람들의 느긋함일까 아니면 단지 건설비용이 부족해서일까?

<멀어지는 부두>

  느긋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휴식을 취하고 상륙하자 곧 빗방울이 떨어진다. 하지만 쓰레기봉투 덕분에 걱정이 덜하다. 판초우의를 뒤집어 쓰고 다시 달린다. 다행히 비는 금세 그쳤다.

  우의를 벗고 다시 달리는데 주황색 페니어가 보인다. 오. 드디어 같은 방향의 자전거 여행자가? 속도를 내어 다가가 보니 할아버지신데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이탈리아 뿐. 이탈리아 사람이라는건지, 이탈리아로 간다는건지 조차 알 수 없다. 말만 통하면 속도를 맞춰 함께 달리겠지만 이건 전혀 알아듣지 못하니 아쉽다.

<자전거 여행하시는 할아버지와 짧은 만남>

  약간의 오르막을 지나자 Herceg Novi라는 도시가 나타난다. Herceg Novi에 머물 생각은 전혀 없지만 바다에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엄청나다. 여기서 식사라도 하고 가야겠다.

  빵 한조각으로 식사하는데 산책하던 여학생들이 관심을 보인다. 몇 마디 나누며 다시 출발. 이제 몬테네그로 국경은 10km도 채 남지 않았다.

<오래된 성이 남아있던 Herceg Novi><자전거 여행을 부러워하던 몬테네그로 여학생들>

  그런데 나를 보며 손을 드는 히치하이커. 설마 내 자전거 함께 타고 가겠다고? 그런데 동양인이다. 혹시 한국인일까 잠시 자전거를 멈추었다.

  알고보니 일본인 치카와 키코, 이들은 히치하이킹만으로 유럽을 일주 중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Dubrovnik). 여자 둘이면 위험할 법도 한데 용감하고 대단하다고 했더니 내가 더 용감하다고 치켜세운다.

  몬테네그로(Montenegro, Crna Gora)부터는 히치하이커들도 자주 보인다. 본격적인 관광지에 들어선 기분. 잠시 대화를 나눠 보니 히치하이킹도 쉽지는 않다. 경로가 다르거나 빈 자리가 없는 경우는 예사다. 희비도 자전거여행과 비슷하다. 태워줄 수는 없지만 힘내라고 가볍게 경적을 울리며 응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손가락을 세우며 뭐라뭐라 지껄이고 가는 녀석들. 따라와 보라면서 속도를 줄이고 약올리며 가는 녀석들도 자전거와 동일하게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도 자전거나 심지어는 우편 배송차량까지 차만 보이면 손을 들면서 서로 장난도 치며 유쾌하게 여행하고 있다. 활기차 보여서 좋지만 문득 나도 일행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차가 잘 잡히지 않던데 이 친구들은 두브로브니크에 잘 도착했을까?

<히치하이킹 포즈를 취해준 치카와 키코>

  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 국경이 가까워지자 갑자기 주위 경관이 변했다. 회색빛 산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일반적인 이미지의 푸른 산이 나타난다. 몬테 베르데(Monte Verde; 초록산) 정도? 어느 새 이렇게 변했을까? 마치 졸면서 연극보다가 문득 깨 보니 배경이 바뀌어 있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산 만으로도 몬테네그로가 끝나간다는게 느껴지니 재미있다.

<몬테 베르데 등장>

  그리고 갑자기 등장한 갈매기모양 검문소. 어라? 아직 국경이 나타날 거리가 아닌데? 역시 지도를 보니 국경은 2km은 더 떨어져 있다. 이상하다 생각하며 가 보니 역시 국경검문소다. 보통 출국심사대 바로앞에 다음나라 입국심사대가 있거나 같은 건물에 있는 경우도 있던데 근처에 크로아티아 국경은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중립지대가 2km여 되는가 보다.

<몬테네그로-크로아티아 국경 검문소>

  출국 절차는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끝났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여권에 도장을 바로 찍어주니 서운할 정도다.

  짧은 몬테네그로 여행. 가오리처럼 생긴 이 나라의 남서쪽 변만 따라 달렸다. 덕분에 나라 이름에서부터 험한 산길을 예상했지만 Monte Negro(검은 산) 대신 Mar Azul(푸른 바다)를 더 많이 본 즐거운 길이었다.

<몬테네그로 주행 경로>

  몬테네그로는 로마 알파벳을 사용한다. 키릴(Cyrillic)에 헷갈릴 일도 없고 영어도 잘 통한다. 게다가 유럽연합(EU)은 아니지만 코소보처럼 유로화를 공식 화폐로 사용하여 환전이나 잔돈에 골치아플 일도 없어 여행하기에 편하다. 물가도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물론 알바니아와의 상대적인 차이로 처음에는 크게 놀랐지만 알바니아가 워낙 가난했으니까.

<아직 유럽연합(EU)이 아니라 자체적인 입국도장 사용>

  코소보부터 알바니아를 거치면서 본, 개발되지 않았고 마치 60~70년대로 되돌아 간 듯 한 모습은 적어도 몬테네그로에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전쟁의 피해가 없었던 것도 크게 영향을 끼친 듯 하다.

  그러고 보면 몬테네그로는 참 운 좋게도 전쟁을 줄곧 피해왔다. 세르비아와 코소보, 알바니아에서 피터지게 싸워 준 덕분에 오스만 제국(Ottoman)의 손길이 닿지 않았고,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도 열외했다.

  오스만 제국의 이슬람 문화 대신 해안 쪽은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코토르 등 해안 도시에서는 그동안 보아오던 발칸과는 어딘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지고 아드리아해를 통해 베네치아와 교류하던 흔적은 코토르 해양박물관에 잘 남아있었다.

  사람들은 구김없이 밝고 친절하다. 몬테네그로는 유럽에서는 휴양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는 아직 덜 알려진 곳이다. 어쩌면 언젠가 다시 몬테네그로에 온다면 물가도 크게 오르고 이런 친절한 모습보다는 특히 관광지를 중심으로 조금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

<윙크로 오해를 불러 일으킨 몬테네그로 미녀>

  몬테네그로 여행은 마치 머리를 포맷이라도 한 듯, 코토르 만 외에는 기억나는게 거의 없다. 단 일주일! 비록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는 했으나 왜 다른 기억이 거의 나지 않을까?

  되짚어 보니 우중충한 회색빛 산을 바라보며 멋진 들판과 해안선을 따라 달렸고, Bar의 공원 흔적만 남은 Stari Grad. 야간주행, 우중주행, 부드바와 스베티 스테판의 헛걸음 등 나름 기억이 있는데…….

  이유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아름다운 코토르의 인상이 너무 강렬하여 다 묻혀버린 것이다. 내 기억속의 몬테네그로=코토르.

<몬테네그로의 St. Triphon's Cathedrale>

  부드바나 Bar, Hercego Novi의 해안도 코토르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런 곳들은 코토르에 비하면 '따위'라는 관형사가 저절로 붙는다.

  풍경은 더 좋은 풍경이 나타나면 곧 잊혀지지만 다행히 사람과의 기억은 그대로 보존되는것 같다.

  몬테네그로의 각지에서 받은 인상은 코토르에 덮혀버렸지만 하이파이브를 하며 응원하던 꼬마들, 윙크를 날리던 아가씨들(과 청년들). 몬테네그로 입국부터 줄곧 눈에 띄던 자전거 여행자들과의 만남. 특히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 경호 형님과의 즐거운 시간으로 인해 여행은 더욱 풍성해졌고 코토르의 아름다운 모습과 함께 오래오래 기억될 것 같다.

<안녕 몬테네그로! Doviđenja Crna 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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