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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IH)

137. 성모님의 도시 메주고리예

  슈퍼마켓은 2km가량 가야 있는데 이미 문을 닫았을 거라고 한다. 오늘 밤에는 물로 배를 채워야겠구나. 에휴. 그래도 씻고 잘 수 있는게 어디냐.

  그런데 돌아와 보니 내 자리에는 먹음직스러운 빵과 닭고기, 양고기가 놓여 있었다.

  식사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배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인데도 접시는 계속 채워진다. 이제 그만 달라고 사정해야 할 정도였다.

<고마운 식사 대접>

  식사를 마치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Ivan Bevanda에 따르면 이곳은 Sretnice라는 마을로, 주민 모두가 크로아티아인이라고 한다.

  크로아티아라고?

  하긴 국경과 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이 친구들의 말은 얼마 전에 머물렀던 크로아티아 공화국(Republika Hrvatska)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 BiH)의 구성국 중 하나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Federation of Bosnia i Hercegovina)에 속한 크로아티아계 마을이었다.

  여행 중 힘든 일을 묻기에, 터키에서 지갑을 도둑맞은 이야기를 하자 무슬림의 소행일 거라고 한다.

  그들에 따르면 무슬림은 각종 범죄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만난 무슬림들의 주장으로는 이슬람(Islam)은 평화의 종교이며, 그들의 다섯 기둥 중 하나가 자선과 나그네에 대한 환대(Hospitallity)다. 나 역시 무슬림에게 도움도 많이 받았고, 좋은 감정을 갖고 있었기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크로아티아 친구들과 함께>

  그러나 불쾌한 반응은 무슬림에 대한 것 뿐, 나에게는 더 이상 유쾌하고 친절할 수가 없었다.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고, 계속해서 말이 많은 눈치였지만, 피곤할 텐데 쉬라면서 늦지 않게 자리를 비켜주었다. 홀로 텐트에 돌아오니 오만 생각이 꼬리를 문다.

  대체 무엇때문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서로 헐뜯고 비방만을 일삼을까?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왔다. 아쉽지만 이제 떠날 시간, 씻고 짐을 꾸리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조금 까페에 머물면서 추이를 살펴보기로 했다.

  까페앞에서 빈둥거리자 피터라는 어르신이 다가왔다. 보여주고 싶은게 있다면서 나를 이끈다. 성모마리아를 모신 작은 탑이었다. 

<흐뭇한 표정의 피터>

   앞에 피터는 없이 뿌듯한 표정이다. 탑을 세우는데 3,500유로 가까이 들었다고 한다. 어쩐지 영어가 능숙하다 했더니 영국 등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고 한다.

  음. 일년 생활비에 해당하는 금액.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피터의 남루한 복장.

  하지만 사람에 따라 중요한 가치는 다른 법이다. 당장 내가 이러고 다니는것도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테니. 멋지고 훌륭하다고 칭찬해 주니 매우 기뻐하고 고마워한다.

  이제 슬슬 날이 개는 하여 출발하려는데 다시 전날의 친구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등교길, 출근길에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것이다. 고마운 친구들.

  크로아티아인들은 유독 키가 컸다. 중에서도 Big Boy라고 불리던 Marko Kordich 220cm 달하는데 내가 옆에 서니 그냥 영락없는 꼬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더욱 왜소해보인다. 

<굴욕사진 한 컷>

  Sretnice에서의 즐거운 기억을 안고 Međugorje(메주고리예)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아, 이곳은 정말 크로아티아구나. 도로 곳곳에서는 별이 그려진 BiH 대신 붉은 체스판 모양 크로아티아기가 휘날리고 있었다.

  흠. 코소보에서는 정작 알바니아기가 더 많이 보이더니, 여기서는 사방이 크로아티아 기구나.

<크로아티아 기가 게양된 가로등>

  우체국을 발견했는데, 표지가 사라예보(Sarajevo)에서 것과는 다른것 같다. 확인해 보니 Hrvatska Pošta D.O.O. Mostar(http://post.ba)에서 모스타르를 중심으로 크로아티아계 지역을사라예보를 중심으로 보스니아 지역은 BH Pošta(http://bhp.ba), 스릅스카 공화국은 Поште Српске(http://postesrpske.com)라는 회사에서 담당하고 있었다.

<크로아티아계 우체국>

  우편업무는 민간 기업이 맡고 있는것으로 보였으며 관할지역에 따라, 우표까지 자체 발행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나라는 화폐 외에는 다르다는 말이 피부로 느껴지고 있다.

<지역에 따라 청, 황, 적으로 구분된 우편번호>

  이 지역은 무슬림과 함께 연방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무슬림과 사이가 좋지 않다. 무슬림과의 관계를 청산하고, 독립 또는 크로아티아 공화국과의 합병을 원한다.

  재미있는건 BiH 축인 스릅스카 공화국에서도 정확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독립 또는 세르비아와 합병)

  우리의 소원은 통일인데, 강제 통일이 나라는 서로 분리를 원한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쪽의 일방적인 흡수통일이 아닌대등한 세력이 결합인 이 나라는 통합된 리더십을 발휘하기 힘들고 소속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혼란만 가중되는것 같다.

<전쟁 따위는 생각도 못할 전원 풍경>

  세르비아에서 만난 Naser 한국은 독일을 본받아야지 세르비아에서 배울 것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하지만,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고 했던가? 독일만큼이나 BiH 통일 역시 분석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역감정으로도 힘들어 하는 우리나라에서 통일 이후를 감당하기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력 차이가 심한 우리나라는 그렇다.

<메주고리예 가는 길은 포도밭의 연속>

  그동안 줄곧 정교회(Orthodox)와 이슬람만 접해 왔는데, 크로아티아부터는 가톨릭(Gatholic) 문화권이다. 피터의 탑으로부터 시작해서 슬슬 새로운 문화권으로 들어온 느낌이 난다.

<계속해서 눈에 띄는 가톨릭 성당>

  특히 오늘의 목적지, 메주고리예는 가톨릭의 성지다. 유고슬라비아(Yugoslavia) 시절인 1981, 마을의 여섯 소년 앞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이후 성모발현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수많은 사람에게 평화의 메세지를 전하고, 환자를 치료하는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빨리 가서 나도 성모님의 기적을 확인해 봐야지. 

<포도밭 작업 모습>

  그런데  나라의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변 포도밭은 너무나 평화로워 보여 안타까움을 더했다.

<드디어 메주고리예 시가지 진입>

  안타까울 정도로 평화로운 길을 얼마간 달리자 드디어 성모님의 도시 메주고리예가 나타났다.

<메주고리예 시가지 모습>

  메주고리예는 작은 도시였지만, 성당을 따라 가톨릭과 관련된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다. 크로아티아에서 만난 마르코에 따르면 성모는 없고 상인들만 있다고 했는데, 그게 과언이 아님을 느낄 정도였다.

<주상복합형 기념품 가게가 즐비한 거리>

  여기저기에서 가보라는 말을 들었던 메주고리예. 바로 이곳의 최고 명소 Saint James Church 향했다.

  성당은 마을 규모에 비해 상당히 컸으며 또한 현대적이었다. 아무래도 성모 발현 이후 순례자들의 기부로 인해 새롭게 단장한게 아닐까 싶다.

<야고보(James) 성인을 기리는 St. James Church의 전경>

  특히 성당 뒤편의 야외 무대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만큼 규모가 컸지만, 미사가 없는 날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았다. 성당 내에도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기도를 드리는 한명 한명은 매우 경건한 모습이었다.

<야고보 성당 뒤편><단상을 정리하는 수녀님과, 간절히 기도드리는 모습>

  또, 작은 도시에서도 성지순례를 오신 한국 순례자를 만날 있었다.

<성당 측면의 성모상>

  안타깝게도 성모님께 면담 예약을 안하고 온 나는, 성모님을 수도, 기적을 체험할 수도  없었다. 기적을 믿기보다 직접 확인해 보리라는 의심의 눈으로 가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용하고 평온한 마을은 매우 마음에 든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건해 보였고, 순례자들은 최대한의 예의를 표하며 조심스레 행동하고 있었다.

  성당 앞에 설치된 생수도 맛있었고, 미사 시간을 맞출 있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 뿐이다.

<정성스레 성모상 앞을 청소하는 중>

  메주고리예 외에도 포르투갈의 파티마 성모발현지로 알려진 곳이 몇곳 있다고 한다. 정말 성모님이 나타났다면 하필 이런 산골짜기 동네였을까?

  81년이면 티토(Tito)의 지도 하에 유고슬라비아가 유지되고 있던 시기였고, 공산권이기는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한 편이었다. 아마, 다른 공산권 국가에 나타났으면인민의 아편 취한 아편장이들의 헛소리로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른다. 공산국가 유고슬라비아가 최적의 장소가 아니었을까? 어쩌면 장차 벌어질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경고하고, 서로 싸우지 말고 돌보라는 메세지를 전해주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성당 앞 거리>

  또, 직접 눈으로 성모발현을 보지는 못했지만, 오해 속에서 BiH라는 나라를 알게 되었고, 아름다운 풍경을 체험했으며, 너무나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에 메주고리예 행은 헛걸음이 아니었고 만족스러웠다.

  하긴, 성격에 진짜 성모발현을 본다고 한들 뭔가 조작된게 아닐까 의심했을것이다. 믿기 어려운 기적과, 쓸데없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거리보다는 한적한 지금의 메주고리예가 좋다.

  정치, 경제적으로 조금 안정된다면, 접근성도 좋고 이스탄불만큼이나 동서양 문화가 혼재된 BiH 여행지로도 각광을 받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상해본다.

<한적한 BiH의 도로>

  이제 짧지만 편안했던 메주고리예 헤어질 시간. 다음 목적지 크로아티아는 여기서 직선거리로 불과 10km 떨어져 있으며, 내가 선택한 Imotski 국경은 60km 달리면 된다 있다. 부지런히 가면 해지기 전에 국경을 넘을 있을 하다. 

<시가지에도 펼쳐진 포도밭>

  그동안 정들었던 독특한 나라 BiH와도 이제 끝이구나.

  BiH에서 계획한 마지막 도시 메주고리예. 참, 이제 남은 BiH 마르크를 모조리 소모해야 한다. 남은돈을 환전한다면 환율도 좋지 않고, 앞으로 갈 나라는 여기보다 물가가 비싼 나라 뿐이다.

<때맞춰 나타난 대형 수퍼마켓 Konzum>

  마침 대형 슈퍼마켓 Konzum 보인다. Konzum이라, 혹시 소비하다는 consume과 같은 어원인가?

  나도 Konzum에서 consumer(소비자) 되기로 했다. 비상식량 등을 가득 싣고 길을 나선다. 

  이제 두브로브니크와 같은 월경지도, BiH 크로아티아계 영역도 아닌, 크로아티아 본토를 향하여!

<크로아티아의 문장이 선명한 도로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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