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로아티아(Croatia)

149. 월드컵의 열정과 행운의 메달

  잠시 쉬어가려던 자그레브(Zagreb)의 일주일이 후딱 지나갔다.이제 슬슬 자그레브를 떠나야겠다 싶은데 흥미로운 소식이 들렸다.

  2014 브라질 월드컵 개막전에서 크로아티아(Croatia)와 브라질이 맞붙는다는 것이다. 축구를 매우 좋아하는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며칠전부터 흥분상태였다.

  월드컵을 모두 챙겨보지는 못해도 크로아티아에서 크로아티아 팀의 경기를 보는것도 재미있을 듯 싶어 일정을 연기했다.

<자그레브 시내의 분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BiH)에서 나를 재워준 이반과도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반 역시 축구경기를 매우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는 BiH 대표팀 대신 크로아티아를 응원한다고 한다.

  대한민국과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모두 16강에 올라갔으면 좋겠다.

  6월 12일. 월드컵이 시작되는 날이다. 아쉽게도 며칠 함께 지낸 경남군은 전날 헝가리로 떠난 상태다.

<헝가리로 떠나는 경남군과 작별>

  낮에 시내를 돌아다니고 오후에는 숙소에서 친구들과 축구경기를 볼 계획이었다.

  시내로 나왔는데 하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숙소로 돌아가려는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금세 굵어진다.

<우중충한 하늘>

  반 옐라치치(Ban Jelačić) 광장까지 왔더니 비가 더욱 거세졌다. 비를 피하려 광장 한켠에 설치된 천막으로 향했다.

<비내리는 반 옐라치치 광장>

  그곳은 월드컵을 맞아 임시 펍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비가 그칠 때 까지 여기서 쉬기로 했다.이미 수많은 크로아티아 청년들이 모여 축구경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축구경기를 기다리며>

  경기 시작되려면 한참 남았는데 그곳은 벌써 열광의 도가니였다.

  “You like Croatia?”, “Of Course.”

<크로아티아 친구들과>

  이 한마디로 합석하게되고 금세 모두와 친해지 수 있었다. 축구공 하나로 지구촌이 하나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다.

  나만 크로아티아 응원도구가 없다. 별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새 머리에 체크무늬 모자가 씌워져 있었고 손에는 대형 크로아티아 국기가 올라왔다.

<부부젤라도 등장>

  국기를 흔들며 함께 흐르바츠카(Hrvatska)를 연호하는데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응원구호가 들린다.

  “Mi Hrvati미 흐르-바티, 짝짝 짝짝짝” 어라? 손동작까지 비슷하다.

<미 흐르바티~ 핸드볼경기 응원(36초부터)>

  이 응원은 신해철씨가 Into the Arena라는 곡으로 발표하면서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던데 여기서도 쓰고 있네? 누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대중적이며 쉽고 간단한 응원이라 TV에서도 수시로 볼 수 있었다.

<Karlovačko 맥주 광고의 쓰인 미 흐르바티(25초부터)>

<광고 하나 더(16초부터)>

  미 흐르바티는 ‘우리 크로아티아’라는 뜻이다. 흐르바츠카는 크로아티아의 자국어 이름이다. 흐보다 더 센 발음으로 ‘크르바츠카’처럼 들린다. 영국인들도 크르바츠카로 들었나보다. Hrvatska를 영어로 쓰면 크로아티아다.

  우리말도 알려줘서 다함께 미 흐르바티와 대~한민국을 소리높여 외친다.

<미 흐르바티>

  크로아티아 응원가도 많이 들리는데 특히 Zaprešić Boys라는 팀이 부른 Neopisivo(설명할 수 없는)라는 곡이 마음에 들었다. 이 곡은 현악 4중주로 시작하는 매우 웅장하고 멋진 곡이다.

<크로아티아 응원가 Neopisivo> 

  Zaprešić은 자그레브 서쪽에 붙어있는 마을로 이 팀의 공식 비디오는 월드컵을 겨냥하고 만든 것 같다.

  크로아티아어 랩을 듣고싶으면 역시 자프레쉭 보이즈가 참여한 Samo je jedno(유일한 한가지)가 괜찮다. 랩을 가만히 들어보면 자그레브, 달마티아, 이스타리아 등 크로아티아 지명이 등장하며 Neopisivo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더 신난다.

<크로아티아 랩이 등장하는 Samo Je Jedno> 

  뮤직비디오 배경에는 크로아티아에서 인기있는 스포츠가 모두 등장한다. 이 곡이 나오면 특히 중간에 흐르바츠카 구호를 함께 외쳐야 제맛이다.

<싸모 예 옏노~♬>

  축구는 시작도 안했지만 신나게 어울려 응원하고 있다. 그때 HRT라고 씌인 대형 카메라 한 대가 나타났다. 동양인이 크로아티아인들 사이에서 흐르바츠카를 외쳐대는게 신기했던지 우리 무리를 한동안 촬영했다.

<크로아티아 친구들>

  그러자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더욱 신났다. HRT(Hrvatska Radio Televizija)는 알고보니 크로아티아  중앙방송이었고 친구들과 함께 간단한 인터뷰도 하게 되었다.

<유쾌한 크로아티아 친구들>

  “어디서 왔어요?”, “대한민국이요.”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어느 팀이 더 좋아요?”, “제가 왜 여기에 왔겠어요?”

  “대한민국도 월드컵에 참여하나요?”, “그럼요, 함께 토너먼트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우연히 왔으면서 참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도 잘한다.

  예쁜 크로아티아 아나운서와 사진도 한 장 찍었는데 흥분한 친구들이 사진을 온통 흔들어놔서 도무지 알아볼 수 가 없다.

<아쉬운 사진. 크로아티아 아나운서와>

  인터뷰가 끝나자 마르코라는 친구가 행운을 가져다 줄거라면서 큼직한 메달을 하나 줬다.

  이거 진짜 행운의 메달인가? 메달을 착용하니 금세 비가 그쳤다. 모두 우르르 광장 무대앞으로 몰려나갔다. 어깨동무하고 무등을 타고 ‘미 흐르바티’를 외치며 한마음으로 승리를 기원한다.

<빗속에서 승리를 기원하는 간절한 기도>

  경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첫 골이 터졌다. 브라질의 마르셀루가 자책골로 크로아티아에 1점을 선사한 것이다. 반 옐라치치 광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외세를 물리친 반 옐라치치의 동상 아래에서 모두 하나가 되어 함성을 터뜨렸다.

<흐르바츠카 흐르바츠카>

  1:0으로 앞서가나 했더니 얼마 후 브라질의 네이마르가 한 골을 넣어 동점이 되었다.

  팽팽한 접전이 이어지며 후반전도 중반에 접어드는데 갑자기 한 선수가 바닥에 구른다.

  곧 브라질에 페널티킥이 주어졌고 네이마르가 골로 연결시키자 광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내가 보기에도 반칙같지 않은 상황이었다.

<열띤 응원전>

  응원의 열기는 순식간에 FIFA와 심판을 성토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여기저기서 야빤(일본)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애매한 판정을 한 심판이 바로 일본사람이었다.

<야빤 심판 물러가라>

  이후에도 편파 판정이 이어지면서 광장의 분위기는 갑자기 험악해졌다. 술을 거나하게 마신 사람들도 많았고 괜히 일본사람으로 보여서 좋을게 없다. 시간도 늦었고 경기도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친구들과 작별을 고했다.

<폭동이라도 일어날 듯한>

  돌아가는 길에 보이는 가게의 야외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모여 축구를 보고 있었다. 흥분한 크로아티아인들과 눈이 마주치자 “야빤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위험하다 싶었는데 이때 진가를 발휘한게 바로 마르코가 준 행운의 메달이었다.

<목이 터져라 외치는 흐르바츠카>

  메달을 보더니 사람들의 눈빛이 금세 호의적으로 바뀐다. 흐르바츠카를 두어번 외치고 안전히 빠져나왔다. 대체 이 메달, 뭐지?

<열렬한 응원>

  숙소로 도착하니 얼마남지 않은 축구관람이 한참이었다.

  나를 보더니 반 옐라치치 광장에서 뭐했는지 묻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의아했는데 TV에서 보았다는 것이다. 그 카메라 생방송이었나? 나도 모르는새 크로아티아 TV에 출연했구나.

<카메라 촬영 중>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내 목걸이를 보더니 배를 쥐고 웃는다. 그러면서 “You are half Croatian.(넌 절반은 크로아티아인이야)이라는데 대체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이날 브라질 팀은 패널티킥으로 역전시킨 후 기세를 이어가더니 결국 쐐기골을 추가하며 3:1로 끝났다.

<승리의 기원에도 불구하고><실망가득한 표정>

  숙소는 실망으로 가득찼고 역시 ‘브라질’ 월드컵이라면서 일본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터뜨렸다.

  크로아티아 친구들은 침울한 분위기로 가득했다. 그 와중에 관심이 집중된건 내 메달이다. 모두 웃으면서 대체 어디서 이 메달을 구했냐고 묻는다. 메달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한데 도무지 무슨 메달인지 가르쳐주지 않는다.

<휘날리는 초대형 크로아티아 기>

  메달에는 가톨릭 성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새겨져있다. 누군가가 이 메달을 가리키면서 뭐라뭐라 외치니 모두 까르르 웃는다. 나와 외국친구들은 의아할 뿐이다. 그 와중에 얼핏 ‘톰슨’이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톰슨이 뭐지?

  그래도 이 메달 덕분에 위험한 상황도 빗겨갔고 우울한 분위기도 밝아졌다. 이 ‘행운의 메달’. 대체 정체가 뭘까? 궁금증은 더욱 커져간다.

  다음글 ☞ 150. 행운의 메달과 톰슨, 그리고 우스타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