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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Hungary)

158.[자전거여행 외전] 휴대전화로 본 유럽연합

  애매한 크기의 대축적 지도 하나 믿고 길을 다니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은 무슨 문제인지 모르겠으나 크로아티아(Croatia)에 머물던 중 GPS기능과 통화 기능을 상실했다. 지도 보조수단이 필요했다.

<부다페스트 Nyugati역>

  페스트 서쪽 Nyugati역 근처의 WestEnd City Center 부근에는 전자상가가 밀집해 있었다. 휴대전화 매장을 둘러보다 쓸만한 장비를 찾아냈다.

  바로 삼성 갤럭시 포켓 네오(GT-S5310) 모델. 이 제품을 갖고 다니는 유럽친구들을 종종 봐서 익히 알고 있던 기종이다. 손바닥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로 가격은 18,000포린트(약 9만원). 사실 최신 스마트폰에 비해서는 연산속도가 떨어지고 사양도 부족하지만 필요한 기능은 다 갖추고 있다.

<조그만 갤럭시 포켓 네오>

  (동)유럽 친구들은 보급형 휴대전화를 즐겨 사용했고 사용기간 및 교체주기도 길었다. 어쩌면 경제사정이 이유일 수도 있겠지만 유럽의 휴대전화, 자동차, 주택 등을 보며 최신형보다는 실속을 추구한다는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클래식카>

  이 제품의 장점은 글로나스(GLONASS)까지 지원하는 것이다. 위성항법장비의 대명사격인 GPS는 미국 나브스타(NAVSTAR) 위성으로부터 신호를 받아 현재 좌표를 산출해낸다. 글로나스는 러시아에서 쏘아올린 항법용 위성으로 민간용 GPS보다 글로나스의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글로나스와 GPS를 병행할 경우 정확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고가 스마트폰은 대부분 글로나스까지 지원하지만 보급형 기종은 이 기능이 빠져있거나 아예 GPS 수신모듈이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확인해야 한다. 글로나스와 별개로 기지국 정보를 기반으로 위성신호를 신속하게 받기 위한 A-GPS라는 기동도 있지만 현지 번호가 없는 경우 이는 무용지물이다. 즉 현재위치 탐색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면 쉽다.

  위성을 통해 좌표를 알아낸다고 해서 모든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좌표를 표시할 지도가 필요하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설치된 지도 앱은 지도를 임시로 내려받아 보여주지만 지도를 미리 저장해 둘 수 있는 서드파티 앱도 있다. 나는 기존에는 ‘City Maps 2 Go’를, 스마트폰 교체 후에는 Maps.Me를 사용했다. 전자지도까지 갖추면 대축적 지도에 나타나지 않는 길이나 고가도로, 골목까지 대비할 수 있다.

<스마트폰+Maps.Me 조합>

  해외에서 구입한 휴대전화를 한국에서도 사용하려면 사용 주파수 대역 확인도 필수다. 이 모델은 LTE는 지원하지 않지만 3G(WCDMA) 접속시 900MHz와 2.1GHz를 지원한다. 2G 통신으로 GSM도 갖추고 있으나 한국에서는 GSM이 운용되지 않는다.

  한국 통신사의 3G 대역은 2.1GHz를 사용하므로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 단 LTE망에 접속하려면 통신사별로 850MHz, 900MHz, 1.8GHz, 2.6GHz 등 대역폭이 상이하므로 잘 확인해야 한다.

  한편, 휴대전화를 구입하면서 의아했던 점은 듀얼 심(Dual SIM)을 지원하는 장비가 많이 보인다는 것이다. 내가 구입한 포켓 네오도 듀얼 심 모델이 있었다. 처음에는 대체 듀얼 심을 어디다 쓰나 의아했다.

<아직 곳곳에 보이는 옛 삼성 로고>

  알고보니 쉥겐(Schengen) 조약 가입국 간에는 국경을 철폐했으나 통신국경이 잔존하고 있었다. 즉 헝가리 휴대전화를 여권없이 통과할 수 있는 슬로베니아 등 인근 국가에서 사용할 경우 국제통화로 간주하는 셈이다.

  유럽처럼 여러 나라가 오밀조밀 붙어있는 곳에서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다. 특히 국경마을 거주자나 국경을 수시로 넘나드는 사람의 경우 불편함이 증대된다. 자동로밍을 켜 놓을 경우 전파월경(電波越境)을 통해 국경을 넘지 않더라도 국제전화로 연결될 수 있다. 국내 사용에서도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는 데이터통신의 경우 더욱 주의해야 한다.

  실제로 인도(India)에서 현지 휴대폰(통신사 Vodafone)을 사용하던 중 소나울리(Sonauli) 부근에서 국경을 넘지 않았음에도 네팔의 통신사(Nepal Telecom)으로 절체되기도 했다.

<인도에서 접속된 네팔 텔레콤>

  그렇다고 자동 로밍 기능을 꺼놓으면 전화 송수신에 지장이 생긴다. 그래서인지 국가별로 휴대전화를 2대 운용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했으나 여러 나라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유럽에서는 상당히 유용한 기능이다.

  차라리 통신망 국경도 철폐하는게 더 빠르지 않을까? 자국 통신사가 있는 나라도 있지만 Vodafone을 필두로 T-mobile, 3, O2 등 다국적 통신사들이 유럽 전역을 담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다국적 통신사를 사용할 경우 같은 회사의 통신망을 사용하면서도 접속지역에 따라 요금이 달라지는 셈이다.

<유럽의 통신사들>

  뿐만 아니라 국제전화를 할 경우 일일이 국가번호를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여러모로 통신국경을 철폐하는게 편리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상호 이동이 용이하고 경제수준이 천차만별인 유럽연합(EU)에서 이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괄적인 요금제를 도입할 경우 고소득 국가가 유리하고 저소득 국가는 엄청난 통신요금 부담을 지게 될 테며, 국가별 별도 요금제를 사용할 경우 당연히 저렴한 국가에서 가입하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유럽연합 내에서도 나라별로 물가뿐만 아니라 소비세, 부가가치세 등 세율도 제각각이었다. 주말에 차를 몰고 국경을 넘어가 쇼핑하는 것도 흔하다. 나 역시 알바니아(Albania)에서 몬테네그로(Montenegro)로 넘어간 후 엄청난 물가 차이에 다시 알바니아로 돌아가 생필품을 보충한 바 있다.

<고속도로 톨게이트보다도 부담없는 국경(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간)>

  온라인에서는 이러한 제약조차 없다. 유럽에서도 전자상거래도 활성화 되어 있었다.

  해당 모델을 온라인으로 알아보니 저렴한 국가에 물류기지를 설치하고 배송업체를 통해 배송하는 듯 했다. 이 과정에서 국경 3~4개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든다. 다만 헝가리에서는 온라인과 가격차가 거의 없었으며 한국 신용카드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온갖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해야(하고 수시로 오류메시지가 발생)하므로 오프라인 구입을 선택했다.

<부다페스트 도심>

  정치·경제 공동체 건설을 위해 국경을 없애고(쉥겐 조약) 화폐를 통합(유로화 도입)하는 등 노력해온 유럽연합에서 국가간 격차와 규정 차이는 상당히 골치아플 것 같다. 특히 통신서비스 제공의 경우 국가가 아니라 민간 사업자이므로 강제화하기에도 쉽지 않을 듯 하다.

<헝가리 담배가게는 18세미만 출입금지>

  하지만 주(州·state)다 세율은 물론 법규까지 상이한 미국도 하나의 국가를 유지하고 있다. 분명히 머리를 맞대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사정에 한국인이 오지랖 넓게 관여할 문제는 아니지만 유라시아 대륙이 연결될 통일 후에는 분명히 우리도 마주하게 될 문제다.

  물론 유럽연합도 문제를 인식하고 유럽연합 내 휴대전화 로밍서비스 가격 철폐를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당시, 내년(2015년) 중 역내 국제로밍 요금이 단일화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계획은 실현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를 위한 논의는 꾸준히 진행되었나 보다. 얼마전인 10월 <BBC>는 ‘Mobile phones: Data roaming charges will be abolished(이동전화 데이터 로밍요금 폐지 예정)’라는 기사를 통해 2017년 6월 15일부터 유럽연합 내 로밍 요금의 폐지가 유럽의회를 통과했다고 보도했다.

<로밍요금 폐지. 출처 http://www.bbc.com/news/business-34646434>

  아무튼 나는 여행 중 전화사용이 필요한 경우 주로 현지인에게 휴대전화를 빌려서 사용했다. 50센트가량 지불하겠다고 말하면 대부분 그냥 빌려줬지만 전화요금을 받는 경우도 있고 거절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중전화는 대부분 사라졌다.

  국제전화를 할 때에는 스카이프(Skype) 앱을 주로 이용했다. Wi-Fi에 접속하면 mVoIP 기술을 이용해 거의 대부분 국가의 공중전화교환망(PSTN)에 접속할 수 있다. 즉 현지 전화가 없더라도 휴대전화 및 유선전화를 걸 수 있다. 약간의 비용이 발생하기는 하지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며 특히 국제전화의 경우 매우 저렴하다.

  나는 헝가리 휴대전화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유럽 국가에서는 국경 이동이 빈번하기 때문인지 외국인이 SIM카드를 구입하는데 제약이 없었고 개통도 즉시 가능하다. 여권은 물론 거주지 증명 등 온갖 서류를 요구한 인도와는 천양지차다. 특히 인도의 경우 인도 특유의 일처리 방식 때문에 개통까지 2주일 가까이 소요되었다.

<인도 휴대전화 대리점. ‘손님은 왕이며 왕은 할인을 요구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현지 휴대전화가 필요한 경우 입국하는 나라의 SIM 카드를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지만 2017년 이전에는 가장 오래 머무는 나라의 SIM 카드를 구입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또한 대부분 선불요금제(Prepaid)이므로 다국적 통신사가 충전하기에 더 용이하다.

  잠시 스쳐간 여행자의 시선이지만 흔하디 흔한 휴대전화를 통해서도 현지인의 가치관 및 국제 상황과 경제 및 이해관계까지 엿볼 수 있는 점은 분명히 흥미로웠다.

  수차례의 탁상공론보다 한번이라도 현장에 나가보면 답이 나온다던데 여행은 현지에서 직접 세상을 배우는 교과서인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헝가리 휴대전화 구입기는 여기에서 끝.

<공부(?)하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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