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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Hungary)

159.헝가리의 글루미선데이(Gloomy Sunday)

  7월 31일. WestEnd City Center 근처 한 가게에서 가격협상을 마치고 은행으로 향했다. ATM기에서 현금을 인출한 후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길가의 벤치에 앉아 GPS기능을 체크해보니 잘 작동한다. 각종 기능을 살펴보는 중 지나가던 행인이 말을 건다. 잘 알아들을 수 없어 재차 확인하는데 누군가 벤치 뒤에 세워둔 Wing을 살짝 건드렸다.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핸들바 가방을 확인해 보니 안에 넣어둔 지갑이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말을 건 사람과 치고 간 사람 모두 사라졌다. 혹시 소매치기?

<에릭의 아파트 중정>

  아! 부다페스트의 첫날, 에릭은 위험하다면서 아파트 중정(中庭)에 세워둔 자전거를 들고 4층까지 올라왔었다. 이때 인지했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핸들에 자물쇠가 채워진 차량을 종종 보았을 때에는 주의했어야 한다.

<도난방지장치가 설치된 차량>

  그러나 장기간의 여행 중 너무 해이해졌다. 특히 발칸반도에서 늘상 친절한 사람만 만나면서 경계를 허물어버린게 일차적인 책임이다. 하지만 나에게 다가온 사람은 나쁜 사람보다 좋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 모든 사람과 담을 쌓아 버릴수도 없는 일이다.

  닫기지 않는 핸들 가방도 문제였다. 언젠가부터 지퍼가 고장났다. 제대로 닫겨있기만 했어도 열려고 하면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핸들 가방에 지갑을 넣어둔 것은 어떻게 알았을까?

<늘상 입벌리고 있는 핸들 가방>

  게다가 내 복장도 값나가 보이는 것이 없었는데 왜 굳이 타겟을 나로? 어쩌면 현금 인출할때부터 지켜봤는지도 모를일이다.

  터키에서 지갑을 잃은게 7월 21일이니 어처구니없게도 1년 10일만에 다시 소매치기를 당했다.(관련글 : 066.이스탄불 경찰차에 타다) 수법도 대동소이하다. 분실이 무슨 연례행사도 아니고, 멍청해도 이렇게 멍청할 수 있을까? 자책이 이어졌다.

<대체 값나가 보이는게 어디있다고…….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먹지>

  일단 즉시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은 사건장소와 시간 등 하나하나 정보를 물어보더니 말 시킨 사람이 한패일 거라면서 인상착의를 기억하냐고 묻는다.

  몽타주를 그릴 정도로 선명하지는 않지만 직접 보면 알수 있다. 나이는 50~60대 정도로 보였으며 행색은 남루했고 이마에는 깊게 패인 주름과 앞니 하나가 빠져있었다.

  그러자 경찰은 혹시 집시(Gypsy)였냐고 묻는다. ‘혹시 벌써 잡혔나? 아니면 유사한 사건이 접수된걸까?’ 그렇다고 대답하자 친절하던 경찰의 태도가 180° 달라졌다.

  “집시에 대해서는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그들은 헝가리 국민이 아닌데 마음대로 국경을 넘어왔고 늘상 도둑질을 하고 다닌다.”

  현금은 빼가더라도 신분증과 카드 등이 남은 지갑이 입수되면 보관해 달라고 말하자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잘라 말한다. 갑자기 돌변한 태도가 어이없다. 그래도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고 부탁해도 막무가내다.

  화가 나서 “내가 그 집시를 잡아서 내 지갑을 찾고 반항하면 죽여버리겠다, 헝가리 국민이 아니므로 괜찮지?”라고 묻자 돌아온 대답은 “You can.” 집시와 관련된 치안 문제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겠다는 태도다.

<사고지 근처 세인트 마르깃(Szent Margit) 교회>

  다음날 에릭의 집을 떠날 예정이었다. 맥없이 돌아와 에릭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에릭은 원하는 만큼 더 머무르라고 한다. 덧붙여 지금까지 초대한 게스트 중 유사한 사건이 몇차례 있었으며 지갑을 되찾은 사례도 한 번 있었다면서 내가 두 번째가 될 것이라고 희망을 준다.

<다른 경찰서를 찾아서>

  해당 지역은 Váci가를 중심으로 경찰 관할구역이 달라진다. 에릭의 도움을 받아 상황을 헝가리어로 적고 인근 경찰서에 다시 사건접수를 했다. 이번에는 집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경찰과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으나 집시를 언급하지 않으니 매우 친절했다. 오히려 헝가리에서 안좋은 기억을 남겨줘서 미안하다면서 대신 사과까지 한다. 폴리스 리포트도 흔쾌히 써 줬다. 혹시나 신고 접수되는게 있으면 연락을 달라고 에릭의 연락를 남겼다.

<부다페스트 8구 경찰서>

  하지만 지갑이 없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다. 남아 있는건 별도로 보관해온 한국에서 공항버스를 탔던 T-money 한 장, 국내용 산업은행 현금카드 한 장, 친구들 명함 몇 장 뿐이다. 처음에는 국제현금카드 여분이 있었는데 터키를 거치면서 소모했다. 얼마든지 머물라는 에릭도 곧 귀국할테니 한국에 연락해서 새로운 카드를 받아낼 시간도 없다.

  마침 부다페스트에 씨티은행 지점이 있었다. 그러나 새 카드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카드없이는 현금인출도 안된다. 이름은 같지만 한국씨티은행과 헝가리씨티은행은 별개의 법인이라 업무가 불가능하다. 다만 현금인출시 수수료는 할인된다. 이로써 은행계좌의 돈이 묶여버렸다.

  이제 당장 생활비는 고사하고 식비조차 없다. 미리 보충해 둔 비상식량마저 소모한다면 이역만리에서 아사(餓死)할 판이다. 한국에서 송금을 받아볼까? 그러나 부다페스트의 모든 은행은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에게 계좌를 만들어주지 않았다. 답답할 뿐이다.

<은행은 많지만 도움이 안된다>

  신용카드도 없으니 항공권은 어떻게 발권할 것이며 아니, 귀국은 나중 문제고 당장 생활을 어떻게 이어가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갑을 되찾아야한다.

<여기저기 부다페스트를 누비며>

  일요일이 되자 오랜만에 교회를 찾았다. 도둑질을 목적으로 지갑을 가져간 집시가 회심해서 그대로 돌아온다면 그야말로 기적이 아닌가?

  “만약에 지갑을 돌려받는다면 앞으로 교회에 꼬박꼬박 출석하겠습니다. 만약 현금이 그대로 있다면 그 돈은 그대로 헌금하겠습니다.”

  목사님은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하시면서 작은 한글 성경책 한 권을 선물로 주셨다. 상황과 전혀 맞지 않는, 참 얄궂은 선물이다. ‘지금 필요한건 성경책이 아니라 현금카드라고!’

<앞니 빠진 집시 본 사람 없어요?><혹시 여기에?>

  ‘범인은 범죄현장에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며칠간 사고지역 일대를 돌아다니고 탐문 및 해당지역 근처에 잠복도 하며 범인을 기다렸다.

  이미 현금은 나눠가졌고 지급정지한 카드 등 불필요한 물품은 버렸을 시간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일과처럼 모든 파출소를 순회하지만 신고접수된 물품은 없었다. 카드만이라도 되찾을 수 있다면 현금은 포기할 수 있다. 처음에는 좋게 말하고 설득할 요량이었다.

<리스트 선생님. 집시 못봤소?>

  하지만 8월 부다페스트의 태양은 너무나 뜨거웠다. 더운 날씨 속에 잠복기간이 길어질수록 화가 증폭되었다. “개XX, 눈에 띄기만 해봐라. 잡히면 죽여버린다” 화가 증폭되어 길 위의 애꿎은 집시만 봐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부다페스트 Nyugati 역>

  결국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집시가 눈에 띄면 바로 죽도록 때릴 것 같다. 만약 당시 그 녀석을 만났다면 무슨 사고를 쳤을지 모른다.

  화(火)가 화(禍)를 키운다. 이대로는 그를 만나더라도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함은 물론이고 더 큰 화를 부르게 될 터였다. 결국 사흘간의 잠복을 뒤로한 채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혹시 기차타고 달아났나>

  그동안의 여정을 되짚어 봤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로지 내 힘으로 감당하겠다며 자신만만하게 떠나온 길. 타인의 의사에 이끌려 다니고 싶지 않아 후원이나 스폰서 등은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블로그에 흔한 배너광고나 계좌번호조차 남기지 않았다.

  인도·네팔 등지에서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에게 신세지고 싶지 않아 카우치서핑이나 웜샤워조차 구하지 않았다. 자금도 어느정도 있었고 자신도 있었다.

<석양 따라 달리기>

  그 자신감에 인도에서는 5루피(약 100원)를 요구한 강도나 불량한 사람들과 수차례 대치하면서도 모든 것을 지켜냈다. 항상 접이식 칼을 휴대하고 다녔고 싸울 준비를 갖추고 다녔다. 실제로 완력을 사용한 경우도 있었다.(관련글 : 016.동네 스타와 인도 양아치029.[특집]인도의 나쁜 남자들) 야영할 때 Wing은 항상 텐트안에 보관했고 텐트는 위장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니 그 길은 혼자 힘으로 감당해낼 수 있는 여정이 아니었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응원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고 느꼈고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혼자 힘으로 갈 수 있는 길이었을까>

  언제부터인가 칼은 제자리를 찾아 코펠 속으로 들어갔고 더 이상 위장 따위는 실시하지 않았다. 굳은 얼굴로 주위를 살피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대신 누구도 웃으면서 대할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그런데 두 차례나 눈 뜨고 코 베이면서 모든게 깨어졌다.

  이제 누가 말을 걸면 의심이 앞설 것이다. 고마운 손길에도 혹시 수면제가 들어있지 않을까 다른 의도가 있는게 아닐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진게 안타까웠고 빈털터리가 된 현 상황은 더 비참하다. 

  헝가리의 우울한 일요일(Gloomy Sunday). 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남은건 도난 증명서 뿐>


  ※ 여적-글루미선데이(Gloomy Sunday) : 1933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Rezső Seress)가 쓴 곡으로 이 노래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연쇄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곡가 세레스 역시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실 곡과 자살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루머가 확대 생산되면서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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