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슬로베니아(Slovenia) / 슬로바키아(Slovakia)

163.슬로벤스카? 슬로바키아!

  도나우(Donau) 강을 건너면 바로 슬로바키아(Slovakia)다. 독일에서 시작해 루마니아와 몰도바를 거쳐 흑해까지 이르는 긴 강이지만 폭은 한강의 절반도 안된다. 양국을 잇는 다리도 채 500m가 되지 않는다.

<국경선을 형성한 도나우 강>

  입국을 환영하는 표지판에는 Slovenská Republika라고 기재되어 있다. 뭐 슬로벤스카? 이걸 어떻게 읽어야 슬로바키아가 될까? 아무리 봐도 슬로베니아(Slovenia)로 읽힌다.

<슬로벤스카 공화국?>

  슬로바키아와 슬로베니아는 유사한 점도 많다. 슬라브족의 나라임은 국호는 물론이고 흰색·파랑·빨강의 범 슬라브(Pan-Slavic) 삼색기에서도 드러난다. 두 나라는 슬라브 상징색 위에 자국 문장을 새겼다. 타트라 산맥(Tatras)을 아우르는 슬로바키아와 알프스 산맥(Alps) 끝자락의 슬로베니아의 문장에는 각각 산이 그려져 있는 것도 공통점이다.

슬로바키아 기(左)와 슬로베니아 기(右)

  한때 공산국가였고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며 로마 알파벳을 사용하는 것도 같다. 두 나라의 최단거리는 불과 200km이 안되는 만큼 위치도 비슷하다. 여러모로 헷갈리기 쉽다.

  굳이 나누자면 슬로바키아는 중유럽, 슬로베니아는 남유럽으로 분류되며 과거 각각 체코슬로바키아(Czechoslovakia)와 유고슬라비아(Yugoslavia)의 구성국이었다. 두 나라 사이에 위치한 헝가리(Hungary)가 서유럽의 3지대 방호선(최후방호선) 역할을 맡은 덕분에 줄곧 오스만 제국(Ottoman)에 시달린 유고슬라비아에 비해 슬로바키아는 상대적으로 유목민족의 공격에서 자유로웠다.

  대신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술탄 케밥이라니, 음식을 통한 터키의 공격인가?>

  아이러니하게도 슬라브족이 이 지역에 자리잡은건 유목민족 덕분이다. 훈족이 게르만족을 밀어내고 사라지면서 슬라브족이 그 공백지를 점유한 것이다.

  이들 중 한 무리는 9세기 초 모라비아(Moravia, 현재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일대) 지역에 대 모라비아 공국(Great Moravia)를 세우면서 역사에 화려하게 등장한다.

  같은 시기 서쪽에서는 샤를마뉴 대제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하며 세를 넓히고 있었고, 동쪽에서는 아르파드(Árpád)가 지휘하는 마자르족이 헝가리를 세우고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었다. 충돌은 불가피했다.

<수많은 전투가 벌어졌을 평원>

  결국 헝가리의 공격을 받은 대 모라비아 공국은 채 100년을 넘기지 못하고 멸망한다. 이후 이 땅에는 신성로마제국의 제후국인 보헤미아 공국(Duchy of Bohemia)이 들어섰고 왕국(Kingdom)으로 발전해 나갔다.

  나폴레옹이 제국을 해체시킨 후에도 보헤미아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의 일부로서 계속 합스부르크(Habsburg) 가문의 지배를 받는다. 독립국가로 존속한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 셈이다.

<푸른 들판이 더 낫다>

  1차 세계대전으로 이중제국이 막을 내린 후 체코슬로바키아라는 이름으로 독립했지만 곧이어 2차 세계대전의 포화에 휩쓸렸고 종전 후 소련의 영향 하에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수립된다.

  신성로마제국을 오스만제국으로 치환하면 유고슬라비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또한 유고슬라비아의 티토(Tito)가 소련과 대립각을 세운 것처럼 체코슬로바키아도 소련과 충돌했다.

<소련에 맞선 우회전>

  바로 ‘프라하의 봄’으로 알려진 1968년의 민주화 운동이다. 진압 과정에서 소련군을 주축으로 한 바르샤바 동맹군의 침공을 겪기도 했으며 이듬해 연방제가 도입되면서 체코 사회주의 공화국과 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1국가 2정부 연방체제로 전환된다.

  프라하의 봄은 민주화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훗날 고르바초프의 소련 개혁 등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어쩌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스릅스카 공화국으로 이루어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라는 기괴한 체제도 여기서 힌트를 얻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약 10년 후 한국에서는 프라하의 봄을  ‘서울의 봄’이 찾아온다.

<봄 대신 가을빛이 완연한 들판>

  마침내 1989년, 동구권 붕괴와 더불어 체코슬로바키아도 공산당을 축출해냈다. 곧이어 1993년에는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분리된다. 혁명과 분단은 무혈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검문소 철폐로 휑한 국경>

  슬로바키아는 쉥겐(Schengen) 조약 가입국인 만큼 국경 검문소가 없다. 여권조차 확인하지 않는 명목뿐인 국경이지만 이를 넘으면 언어, 민족 등 많은 것이 달라진다.

  속도제한도 바뀌었다. 도시 외곽은 최대 130km/h까지 허용한다니 도로 상태는 더 좋을 것 같지만 쌩쌩 달릴 차를 주의해야겠다.

<잘 뚫린 도로를 기대하며>

  무엇보다 피부에 와닿는 변화는 본격적인 유로존에 진입한 것이다. 물가도 덩달아 올랐다. 슈퍼마켓에서 묶음 할인 중인 샌드위치와 콜라 한 캔이 2.59유로(약 3,800원)다. 동전 몇개라 덥석 구입했지만 바로 후회했다. 계산해 보니 발칸반도에서는 세끼 식사를 하고 남을 금액이다. 예산 운용 계획을 철저히 세워야겠다.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은 탓에 양국 관계가 좋지 못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마음의 거리와는 별개로 슬로바키아의 첫 인상은 헝가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혹시 이곳 Komárno가 헝가리 Komárom과 형제도시라 그런가?

<코마르노-코마롬 환영합니다>

  아니나다를까 코마르노 표지판에는 코마롬이 함께 적혀있다. 영어로 도시간 자매 결연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했는데 의문은 쉽게 풀렸다. 바로 Twin town.

  코마르노는 코마롬 외에도 핀란드, 독일, 루마니아, 체코의 도시와도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Peklo 호텔에서도 슬로바키아만의 무언가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창이 난 지붕과 종 모양으로 처마끝이 펼쳐진 첨탑의 모습에서 루마니아식 건물이 연상되기도 한다.

<루마니아를 연상시키는 Peklo 호텔>

  그렇다면 언어는 어떨까? 다 외울수는 없지만 나라마다 간단한 표현을 물어보는 편이다. 슬라브어 계통일테니 크로아티아/세르비아 어와 비슷할 것이다.

  역시 ‘안녕하세요?’는 Dobrý deň[도브리 덴]으로 Dobro dan/Добро дан[도브로 단]과 흡사하다. 물(水)은 Voda 라고 표현하니 똑같다.

  크로아티아/세르비아 어에서 ‘네’는 Da/Да[다], ‘아니오’는 Ne/Не[네]라고 한다. [네]라고 발음하며 거절하길래 처음에 매우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슬로바키아로 넘어오면서 한층 더 헷갈려졌다. ‘네’는 Áno[아뇨], ‘아니오’가 Nie[네]라니…….

  가장 많이 쓸 ‘감사합니다’는 Hvala/Хвaлa[흐발라] 대신 Ďakujem[다뀜]이다. 슬라브보다는 독일어 영향인 것 같은데 도무지 입에 붙지 않는다.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길>

  이 나라 수도는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라는 어려운 이름을 갖고 있다. 6음절이나 되는데다 익히 들어본 적도 없어 도무지 안외워진다.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 혹은 부카레스트(Bucharest)보다 난이도가 높다. 지도를 보면 이 나라의 도시이름은 대부분 길다.

  브라티슬라바. 혹시 슬라브인의 도시라는 뜻은 아닐까? 물어보니 ‘슬라브 형제’라고 한다. 브라티-브라더. 이건 슬라브어 계통이 아니라 영어와 호환되는데?

<밭 위의 형제들>

  언어를 궁금해하던 차에 키릴 문자(Cyrillic)를 만든 키릴 형제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들의 주 활동무대가 대 모라비아 공국이었다. 키릴 문자는 정교회권인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등지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지나 몽골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된다. 그러나 정작 이 나라는 키릴 문자를 버리고 로마 알파벳을 도입했다.

<키릴 형제의 동상>

  한 타이어 가게 옥상에는 헬리콥터가 착륙해 있다. 주인의 자가용인가 아니면 헬리콥터에도 사용한다는 광고인가 모르겠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안어울리는 헬리콥터>

  하지만 헬리콥터는 필요없다. 슬로바키아는 해발 2,600m가 넘는 타트라 산맥을 가진 산악국가이지만 남서부 지방은 헝가리 평원과 이어져 자전거를 달리기에 더없이 좋았다.

  주위 풍경은 수확이 끝난 들판 또는 아직 남아있는 해바라기 밭이 대부분이다. 잘 곳은 많아 보인다. 다행이다.

<고개숙인 해바라기>

  어느새 평원 위로 달이 휘영청 떠올랐다. 거의 보름달에 가깝네? 어느새 한달이 지났구나……. 하지만 넋놓고 감상에 빠질 틈은 없다. 적당한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보름달이 떠오른 평원>

  철골만 앙상하게 남은 폐 버스정류장도 괜찮아 보인다.

  여기서 쉴까? 음, 너무 누추해서 품위없어 보인다. 조금만 더 가보자.

<여기서 자기에는 너무 누추하잖아?>

  얼마 후 Dunajská Streda라는 도시 외곽에서 멋진 곳을 찾아냈다. 이슬은 물론 비도 두렵지 않다. 주변에는 밭 뿐이라 사람들의 시선에도 벗어날 수 있는 곳이다.

<숙영지 편성 완료>

  바로 63번(E575) 도로 중 507번 고가도로와의 교점. 차가 쌩쌩 달리기는 하지만 충분히 이격되어 위험하지도 않으며, 해가 지니 전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정도면 호텔이나 다름없다. 거지들이 ‘다리 밑’에 모이는데는 이유가 있었구나. 앞으로 종종 이용해야겠어.(주행거리 122.02km / 누적거리 11,248km)

<다리 밑에 모이는 이유가 있었구나>

 슬로바키아  다음글 ☞ 164. 슬라브 형제의 도시, 브라티슬라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