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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Slovenia) / 슬로바키아(Slovakia)

164.슬라브 형제의 도시, 브라티슬라바로

  다음날도 대평원의 편안한 주행이 이어졌다.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도 취하며 기분좋게 달린다.

  목적지 브라티슬라바(Bratislava)는 불과 50km 남았다. 쉬엄쉬엄 가도 반나절이면 도착할 수 있겠다.

<길가의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

  사실 지도만 놓고 보면 목적지 브라티슬라바는 수도로서 부적절해 보인다. 슬로바키아(Slovakia)의 서쪽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수도에서 동쪽 끝까지는 400km이 넘는 반면 중심부에서 오스트리아(Austria)까지의 거리는 채 5km도 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헝가리(Hungary) 국경과의 직선거리는 15km에 불과하며 북쪽으로 60km만 가면 과거 한 나라였던 체코(Czech)에 이르른다.

<수도에서 한시간이면 다른나라>

  사실 대한민국(남한)의 서울도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이정도로 극단적이지는 않다. 그동안 거쳐온 어떤 나라도 이런 모습은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환경을 찾자면 수도 무스카트(Muscat)가 북쪽 해안에 자리잡고 있어 남쪽 도시 살랄라와는 800km가량 이격된 오만(Oman)이다.

  하지만 오만 중부는 Empty Quarter라는 거대한 사막이 자리잡고 있어 도시가 들어설 만한 곳은 해안 뿐이다. 또한 무스카트 북쪽은 아라비아해다. 즉 사우디아라비아, 아랍 에미레이트, 예멘, 이란, 파키스탄 등 주변국 육군이 공격해와도 방호에 지장이 없다.

<내륙국, 바다 대신 운치있는 호수>

  하지만 브라티슬라바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과의 거리가 50km 정도로 서울-용인정도 거리밖에 안된다. 과거 거대제국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위치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동부 국경선에서 K-3 기관총을 쏘면 브라티슬라바 중심부까지 탄을 날려보낼 수 있다. K-9 자주포라면 빈에서 브라티슬라바 포격이 가능하다. 그런데다 도로망까지 잘 구성되어 있다.

  이런 위치의 브라티슬라바에는 슬로바키아 인구의 10%가량이 살고 있다. 이건 숫제 오스트리아에 대한 도발로 보일 정도다.

<시원하게 뻗은 국도>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일국의 정치·경제·행정·교육·문화의 중심지를 서쪽 끝에 배치했을까? 혹시 명목상의 수도인 뿐인가 싶었지만 인구 분포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듯 하다. 어쩌면 오스트리아가 영구중립국이므로 대립 가능성은 아예 배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길가의 해바라기 한송이>

  뭐, 가 보면 알게 되겠지? 브라티슬라바에 대한 호기심을 가득 안고 달린다.

  오, 이런 ‘현대적’인 디자인의 버스정류장도 있네? 여기도 호텔급이다. 하지만 쉬어가기에는 시간이 이르다.

<지나쳐버린 길가의 호텔>

  슬로바키아 시골길은 한적하고 정신사납지 않아 여유있게 달릴 수 있는 길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Podunajské Biskupice라는 마을을 시작으로 브라티슬라바에 진입했다. 이곳에는 송전탑이 즐비하다. 근처에 발전소라도 있나? 혹시 브라티슬라바는 공업도시가 아닐까 싶다. 차량이 가득하고 매연으로 답답한 공단지대면 그냥 지나쳐야겠다.

<송전탑이 늘어선 Podunajské Biskupice>

  그러나 더 이상의 공장이나 플랜트 등은 눈에 띄지 않았다. 시 외곽은 한국의 주공아파트를 연상시키는 야트막한 아파트 단지였으며 중심가로 진입할수록 빌딩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야트막한 아파트 단지>

  그래도 주위와의 조화를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푸른 나무가 많아 한국의 도시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자연과 어우러진 멋진 도시로 보였다. 게다가 왕복 6차선의 넓찍한 도로는 달리기에 더없이 쾌적했다.

<사회주의의 유산인 어두운 느낌은 사라진지 오래>

  길 건너편의 상해찬관(上海餐館)이 눈에 띄었다. 아마 상해출신 중국인이 개척한 식당이리라. 그러고 보면 중국인의 해외 진출은 대단하다. 혹시 공산주의 시절 진출한 것일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마저 곳곳에 중국 식당, 잡화점 등이 자리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상해찬관>

  한참 달리다 보니 어느새 이틀간 머무른 63번 도로가 끝났다. 여기서 약 1.7km 지나 Karadžičova 도로를 건너면 길이 급격히 좁아진다. 바로 브라티슬라바의 중심부(Centrum)에 도착한 것이다.

<주택에 광고를 새기면 집값이 싸려나?><낡았지만 웅장한 건물>

  이어지는 Dunajská 길은 도시의 느낌이 본격화된다. 오래된 석조건물도 있지만 길 끝으로 갈수록 현대적인 디자인의 건물이 늘어난다.

<너비에 비해 좁은 폭이 불안해 보이던 아파트><시계탑, 아니 시계벽>

  길 끝에서 조금 북쪽으로 올라가면 Alžbetínok 성당과 Ladislava 성당이 사이좋게 자리하고 있다. 양파모양 첨탑이 세워진 Alžbetínok 성당은 정교회(Orthodox) 혹은 발칸지방의 느낌이 남아있는 반면 깔끔한 모습의 Ladislava 성당은 가톨릭(Catholic) 및 서유럽의 느낌이 든다. 혹은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라고 해도 어울리겠다.

<깔끔한 외관의 Ladislava 성당>

  그때 마침 거리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깃발이 보인다. 비록 바람이 없어 펼쳐지지 않았지만 흰 바탕에 검은 괘, 문득 엿보이는 붉고 푸른 색. 이건 볼 것도 없이 태극기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 보니 놀랍게도 주 슬로바키아 대한민국 대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주 슬로바키아 대한민국 대사관>

  사실 좀 의외였다.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없는 수교국은 인근 국가가 업무를 겸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주 세르비아 대한민국 대사관에서 몬테네그로를, 주 크로아티아 대사관에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겸하는 식이다. 슬로바키아 대사관은 헝가리나 오스트리아 대사가 겸임하는줄 알았는데 별도로 설치되어 있다니 우리나라와 관계가 꽤 깊은가보다.

  인도(India) 대사관도 한 건물에 있는 듯 했지만 태극기와 함께 걸린 깃발은 인도 국기도, 슬로바키아 국기도 아니다.

<인도 대사관과 함께 있네?>

  단지 내가 몰랐을 뿐, 슬로바키아에 대사관까지 있을 정도로 우리 국민이나 기업이 많이 진출했었던가? 빨리 이곳의 정수를 봐야겠다.

  슬라브 형제의 도시 브라티슬라바에 대한 호기심에 부풀어 구시가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수(船首)모양 건물과 도로에 내린 앵커(Anc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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