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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28. 최악의 도로를 만나다. Never Highway 86

  산치는 인도에서 본 도시 중 가장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었다. Gleen Sanchi Clean Sanchi라는 슬로건에 따라, 길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도 없고, 놀랍게도 아침마다 거리를 청소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I hope to Visit Sanchi Again.

  2월 9일 까치까치 설날. 떠나기 아쉬운 산치를 뒤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편도 2차선으로 잘 닦인 도로는 인도르-보팔 구간이 끝이었다. 그리고 산치를 지나 8km정도 떨어진 비디샤라는 마을에서부터 인도 도착이래 최악의 도로를 만났다. 처음에 간헐적으로 나오던 비포장도로는 끝이 없이 이어졌다.끝없는 비포장도로

  정체는 바로 NH86. 아무리 봐도 이건 National Highway가 아니라 Never Highway다. 혹시 길을 잘못든게 아닐까. 평소 안쓰던 스마트폰 GPS까지 활용하여 위치를 체크하지만 내 위치는 NH86이었다. 그냥 비포장도로면 다행이지. 비포장은 기본이고, 대체 도로에서 무슨 짓을 해야 이렇게 파손되나 싶을 정도의 어이없는 구덩이, 자갈 무더기. 잠깐 이러다 말겠지 한 생각과는 달리, 최악의 도로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터프한 마라톤 타이어는 자갈들을 튕겨내며 펑크한번 없이 잘 버텨주고 있지만, 불안한 뒷바퀴 휠 상태가 더 큰 문제다.

  갑자기 이솝 우화가 갑자기 생각났다. 힘들어 하는 당나귀의 짐을 안받아주다가, 당나귀가 쓰러지자 더 많은 짐을 싣게 된 말. 차라리 내가 조금 더 고생하는게 나을 듯 하다싶어 요철이 심한 구간은 배낭을 매고 자전거를 끌기로 했다.배낭을 덜어내어 한결 가뿐해진 Wing

  결국 목표한 Sagar(120km정도)는 고사하고, 하루종일 50km정도밖에 이동하지 못했다. Gyaraspur라는 마을 근처에서 하루를 정리했다.(주행거리 54.35km, 누적거리 1,558km)

  이날은 별이 유독 많이 보였다. 특히 북극성도 보였는데, 인도에서 그동안 야영하면서 북극성을 본 것은 처음이다. 위도 때문인지, 계절 탓인지, 차량 불빛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이상하게 남쪽 별은 잘 보이는데, 북쪽의 북극성, 작은곰자리, 북두칠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도 역시, 작은곰자리의 일부만 보였는데, 나머지는 아마 지평선 아래에 있는 듯 하다.오리온 자리가 보이는 그믐날 밤하늘

  설을 앞두고 많은 생각이 들어, 카카오톡을 이용, 지인들에게 새해 인사 메세지를 보내고 잠들었다.

  2월 10일 우리우리 설날. 다시 길을 나서지만 끊임없이 비포장도로만 계속될 뿐이다.다음날도 계속되는 비포장길. 사실 이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앞으로 갈 길은 계속해서 북동쪽 인도 종심 깊숙한 부분이다. 이런 길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엄습했다.

  도로에서는 시속 10km 내기도 힘들 정도였다. 자갈은 뒷바퀴를 불안하게 만들고, 비포장길은 흙먼지를 발생시킨다. 자전거의 체인과 구동계 사이사이에 이미 흙먼지로 가득찼다. 결국 멀리서 오는 차가 일으키는 먼지와 속도만 보고도 도로상태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으... 저 먼지

  이런 길을 언제까지 가야하나?  이런 길을 가느니 길 상태 양호한 오르막길이 편하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비포장 오르막길이 나온다. 으아 차라리 아무 생각없이 가야겠구나. 더 억울한건, 비포장 내리막길. 안밟아도 35km/h는 나올듯한 구간에서 천천히 천천히 가야 하는 상황은 힘들게 올라온 보람조차 없애버렸다.

  Sagar라는 도시가 나타나면서 길은 잠깐 좋아졌다.Sagar 시내의 모습

  아무 기대없이 온 Sagar는 호수를 낀 아름다운 도시였다.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는데, 난 지혜롭지 않지만 물가가 더 좋다.사가르의 호숫가. 한폭의 그림같지만, 물론 가까이서 보면~

  알고보니 Sagar는 군사도시였다. Public Army School도 보이고 군인들도 많이 보인다. 현재 시간은 16:30분. 한참 전투체육을 할 시간인데, 군사기지에서는 도무지 군가소리나 함성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Sagar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다시 도로상태는 엉망이 되어 있었다. Sagar에 아무리 정예 병력이 있으면 뭐하나, 병력수송과 병참이 제한되는데. 대체 핵개발 까지 할 정도의 나라에서 왜 도로정비조차 안하는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느 덧 해가 진다. 평소같으면 숙영지를 찾을 시간이지만, 조금이라도 더 이동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다. 사실 하루종일 달린 거리가, 기존 계획한, 전날의 숙영지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이었다. 하지만, 쌩쌩 달리는 차와 어두움, 게다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이런길을 달리는건 도저히 무리였다. 다행히 길 건너편 공사장이 보였고, 이대로 하룻밤 묵어가기로 했다.(주행거리 103.11km, 누적거리 1,661km)

  설날을 이대로 보내기는 아쉬워서 미리 구입해 둔 성냥을 이용 조촐한 혼자만의 캠프파이어를 가졌다. 인도에서 혼자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은 해가 진 이후 뿐이다. 성냥 두갑. 2루피(40원)짜리 초저가 캠프파이어였지만 만족감은 컸다.조촐한 새해맞이 캠프파이어.

  다음날 다시 출발해 보지만 역시 도로상태는 변함이 없다. 대체 언제까지 지속되는건지. 그냥 다 집어치우고 집에가고싶다는 생각만 든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나와의 싸움일 뿐 어떤 외부요인도 없다. 길 위에는 말 안통하는 상사도 없고, 금전문제도 없다. 이 정도도 이겨내지 못한대서야. 앞으로도 역경에 처할 때 마다 포기할것인가?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달린다. 힘을 내기 위해 비장의 무기까지 가동했다.

  그것은 바로 군가! 군가를 틀어놓고 크게 따라 부르면서 달린다. 스트레스 지수는 30%정도 상승하지만 체력과 정신력도 일시적으로 향상시키는 스팀 팩이다. 이어지는 군가는 "자전거 사나이"~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넷~ ♬거친 도로와 가냘픈 Wing

  산을 막 벗어난 지점. 더 이상 갈 힘도 없어서 조금 쉬어가기로 했다.쉼터의 짜이가게 아저씨. 핸들을 돌려 아궁이에 바람을 불어넣는다.

  잠시 후 관광버스가 근처에 서더니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휴게소도 없이 길에 서는구나. 대부분 미국, 유럽, 호주인들이었는데, 이것저것 물어보며 감탄도 하고 격려도 해 주었다. 맨날 알아듣기 함든 Indolish만 듣다가 정통 본토 영어를 들으니 귀가 정화되는 느낌이다. 물론 그들은 Indolish나 Konglish나 답답한건 마찬가지겠지만. 무엇보다 큰 소득은 조금만 더 가면 비포장도로가 끝난다는 것이다. 힘이 솟구치는 느낌이다.

  그리고, 조금 더 가서 Shahgarh라는 마을과 동시에 기적처럼 번듯하게 포장된 도로가 나타났다.

  아, 얼마나 기다렸던가. 솔직히 좋은 도로는 아니지만, 그동안 지나온 길에 비하면 낙원이 따로 없었다. 이 동네 국회의원이나 도로관리자를 만나면 상이라도 주고 싶은 기분이다. 3일간 최악의 도로를 경험하다 보니,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포장도로가 너무나 고맙게 느껴진다. 나는 인도에서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중인가? 현명한 사람은 남의 경험을 통해서 배운다는데, 최소한 경험하고도 아무것도 못 깨닫는 멍청이가 되어서는 안되겠지?

  해지기 전 마지막 한시간은 포장도로 위에서 피로함도 없이 달렸다. 적토마를 탄 관운장처럼 더 이상 거칠게 없었다. 하지만 지도를 보니, 계획했었던 전날 숙영 목표지보다 약 10km을 더 왔을 뿐이다.(주행거리 101.04km, 누적거리 1,762km) 비포장길에서 계획보다 하루를 더 소모한 셈.

  이날 밤, 다시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를 만났다. 건기인데 비가 자주온다. 아마 건기가 끝나가려는 신호인가보다.

  드디어 2월 12일이 밝았고, 마침내 악몽같았던 기나긴 NH86(Never Highway 86)을 넘어 목적지 카주라호(Khajuraho)에 입성했다.(주행거리 73.16km, 누적거리 1,835km)카주라호에 도착한 감격의 순간. Welcome To Khajura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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