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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29. [특집] 인도의 나쁜 남자들

  길 위를 헤메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길가는데 헤이 어이 소리지르며 손짓하는 사람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처음에는 하나하나 대응했지만, 그들은 단지 호기심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생각 뿐이며, 나도 그들과 불필요하게 시간낭비를 할 이유가 없어서 어느순간 방법을 수정했다. 헤이 등 쓸데없이 무례하게 부르는 사람은 아예 무시하고 다니자는 것이다.자기 동네에 방문해줘서 고맙다고 따뜻하게 맞아준 청년.

  또한 기분은 날씨, 도로 상태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9~12일. 최악의 도로 NH86 상에서의 4일간, 특히 비맞고 진흙 속을 헤메던 마지막 12일에는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최악의 NH86

  참고로 NH86이 너무 치가 떨려서, 카주라호 도착 이후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전문은 http://en.wikipedia.org/wiki/National_Highway_86_(India) 다음은 위키피디아 인용 문구의 일부이다.

 The road is full of plateaus and small mountains rather than potholes. Politicians usually avoid this road and prefer helicopters to travel. This road has been the subject in the first episode of Discovery Channel's "World's Toughest Trucker".

  The stretch from Sagar to Rahatgarh till its junction with NH86A does not have much of a road surface and best avoided if traveling in a vehicle with low ground clearance.

  짧은 영어로 해석을 해보면, 도로상에는 고원과 작은 산들, 웅덩이들이 있고, 이 길은 디스커버리 채널의 '세계에서 가장 험난한 차로' 첫번째 편에 나온 소개된 길이며, NH86A와의 교차점까지 연장한 구간은 상태 안좋으니 피하는게 좋고, 만약에 여행한다면 차 바닥이 긁힐것을 각오해라.

  세상에 World's Toughest Trucker이라니. 게다가 더 쓴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문장은 정치인들은 보통 이 길을 피하기 위해 헬리콥터를 선호한다. 높은분들이 도로 정비할 생각은 안하고 본인들만 편하고자 헬기타고 날아다니는구나.

  Plateaus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고원이란 뜻이다. 高園. 산들은 한국 산과는 달리 굴곡이 없는 긴 언덕같은 형태가 계속 이어진다. 병풍을 둘러 놓은것 같기도 하고, 엄청난 거인이 사용하는 계단 같기도 하다. 아마 이동네 사람이 한자를 만들었다면, 뫼 산(山)이라는 글자 모양은 〓 형태로 만들지 않았을까?한국과는 많이 다른 인도의 산지. 이렇게 시작해서 같은 높이로 끝없이 이어진다.

  잠깐, 한국에는 고원이 있었나? 아, 개마고원을 들어봤구나. 거기도 이런 형태일까? 통일이 되면 마치 개마무사가 된 것 처럼 자전거를 타고 개마고원을 누비고 다니고 싶다.평화로운 호숫가

  이런 "World's Toughest Trucker"를 통하여 자전거로 고원지대를 넘으며 유일한 낙은, 말은 안통하지만 친절했던 사람들이다.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던 중학생들이 몰려들어 그들과 함께 그룹지어 다니기도 하고, 배 고파 보인다고 빵을 주신 짜이가게 사장님도 있었다.자전거를 타고 나를 따르던 중학생들.친절한 짜이가게에서

  어떤 분은 지나가다가 텐트를 발견하고 찾아오더니, 음식을 갖다 주겠다는 제스츄어를 하셨고, 막 밥을 하던 중이라 정중하게 사양했다. 하지만, 계속 랜턴을 비춰주며 내 곁을 지키고 있었고, 내 국을 맛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드릴 수야 있지만, 힌두교도에게 소고기 다시다를 넣은 국을 드리면 안될 것 같다. 고약한 녀석이라면 인심쓰듯 한그릇 먹이고서 “네가 먹은건 소야, 소. 에구 시바신한테 혼나겠다. 어쩌려나?” 놀리기라도 하겠지만…….

  Beef, Cow, Ox, Bull 아는 단어 다 해봐도 말은 안통하고 난감하던 상황. 결국은 손가락으로 뿔을 만들어 소 흉내를 내었더니 못볼 것을 봤다는 표정으로 황급하게 자리를 뜬다. 가만 생각해 보니, '소고기를 먹는 상종 못할 불가촉 천민이다'라는 느낌에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소고기 다시다국을 원하던 힌두 어르신

  좋은 만남도 많았지만, 사람사는데가 다 그렇듯 안좋은 만남도 있었다. 특이한건 이 마댜 프라데시(Madhya Pradesh) 주 중부 지역에서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내에 집중적으로 만났다는 것.

  설날 만난 첫번째 팀은 고등학생쯤 되었을까? 오토바이 한대에 함께 탄 세 녀석. 처음에는 귀찮게 이것 저것 물어보는것으로 시작하더니 내 휴대폰을 요구한다. 거절했더니 내 태극기와 국립 목포해양대학교 교기, 해병대기를 가리키며 지들끼리 뭐라뭐라 지껄이는데 좋은 어감이 아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If you insult my flag, I'll kill you" 라고 했더니 급기야는 오토바이에 탄 채로 뒤통수를 때리고 달아나더니 한바퀴 돌아 다시 나타났다. 바로 제일 뒤에 탄 녀석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오토바이는 달리고 있는 터라 그는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다행인 건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었는데, 누구하나 그가 다쳤는지 걱정하지도, 나를 꾸짖지도 않았다. 아마 동네에서도 말썽장이였나 보다. 바로 스패너를 꺼내 가격하려는 동작을 취하면서 멱살 잡은 손을 느슨히 풀어줬다. 그러자 그는 잽싸게 달아나서 멀찌기 서있던 오토바이에 합류하며 상황 종료.건기에 비가 안와서 녹조만 남아버린 마른 강

  두 번째 녀석은 잠시 쉬러 들린 휴게소에서였다. 헬멧을 벗어놓고 쉬는데 한 녀석이 와서 자빤? 꼬레아? 하더니 자기 휴대폰을 보여준다. 사진 찍자는 뜻인가? 생각하며 봤더니, 삭발한 사람이 등장하는 음란물이었다. 그는 계속 그걸 보여주면서 내가 아니냐, 좋았냐? 물어보며 성가시게 군다. 이런, 한국에서는 초등학생이나 할 유치한 행동을. 귀찮아서 Yes 하고 쉬는데 급기야는 평상에 누워 몸을 들썩이면서 흉내까지 내고 있다. 생각해 보니, 한국인 여학생이 성폭행을 당한 사건도 이곳 마댜 프라데시 주였다. 이런 일에 가만히 있으면 계속 한국인을 만만하게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 있던 녀석에게 바로 올라타서 옷깃을 잡고 십자조르기를 해 버렸다. 커억 커억 괴로워하자 바로 팔을 잡고 팔 가로누워 꺾기(이종격투기의 암바)를 하고서 "Shall I break your arm?" 물어보니, 그제서야 "I'm sorry."라고 한다. "Will you follow me?" "Yes" 라는 대답을 듣고서야 팔을 놓아주고, 내 물통에 물을 다 채우라고 했다. 이로서 3ℓ의 식수 확보. 이걸로 씻을 수도 있게 되었다. "Every Korean's learn Taekwondo and a lot of martial Arts. If they angry, You'll be died."라고 말하고 길을 떠났다. 한국인의 긍지를 드높였다는 자신감과 함께.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한 짓도, 결국은 물을 강탈한거네. 그와 별 차이가 없구나. 젠장. Chinese라고 할 걸 그랬나? 기술을 쓸 가치도 없는 녀석에게 함부로 위험한 기술을 쓴 것도, 나에게 운동을 가르쳐주신 선생님, 관장님과 함께 수련한 동료들에게 죄송할 뿐이었다.물론 이런 편안한 어르신들이 더 많다.

  마지막 날 밤에는 텐트에서 막 잠들려는 찰나 막대기를 든 한 녀석이 찾아왔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5루피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5루피=100원. 보니까 사지 멀쩡한 녀석이다. 이런 녀석한테 주기는 1루피도 아깝다. 당연히 거절.

  약 30분간 옥신각신하니 결국은 막대기를 휘두르며 때리려는 흉내를 낸다. 막대기를 빼앗아서 부러뜨려 던져버렸다. 그리고, 돌려차기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도 너 때릴수 있다고 하니까 동료를 부른다면서 휘파람 비슷한 소리를 낸다. 골치아프게 되었다. 그냥 5루피 줄 걸 그랬나? 100원을 삥뜯기는것도 창피하지만, 가진 돈도 100루피 짜리밖에 없다. 95루피를 거슬러 줄 녀석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냥 버티기로 하고 텐트로 들어와버렸다.

  그러고 보니 걱정이 태산이다. "과연 몇명이나 더 올까? 인도인 평균 체격이면 두명까지는 상대 가능하겠지? 소지품은 다 텐트에 있으니 빼앗길 염려도 없고. 문제는 텐트 폴대가 부러지면 안되는데…….."

  스패너, 각목을 옆에 두고 태연한 척 텐트에 누워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주머니에 칼도 챙겨 넣었다. 텐트밖에서는 녀석이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다. 자꾸 성가시게 굴면 일행 오기전에 청테이프로 손발, 입까지 묶어 버려야겠다고 청테이프까지 준비했다.

  그러고 숨 죽이고 텐트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들리는 후두둑 소리. 누가 왔나 텐트 밖으로 뛰쳐 나가보니 비가 오고 있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시계를 보니 4시간이 지나 있었다. 동료가 온다는건 단순한 협박이었는지, 비 때문에 안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다.

  그나저나 이 상황에서 잠들어 버린 나는 대체 뭐하는 녀석일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난 단순한 여행자일 뿐인데, 자꾸 테세우스가 되어가고 있다. 잠자리에서 괴롭히는 녀석은 프로크루스테스였나? 나쁜 남자들과의 만남으로 여행이 더욱 다채로워진다. 하지만, 앞으로는 좋은 사람들만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데 테세우스라면 나의 아리아드네는 어디에?

  참, 테세우스가 소 괴물 미노타우르스를 퇴치했다지? 마댜 프라데시에 오니까 소도 다르다. 우리 누렁이같은 소에서 점점 검은색 뿔과 털이 긴 녀석으로 변한다. 아마, 추위에 강한 녀석일게다. 근데, 여기.. 한국보다 더운데.네놈이 미노타우르스냐

  그러고 보니, 아리아드네도 만났다.

  비포장도로가 막 끝난 지점 즐겁게 달리다가 잠시 쉬는데, 한 꼬마 아가씨가 미소를 보낸다. 길이 좋아지니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나도 꼬마 아가씨를 향해 살며시 미소를 지어줬다.

  그러자 돌아온 반응은 '피-' 하며 무시하는것이 아닌가. '이건 뭐지? 어디서 쪼끄만게 남자한테 튕기는 거나 배워가지고! 오빠 나쁜사람 아니야.' 또 쓸데없는 오기가 발동. '네가 나한테 관심 보이도록 만들고야 말겠다'. 그동안 인도인들의 관심이 너무나 귀찮았는데 내가 인도인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카메라도 들이대 보고, 주머니에서 캬라멜도 하나 꺼내줬지만 냉정한 그녀. 마침내 헬멧을 벗고, 삭발한 머리도 보여주고, '강남 스타일'도 틀어놨다. 오 조금씩 관심을 보이는 듯, 춤까지 보여주니 그제야 웃는다. 드디어 내 편이 되었다. '그럼 그렇지 어디 감히'이때까지만 해도 도도하던 꼬마아가씨

  흐뭇한 기분으로 다시 길을 나서려는데, 꼬마 아가씨가 눈물을 글썽인다. '어? 이거 뭔가 잘못되었다. 졸지에 여자 울리는 놈이 되었잖아. 으아, 다른 사람들이 보면 내가 때린줄 알겠다.' 달래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결국 아리아드네를 버리고 달아나는 테세우스처럼, 달아날 수 밖에 없었다.

  "꼬마 아가씨. 공부도 열심히 하고 착하고 건강하게 잘 크길~. 오빠는 이제 그만 잊어, 난 네 곁을 지켜줄 수 없단다."인도의 나쁜남자. 대머리에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영락없는 악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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