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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에미레이트(UAE)

052. 두바이 적응기

  잠자리가 해결되니 더이상 두바이도 두렵기만 한 곳이 아니었다. 두바이의 처음 1주일은 그동안 고생스럽던 여행이 아닌 휴양처럼 보냈다.

  해변가에 묵으면서 심심하면 수영을 한다. 바닷물은 깨끗하고, 작은 물고기도 많이 보인다. 심지어는 얼굴만한 크기의 거북이 헤엄치는것도 볼 수 있었다. 조깅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옷이 땀에 젖는게 마음에 안들기 때문. 처음에 웃통 벗고 뛰다 결국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햇볕이 생각보다 훨씬 강렬하다.

두바이 오픈 비치

  무료인 공공샤워장에 온수가 나와서 충격을 받았는데, 알고보니 그 온수는 보일러가 만든 게 아니었다. 햇살이 워낙 강렬해서 냉수가 안나온다. 공공시설은 어딜가나 미지근한 물 뿐이다.

  그러고 보니, 이 더운 나라의 버스정류장은 유리로 사방이 막혀 있다. 사람들은 밖에 서 있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아니, 저사람들은 덥지도 않나?' 나와 상관없는 시내버스이지만, 호기심에 한 번 버스정류장 문을 열어보니... 에어컨이 나온다. 세상에…. 그냥 할 말이 없다.

에어컨이 나오는 두바이 버스정류장

  낮에는 굉장히 덥다. 사실 낮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거의 없다. 더워지기 시작하면 실내 구경할 만한 곳을 가거나 에어컨이 나오는 까페, 패스트푸드점 등에 들어가 있는편이 낫다.

주메이라 모스크

  주메이라 모스크(Jumeirah Mosque) 투어 프로그램은 Dh10을 지불하면 약 75분가량 이슬람과 모스크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는 기회였다.

주메이라 모스크에서

  까페에서는 음료를 주문하면 1시간짜리 Wifi 접속용 ID와 패스워드를 준다. 덕분에 피서는 물론이고 인터넷 이용이나 노트북 카메라 충전도 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네팔에서의 밀린 여행기를 다 올린것도 두바이의 뜨거운 낮 시간이다. 음료는 가장 저렴한 아메리카노가 Dh12정도 하는데(3,600원) 덥고 목말라서 순식간에 벌컥벌컥 마시게 된다. 빈 잔 앞에놓고 시간보내기도 미안해서 결국은 한 잔씩 꼭 더 시키게 된다. 중동의 한 낮 더위는 자전거여행에 어울리지 않는 사치스러운 휴식시간은 선사한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다시 움직일 시간이다. 드라이브는 야경도 볼 겸, 주로 저녁에 한다. 인도에서의 야간주행은 매우 위험했지만, 여기는 가로등 설치가 잘 되어 있어서 주행여건은 좋은 편이다. 단, 여기는 고가도로가 많고, 차량 진출입로가 2~3차선이라 항상 주의해야 한다. 고가도로가 워낙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초행길에 한 번에 목적지 찾아가기도 쉽지 않다.

고가도로에서 바라본 버즈 칼리파와 Wing

  한번은 최 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Burj Khalifa)에 가보려고 했으나 고가도로를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여러번 시도 끝에 버즈 칼리파에 갔으나, 입구에서 Residence 전용이라면서 경비원이 막아선다. Residence의 뜻을 잘못 이해했다. 거주자를 현지인으로 생각한 것. 그럼 외국인용 입구는 어디냐 물어보니 없다고 한다.(인도에서는 외국인용 창구가 별도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

  인종차별하는 줄 알고 욱하려는 찰나, 경비원이 설명해 줬다. 이 빌딩에 사는 주거민을 말한다는 것. 빌딩이 집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일종의 주상복합이다. 흠. 엘레베이터가 얼마나 빠른지는 몰라도 저런데 살면 많이 귀찮을 듯 하다.

  버즈 칼리파를 보며 저 건물에 레펠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외벽 청소하시는 분들은 정말 고생 많을 것 같다.

너무 높아서 사진을 찍으려면 드러누울 수 밖에 없다.

  지금까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장점은 현지인들의 삶과 조금 더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시와 도시 간을 이동하면서 차량으로는 놓칠 작은 마을들. 또 자전거 여행 자체를 신기하게 보면서 환대해 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배낭여행보다 훨씬 더 가까이 삶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뭐 단점은. 느리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그런데 이곳, 두바이에서는 이런 공식은 안통한다. 도무지 현지인(Emirati; 에미라티라고 한다)들과 가까워 질 수가 없는것. 뭐, UAE자체가 외국인이 88%인데, 두바이는 91%라고 한다. 현지인은 소수이기도 하지만, 대체 어디서 뭘 하는지 거의 보이지도 않고, 간혹 보여도 말 한마디 붙이기 힘들다.

스패너같이 생긴 에미레이트 타워

  게다가 한국인을 찾아볼 수가 없다. 여러모로 두바이는 심심한 도시다. 그리고, 뜨거운 햇살과 정 반대로 차가운 도시다. 하지만 다행히 말벗이 되어주는 사람들은 있다. 재미있는건 아부다비 인과도, 출장 온 카타르 인과도 어울렸다는 것.(카타르는 UAE에서 독립한 나라이다) 어쩌면 UAE인의 문제가 아니라 비주류인 이방인끼리 통하는 뭔가가 있나보다.

버즈 칼리파 앞에서 만난 카타르 친구들과

  대부분 육체 노동은 외국인들이 전담하는데, 주로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동남에 쪽에서 많이 온다. 인도인들은 역시 인도에서 그랬던 것 처럼 호기심이 항상 많다. 인도에서는 귀찮을 정도였는데, 여기서 만나는 인도인들은 심심하던 차에 늘 말벗이 되어준다.

  운전기사, 환경미화원, 시설 관리요원, 마트 계산원, 서빙 요원 등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을 수입해 쓰고 있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결과, 몇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월급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는 것.(60~100만원 선), 비자 문제가 이상하게 되어 있어서 퇴사하면 즉시 비자가 만료된다는 것(운전기사 등 개인에게 고용되어도 마찬가지) 그래서 항상 고용주의 눈치를 많이 볼 수 밖에 없었다. 주거는 열악한 공동숙소에서 하거나 개인고용인 경우 고용주의 집에 함께 살기도 한다. 가족은 대부분 본국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호화롭기 그지 없는 두바이몰 거리

  이들은 대부분 UAE에서 일하는게 큰 기회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일해서 고국에 있는 자녀 교육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나라에서 범죄를 저지르거나 불법체류 따위의 법을 어기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다. 일을 하려면 여기의 질서를 잘 따를 수 밖에 없다.

인도 출신 기사들은, 대체 이 질서정연한 UAE에 어떻게 적응을 한걸까?

  두바이 사람들은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그들의 말에서 어딘가 모를 두바이에 대한 반감 비슷한 감정도 느껴진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한국 역시 가서 일하고 싶은 나라 중 하나이지만 언어 때문에 쉽게 결심하지 못하는 듯 하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UAE, 일본 보다 한국이 훨씬 높다고 한다. GDP가 50,000달러에 가까운 UAE의 경제 수준을 생각하면, 헐값에 험한 일을 맡긴 셈이다.

  두바이가 더 알고 싶어져서 두바이 뮤지엄에 갔다. 입장료는 단 DH3. 900원이다.

옛 성벽을 활용한 두바이 박물관

  두바이 뮤지엄은 1960년대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 까지 발전상을 잘 정리해 놓은 박물관이었다. 사진과 모형으로 보는 60년대의 두바이는 사막과 조그만 어촌마을일 뿐이었다. 진주 채취에 관한 내용이 많다. 그러나, 석유가 이 나라를 바꿔 놓았다.

과거 두바이 생활상. 학교는 마치 우리의 서당같다.

  물론 지도자의 비전과 리더십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하자원이 있지만, 지배층의 주머니만 불리고 국민은 돌아보지 않는 나라가 한둘인가.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는 일단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듯 하다. 각종 건물에서 그의 사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때, 한국에서도 그의 리더십에 대한 책이 많이 출간된 걸로 기억한다.

두바이의 녹지대는 인위적인 노력의 산물

  그런데, 그는 대통령이 아니다. 여기는 작은 왕국이다. 왕이 하라면 하고, 게다가 그 왕은 세습제에다 돈도 많다. 그러니 바다를 메꾸고 엄청난 건물을 지어 올려도 누구하나 반대할 수 없다. 임기 내에 어떤 업적을 이루겠다는 강박관념도 없다. 계획한 청사진대로 하나하나 실행할 수 있다.

우주기지같은 지하철역

  대한민국은? 대통령단임제 국가에서 한 번 뿐인 5년의 임기. 뭐라도 남기려면 새 일을 벌여야 한다. 전임자의 일은 해봤자 전임자의 공이다. 새로 뭔가 추진하려면 온갖 시민단체, 환경단체들이 막아선다. 무모한 투자가 아닌, 국가 안보와 상선의 안전한 항로 유지를 위한 국책사업조차 반대론자들에 의해 진행이 더디다.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인 것 같고, 내 정서에도 맞지 않지만 분명히 장점도 있다. 최소한 어떤 과도기에 무언가를 추진 해 나가기에는 공화정보다 더 유리한게 사실인 듯 하다.

현대미술품 같은 육교

  그러나 우와 하고 입은 벌어지지만 도무지 감동은 찾을 수 없다. 이 박물관 왜 만든거지? 석유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줬다. 자랑하려고? 이 엄청난 역사에 두바이인의 땀과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복권 당첨되어 벼락부자가 된 후 쓴 회고록 같은건 나만의 생각일까?

아랍 여인의 전통의상

  장기적인 안목에 따라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해 나가는 추진력과,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창의적인 사고로 자연 환경에 도전해 온 셰이크 모하마드의 리더십은 인정한다. 하지만, 사막을 개척하고 바다를 메꾼 것은 현지인들이 아니다. 외국인 근로자들. 달러를 벌기 위해 열사의 땅에 뛰어들었던 우리 아버지 세대의 노력이다. 현지인들은 돈만 투자했을 뿐.

  모든 험한일은 외국인들이 하고 있다. 아마 이 사람들은 두바이에 돈줄이 마르면 썰물처럼 빠져나갈 것이다. 그 이유가 석유자원의 고갈이던, 저렴한 대체 에너지의 개발이던, 아니면 더 매력적인 관광지의 부상이던. 그건 여기 지도자가 더 잘 알겠지? 그러므로 그 전에 인프라 구축, 교육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할 테고. 생각해 보니 2010년 한국에서 원전 수주도 했고, 특전사 요원이 UAE군 특수전 교관임무를 맡았다고 한다.

공항이 근처라서 항공기는 매우 낮게 난다

  우리 대한민국은 자원도 없고, 6.25 사변이후, 잿더미에서 시작하여 잘 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새벽별을 보며, 정글에서 피를 흘리고, 중동에서 땀을 흘렸다. 그리하여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 경제 뿐만 아니다.

  국민 의식 역시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기대하는게 빠르다던 수준에서 결국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재탄생했다. 그래. 감동이라는 글자는 바로 이럴 때 쓰는거다. 문득 한강의 기적에 대한 박물관이 있으면 좋을거라는 생각도 든다.

시원스런 두바이 크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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