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아랍 에미레이트(UAE)

056. 사막의 폭풍 작전 - 알 아인을 향해

  5월 24일. Zayed Mosque의 야경을 마지막으로 아부다비(Abu Dhabi)를 떠난다.

셰이크 자예드 모스크를 뒤로하며

  인도에서는 그토록 기피하던 야간주행을 선택한 이유는 우선 길 한 낮의 타는 듯한 태양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며, 가로등이 밝고, 길 상태가 좋아서 위험 요소도 덜하기 때문이다. 갓길도 넓지만 도로상에 주차한 차량이 없어서 편하게 달릴 수 있다.

  빌딩 숲이던 아부다비를 빠져나오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어느 순간 해안 도로를 달린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스트레스 받을 때 마다 밤바다를 보러 나갔었는데 딱 그 기분이다. 사막이 시작되었나 보다.

국제 인내 마을? 낮에는 엄청난 인내심을 필요로 하나?

  야간주행 중 적당한 휴식장소가 나왔다. Truck Road가 시작되는 지점인데, 고가도로 옆에 공터가 있었다. 오늘은 여기서 휴식 결정.(주행거리 75.97km, 누적거리 3,712km)

  올라와 보니 정말 명당이었다. 눈에 띄지도 않지만, 도로 한복판이라 발견되어도 누구하나 일부러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노래도 틀어놓고, 간만에 맥주까지 꺼내어 분위기를 더했다.

  이건 이슬람 국가를 위한 무알콜 맥주다. 맥주의 느낌이 가미된, 한마디로 맛없다. 예전 PX에서 팔던 무알콜 맥주보다 더 맛없는것 같다. 어쨌든 도로 한복판에서 갖는 여유로운 시간.

PX맥주의 등장

  전날 좋은 쉼터를 발견학 덕분에 푹 자고 일어나서 출발. Truck Road로 가기로 했다. 여기 차량 속도제한은 한국보다 20km씩 빠른것 같다. 왠만한 도로는 120km/h다. 매우 위협적인 속도이므로 차라리 느린 트럭 로드가 안전할 것 같다.

전날 숙소는 고가도로 사이 탑을 쌓은듯 한 곳.

  트럭 로드는 정말 화물차용 도로였다. 차선은 중앙분리대가 없고, 갓길이 넓어서 대형 화물차가 달리기에 좋다. 대형 화물차가 일반 도로를 주행하면 옆 차량에 위협이 되기도 하고, 과적시 도로 파손이나 느린 속도 등 여러가지로 불편하므로 아예 도로를 나눠놓은 것이다.

  이유없는 무조건 적인 차별이 아닌, 상황과 역할에 따른 구별은 많은 경우에 더 효율적이다. 갓길이 넓어서, 덩치만 큰 느림보 화물차들은 오히려 더 안전하다.

  주위 풍경은 황량한 모래 사이로 제법 많은 가로수가 심어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역시 물 공급을 위한 호스가 연결되어 있고, 모래에 물이 고일 정도로 많은 물을 공급하고 있었다.

대추야자 나무는 거의 모래속에 잠겨있는 듯 하다.

  그리고, 드디어 사막이 나타났다.

모래산의 시작물결무늬의 정체는?물은 필수품이것이 바로 사막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불과 한달전에는 토룽라에서 순백색으로 덮힌 산을 보며 덜덜 떨었는데, 이제 황토색 사이에 갖혀버리다니.

  사막에서 시간도 잠시, 너무 덥다. 이 도로에는 주유소 겸 휴게소가 보이지 않는다. 휴게소를 찾아 일반도로 E22로 이동. 역시 예상대로 주유소가 있다. 씻고, 물도 보충하고, 뜨거운 햇볕을 피해 주유소 뒤편에서 자전거 정비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15시 정도. 갈 길이 멀기에 다시 출발한다. 햇살이 정말 뜨겁다. 심할때는 뜨겁다 못해 아플 지경이다. 아랍인들이 긴 두루마기를 착용하는 이유가 있었구나. 14~16시 사이가 가장 심한 듯 하다. 다시는 이 시간에 돌아다니지 않으리라.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저 앞 도로에 물이 고여있는게 아닌가? 비가 오지도 않았을 거고, 이 뜨거운 햇살에 물이 증발하지 않은것도 이상하다. 차량과 도로 표지판까지 물에 반사되어 비치고 있었다.

사진상에는 잘 표현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훨씬 가깝게 보였다.

  하지만 젖은 도로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신기루인가? 아니면 단순한 아스팔트의 반사인가? 그런데 아스팔트가 저렇게 거울처럼 반짝거리는것도 신기한 일이다.

계속되는 사막모래성 같기도 하고저 멀리 사막의 배-낙타가 보인다.

  주위는 계속 모래 뿐이다. 지겨울 만도 할 텐데, 이런 광경을 처음 보는 나로서는 신기할 뿐이다. 바람이라도 불면 모래먼지가 이는데, 드라이아이스 같기도 하고, 수많은 병력이 이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

스물스물 움직이는 모래들

  저 모래바람이, 모래산에 빨래판같은 무늬를 만든 범인이었다. 그리고, 바람에 따라 모래산이 나타났다 사라지나보다. 어쩌면 사막에서 점성술, 천문학이 발달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육지의 지형지물은 무의미하니까.

  "제일 높은 모래언덕 방향으로 열 걸음 가면 보물이 묻혀있다"면 이 보물은 영영 못찾을것이다.

사막의 빨래판 무늬

  한참 지나니 UAE라기보다는 인도같은 분위기의 마을이 나온다. 잠시 음료수를 한 잔 마시면서 가게 주인과 이야기해 보니 방글라데시에서 온 하산이라는 친구였다. 2년간 일해서 이 가게를 마련했다고 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자수성가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하산과 그의 잡화점

  알 아인이 가까워지긴 한 걸까? 주위 풍경은 몇 시간 전과 똑같은것 같다. 이 길 위에 차량도 거의 없다. 10~20분에 한대 보일까 말까 한다. 다만 달라진 것은 우측에 있던 태양이 좌측으로 옮겨갔다는 정도? 신기루 비슷한 현상도 보이고, 혼자 사막속을 계속 가니 시간 감각도 마비되고,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다.

가끔 Wing을 끌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모래도 있다.

  어느 새 해가 지고 있으나 주위 풍경은 그대로다. 아, 달라진게 있다면 뜨거운 느낌이 적어졌다는 정도?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무심코 우측을 바라보니 벽 뒤에 붉게 빛나는 물체는?. 해가 갑자기 나타났다!!!

왜 해가 다시 뜨는거지?

  순식간에 머리털이 쭈뼛해질 정도로 놀랐다. 분명히 얼마전에 해가 졌는데? 그럼 저건 뭐지? 설마 태양이겠어? 워낙 이상한걸 잘 만드는 UAE니까 분명히 인조 구조물일거야…….

  아무리 달려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던 그 물체는 시간이 지나면서 흰색으로 변해갔고, 하늘로 하늘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토끼 그림자는. 그 정체는 바로 이었다. 세상에.

  설마 달일 거라고 생각도 못한 이유는 너무나 크고 붉고, 둥근 물체가 가깝게 보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붉게 빛나던 달은 처음이다. 달을 보고 이렇게 두렵고 놀라다니. 또, 시기도 하필이면 만월일게 뭐람?

  돈이 남아도는 것 같던 UAE도 알 아인이 가까워지니 풍경이 변한다. 갑자기 가로등도 없는 도로가 나타나는 것.

끝나버린 가로등을 돌아보며.

  어두운 도로는 역시 위험하다. 급하게 랜턴을 켜고 감속 주행 시작. 아 주위가 어두워 지니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주위의 모래 언덕 뒤로, 멀리 떨어진 다른 도시의 불빛이 보이는 것. 이제는 아예 해가 대여섯개씩 뜨는 기분이다.

멀리 보이는 조명은?

  아무튼 사막은 재미있는 곳이다. 달빛과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진 사막의 야경은 어딘가 모르게 몽환적이다.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다.

꿈결같은 사막의 야경사막 하나 더

  목적지. 알 아인이 가까워 질 수록, 사막이 아쉬워서 발걸음은 더욱 느려진다. 마침내 사막은 사라지고, 도시가 보인다. 휴식이 다가오는데도 이렇게 아쉬울 줄이야.

  Green Mubazzarah Park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캠핑장이 있다는 공원이다. 바로 캠핑장으로 이동. 평일이라 그런지 캠핑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오랜만에 텐트 알 아랍을 펼치고, 꿈결 같았던 사막 도로를 떠올리며 진짜 꿈속으로 빠져들었다.(주행거리 122.14Km, 누적거리 3,834km)

  다음글 ☞ 057. 알 아인. 오아시스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