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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Oman)

059. 계속 이어지는 따뜻한 만남

  더위에 눈을 떠보니 전날 잔 곳은 다름아닌 목장이었다. 염소들이 경계를 풀치 않은 채 나를 응시하고 있다. 짐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보니 염소, 양 등을 담 안에 풀어놓고 기르는데 쪽문이 열려있고 지키는 사람도 없다.

<나무가 심어져있는 담 안은 목장>

  주행중에 주인없이 돌아다니는 염소나, 길가에 죽어있는(로드킬이 아닌) 염소를 수차례 봤다. 오만은 길가에 풀은 많이 있으니 아사는 아닐거고, 아마 이런 구조의 목장을 벗어난 후, 길을 잃고 일사병과 목마름으로 죽었으리라.

  어째서인지 갈 길을 잃고 헤메다가 쓰러져 있는 염소가 내 모습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자유의 대가인가? 자꾸 이런 것을 보면 기분만 이상해지니 빨리 떠나야겠다.

<오만은 대부분 척박한 광야지만, 식물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다>

  조금 가서 대형 마트가 보이길래 화장실에서 세수, 빨래까지 끝냈다. 물 몇병 사고 나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퍽' 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해서 바퀴를 보니 뒷바퀴 바람이 빠지고 있다. 으. 아주 가지자기 하는구나.

  그늘을 찾아가 튜브를 빼 보니, 예전 인도에서 열로 녹여붙인 곳이 터져버린것이다. 신기한건 마트앞에 세워놓았는데 저절로 터진 것. 혹시 뜨거운 날씨에 공기압이 높아져서 터졌나? 그렇다면 또 한가지 의문이 해소된 것이다.

  UAE와 오만에서 길가에 찢어진 타이어 파편이 유독 많이 보였는데, 120km/h이상으로 달리면서 지면마찰과, 온도에 의한 타이어 내부 공기팽창에 의해 터진게 아닐까? 그런데 주행중에 타이어가 터질 정도면 큰 사고일텐데 다른 사고 흔적은 없고, 타이어 조각만 뒹구는것도 이상하긴 하다.

<타이어 파편>

  펑크 손질도 불가능한 상태라 예비튜브로 교체했다. 혹시나 해서 공기압은 70psi으로 낮춰버렸다.(기존에는 80psi 주입)

<달리다 보면 성도 유독 많이 보인다.>

  얼마나 달렸을까? 더 이상은 꼼짝도 못하겠다. 중동에서의 장거리 자전거 주행은 너무 힘들다. 사우나에서 자전거를 타는 마냥 덥고 땀이 줄줄 흘러 옷은 항상 젖어있다. 팔 다리에는 무슨 벌레인지 모기물린 것과는 다르게 피부가 좁쌀만하게 부어 오르는데 너무 가렵다. 게다가 엉덩이에는 땀띠도 생겨서 여간 힘든게 아니다. 덕분에 자기 전에는 팔다리에 로션 바르듯이 연고를 발라야 한다.

  마침, Al Manfash라는 마을 앞 작은 휴게소가 나타났다. 이런 건물이 도로주변에 가끔 나타나는데 버스 정류장인것 같은데 정작 버스가 서는것은 못봤다.

<휴식처. 무조건 쉬고 간다>

  햇볕이 너무 뜨거워 1~2시간 정도 쉬어가기로 했다. 누워 있으니 바람도 솔솔 불고 좋다. 낮잠이나 자려는데 누군가가 부른다. 슬쩍 보니 복장이 오마니(Omani)다. 몸 밑으로 뭔가를 집어넣어 준다. 신문지이겠지. 졸려서가 아니라 피곤하고 귀찮아서 눈도 제대로 뜨지 않고, 신문지 깔 수 있게 몸만 한번 들썩이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잠을 청하려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일어나봤다. 등 밑에는 신문지가 아니라 운전석 전면에 설치하는 햇빛가리개가 있었다. 낮에 직사광선이 너무 뜨거워서 주차할때는 대부분 운전석을 가려놓는다. 상태는 버리는 것도 아니고, 본인도 필요할텐데 나한테 주고 가도 되나? 

<햇볕가리개 한장>

  일어나보니 벌써 멀리 있는 자기의 자가용 앞까지 가 있었다. 땡큐, 슈크란 이라고 외치자 그는 손만 한번 들어주더니 차에 올라타고 가버렸다. 후회만 밀려왔다. 처음 부를때 일어나 봤어야 하는건데, 미안하고 고맙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일단 잠이나 자고 보자.

  참 편하게 쉬고, 다시 일어났다. 주인에게 돌려줄 수 없는 햇빛가리개. 혹시 필요한 사람이 있을까봐 잘 접어 놓고, 자리를 떠난다.

<확실히 오만은 해양국가인듯. 범선 조형물이 자주 보인다>

  어느덧 뜨거운 태양열기도 식어가고 있고, 조금씩 해가 지기 시작한다. 자고 일어났으니 배가 고프네. 아주 본능에 충실한 삶이다.

<해질녘. 황무지에서의 일몰도 멍하니 바라보기 좋다>

  한참 가다보니 커피숍이 하나 나온다. 여기에는 커피숍이 많다. 이름은 커피숍인데 패스트푸드를 더 많이 취급한다. 이런 커피숍은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게도 해주고, 밤 늦게까지 영업하며 술을 마시지 않는 이슬람 교도들에게 친목의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햄버거 세트(0.6리알≒1,800원) 하나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출발한다.

<이름은 커피숍인데 주메뉴는 햄버거>

  오늘 목적지는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Muscut)에서 120km가량 떨어진 나칼(Nakhal)이다. 나칼에는 유명한 성(Fort)도 있고, 온천도 있다고 한다.

  나칼 25km정도 전방 한 공사장이 보인다. 형태를 보니 호텔을 짓는 듯 똑같은 방이 계속 반복되는 구조. 그런데 호텔이 들어설 만한 입지는 아닌것 같다.

  아무튼 마을 주변이 아니라 성가실 일도 없고, 공사장 주변도 개방되어 있어서 여기서 자면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물탱크가 있어서 샤워도 가능할 듯 하다. 무조건 여기에서 하루를 정리하기로 했다.(주행거리 98.95km / 누적거리 4,231km)

<공사장. 중앙에는 물탱크. 아! 샤워장이다>

  적당한 방을 찾아 들어가서 주섬주섬 짐을 푸는데 사람 소리가 들린다. '아. 다 퇴근한거 아니었나? 여기보다 더 좋은 잠자리가 없을 듯 한데…….'

  나가 보니 공사장 인부다. 혹시 여기서 자도 되겠냐고 물어보니 한참 망설이더니 다음날 아침 06시 전에 떠나라는 것이다. 오호 잠자리 해결. 쾌재를 부르며 다시 짐을 푼다. 텐트는 치지 않아도 될 듯 하다. 그런데 다시 사람들이 몰려온다. '어 이건 뭐야'

  리더인 듯한 사람이 오더니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Hot problem이라면서 여기서 자면 안된다는 것. 그러더니 자기 숙소에서 자라면서 일행을 시켜 짐을 다 들고 간다.

  뭐 따를 수 밖에 없는 상황.

  아. 여기는 현장 근로자들의 합숙소였다. 숙소는 열악하기 짝이 없었다. 딱 구형 군 병사(兵舍)처럼, 시멘트 블럭으로 지어놓았고, 널빤지를 대충 얹어 놓은 침상위에 언제 빨았는지 모를 매트리스와 담요. 벽에는 작업복들이 너저분히 걸려 있고, 침상 밑으로는 쥐가 왔다갔다 한다.

  단 하나 좋은건, 에어컨이 나온다. 아무리 좋게 표현해도, 한국이었으면 돈을 주면서 자라고 해도 아마 안들어갔을 수준이다.

<내부 합숙소의 모습>

  그래도 손님이라고, 자리를 정리하더니 제일 높은 곳의 넓은 자리를 내어준다. 씻고싶다고 하니 물탱크를 쓰라고 한다. 온 몸이 근질근질하여 정말 씻고 싶었는데, 제대로 씻으니 정말 좋다. 그 와중에 적응하여 때까지 밀고, 빨래 다 하고, 벽에 빈 옷걸이를 찾아 빨래까지 널었으니 나도 참 독하다.

  씻고 나니 "카나? 카나?" 하더니 짜파티 몇장과 카레를 부어 준다. 인도에서 음식을 카나라고 하던데? 물어보니 모두 방글라데시인이었다. 아, 지난 번 만난 슈퍼마켓 주인. 이런 열악한데서 고생하여 자립한거였구나.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이 친구들은 방글라데시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듯 했다.

  밥을 먹고 나니 엄지 검지 중지를 비비는 동작을 한다. 이 몸짓은 돈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접을 받았으니 얼마라도 줘야 할텐데. 얼마가 적당할까? 생각하는데, 오히려 내게 몇백 바이사를 주는 것이다. 세상에.

  차라리 벼룩의 간을 빼어먹지(내 수준에서 도무지 영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문장). 아무리 그래도 이 돈까지 받을 수는 없다. 수 차례에 걸쳐 극구 사양하여 겨우 안받을 수 있었다.(게다가 적어서 거절한다고 생각해서인지 거절할때 마다 액수가 커진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는데, 뭔가 울컥한다. 세계 최빈국으로만 알고 있던 방글라데시. 하지만 그들의 마음 씀씀이는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자기 조국에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얼마간 고생 후 또 다른 미래에 대한 꿈도 있겠지.

<편안한 휴식을 제공해준 현장 합숙소>

  6월 1일. 어느새 벌써 6월이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푹 자고 일어나니 어느 새 다 일을 떠나 있었다. 야간조였는지 한 명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목표는 나칼 성. 전날 잘 쉬니 아주 가뿐하다. 금세 나칼 성 도착. 입장료는 500바이사(약 1,500원)

<바위 위의 나칼성>

  나칼 성은 바위를 중심으로 성벽을 쌓았다. 역시 오아시스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성인가 보다. 망루에서 내려보니 주위에는 대추야자 숲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지하수가 많은지 산 밑에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소하르(Sohar)에서 여기까지 지나오면서 본 성도 제법 많았다. 성을 쌓고, 해안가에 마을을 만들고 유지하며 배를 즐겨탔다면? 아무래도 오마니는 유목민이 아닐거라는 확신이 점점 커져간다.

<번듯하게 쌓은 성은><바위를 그대로 끌어안은 구조였다>

  벽이 조금씩 벗겨진 곳을 보니, 벽돌 위에 진흙과 짚을 이겨서 바른 것 같다.

<성벽>

  가격 부담없고 편한 옷을 챙기다 보니, 답은 널려있는 적색 체육복밖에 없었다. 그래도 적색 상하의 조합만은 어떻게든 피하려 했으나, 빨래때문에 어쩔 수 없이 7개월만에 이 조합을 하게 되었다.

  들려오는 소리는 '짜이나?' 우쒸. 중국이 빨간색 좋아한다 해도 실제로 빨간옷 입고 다니는 중국사람은 한 번도 못봤는데…….

<적색 체육복 착용 후 나칼 성에서 한 컷><그래도 카펫 위에서는 나름 훌륭한 위장색 아닌가>

  나칼 성에서 나오니 햇살이 뜨거운 정오였다. 이 날씨에 온천은 전혀 내키지 않아 안가기로 했다. 바로 무스카트를 향해 출발.

  한참 지나니 샛길이 나온다. 지도를 확인하니, 해변쪽으로 돌아가는것 보다 빠를 듯 하다. 특히 차량통행이 거의 없었던 아부다비(Abu Dhabi)행 사막길이 떠올라 이쪽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아무도 없는 광야길

<도로 포장 좋고, 도로변은 바다 끝까지 황무지 뿐>

  그런데 이건 큰 실수였다. 슬금슬금 오르막길이 가파리지기 시작한다. 해안도로면 편했을텐데. 더위+오르막은 정말 원치않던 조합이다. 게다가 마침내 한 녀석이 더 가세했다.

  바로 비포장도로.

  태양은 딱 등판을 달구고 있고, 땀은 흘러내리는데 오르막 내리막으로 힘들고, 흙먼지에 제대로 밟을수도 없고……. 으으으. 또한, 지도상으로는 지름길인 듯 했지만, 꼬불꼬불하여 실제 주행거리는 오히려 해안도로보다 더 긴듯하다.

<으아, 이건 인도의 NH86?>

  가다 쉬다. 가다 쉬다. 괜히 샛길로 들어와서 약 20~25km거리에 취사 포함 5시간 이상 소모했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비포장도로를 보자마자 떠오른건 다름아닌 인도(India), 그리고 NH86.(관련글 - 최악의 도로를 만나다, 켄강 상륙작전)

  그때의 트라우마가 크긴 했나보다. 그리고 아마 비포장도로에서 인도가 생각나는 현상은 꽤 오래갈것 같다.

<멋지긴 한데 자전거로는~ 4WD 추천>

  간신히 비포장도로 주행을 마치고 Muscat Southern Expressway에 진입할때 쯤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그래도 모든 고생을 잊게해준 광야의 석양>

  그리고 야간 주행의 시작. 잘 닦인 도로를 이용 한참을 더 달려 드디어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 진입.

<성벽 형상을 하고있는 고가도로>

  한 해변가의 공원. 공중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고,(수동 비데? 뒤처리를 위해 화장실 칸마다 작은 샤워기가 있다. 잘 찾아보면 가끔 진짜 샤워용으로 쓰는 사람도 있다. ㅠㅠ) 공원 벤치에서 잠을 청했다.(주행거리 120.77km/누적거리 4,352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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