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 강을 건너는 케사르의 기분이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겠지만, 나름 비장한 심정으로 불가리아 출국 도장없이 다뉴브 강을 건너 루마니아(România)로 향했다.
다뉴브 강 폭은 제법 넓없고, 도하 후에도 조금 더 들어가서야 입국심사대를 발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긴장 때문에 더 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루마니아의 입국 자체는 문제없으니 들여보내주지 않을까? 통과 안되면 다시 불가리아로 돌아가야 하나? 거기에 불가리아 입국 검문소가 있으면 더 골치아픈데?'
게다가 내 앞에는 우크라이나인들이 단체로 서 있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입 출국 심사가 정말 까다로운가 보다. 전날 내린 비로 여권 하단이 젖었는데 이것도 문제되지 않을까?
한참을 기다려 마침내 내 차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루마니아 영토 내의 루마니아 입국 심사대 부스에 불가리아 경찰이 함께 근무하는 것. 한번에 입출국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게다가 한국 여권을 보더니 별 질문도 없이 바로 통과.
에이. 정보가 없으니 아무것도 아닌 걸 갖고 괜히 고민했잖아. 그나저나 불가리아 경찰은 매일 다른 나라로 출퇴근 하겠네. 여권을 분기마다 갱신해야겠는데?
<드디어 정식 루마니아 입국>
루마니아 국경을 통과하고 가장 먼저 눈에 띈건 다름아닌 개.
루마니아에는 유기견이 많고, 광견병 발병률도 높다고 한다. 개로 인한 인명사고도 있었다고 주의하라는 말도 들었다. 역시 듣던대로 개가 많구나. 여권도 비자도 없이 마음대로 국경을 넘어다니는 개를 보며, 무선카메라를 달아 첩보수집용으로 유기견을 활용하는게 아닌가 하는 멍청한 생각을 잠시 했다.
사실 루마니아는 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무지와 편견 때문이었다.
드라큐라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좀 음산하고, 캠핑이라도 하려면 박쥐들이 귀찮게 굴 것 같았다. 루마니아에 대해 아는 건 역시 과거 공산권이고, 특히 군 시절, 정훈자료에서 김일성을 존경했다는 차우셰스쿠(Ceaușescu)를 읽으면서 한심한 나라라고 생각했다.
그런 한심하게 생각했던 나라에 발을 들이게 되다니 역시 인생은 모를 일이다.
그나마 갖고있던 긍정적인 이미지는 김연아급 체조선수 코마네치의 나라이며, 역도를 잘하는 나라. 특히 루마니안 데드리프트(Romanian Deadlift)라는 운동 덕분에 뜻하지 않게 헬스장에서 유명한(?) 나라라는게 전부다.
<왠 바벨? 루마니안 데드리프트 하라고?>
그런 루마니아에 오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불가리아 소피아에 머물 때, 당시 우크라이나에 있던 달마와 연락이 되면서 중간인 루마니아에서 만나기로 한 것.
(달마(http://eletto02.tistory.com)는 내 자전거 여행에 동기를 부여한 고등학교 동창.)
달마는 먼저 루마니아에 들어가서 수도의 호스텔에 머물고 있다고 호스텔 주소를 알려줬다.
그러고 보니 여행 중 사전 지식을 갖추고 간 나라도 거의 없었지만 루마니아만큼 관심없이 온 나라도 드물다. 전날 환전도 안해서 수중에는 루마니아 돈이 한푼도 없었고, 수도 이름조차 모른다, 부 어쩌고였는데 달마가 알려준 주소는 내가 들은것과 다른 Bucharest라는 도시였다.
알고보니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București)의 영어 명칭이 부카레스트(Bucharest). 대한민국을 코리아라고 하는것과 같지만 상당히 헷갈린다.
<잠시 쉬고있는 마차>
불가리아에서는 산지와의 싸움이었는데, 여기는 평지다.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 많았고 도로 상태도 불가리아보다는 양호한 듯 하다.
기름져 보이는 푸른 평야를 바로보고 있으니 기분도 괜스리 좋아졌다. 이거,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잖아. 문외한인 내가 봐도 농사짓기 좋은 땅이리라.
아마 루마니아도 끝없는 전쟁에 시달렸을 것 같다. 다뉴브 강을 끼고 이렇게 비옥한 땅이 있으니 정복자들이 당연히 눈독들였겠지. 게다가 방어하기 좋은 산도 없으니 이 일대를 두고 수없이 많은 싸움이 벌어졌을 것이다.
<기름진 루마니아의 평야>
그런데 생각보다 속도가 잘 나지 않는다. 원인은 바로 바람.
바람을 막아줄 장애물이 없어서인지 하필이면 역풍이 불며 길을 방해한다.
한참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뚝 소리. 또 스포크인가? 다행히 스포크는 이상이 없었으나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찾았다. 바로 뒷 바퀴 림이 갈라진 것.
<정확히 16개소가 갈라졌다. 대체 왜?>
게다가 앞 페니어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확인해 본 결과 앞 페니어를 거는 랙의 용접이 떨어져버렸다. 으으.
분명히 MAX CARRY 10kg라고 씌여 있는데 5kg도 안걸었는데 떨어지고, 림이 갈라지질 않나! 게다가 뒷 브레이크도 작동이 안된다.
Wing 이녀석. 반항하나? 자꾸 메이드 인 차이나 코스프레 하겠어?
철재면 공사장 보면 대충 용접을 할텐데 알루미늄이라 스스로 해결할 수도 없다. 급한대로 케이블 타이와 실을 이용해서 칭칭 동여매었다.
<케이블 타이로 보수한 앞 랙>
확실히 불가리아와 다른가? 지나가면서 보는 건물들도 뭔가 다른 분위기이다.
<성을 축소한 듯한 교회>
어두워 질 때까지 달려 마침내 부쿠레슈티 도착.
그런데 도로까지는 찾았는데 도무지 호스텔이 보이지 않는다. 간판도 없고, 해당 번지표시도 없다. 분명히 이 골목일텐데?
근처 슈퍼에 물어봐도 모르고, 손님 한 사람은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한국이라고 하니까 매우 반가워하며 "Are you communist?"라고 묻는다. "No. I'm from Republic of Korea. I'm not communist."라고 하자 떱떠름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이 녀석 뭐지? 여기 민주국가 아니었어? 진짜 이상한 나라에 잘못 왔구나.'
다행히도 우연히 Wi-fi 신호를 잡게 되어 연락을 하게 되었다. 드디어 달마와 재회 한 것이다.
달마는 스파게티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맛있는 음식과 함께 그 동안의 회포를 풀며, 서로의 고생담을 나누면서 루마니아의 첫날밤은 깊어 갔다.(9월 20일 주행거리 95.15km, 누적거리 6,28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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