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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Romania)

078.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는 황홀한 여행길

  부쿠레슈티를 출발하여 본격적으로 달마와 함께하는 루마니아 자전거 여행에 나섰다. 둘이 달리니 힘든줄도 모르고 수월하게 나간다.

  나는 왠만하면 큰길을 선호한다. 그나마 국도를 타면 길 상태도 좋은 편이고, 중간중간 마을이 있어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차가 들어와서 잠시 휴식>

  그런데 달마는 국도보다는 샛길을 좋아한다. 나는 인도에서 고생한 기억에 샛길이 크게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따라 나섰다. 역시 길 상태는 별로다.

  그래도 공사중인 몇몇 구간 외에는 포장도 되어 있고, 오히려 불가리아의 국도보다도 도로가 나은 편이다. 물론 스피드를 즐기기에는 무리이지만, 차량 통행량이 적고, 도로가 조용해서 좋다.

<기차 출발. 나도 출발>

  대신 국도보다 거리가 길어 목적지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단점도 있고, 길 찾기도 더 복잡하다.

  이날은 황혼이 황홀할 정도였다. 붉게 물드는 하늘을 바라보며 달리는 환상적인 여행길

<루마니아의 석양>

  석양 속을 달리자니, 기타를 잘 치던 후배 진우가 연주하던 '황혼'도 생각 생각도 나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을바람 머물다간 들판에 모락모락피어나는 저녁연기 색동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붉게 물들어 타는 저녁놀~♬"

<노을길을 헤치는 달마>

  하늘 빛에 감탄하다 보니 어느새 하루를 정리할 시간. 그런데 마땅한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밭 근처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곳을 선호하는데, 지금은 Buriaș라는 마을의 중심이다.

  '어쩔 수 없이 야간 주행을 해야겠구나.'

  랜턴을 꺼내고, 야간 주행을 준비하려는데 마침 작은 구멍가게 뒤에 공터가 보인다. 도로변에 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행인들 눈에도 잘 띄지 않겠다. 오호, 여기가 좋겠다.

  간단한 식사거리를 구입하면서 구멍가게 주인에게 숙영 허락을 받았다.(9월 23일 주행거리 55.03km, 누적거리 6,374km)

  바닥이 고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잘 만 하다. 텐트를 치고, 식사 준비. 그동안 식사를 대충 했는데, 둘이 있으니 식사도 더 효율적이다. 한명은 밥짓고, 한명은 국 끓이고~.

<둘이면 밥도 두 배. 맛도 두 배>

  작은 맥주 한병과 함께 달마와의 첫날밤을 마무리했다.

<출발 준비. 텐트 해체 중>

  날이 밝자 다시 길을 나섰다. 루마니아는 경치가 참 좋다. 특히 도나우 강 건너 국경마을 Giuigiu부터 계속 평지여서 아주 편안한 주행을 할 수 있었다. 오늘 목표는 시나이아(Sinaia)

  오후쯤 되니 슬슬 오르막이 나오기 시작하고, 점점 가파라진다. 바로 카르파티아 산맥(Carpatians)이 시작된 것이다. 이 산맥은 9시 시계바늘처럼 루마니아의 북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꺾어지며, 특히 지금 넘을 이 산맥의 남부는 트란실바니아 알프스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아. 추수철이구나>

  산길을 달려 Comarnic이라는 마을에 접어드는데 갑자기 달마의 자전거에 펑크가 났다. 길 한켠으로 이동하여 바퀴를 보니 뒷바퀴가 많이 닳아 있었다. 앞 뒤 타이어 위치까지 교환하고 보니 너무 늦었다. 시나이아까지 약 15km정도 남았는데, 이 시간에는 시나이아에 가도 큰 의미가 없겠다 싶어 바로 숙영지를 찾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위해 근처 마트에 들렀다. 혼자 있으면, 자전거에 신경이 쓰여 구멍가게만 이용했는데, 둘이 있으니 저렴한 대형 마트도 이용할 수 있고, 화장실 이용시에도 편하다.

  어두워져서 급한 마음에 숙영할 만한 공간을 찾아서 달리다 보니 작은 공터를 가진 집이 보인다설마 허락하겠어?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숙영을 부탁하니 역시 흔쾌히 승낙.

<덕분에 잔디위에서 편안한 숙영>

  루마니아 사람들은 매우 친절한 것 같다. 집 앞에서 물병을 보여주면 식수를 가득 채워주는 사람들 덕분에 물을 살 일조차 거의 없었다. 인도처럼 몰려들어 귀찮게 굴지도 않고, 아랍처럼 너무 냉정하지도 않고,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는 참 좋은 나라인것 같다.

  그런데 해가 지니까 상당히 춥다. 어제까지만 해도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옷도 잔뜩 껴 입고, 텐트 밖에서 밥먹는 것 조차 추워서 서로 텐트 입구를 붙여놓고, 텐트 속에서 밥을 먹어야만 했다.(주행거리 72.15km, 누적거리 6,446km)

<즐거운 식사시간>

  이제 브라쇼브에 가는 날이다. 아침 날씨는 매우 추워서 긴 체육복에 가죽장갑까지 착용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팔 반바지였는데 산지라서 그런 것일까?

<오르막길에서는 다시 더워진다>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는건 쉽지 않았지만, 주위 경치가 기가 막히다. 산악 마을인 시나이아는 그림같은 경치를 가진 아름답운 마을이었다. 조금만 덜 추우면 이런 곳에 며칠 머물러도 좋을 듯 하다.

<드디어 시나이아 진입>

  그런데, 시나이아에서 달마의 자전거가 또 펑크가 났다. 장거리 주행에 타이어는 물론 튜브까지 닳아버린 것. 펑크 패치도 소용없을 듯 하여 아예 튜브를 교체하고 다시 출발.

<튜브 교체 중>

  시나이아도, 이어지는 Preadeal까지 계속 평화롭고 멋진 경치를 자랑하는 마을이었다.

<이름모를 조그만 교회><구름을 걸어놓은 산><이제 39km 남았다>

  지도를 보니, 브라쇼브는 얼마 남지 않았지만 거의 5km 전방에 매우 꼬불꼬불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아마 이 길이 마지막 고비가 되겠지? 자판기 커피 한 잔과 함께, Predeal을 감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출발 준비.

<빨간 육교가 인상적이었다><아기자기한 시내>

  그런데, 예상과 달리 꼬불꼬불한 길은 내리막이었다. 괜히 횡재한 기분이다.

<산길 정상에서 달마와 함께><카르파티아 산맥을 배경으로>

  거의 20km을 페달조차 밟지 않고 갈 수 있었다. 역시 그동안 열심히 올라온 보람이 있구나.

<지하주차장 내려가는 듯한 도로><미끄러지듯 신나게 주행>

  신나게 내려가니 어느새 브라쇼브가 나타났다.

<어느덧 내리막길도 끝>

  브라쇼브에서는 배만주 선교사님댁에 묵을 예정이다. Wi-fi존을 찾아 전화를 드리고 알려주신 주소를 찾아갔다.

  선교사님 댁에 들어가니 따뜻한 공기가 몸을 감싼다. 미리 보일러를 틀어주신 것. 온수로 언 몸을 녹이니 감사하게도 진수성찬을 차려주셨다.

<우와. 감사히 먹겠습니다><식사 후 배만주 선교사님과>

  선교사님 덕분에 맛있는 저녁 식사는 물론이고 푹식푹신하고 포근한 침대에서 편히 쉴 수 있었다.(주행거리 54.35km, 누적거리 6,500km)

<편안한 취침.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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