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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Romania)

079. 좋은 만남이 이어진 브라쇼브

  브라쇼브(Brașov)의 첫 밤을 편안히 보내고, 시내 구경을 나섰다.

  우선 관광안내소로 가서 지도를 받고, 이곳저곳을 둘러볼 계획. 달마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유감없이 발휘하여, 감으로만 관광안내소를 찾아내는 능력을 보여줬다.

<브라쇼브 구 시가지>

  관광안내소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드라큘라 성으로 유명한 브란(Bran) 성은 드라큘라와는 전혀 관계 없다는 것. 단지 드라큘라 영화에 나온 성과 흡사해서 유명해 졌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브란 성은 흥미가 떨어져버렸다.

  드라큘라의 정식 호칭 왈라키아 공 블라드 3세(Vlad III, Prince Of Wallachia)로, 흔히 블라드 체페슈(Vlad Țepeș)로 불리며 체페슈는 '가시'라는 뜻으로 포로를 말뚝에 꽂아 죽여서 생긴 별칭이라고 한다. 또한 드라큘라(Drăculea) 역시 별칭으로 용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직원의 말로는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드 2세와 동시대 사람으로 그에 맞서 싸운 영웅으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또, 매우 정직한 사람으로 그의 치세에는 도둑과 거짓말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관광안내소 근처 The Council Square>

  덧붙여 드라큘라는 젊은시절 오스만 제국에 유학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재미있는 건, 평생 당나라와 싸운 고구려의 연개소문 역시 젊은시절 당나라를 정탐했다는 전설이 있고, 이 이야기는 단재 신채호 선생에 의해 '갓쉰동전'으로 알려져 있다.

  "유학중에 터키의 케밥을 보고, 나중에 포로를 말뚝에 처형한거냐?"

  물어보자 새로운 학설이라고 감탄하며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알고보니 유학은 무슨. 오스만 제국에 인질로 끌려간 것을 미화해서 알려 준 것이었다.

<공사중인 The Council Square 근처>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받은 후, 우선 자전거 가게로 향했다. 금이 간 림에 대해 바이클리에 문의하니 바로 교체하라는 대답을 들었고, 체인도 교체시기가 되었다는 것.

  마침 동일한 사이즈의 림이 있었는데, 스포크 길이가 맞지 않아서 스포크도 모두 바꿔야 한다. 림과 스포크 32개, 정비 공임을 합쳐 118레이(약 35,000원). 출혈은 있지만 생각보다는 저렴하다. 체인은 전용 장비를 이용하여 측정하더니 5,000km정도는 더 쓸 수 있다고 한다.

  달마는 뒷바퀴 림, 타이어, 스프라켓 등 정비소요가 더 많았다. 거의 반나절이 걸리는 작업이라 자전거를 맡겨 놓고, 시내를 더 돌아보기로 했다.

<스포크 조립하는 모습>

  자전거 가게를 나서는데 우리말이 들린다. 달마 목소리가 아닌데? 돌아보니 한국인이 서 있었다.

  와, 이런데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마침 집이 자전거 가게 바로 옆이었다. 라면으로 점심 대접도 받고 이야기를 나눴다. 다니엘 장 형님이었는데, 목공, 도예 등 각종 기술을 배워서 집시들을 교육하고 계셨으며, 공방도 거의 완성된 단계였다.

<목공예 작업실. 나만의 작업실은 모든 남자들의 로망이 아닐까?>

  집시는 유럽 전체를 떠돌아다니는 유목민족인데, 주로 사기, 도둑질 등을 일삼아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오죽하면 2차대전때 유태인과 함께 학살 대상이 되었을까.

  나도 집시를 만나면 소지품을 다시 한 번 점검하게 되고, 여러모로 마주치기 싫은 녀석들이다.

  집시들에게 정부에서 얼마씩 지원을 해 줘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은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포기하고, 배척받는 집시들을 위해 도둑질을 하지 않고도 생활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치고, 각종 봉사를 하시는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 

<브라쇼브 세 명의 한국인>

  또 형님은 특별히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자전거 정비하는 동안 마치 가이드처럼 브라쇼브의 이곳저곳을 소개 해 주셨다.

  브라쇼브에는 독일인들이 이주하여 개척한 도시라서 곳곳에 독일의 분위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브라쇼브 구시가지>

  우선 검은 교회(Biserica Neagră).

  브라쇼브의 대표적인 명소로 독일의 영향을 받은 고딕 성당이다. 처음에는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현재는 루터교 개신교 교회라고 한다.

<검은 교회의 종탑>

  검은 교회라고 불리는 이유는 화재로 인해 벽이 그을렸기 때문이다. 내부에는 루마니아에서 가장 큰 6t짜리 구리종과 4,000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이 있다.

  검은 교회 앞에는 혼테루스(Honterus)의 상이 서 있었다. 혼테루스는 루마니아에 종교개혁을 이끈 신학자이며, 동시에 인쇄술을 보급한 사람이다.

<루마니아의 구텐베르크-혼테루스>

  검은 교회를 지나 루마니아에서 가장 좁은 골목길 Sforii Street을 걸었다. 1.11m~1.35m의 이 좁은 길은 무려 83m나 이어지는 길이다.

<좁은 Sforii Street에서>

  골목을 지나자 주택가가 이어진다. 문이 큰 집은 예전 마차가 그대로 드나들었다고 한다.

<브라쇼브의 주택가>

  오래된 집들은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문제도 많다고 한다. 공산주의 시절 국가에서 무작정 집을 재분배하면서 주거 면적이 좁아지고 한 건물에도 주인이 너무 많아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정비조차 힘들다고 한다.

<1900년에 세워진 주택>

  그래서인지 나란이 붙어있는 주택들도 상태가 제각각이었다. 특히 공산주의 붕괴 후, 옛 집 주인들이 돌아오면서 문제가 더 복잡해졌다고 한다.

<보기에는 멋들어진 주택>

  루마니아 건물은 출입문을 통과하면 마당이 있고, 다시 수많은 격실로 이어지는 구조였다. 즉 길에서 보이는 문이 실내로 들어가는 문이 아닌 셈이다.

  브라쇼브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이고, 주위에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벽은 대부분 아직도 보존되고 있었으며, 산 중턱에는 감시탑도 많이 있었다.

<브라쇼브의 성벽>

  또한 운동장은 성벽을 그대로 보존하며 건축한 것이 독특하였다.

<중세 성벽이 연결된 운동장>

  브라쇼브 남쪽에 병풍처럼 자리잡은 Tâmpa 언덕 중턱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

<뒤에 보이는 산이 Tâmpa><산 자락 끝의 The Country Council>

  다니엘 형님과 함께 짧지만 즐거웠던 브라쇼브 기행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자전거 정비가 완료되어 있었다.

<잘 정비된 Wing과 우노>

  보조 핸들바도 하나 구입했다. 핸들바에 가방을 달면서부터 랜턴을 쓸 수 없었는데, 이걸 이용해서 이제 라이트도, 벨도 달 수 있게 되었다.

<보조 핸들바. 이제 안전하게 랜턴 이용가능>

  새로 단장한 Wing. 자전거 뿐만이 아니라, 브라쇼브에서 다음 여행준비도 마쳤다.

<브라쇼브의 거리>

  우선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매우 추워서, 침낭을 구입하기로 했다.

  그동안 사용하던 춘추 침낭으로는 동계 야영을 하기에는 무리다. 다행히 적당한 가격에 최저 -5℃까지 쓸 수 있는 침낭을 구입했고, 선교사님께서 부탄가스도 구해 주셨다.

<두툼한 침낭으로 추위 극복>

  선교사님 댁에서는 맛있는 식사와,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루마니아에 대해서도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또한 선교사님 딸 예진이와의 만남이 인상적이었다. 예진이는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큰 병과 싸워 이기면서 나보다 훨씬 더 강하고 어른스러웠다. 여러모로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친절한 배만주 선교사님 가족, 어른스럽고 귀여운 예진이, 멋진 다니엘 형님과의 만남으로 더욱 인상깊게 남을 브라쇼브 여행.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이 자리를 통해 다시 한 번 감사를 전하고 싶다.

  그리고, 9월 28일.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브라쇼브를 떠났다.

<이명자 사모님과 마지막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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