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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34. 깨달음의 도시. 바라나시(Varanasi)와 사르나트(Sarnath)

  바라나시에서 본 가장 큰 충격은 화장터였다. 화장 후 재를 갠지스강에 뿌린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직접 본 화장터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관도 없이, 천으로 싼 시신을 장작불에 태우는데 천이 타면 시신이 노출되고, 팔다리가 떨어지면 인부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불 속에 다시 쑤셔 넣는다. 타다 남은 시신을 뜯어먹기 위해 개들이 주위에 어슬렁거리고, 소는 상여의 꽃을 뜯어먹다. 게다가 구경하는 외국인들에게 '저기 타고있는건 내 할머니다' 라고 태연하게 말하는 사람들까지.갠지스 둔치의 모습. 수행하고 목욕하고 배타고 화장하는 곳

  여기서는 죽어서도 빈부격차가 있다. 부유한 자는 좋은 장작을 많이 쓰고, 가난한 사람은 장작을 적게 쓰거나 아예 전기화장터를 이용한다. 부유한 자는 죽음이 다가오면 갠지스강에서 화장하기 위해 아예 바라나시에 자리잡고 죽을 날을 기다린다는 말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긴 한국은 좋은 묫자리를 잡기 위해 노력하니 마찬가지인가?

  힌두교의 믿음으로는 갠지스강에서 화장을 하면 윤회로부터 해방이된다고 한다. 24시간 내에 화장한다는데, 누구하나 슬퍼하는 사람이 없다. 아직 슬픔이 가실 시간은 아닐텐데…. 그렇게 삶이 고단해서였을까? 다시 윤회하지 않을거라는 믿음이 슬픔을 줄여준 것일까?힌두교는 이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황금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1km이상 줄서있다.

  떠온 물이 썩지 않는다던 갠지스 강물은 생각보다 훨씬 더러웠다. 아마 더 썩을것도 없어서 안썩을 정도로….

  강가에서 돼지시체같은게 떠다녔는데 발을 보니 개였다. 털이 다 빠지고 물에 퉁퉁 불어서 돼지로 보였다. 그래도 그 물이 성스럽다고 정성껏 목욕하고 수영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있으니 'Very Clean'이라면서 나도 들어오라고 한다. 저게 Very Clean이면 하수도물이 생수게?

  강가 둔치에도 이상한 사람은 많았다. 나체로 몸에 회색 재 같은것을 바르고 수행하는 사두들. 성기에 쇠링같은것을 채우고 자기 욕망을 억누르는 사람이 대체 담배는 왜 피우는걸까?

  아무튼 갠지스강변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다.

  화장터를 보고 보나까페에 있던 공지영씨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라는 책을 읽었다. 사형제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막 화장하는 모습을 보고 읽으니 착잡하다.  공지영씨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책 내용은 괜찮았고 슬펐다. 책 읽는동안 옆에서는 이상한 아가씨가 왼손에 헤나를 그려주고 있었고, 나는 책 내용때문에 눈물이 날 듯 했는데, 그 상황에서 울먹이는 것도 창피하여 한두 페이지 읽고 하늘 한 번 보며 참았다.

금을 원하는 게임 '문명'의 간디와비자연장을 원하는 갠지스의 사이비 간디

  바라나시에 한참 머무르면서 자전거 정비를 끝냈다. 뒷 허브를 완전분해하여 흙과 기름을 제거하고 그리스도 새로 발랐다. WD-40이 있으면 좋을텐데 인도에서 도무지 구할 수가 없어서 기름때를 어떻게 제거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알콜이 떠올랐다.  생 알콜도 구하기 어려워서, 알콜 95%가 함유된 손 소독제를 구입하여 거기에 체인을 한참 담궈 놓았더니 기름때가 많이 빠졌다. 임기응변으로만 버티고 있다.


  모든 정비를 마치고 3월 2일 토요일. 마침내 다시 길을 나섰다. 목표는 바라나시에서 12km정도 북쪽에 위치한 사르나트(Sarnath, 녹야원). 아주 작은 도시이지만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처음 설법한 불교의 성지(초전법륜지)라길래 가보기로 했다. 사르나트는 가까웠지만 바라나시를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엄청난 인파와 열악한 도로 때문이었다. 여튼 사르나트 도착. 숙소로 한국 절 녹야원을 찾았다.

  물어물어 마침내 녹야원에 도착하니 벽에 태극기가 그려져 있었다. 인도에서 보는 태극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절에 들어섰다.애국가가 끝날 때 쯤 문득 깨달았다. 민간인은 태극기 앞에서 가슴에 손을 올린다는 것. 역시 인도는 깨달음의 땅

  주지스님께서는 공양(밥) 시간이 지났다면서 라면을 끓여주셨다. 이날은 14.09km 주행(총 2,252km). 절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했다.녹야원 2층 모습

  다음날 조식 후 스님께서 면담 기회를 부여해 주셨다. 많은 좋은 말씀을 들었다. 각종 종교의 의미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했으나 '나'도 모르면서 남을 알려 한다거나, '나'는 없는것이라는... 내 수준에서는 너무 어려운 말씀만 하셔서 이해하기 힘들었다.

  결국 스님은 수준을 낮춰 주셨다. 특히 기억에 남는것은 수행은 절에서만 하는게 아니라 삶이 수행이라는 말씀과 기대가 욕심을 만든다는 것. 헛된 기대를 버리면 평화를 얻을수 있다는 말씀.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헛된 기대(길이 포장되어 있을 것)를 가지니까 비포장길에서 욕심과 원망이 생기는것. 하긴 지구가 원래 아스팔트로 덮힌 별이 아니었지. 한번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타 봐야겠다. 나는 자전거타고 길에서 수행해야지.녹야원의 외부 모습

  스님과 면담 후에는 사르나트를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녹야원을 나와서 일본절에 짐을 풀었다.日月山 法輪寺(일월산 법륜사)라는 일본 절

  사르나트의 초전법륜지는 사슴공원이 있고 주위에는 작은 동물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전설에는 사슴왕이 어미사슴을 지키기 위해 사냥꾼에게 자신을 희생하였고, 나중에 사람으로 환생하여 마침내 부처님이 되었다고 한다. 초전법륜지에 지어진 스리랑카 절보리수 밑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불 중이었다.초전법륜지에서 만난 잘생긴 스리랑카 스님

  일본절에서는 신기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링이라는 이름의 촐싹대는 젊은 중국스님은 아침일찍 예불드렸다고 낮잠자다가, 살생하면 안된다면서 모기향을 세개나 켜더니 치킨먹으러 나갔고, 작가 이외수를 닮은 정체불명의 사나이는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어보자 'I'm from GOD. You are also from GOD.'이라면서 이상한 말만 늘어놓았다. 다른 인도인 두명은 초면에 3만 루피를 빌려달라고 하고 아무튼 재미있는 곳이었다.

  바라나시에서 삶의 덧없음을 느꼈고, 사르나트에서 큰 노력없이 깨달음을 날로 먹으려다 실패했다. 아무튼 사르나트에서 얻은 깨달음은.

  1. 헛된 기대로 인한 욕심을 버리자.

  2. 민간인은 거수경례를 하지 않는다.사르나트의 스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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