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루마니아(Romania)

077. 부쿠레슈티. 자고로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달마와 함께 부쿠레슈티(București) 탐사에 나섰다. 또한, 루마니아 돈도 필요하고, 자전거도 정비해야 한다.

  루마니아는 불가리아와 붙어있는 비슷비슷한 나라인줄 알았는데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부쿠레슈티는 불가리아의 어느 도시와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활기찬 곳이었다. 그래 이 정도는 되어야 수도지.

<수도답게 웅장한 건물들이 즐비하다>

  게다가 결정적인 차이점은 인종의 차이였다. 이 주위 나라들은 슬라브 인들이 주류인데 비해 루마니아만 라틴계통이며 로마의 후손이라고 한다. 나라 이름 Romania도 Roma에서 나온 것이다.

  물론 내 눈으로는 불가리아인과 루마니아인을 외모로 구분할 수 없었다.

<로마의 후손-늑대젖을 빠는 로물루스 형제>

  또 다른 차이점은 사용하는 글자였다. 키릴을 기반으로 하는 슬라브 계통 국가에 비해, 여기는 로마 알파벳을 개량해서 사용한다. 덕분에 뜻은 몰라도 읽기는 쉽다. 

<건물들이 다 큼직큼직하다>

  부쿠레슈티에서 본 대부분의 건물들은 모두 큼직하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심지어는 아파트도 큼직하다. 한 층에 20호는 예사로 넘어갈 정도였다.

<저기 신문배달하려면 힘들겠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아무것도 아니다. 규모의 끝판왕을 보는듯한 거대한 광장과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인민 궁전(Palatul Parlamentului)이다.

<거대한 인민 궁전>

   루마니아의 독재자였던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șescu)의 지시로 만든 이 건물은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단일 건이라고 한다. 12층으로 높이는 86m에 지하 94m, 가로 270m 세로 240m의 규모를 자랑한다.

  차우셰스쿠는 제난에 시달리면서도 인민궁전을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밀어부쳤고, 그 과정에 수만명의 철거민이 발생했다.

  나폴레옹은 개선문을 만들고 싶어했지만, 정작 개선문은 그의 사후에 완공되어 히틀러의 전차부대 환영용으로 쓰였다. 차우셰스쿠의 인민궁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끝내 생전에 완공을 보지 못했다. 심지어는 너무 크게 만든 이 건물의 용도조차 애매해 져버렸다.

  그럼 대체 그는 인민궁전을 왜 지은 것일까?

<가까이서 보면 저 큰 덩어리가 하나하나 섬세하게 장식되어 있다.>

  차우셰스쿠는 생전 북한을 몇차례 방문했고 김일성과 의형제를 맺었다. 나이를 보면 김일성이 형이다.

  그놈의 형 덕분에 북한을 방문하면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또한 절대군주로 군림하는 김일성을 보며 큰 감명을 받아 그를 벤치마킹하기에 이른다.

  주체사상을 번역해 루마니아에 출간하고, 백두산 혈통의 '어버이 수령'을 모방하여 '카르파티안 산맥의 천재'를 자처하며 자신을 우상화 시키려 했다. 왜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들고 물위를 걷지는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인민 궁전의 모델 역시 김일성의 주석궁-금수산 태양궁전이다. 삼단 구조가 대충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김일성 주석궁 - 사진 : Mark Scott Johnson from Sydney, Australia(위키피디아 링크입니다)>

  군복무 당시 차우셰스쿠의 이야기를 접하고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눈 앞에 있는 인민 궁전을 보니 어이가 없고 한숨만 나올 뿐이다. 내부도 매우 호화롭다는데 굳이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대체 북한에서 무엇을 봤길래 이런 짓을 했을까? 더 알고 싶어져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북한 방문 당시의 동영상이 있었다.(http://youtu.be/r9xbVr8qq5A, mayainfinity님의 자료)

 감동해서 어쩔 줄 모르는 차우셰스쿠를 볼 수 있다. 그래. 그는 루마니아를 이렇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차우셰스쿠는 농업 국가였던 루마니아에 무리한 중공업화 정책을 실시하다 실패하여 경제난을 불러 일으켰다. 그로인한 엄청난 대외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펼친 정책은 바로 수입 금지와 무조건적인 수출. 덕분에 간신히 부채는 해결했지만, 루마니아 국민들은 생필품은 물론 식량조차 부족해 지고 만다.

  그래서 리더의 역량이 중요하다. 비슷한 중공업 육성, 수출장려지만 같은 정책이 아니다. METT-TC(경제에 적용하면 지향점, 장애요소, 지적 위치와 기후, 인적ㆍ물적 자원, 시대상황, 외부 상황 정도?)라든지 수많은 요소를 고려하여 그 나라의 상황에 맞는 비전을 세우고, 이끌어 가야 한다.

  그동안 여행해온 국가 중에서 과거에 대한민국보다 더 못살던 국가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모든 분들께 정말 감사한 일이고, 나또한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이바지해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차우셰스쿠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실시한 출산 장려책은 강제 임신. 할당량은 최소 5명이었고, 이렇게 발생된 고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세쿠리타테(Securitate)라는 친위대를 구성했다.

  어이없는 정책으로 불만이 높아지자, 세쿠리타테를 마치 나치의 게쉬타포처럼 비밀경찰로 이용하기도 하고, 전국에 300만여개의 도청기를 설치했다고 한다.

<인민 궁전의 측면>

  훗날, 루마니아 혁명 발생 후 도주하려 한 곳도 북한이었고, 김일성은 그의 죽음을 보고 주민 통제를 더욱 강화하게 된다.

  옛말 틀린게 하나도 없다.

  어릴 때 부터 어머니가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고 하셨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아주 의리가 넘치는 친구따라 서로 동서양에서 나라를 말아먹었다.

  하긴, 원광법사는 세속오계에서 친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마지막에 친구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었으니 교우이신(交友以信)은 실천한 셈이다.

  하지만, 친 개한테는 몽둥이가 약이라던데, 둘 다 정신 차릴때 까지 빠따 좀 쳐야 하는데. 좀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음. 그러고 보니 나는 친구따라 무작정 루마니아에 왔구나. 뭐, 달마는 잘 만난 좋은 친구니까 난 안맞아도 되겠지?

<인민 궁전 앞에서 달마와 함께>

  하지만, 지금 자유화된 루마니아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평온했다

  한 공원에서는 어린이들이 이런 저런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었다.

<은박지로 호수를 만들고 배까지 띄워놓았다>

  루마니아 어린이들의 새 궁전은 거대한 인민 궁전보다 훨씬 더 보기 좋았다. 나는 국민학교 '즐거운 생활' 시간에 약국 종이상자로 남대문 만들었는데.

  가만 보니 내가 더 잘 만들었던 것 같다.

<꼬마 건축가. 사인한장 받아놓을걸 그랬나?>

  다시 주행하려면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쌀쌀해 지는 날씨로 인해 월동준비도 해야하고 자전거도 정비해야 한다. 마침 시장을 찾았다.

<시장 입구. 노천시장이 아니라 실내였다>

  입구에 자전거 부품점이 있었지만, 나한테 맞는 건 없었다. 자전거는 포기하고, 안쪽 옷가게에서 긴 체육복을 한 벌(90레우 약 27,000원) 구입했다

  다음날에는 부카레스트 한인교회를 찾아갔다. 날라리 신자이기는 하지만, 간만에 예배도 드렸다. 또 목사님은 브라쇼브(Brașov)에 가면 쉴 수 있도록 거기 계신 선교사님께도 연락 해주셨다.

<부카레스트 한인 교회>

  게다가 교회의 김정애 사모님은 반찬도 싸 주셨고, 덕분에 추석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또 여러가지로 도와주시고 마음 써 주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달마와 함께 한 추석 특식>

  마지막 출발 준비는 이발.

  안그래도 이발 할 때가 되었는데 달마와 만난 기념으로 함께 삭발하고 달리기로 했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유도부로 돌아간 기분이다. 면도기로 서로 머리를 밀어주며 이발을 끝냈다.

<달마야 놀자?>

  그리고, 마침내 다시 출발할 시간. 달마와 함께 하는 여행은 어떨까? 벌써부터 기대 가득이다. 3박 4일간 편안히 쉰 Miramont 호스텔에서 출발 전 기념 촬영을 하고,

<두 빡빡이와 Wing과 Uno>

  복잡한 부쿠레슈티 시가지를 빠져나간다.

<역시 부쿠레슈티는 다 큼직큼직하다><공산주의의 흔적인가? 크고 단정한 시가지>

  그리고, 달마와 함께하는 루마니아 여행. 이제 출발!

<전 세계에 발퀴(발자국+바퀴)자국을 남기고 있는 달마>

  다음글 ☞ 078. 카르파티아 산맥을 넘는 황홀한 여행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