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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Serbia)

088. 세르비아의 독립과 퍼즐 맞추기

  베오그라드(Beograd)에 계속 머무르면서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 보니 세르비아라는 나라가 점점 궁금해졌다.

  한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수이다. 세르비아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화약고의 한 축을 담당하며 발칸의 깡패같은 이미지를 가진, 여러모로 평판이 좋지 않은 이 나라는 과연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

<베오그라드 서쪽문. Zapadna kapija>

  안타까운 건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깨어 있던 기억이 없어서 동유럽의 역사를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다. 어린시절 세계에 관심을 갖게 만들었던 '먼나라 이웃나라'나, 이후에 접한 다른 책 역시 유럽사는 서유럽 위주로만 기술되어 있었다.

  대학시절 내가 열을 올린 책은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들이었다. 거기에서 대략적으로나마 동유럽을 접했다.

  발칸 반도는 판노니아, 다키아, 일리리아, 트라키아, 이스트리아, 달마티아 등으로 불리는 지역의 총칭이며 고대 로마제국의 속주였다. 로마제국이 분할된 후 비잔틴 제국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정교회(Orthodox)를 받아들인다.

  비잔틴 제국이 영향력을 잃으면서 이 지역에는 한번씩 독립국가가 나타나기도 한다.

<가까이서 본 Zapadna kapija는 특이하게 생긴 아파트였다>

  론니 플래닛에 따르면 6세기에 슬라브 인들이 살기 시작한 후, 12세기 세르비아 왕국이 세워졌고 14세기 스테판 두샨(Stefan Dušan) 대왕 통치하던 시절이 왕국의 황금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사후,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패함으로서 약 400년간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고 1878년 독립했다고 한다.

<터키 분위기가 느껴지는 세르비아 성당>

  세르비아를 이해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세르비아 역사박물관(Museum of the History of Serbia)으로 향했다.

  역사박물관의 전시물은 왕관, 의복 몇 점 등 대단한건 없었다. 몇가지 유물 외에는 대부분 패널 위주였다. 그나마 초점은 근대사에 맞춰져 있었다.

  벽에 걸려있는 거대한 연표(Chronology of Major Political Events)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이후부터 1차대전 종전까지가 기록되어 있었다.

  예전 터키의 군사박물관에서 본 대로 오스만 제국이 팽창하면서 이 지역은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정복 이후 술탄 슐레이만은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원정을 하기에 이르니, 발칸반도 전역을 오스만 제국의 수중에 넣은 셈이다.

  하지만 잘 나가던 오스만 제국은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패하면서 상승세가 꺾여 버리게 된다.

<근대사의 주요 사건>

  자 이제 연대표를 분석해 보자.

  프랑스 혁명(1789~1814),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이 끝나고(1791) 뒤이어 1차 세르비아의 반란(1804-1813)이 일어난다.

  전쟁이후 세르비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은 오스트리아-투르크 전쟁에서 오스만 제국이 많은 타격을 받았다는 뜻일거고, 연대표가 프랑스 혁명부터 기술된 것은 아마 자유·평등·박애 정신이 세르비아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의 사후 처리를 위해 비엔나 회의가 열리며 이때 유럽 지도가 재작성되는데, 오스만 제국에서는 2차 세르비아 반란(1815-1817)이 일어난다.

  그리스 역시 혁명을 일으키고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독립 전쟁(1821-1829)에 들어가는데, 느닷없이 러시아가 여기에 개입한다. 발칸반도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오스만 제국과, 표트르 대제의 개혁 이후 계속 세력을 키우며 남하하던 러시아 제국이 충돌한 것이다.(1828-1829)

  1830년 그리스는 독립을 이루어 내고,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 공에게 세습권과 자치권을 허락한다. 왈라키아와 몰다비아에도 역시 자치권을 인정한다. 즉 오스만 제국은 발칸 지역 대부분을 더 이상 직접 통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스 독립 전쟁과 러시아-투르크 전쟁에 세르비아와 왈라키아, 몰다비아가 참전했는지, 했다면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는 이 연표만으로 알 수 없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두차례 반란이 있었으며, 전후 그리스처럼 완전한 독립을 하지 못한것으로 보아, 독립 시도는 있었으나 그리스만큼 조직화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발칸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의 영향력을 제거하려는 시도를 하기위해 세 공국의 탄생을 지원했을 것이다.

  어쩌면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 일대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 것과 같은 맥락일 듯 하다.

<지도로 보는 유럽과 발칸 반도의 정세>

  전쟁에서 진 오스만 제국에는 1839년 탄지마트(Tanzimât) 개혁, 1848년 Revolutions throughout Europe(서구화의 시도를 말하는건가?)이 발생한다. 아마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오스만 제국의 노력으로 봐야겠지?

  한편 1852년. 정교회 주교가 통치하던 몬테네그로는 세속 공국이 되었다. 정교회 세력의 약화인가?

  러시아의 확장과 남하정책은 결국 오스만 제국과 다시 충돌하게 되니 바로 크림전쟁(1853-1856)이다.

  그러면, 이때 세르비아 공국은 무엇을 했을까? 이 때다 싶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시도했을까? 아니면 어렵게 얻은 자치권을 지키고 일단 공국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방관만 했을까? 아니면 오스만 제국의 일부로 러시아에 맞서 싸웠을까?

<세르비아의 문장>

  크림전쟁에는 엉뚱한 세력이 끼어든다. 바로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서유럽 국가들이 팽창하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참가한 것. 그 덕분에 저 유명한 나이팅게일이 등불을 든 백의의 천사로 활약할 수 있었다.

  크림전쟁에서 진 러시아는 발칸에서 영향력을 상실한다. 흥미로운건 왈라키아 공국과 몰다비아 공국이 통일한다.(1859) 바로 루마니아 공국의 탄생.

  통일을 하면 세력이 더 강해질텐데 오스만 제국이 속국의 통일을 좌시할 리가 없는데? 그렇다.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서는 승리하였지만 그 과실은 모조리 참전한 서유럽에 내어주게 된 것이리라.

<베오그라드를 탈환한 Mihilo Obrenović공>

  루마니아 공국과 세르비아 공국. 비록 외형상으로는 오스만 제국의 속국이지만, 서서히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하는데 또 다른 장애물이 나타났다.

  발칸반도는 참 애매한 위치에 있다. 나폴레옹을 물리치고 한숨 돌리게 된 오스트리아 제국이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이라는 초대형 다민족 국가를 수립(1867)하고, 크로아티아를 합병한다. 종교적으로 보면 발칸반도 대부분은 정교회고,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은 가톨릭이다. 아 복잡하다.

  1870년에는 불가리아 정교회에 총주교가 세워졌다고 한다. 이게 중요한가? 왜 기록한거지? 혹시 밀려오는 가톨릭 세력에 대한 정교회의 대응이었나?

<세르비아의 귀족들의 복식>

  1875년 Eastern Question의 위기. 이어서 러시아-투르크 전쟁(1877-1878)과 산 스테파노 조약.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용어나 조약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건 동(유럽)쪽에 다시 위기가 생겨서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이 또 전쟁을 한 것. 그리고 산 스테파노 조약은 아마 종전 협정이겠지?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본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Alexander nevski Cathedral)에는 이 때 불가리아의 독립을 위해 싸운 러시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핀란드 군인들을 추모하여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결국 베를린 회의(1878)에서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세르비아의 독립과, 불가리아 공국의 자치를 인정한다. 마침내 세르비아는 400년만에 오스만 제국의 손아귀를 벗어난 것이다.

  이때 엉뚱하게 영국은 키프로스의 관할권을 넘겨받는다. 영국은 또 뭐야? 아무튼 과거 오스만 제국 하의 속국들이 줄줄이 독립해버리는 것으로 보아 러시아가 이긴 전쟁일 것이다.

<철로 만든 루마니아 왕관. 독립전쟁 중 노획한 터키 대포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건 뭐지?

  불가리아는 동 루멜리아 지방을 합병하고 세르비아와 전쟁(1885)이라니……. 함께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던 동지가 적이 되어버렸다. 아마 동 루멜리아는 기존 세르비아의 통치를 받던 땅이 아니었을까? 

  과거 속국들이 독립하고 서로 싸우는 반면 오스만 제국의 수난은 아직 끝이 아니다. 러시아에게 패하기가 무섭게 알바니아에 조직이 결성되고, 마케도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난다.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사건으로 오스만 제국은 정신을 못차렸을 것이다.

  결국 보다 못한 젊은 군인들이 나선다. 청년 투르크당이 혁명(1908)을 일으켰다. 케말 파샤역시 청년 투르크당에서 활동했다. 그가 바로 터키 지폐마다 그려져 있는 아타투르크다.

<19세기의 나폴레옹 3세식 살롱>

  오스만 제국이 내부 혼란에 빠져 있는 동안 불가리아 공국은 왕국으로 독립하여 오스만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1908). 한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은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를 합병함으로서 보스니아 위기를 몰고 온다.

  이후 1차 발칸 전쟁(1912)이 터져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를 포함한 발칸반도 전체를 상대로 싸우다가 유럽에서 손을 떼야 했고, 알바니아도 이 기회에 독립을 얻는다.

  1년 후 2차 발칸전쟁(1913)에서는 불가리아가 나머지 승전국들을 상대로 다시 싸운 전쟁이다. 1차 전쟁의 뒷처리가 원활하지 못한 탓일 거다. 불가리아는 이때 불만을 가졌는지 이후 1차 세계대전에서는 오히려 과거 적이었던 오스만 제국의 편에 참전 해 버린다.

<친 오스트리아 정책을 펴다 암살당한 Alexander Obrenović왕과 왕비 Draga Obrenović 왕비>

  그리고 1914년 사라예보. 저 유명한 암살 사건이 벌어진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드 대공이 가브릴로 프린치프에게 저격당한 것이다. 그 결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게 되고, 이해관계가 얽힌 주변국들이 차례로 참전하면서 1차 세계대전(1914-1918)으로 확대되었다.

  세계대전 종전후 뒷처리를 위해 파리에서는 평화회의가 열린다. 바로 1919 기미년. 윌슨의 민족 자결주의가 대두된 시기다. 이는 지구 반대쪽 한반도에는 3.1 운동에 영향을 주었고,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을 민족단위로 해체시켜 버리게 된다.

  이후, 이 나라에는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 왕국이 수립되고 연대표는 여기에서 끝났다.

<무려 115회나 전투가 벌어졌다는 칼레메그단 요새>

  이게 단지 150년도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정말 복잡하기 짝이 없는 역사이고, 나 역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생소한 단어들(이를테면 Congress, Secular, Hereditary, Annexation, Exarchate, Treaty, Monarchy 등. 영어와 담을 쌓은 나만 모르는 단어인가?)을 접하며 계속 사전을 뒤적거야 했고, Treaty of Svishtov, Organic Regulations, Eastern Question과 같은 생전 처음 듣는 사건들과 각 사건들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연표를 수없이 들여다 보고 나름대로 해석을 시도했다.

  연표 앞에서만 몇시간을 버티고 있자 박물관 직원이 조금 알려주려는 듯 하더니 금세 본인 업무를 위해 돌아갔다. 그의 입장에서는 참 이상한 녀석이었으리라. 추리닝 바람으로 입장한 동양인이 연대표 앞에서만 몇시간을 버티고 있었으니…….

<연대표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한 노트. 이렇게 복잡한 나라도 드물다>

  민족 자결주의로 탄생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 이 왕국은 현재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와 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코소보,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를 포함하고 있다. 유고슬라비아의 원형이 되는 나라다.

  제각기 독립하겠다던 나라들이 다시 한 왕국으로 묶여버렸으니 통치가 쉽지 않으리라. 또한, 중앙 정부가 약해지거나 한 민족이 차별을 받는다고 느끼면 금세 독립을 요구하겠지. 1차 대전을 겪고 탄생한 새 왕국은 시작부터 다시 전쟁의 불씨를 품고 있는 셈이다.

<유구한 세월. 수많은 전쟁을 바라보며 흘러온 다뉴브와 사바 강>

  박물관에서 영어를 너무 오래 읽어서인지 피로가 몰려온다. 원기 회복을 위해 플예스카비차(Pljeskavica)를 먹으러 갔다.

  130-150디나르(약 2000 미만)면 손바닥만한 패티에다 원하는 채소를 모두 넣어주는 햄버거. 세르비아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음식이다.

<저렴하고 맛있는 플예스카비차>

  일제 35년 만으로도, 광복 7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일본의 영향이 남아있는데 400년간 타 국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끈질기게 다시 일어난 세르비아. 이 나라의 저력은 무엇일까?

  설마 플예스카비차 한개에 기운을 되찾은 나처럼 이 큰 햄버거가 400년간 독립운동을 한 힘의 원천인가보다. 잘 보고, 잘 먹고서 쓸데없는 생각으로 일단 결론을 내린다. 귀국하면 한글로 쉽게 쓰여진 발칸의 역사책을 구해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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