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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Serbia)

095.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향 니쉬

  니쉬(Niš)는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태어난 곳이다. 그러고 보니 페니어 랙이 망가진 곳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공항(Airport Constantin The Great) 근처였다.

<밀라노 칙령(AD 313) 1700주년 기념우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목적지는 Mediana. 약 4~5km가량 떨어져 있었지만 자전거로는 금방이다.

  이곳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통치하에 만들어졌고, 고대 로마제국의 황제 여섯 명의 주거지였다.

  그런데 직접 가 본 Mediana는 실망스럽게도 공사 중이었다. 박물관을 조성하려는 듯 한데, 입구는 닫혀있었고 작업이 한창이었다. 다행히 공사차량 진입로를 이용해 들어갈 수 있었다.

<로마시대 주거지 Mediana>

  넓은 공터 아. 고고학에는 도저히 문외한인 나로서는 도저히 알지 못할 주거의 흔적만 남아 있었다.

<흔적만 남아 용도를 알아볼 수 없는 Mediana>

  근처에는 공성기 모형과 설계도도 붙어 있었다. 언제쯤이면 완공되려나? 발굴과 재건축이 끝나면 볼만한 유물일 것 같다.

<복원해 놓은 공성기 모형>

  다음은 Nišava 강변에 위치한 Tvrđava로 향했다. 이곳은 니쉬를 상징하는 요새로 최초 로마제국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 후 수차례 파괴와 재건이 반복되었고 현재의 형태를 갖추게 된건 172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서였다.

  2,000년된 거대한 성채를 가진 도시는 세계에서도 몇 안되는데 그 중 하나가 니쉬라고 한다.

<밤에 본 Tvrđava 정문>

  현재 Tvrđava는 마치 베오그라드의 칼레메그단(Kalemegdan) 요새처럼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정문은 17세기초에 지어졌으며 관광안내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내부는 현대식 까페로 리모델링 되어 있었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오스만의 영향을 받았을 Beli-bey mosque, 옆에는 2~4세기의 고대 로마제국의 아치 흔적, 회당(Basilica) 등이 남아있었다.

<조그만 Beli-bey 모스크><로마 회당의 부조 조각>

  Tvrđava는 편안하게 산책하듯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요새를 둘러싼 Nišava 강변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념비가 서 있었다.

<강변의 콘스탄티누스 대제 기념비>

  이 PX는 알파벳 이니셜로 기독교의 상징이라는데 원어가 뭐길래 PX인지는 모르겠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막센티우스와의 싸움을 앞두고 꿈에서 이 PX 마크를 본다. 그는 곧 PX를 그의 부대 문장으로 삼았고, 그 전투에서 이겨 로마의 유일한 황제에 등극한다.

  이곳 뿐만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념물은 곳곳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름모를 공원에 서 있는 PX 마크>

  니쉬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그의 어머니에게 헌정된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헬레나 대비 교회(The church of St. emperor Constantine and empress Hellen)도 있었다. 교회는 잘 조성된 공원 한가운데에 있었는데, 거창한 이름에 비해 조촐한 교회였다. 관광자원으로서가 아닌, 본래 목적에 충실한 그런 교회인것 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헬레나 대비 교회><교회 앞 공원의 해시계>

  Tinkers alley라는 곳은 예전에 공예인들이 활동하던 거리라고 한다. 매우 좁은 골목길이었고 지금은 까페가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골목길을 걷다가 눈에 띈 곳은 바로 콘스탄티누스 까페. 한국 어느곳에 세종대왕 까페나 광개토대왕 까페가 있으려나?

<콘스탄티누스 대제 까페>

  니쉬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고향이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니쉬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연상되는 도시는 아마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으로 인한 밀라노, 아니면 그가 천도한 콘스탄티노플 정도?

  사실 니쉬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동상 하나, 기념관 조차 없었다. 니쉬는 나름대로 볼거리를 갖추고 있지만 사실 관광지로 이름난 곳은 아니다. 또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관광 콘텐츠로 활용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호스텔 간판에도 새겨진 PX마크>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대체 이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비록 요란하게 떠들지는 않지만, 또 누구도 알아주지는 않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배출해냈고 그와 함께 싸우면서 그를 로마제국의 유일한 황제로 옹립했다는 자부심이 아닐까? 또한 이 자부심이 그가 공인한 기독교와 이어져서 400년간의 이슬람 지배에 맞서 싸운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세르비아의 정신적 지주 콘스탄티누스 대제>

  꼭 들러야 할 만한 도시는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니쉬. 대체 이유가 뭘까? Nišava 강변에서 야경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본다. 사실 Nišava는 강이라는 용어를 쓰기에 무척 소박하다. 니쉬 천(川) 정도면 어울리려나?

  니쉬, Nišava 어라? 비슷하네? 그러다 문득 니쉬와 Nišava 강이 겹쳐보인다.

  조용히, 화려하지도 소란스럽지도 않게 유유히 흘러가는 Nišava 강,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와 영광의 순간에 대해 포장하고 떠들기보다 그들만의 자부심으로 남겨놓은 니쉬 사람들. 아마 이게 바로 니쉬만의 매력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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