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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Serbia)

096.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페이지

  니쉬(Niš)는 수도인 베오그라드(Beograd)와는 또다른 매력이 있는 흥미롭고 편안한 곳이었다. 사람들도 하나같이 친절했다.

  세르비아는 유독 생활체육이 활성화된것 같다. 특히 유럽국가답게 축구가 인기인듯 했다. 지나오는 길에 여러 차례 축구장을 보았고, 거기서 잔 적도 있었다. 니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해질녘의 Čair 종합운동장>

  자전거 정비를 위해 돌아다니면서 Čair 종합운동장에서 축구 클럽을 발견했다. 하루는 종합운동장 근처를 산책하는데 근처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울림이 있는걸로 보아 실내인것 같다. 소리나는곳으로 가 보니 예상대로 배구장이었다.

<블로킹~>

  덕분에 오랜만에 배구경기를 관람할 수 있었다. 경기 진행이나 분위기로 보아 아마추어 팀인것 같다.

  하지만 입시를 위한 체육이 아닌, 생활 속에서 친구들과 우정을 다지고 페어플레이를 배우며 건강을 증진시키는 모습이 진짜 스포츠의 의미인것 같아서 좋아보였다.

<근사한 핸드볼 경기장도 갖추고 있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도 운동부 외에 일반 학생들도 학교에 설치된 좋은 시설을 이용하여 즐겁게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한국 여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운동하는걸 본 기억은 없는것 같았다.

  Tvrđava 성벽 앞 공터에는 테니스장을 만들어놓았다. 고대 성벽을 배경으로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도 참 인상적이었다.

<2,000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테니스공>

  호스텔에서는 도미토리 4인실에서 묵었기에 여러 명의 여행자를 만날 수 있었다. 며칠간은 일본 여행자와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주인이 매우 미안해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일본을 싫어할텐데 다른 방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이게 단지 나에 대한 배려일까? 이 평화로운 도시도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구나. 일본인과 같은방을 쓰게될 나에 대한 감정은 아마 그들이 터키나 독일을 대하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니쉬의 거리>

  호스텔 한켠에는 작은 공방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공방에서 작업중인 Meme를 소개받았다.

<공방에서 포즈를 취한 Meme>

  Meme는 액자와 각종 이콘, 크라운(왕관?) 등을 만든다. 덕분에 그녀의 작품이 전시된 까페에도 가 봤다. 그리고 Meme는 좋은 여행을 기원하며 작은 PX뱃지도 만들어 주었다.

<그녀의 작품과 내게 선물해준 PX뱃지>

  니쉬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고 이제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하는데 도무지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다. 연이어 비와 눈이 내리는 것.

  이 동네는 초겨울이 장마철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발이 묶여있다. 비자 기간이 짧은 쉥겐 국가라면 어떻게든 이동하겠지만 세르비아에서 굳이 그렇게 서두를게 없다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니쉬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오 세르비아에 군밤이 있다니.>

  물가 또한 저렴해서 큰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마트에서는 오이 한 개, 감자 하나, 마늘 한 알까지 각종 과일, 채소를 낱개로 살 수 있다. 사실 이건 지금까지 대부분의 나라가 다 그랬지만 차이점은 여기는 대부분 셀프였다.

  원하는 품목을 저울에 올리고 코드를 입력하면 바코드 스티커가 출력되는 방식이다.

<품목과 무게에 따라 가격표를 배출하는 저울>

  이 방식은 한국에도 도입되면 좋겠다. 한국은 꼭 묶음으로만 파는데 얼핏 보기에는 저렴해 보이지만 혼자 살면서 몇번 먹지도 못하고 상해서 버리는게 더 많았다.

<낱개로 산 감자(Krompir)와 양파(Crni) 가격은 12디나라(약 150원)><길에 덩그라니 서 있는 현금인출기(ATM)>

  또 세르비아에는 중고 의류점(Second Hand Shop)이 활성화되어 있다. 안입는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수선해서 다시 판다.

  이런 상설매장은 교환이나 간단한 AS도 가능해서 벼룩시장이나 바자회보다 나아보인다. 경제 수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것은 배울점인것 같다. 아, 한국은 유행을 너무 타서 힘드려나?

  추워진 날씨를 대비하여 새 옷같은 두툼한 외투를 1,500 디나라(약 20,000원)에 구입했다.

<세르비아의 중고 의류점>

  그러다 마침내 날이 개었다. 오오! 이정도면 출발해도 되겠다.

<오랜만에 맑은 날의 King Milan Squre>

  짐을 챙기는데 반가운 연락이 왔다. 같은 중대에서 복무하던 박승현군이 마케도니아에 있다는 것. 계획을 다시 연기하고 승현이를 기다렸다. 그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승현이는 전역 후 유학차 아일랜드에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에서 학군단 출신으로 전방 소대장을 마치고 유학 온 장우석군을 만나 함께 오토바이 한 대로 유럽을 여행하고있는 중이다.

  정말 세상은 넓고도 좁은가 보다. 아랍 에미레이트(UAE)에서는 대학교 과 선배(국립목포해양대학교)를 만나더니, 세르비아에서는 중대원(대한민국 해병대)을 만났다. 이국땅에서 이런 만남이 있을 줄이야!

  전역 후 더 넓은 세상에서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승현이를 보니 참 흐뭇하다. 하지만 급한건 따로 있었다. 아직 식사도 못한 이들을 위해 거리로 나섰으나 구할 수 있는것은 세르비아식 햄버거 플예스카비차(Pljeskavica) 뿐이었다. 먼 거리를 달려온 중대원에게 근사한 식사한끼 제대로 사주지 못한건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늦은시간 니쉬의 중심가>

  호스텔로 돌아와서 그동안의 생활, 팀 결성과정, 장비 구입과 철가방 제작, 각종 고생담, 즐거웠던 순간, 지나온 경로의 정보와 미래 계획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많은 사람들이 싫어할 군대 이야기까지. 물론 반갑지 않은 소식도 있다. 내가 갈 길에는 눈이 무릎까지 쌓여있다는 것. 으으.

  이들은 '꿈 배달'을 위해서 배기량 125cc짜리 작은 오토바이 한대에 몸을 맡기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와 사투를 벌이면서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 때로는 캠핑과 비박으로 여행하고 있었다. 직접 만든 철가방 하나를 들고 유럽의 대학을 탐방하면서 또래 대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며 그들의 꿈과 생각을 모으고 있었다. 또 기타를 갖고 다니면서 유럽 대학생들에게 우리 음악을 선물해왔다고 한다.

<작은 오토바이 한대로 꿈 배달에 나선 장우석, 박승현 군>

  이들이 그려온 열정의 발자취와 힘들게 모아온 세계 젊은이들의 꿈은 페이스북 '철가방 들고 세계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또 꿈을 담는 철가방을 나에게도 열어 주어 내 꿈도 몇자 적어넣을 수 있었다. 

  안락한 휴식을 포기하고, 추운 날씨 빠듯한 예산으로 고생을 해 가며, 낯선 길 한 가운데로 뛰어든 멋진 대한 건아들과의 만남. 처음 만난 우석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열정은 청년들을 하나로 만드는 힘이 있나보다.

  시간은 금세 흘러 어느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더 오래 있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허락된 시간은 길지 않았다. 다음 목적지인 베오그라드의 카우치서핑 호스트와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바로 길을 나서야 했다. 벌써 어두워졌고 눈발이 흩날리고 있는데…….

<출발 직전 마지막 사진 한장>

  그래도 춥기는 하겠지만 밝은 헤드라이트를 가진 오토바이이므로, 위험하지는 않을것이다.

  전역한지가 언제인데 승현이는 세르비아 땅에 '필승!'을 외치며 멀어져갔다. 이 얼마만에 듣는 필승인지!

  넓은 세상 속에서 그들만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채워나가고 있는 장한 젊은이들의 안전한 여행과 계획한 미래, 꿈을 이루어 나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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