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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Austria)

166.아시아인!

  국경이라는 의미와 역할을 상실한 채 상징으로 남은 경계선을 넘었다.

  주위에는 관광안내소, 식당, 환전소, 면세점 따위를 알리는 간판이 붙어있지만 문은 굳게 닫혀 있다. 단지 주말이라 쉬는 것일까?  슬로바키아(Slovakia)와 오스트리아(Austria)는 유로존 소속이라 환전이 필요없다. 유럽연합으로 묶여있는데 굳이 면세점이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국경 면세점>

  국경선 우측 제방 위로 올라가니 지도가 그려진 표지판이 있다. 탁자까지 놓여 있어 더욱 좋다. 알고보니 Donauradweg라는 이름의 자전거길 시작 지점이다.

  이정표에 따르면 수도 빈(Wien)까지 총 41km 남았다. 70km 이상으로 생각했었는데 잘못 계산했나보다. 이정도면 오늘 빈에 들어갈수 있겠다.

<자전거길 시작지점>

  오스트리아의 첫인상은 깔끔하니 잘 다듬어졌다는 느낌이다. 잘 닦인 도로는 조용할 뿐만 아니라 쓰레기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자전거 타기에 더 없이 좋다.

<오늘 도착하겠지?>

  반면 오가며 마주치는 사람들은 친절하지만 어딘가 조금 이질적이다. 말을 걸어보면 미소를 띄고서 빠르지 않은 영어로 차분하게 대답해주지만 ‘예절’이나 ‘매너’의 선을 넘지 않는다. 인도인들의 무례에 가까운 호기심도, 발칸의 꾸밈없는 친절과도 조금 다르다.

  아직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뭐랄까 잘 포장된 친절함으로 느껴진다. 국경선도 무의미한 나라이지만 개인간 경계선은 선명하다. 게다가 조금 지루하다. 아무래도 이들과 쉬이 친해지기는 어렵겠다.

<깔끔한 자전거길>

  오스트리아에 들어설 무렵에는 하루종일 내리쬐던 태양도 기운을 잃기 시작했다. 확장을 거듭해 해가 지지 않는 영토를 갖는것이 제국이 되기 위한 필요조건일까? 이미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은 사라예보의 총성과 함께 사라졌다. 하늘은 마치 이중제국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피가 흐른듯 붉게 물들고 있다.

  좋아하던 낙조를 보면서 기껏 떠올린 생각이 출혈이다. 그렇다. 한마디로 오스트리아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풍신수길 식으로 표현하자면 단지 길을 빌리기 위해 들어왔다. 이토록 기분이 극단적인 까닭은 어처구니없게도 물가가 비쌀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출전(出錢)은 출혈(出血)이나 마찬가지다. 두차례 지갑을 잃은 떠돌이의 정서는 이토록 삭막하다.

<피흘리는 하늘>

  조금 지나니 갈래길이 나온다. 빈에 가는 가장 빠른길은 도나우 강변북로 자전거길이다. 이 나라의 첫인상대로라면 위험요소는 전혀 없고 그저 달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빈에 가는것만이 목적이라면 차가 빠르고 편하겠지. 마을을 거쳐가는 국도를 타기로 했다.

  주변 풍경은 의외로 발칸반도와 유사하다. 성당은 마치 정교회인 마냥 양파모양 돔이 이중십자가를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이곳은 위치상 과거 오스트리아 제국의 심장부다. 외관에서 정교회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가톨릭 성당일 것이다.

  그동안 성당을 자주 접하다 보니 나름대로 성당을 판단하는 요령이 생겼고 적중률도 높아졌다. 물론 가톨릭과 정교회의 차이는 건물모양이 아니라 신학적 해석이 핵심이다.

<저 성당의 정체는?>

  사실 직접 가서 물어보는게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다. 그러나 이미 시간이 너무 늦었다. 앞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Bratislava)에서 오래 지체한 탓이다.

  그사이 해가 지고 달이 휘영청하다. 매일같이 보고 있지만 일몰은 정말 순식간이다. 해가 수평선에 근접하면 그때부터는 초읽기라 생각해야 한다.

  태양이 수평선 아래 12도에 위치한 시기, 즉 해진 후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마지노선을 EENT(End of Nautical Twilight; 해상박명종)라고 부른다. 지구가 분당 0.25도(360도/24시간) 돈다고 가정하면 이론상 해진 후 48분이다. 실제로는 지구 자전축이 23.5도 기울어져 있어서 위도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무월광시에는 늦어도 일몰 30분내에 숙영지 선정 및 편성을 끝내야 걱정이 없다.

<해상박명종>

  그런데 성당을 보며 잡념에 빠져 있는 사이 이미 20시가 넘었다. 곧 깜깜해질 테니 잠자리를 준비해야 편하다. 하지만 빈은 그다지 멀지 않다. 야간이라 속도내기는 힘들겠지만 두어 시간이면 갈 듯 하다. 그냥 계속 가자.

  늦어서인지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게다가 옆에는 새로 도로를 닦아두었다. 신작로의 따끈따끈한 아스팔트위를 기분좋게 달린다. 아마 하루만 일찍 왔어도 찐득찐득해서 불쾌했을 것이다.

  국도변에는 대부분 가로등이 없었지만 달빛이 환해 달리는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만월에 가까운 달은 무늬도 선명하다. 카메라에 담아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내 촬영기술로는 무리다. 한참동안 달을 감상하다 다시 페달을 밟는다.

<달따라 신작로 달리기>

  딴생각에 빠져 너무 지체했다. 다시 출발하려니 도무지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야간 초행길이기도 하지만 멀지 않다고 느긋하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이정표가 말한 41km은 강변북로를 달릴 경우 행정구역상 빈에 발딛는 거리였다. 빈 시내에 해당하는 Ring까지는 아직도 20km 이상 달려야 한다.

  마침 근처에 빈 국제공항(VIE)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도 확인할 겸 일단 한숨 돌리자. 더 늦기 전에 미리 연락해 둔 웜샤워 호스트의 일정도 확인해 봐야 한다. 늦게라도 가능하다면 빈에 가고, 힘들다고 하면 공항 근처에서 밤을 지새야겠다.

<빈 외곽 공장지대>

  어차피 저녁식사도 못했으니 맥도널드에 들렸다. 6유로(약 9,000원)를 내고 무선인터넷을 쓰니 햄버거세트를 주네? 오스트리아의 첫 지출. 예상보다 더 비싸다.

  그나마 비싼 햄버거를 먹은 보람이 있었다. 마리안(Marian)이라는 호스트는 늦어도 상관없다면서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한다. 다행이다.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페달을 밟는다. 비싼 물가로 인한 언짢음 때문일까? 아무런 문제도 없는데 괜히 피곤하고 속도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밟다 보면 도착하는 법이다.

<밤길>

  자정이 넘어서야 마리안의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육중한 나무문은 굳게 닫혀있고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다. 외출중인가? 이래서 전화하라고 했구나. 문제는 전화할 방도가 없다. 주위에 공중전화도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전화요금을 드릴테니 전화 한통만 쓰겠다고 해도 하나같이 외면한다.

  그동안은 전화로 크게 불편한 적이 없었다. 상황을 설명하면 선뜻 전화기를 내줬을 뿐만 아니라 요금을 안받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미소띈 얼굴로 선을 분명하게 긋는구나.

  무선인터넷은 하나같이 비밀번호가 걸려있다. 발칸반도라면 Public Free Wi-fi가 제공될 주유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간이라 까페, 식당 등도 문을 닫았다. 비싼 물가에 대한 반발심에다가 이런저런 소소한게 겹치니 이 나라는 더욱 마음에 안든다.

<화려하지만 차가운 빈>

  그러던 중 민소매티 아래에 문신이 가득한, 험악한 표정의 동양계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인상만으로는 피하는게 현명할 부류다. 그러나 밝은 표정의 방관자들에게 지쳐있었기에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바로 휴대전화를 꺼냈다. 덕분에 마리안과 연락이 되었고, 곧 올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는 답을 받았다.

  전화요금 1유로를 건넸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필리핀 출신라면서, 아시아인끼리 서로 도와야한다면서 손사래친다. 오히려 더 필요한게 없는지 물어본다. 모든게 해결되었다고 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꼭 필요할 때 도움의 손길이 나타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마리안을 기다리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남긴 한마디 때문이다.

  ‘아시아인(Asian)’.

  유럽과 달리 아시아는 너무 넓다. 아시아에 속한 인도에서도, 아랍 세계도 낯설기만 했다. 사람들의 외모도, 언어도, 정서도 상당히 다르다. 어린시절 읽은 세계명작동화는 대부분 그림동화, 안데르센 동화 등 유럽것이다. 그래서인지 푸른 피부의 신인들이 등장하는 인도 동화는 유럽의 것보다 더 이국적이고 낯설다. 심리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 더 멀다.

<더없이 이국적인 아시아 신화>

  어쩌면 아랍인들도 비슷한 정서적 거리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알라딘이 살던 ‘어느 멀고 먼’ 나라는 다름아닌 중국이다. 오래전부터 왕래가 있었다지만 아랍인이 생각한 중국은 요술램프가 있을 법한 신비의 세계였던 것이다. 중국보다 더 먼 ‘계림’ 혹은 ‘꼬레’는 더욱 멀게 느꼈을 것이다.

  동남아도 공동체 의식을 느끼기에는 너무 멀다. 같은 아시아인이라. 단언컨대 단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개념이다.

<크게 낯설지 않은 유럽 마을>

  그건 그렇고, 탈아입구(脫亞入歐)를 이룬 그가 왜 다시 아시아를 말할까? 외국에서 말통하는 한국인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을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가능한가? 어쩌면 아시아인을 반가워해야 할 만큼 오스트리아에서의 삶이 힘들었던게 아닐까? 아, 이 나라를 여행하는건 쉽지 않겠구나.

  그제서야 그의 이름조차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아차 싶다. 몇마디 더 나눠봤어야 하는건데…….

  그때 갑자기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마리안이 대여섯명의 무리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이제 편안히 이 나라의 첫날밤을 보낼 시간이다. 하지만 뇌리에는 여전히 아시아인이라는 단어가 맴돌고 있다. 그와 동시에, 도움을 받고 있으면서도 ‘오스트리아인’에 대한 반감이 커져가고 있다.(8월 10일 주행거리 122.92km/누적거리 11,371km)

<도나우 강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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