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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30. 종교? 예술? 외설? 카주라호의 정체는?

  모진 고생끝에 도착한 카주라호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카주라호에는 한국말 할 수 있는 인도인들이 모두 모여있는 듯 했다. 한국 식당도 있고, 한국어 간판도 많다. 또 '꼬레아? 안뇽핫씨요?" 하는 호객꾼들도 성황이었다.저 '맛깔스러운' 표현은 대체 누가 가르쳐 준 걸까?

  우선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부사원군을 돌아보기로 했다.

  전설에 따르면 달의 신 찬드라(Chandra)의 아들 차드라바만(Chardravarma)이 카주라호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의 후손 찬델라(Chandela) 왕조가 이곳에 수많은 사원을 세웠다. 입장료는 250루피. 역시 인도인에게는 10루피만 받는다. 학생할인도 안되는 엄청난 차별요금.

  멀리서 본 서부 사원군은 큰 공원같은 인상이었다.탑이 여러개 있는 공원같았던 서부 사원군

  매표소 왼쪽의 비하라(Vihara) 사원부터 시계 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했다.락쉬미나 사원의 모습

  멀리서 본 사원의 모습은 여느 힌두교 사원처럼 탑이 서 있는 형태이다. 처음에는 아이스크림 같은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탑은 시카라(Shikhara)라고 부르는, 시바신의 남근을 형상화 해 놓은 의미라고 한다.

  가까이 가 보니 벽면은 수많은 조각의 집합체이다. 이제는 친숙해진 가네샤도 당연히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가네샤는 시바신의 아들인데, 시바신이 아들인줄 모르고 목을 베었다고 한다. 목이 달아난 아들을 위해 지나가던 코끼리의 목을 떼 붙여줬다는 신화. 코끼리 얼굴을 한 가네샤는 행운의 신으로 인기가 많다.역학적 구조 때문인지 가네샤는 코가 성한 녀석이 드물다.

  가네샤 뿐만 아니라 그냥 코끼리떼도 있었다.코끼리와 말을 이끌고 어디로 가는걸까?

  하지만, 카주라호 사원군을 유명하게 만든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카마수트라 조각. 벽면에는 수라순다리(Surasundari)라는 여인들과, 미투나(Muthuna)라는 성행위를 묘사한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었다.칸다리야 마하데브(Kandariya Mahadev) 사원은 무려 872개의 조각들로 구성카마수트라 조각.

  아, 대체 왜 신전에 이런 조각을 남겼을까? 듣기로는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해지기 위한 수단으로서 남녀간의 합일을 주장했다는데.. 허. 이게 사실이라면 내가 아는 모 군은 벌써 해탈했겠군. 마하트마 간디는 이 사원들을 모두 때려부수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저걸 조각한 사람들도, 수많은 종교와 수많은 지도자들을 거치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조각들이 대단하기도 하고 여러 생각을 하는 찰나, 어떤 인도여인이 말을 걸어온다.

  '헉. 무슨 일이지? 설마 같이 해탈하자는 건 아니겠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으나, 순전히 내 헤어스타일이 독특하다고 종교를 물어 본 것 뿐이었다. '이 머리는 어딜가나 눈길을 끄는구나.'

  마하데바(Mahadeva) 사원에는 사르둘라(Sardula)라는 인도신화의 괴물(반은 사자, 반은 다른 동물)이 여자를 공격하는 조각이 있었다.이게 카주라호 최고의 조각이라는데 나는 왜 최고인지 모르겠다.데비 자가담바(Devi Jagadamba) 사원

  각 사원들은 내부까지 공개된 곳도 있었고, 막힌 곳도 있었다.사원 내부는 수많은 손길로 인해, 석상이 청동상처럼 변해 있었다.

  또 흥미로웠던 건, 치트라굽타(Chitragupta) 사원. 카주라호에서 유일한 태양신 수르야를 모신 사원이라는데, 사원 자체보다 사원 보존을 위한 노력이 더 흥미로웠다. 사원 주변에는 비계(일명 아시바)를 설치하고, 암모니아 향이 나는 용액으로 정성스레 닦고 있었다. 저 노력 덕분에 세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한 황토색 사원을 볼 수 있었구나. 꽤 독해 보이는데 돌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선조들의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과, 어딜가나 입으로만 일하는 속칭 '아가리 파이터'들은 있었다.

  각 사원 내부는 상당히 습하다. 특히 서쪽 벽면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는데, 아마 내 외부 온도차로 인한 결로현상인 듯 하다. 특히 서북쪽 끝단의 치트라굽타 사원이 가장 심했다. 카마수트라 조각이 땀을 흘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사원 내부에는 간단한 배수 시설까지 있어서 흥미를 더했다.땀 흘리는 조각 아래의 물받이와 배수로

  설계 당시부터 결로현상을 예측한 것일까? 그렇다면 차라리 통풍이 되도록 창을 내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아무튼 여러모로 재미있는 사원이다.빠르바띠(Parvati) 사원의 졸린듯한 수라순다리

  나는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다. 무슨무슨 양식 이런거 전혀 모른다. 대신 미술품을 볼때는 나만의 요령이 있다.

  그림은 주인공의 눈빛을 본다. 눈빛이 뭔가를 말하려는듯 한 그림이 좋다. 그 눈빛을 통해 배경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최후의 만찬'의 사도빌립의 눈빛이 가장 좋았고, 고호의 낮잠자는 농부 그림도 편해보여서 좋다.

  조각은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근육의 묘사를 본다. 청동에 잔근육이 발달한 조각은 로댕작품이고, 팔굽혀펴기라도 하고싶게 만드는 흰 돌 조각은 미켈란젤로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지식은 딱 여기까지). 따라서 눈빛도, 근육도 안보이는 현대미술은 큰 흥미가 없다. 난 아직도 네모에 색칠해놓은 몬드리안이 왜 대단한지 이해할 수 없다.

  여기서도 내 나름의 노하우를 이용해서 감상하려는데, 음.. 두 남자 사이에 한 여자는 허리를 숙였고, 다른 여자는 소리를 지르는 듯.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못 들은 척 딴청 부리고.. 이건 범죄현장? 점점 19금으로 변해간다. 아, 여기서는 이런 방법으로 감상하면 안되겠구나.내 수준으로는 아무리 봐도 범죄일 뿐.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사원들이 '살아있는' 사원이라는 것이다. 인도인들이 사원 내부에서 예를 표하고, 기도같은 의식을 하는것을 보면서 머릿속은 더 복잡해졌다. 설마 이 사람들. 21세기에 진짜로 카마수트라를 수행의 한 방법으로?

  이후, 동부 사원군을 자전거를 통해 돌아보면서 또 좋은 친구를 만났다. 므니시라는 친구를 통해 힌두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영어의 GOD의 어원이 힌두교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 Generator(창조의 신) 브라흐마, Operator(유지의 신) 비슈누, Destroyer(파괴의 신) 시바를 합쳐 그들의 약자로 GOD라는 단어가 나왔고, 기독교의 삼위일체(Trinity)도 힌두교적 색채라는 것.

  뭐, 힌두교에서 따르면 석가모니도 비슈누의 화신이고, 모든 종교에 다 관여하고 있으므로 웃어 넘겼지만 우연치고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두번째 인상 깊었던 부분은 나에게 친절하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니(카주라호에는 친한 척 하는 호객꾼이 정말 많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한 카르마(업보)를 쌓고 있다는 것.선한 카르마를 쌓던 므니시. 브라흐마 사원을 배경으로

  숙소에서는 마침 인도 전통 아유르베다(Ayurveda)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300루피에 한번 해보기로 했다. 마사지사는 온몸에 오일을 바르고(나는 서비스라면서 머리까지) 약 한시간동안 정성껏 안마를 해 줬다. 결과는? 노력에 비해 그다지 시원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몸은 안마보다는 사우나 한번 가는게 훨씬 잘 풀리는듯 하다.

  단, 온 몸에 발라놓은 오일은. 씻어내는데만 한시간 이상이 걸렸다.










보너스컷. 보디빌더의 전유물. 기름을 바르다. 미끌미끌 번쩍번쩍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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