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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Kosovo)

103. 코소보 시간여행의 끝.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바람에 프리슈티나 호스텔에서 며칠 더 머무르게 되었다. 하지만 히로유키라는 일본인 친구를 만나게 되어 심심하지는 않았다. 요리를 잘하는 그는 크림소스 스파게티에다가 카레, 프라이드 치킨까지 다양한 요리를 해 주었다.

<호스텔에서 히로유키>

  덕분에 나도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다.

  또 히로유키를 통해 코소보 대학생들을 몇 명 알게되어 마지막날에는 호스텔로 초대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코소보 대학생들과 함께>

  그리고 계획한 출발일. 나는 마케도니아의 수도 스코페로 갈 예정이고, 마침 히로유키도 스코페에 간다고 한다. 마케도니아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잠시 헤어졌다.

  선교사님과 당일치기로 마케도니아에 다녀오면서 길을 봐 두었는데 프리슈티나를 벗어나면서 오르막 한번만 넘으면 계속 평지 혹은 내리막길이라 부담도 없다. 날씨도 그다지 춥지 않았고, 빈 집도 많이 보여서 편안한 주행길이 되리라 생각했다.

<넓은 들판. 달리기 수월한 평지>

  처음 오르막을 넘은 후 순조로운 주행이 이어진다. 프리슈티나를 벗어나기가 무섭게 주위 풍경은 시골로 변한다. 그리고, 코소보는 조금 과장하면 전 국토가 공사중이라 생각될 정도로 어디서나 건설현장을 볼 수 있었다.

<잘 가꾼 들판><콘크리트 타설 준비>

  물론 두바이에서의 공사장과는 전혀 다르다. 전쟁으로 파괴된 기반 시설을 복구하거나, 이제 자리잡혀가는 나라라서 수많은 집과 건물이 들어서는 중이다.

<포크레인도 열심히 움직이고><쌓여있는 비계 강관(아시바)><건설자재와 크레인>

  들과 공사장을 바라보며 열심히 달리는데 어느순간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진다. 기껏 비를 피해 며칠 기다렸더니 또다시 비라니. 게다가 일기예보에도 비 온다는 말은 없었다.

<코소보 시골 마을>

  비를 피해갈까 생각도 들었지만, 히로유키와 약속도 있으므로 판초우의를 착용하고 우중 주행을 준비했다. 텐트의 장판으로만 쓰던 판초우의는 간만에 본연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비는 계속 굵어진다. 결국 주위의 수퍼마켓 처마밑으로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얼마 달리지도 않았는데, 이쯤에서 멈춰야 하나? 물 한병 구입하고, 하늘을 지켜본다.

<오랜만에 판초우의 착용>

  다행히 조금씩 날이 개는 듯 했다. 소나기였구나. 소나기는 피해가야 하는건데 괜히 비맞고 달렸잖아!

  얼마 더 지나니 먹구름지대의 끝이 보인다. 조금 더 힘내자.

<저 앞은 맑은 하늘><전쟁의 흔적, 전차(탱크) 속도제한이라니><오호. 다시 해 떴다. 어라, 삼성?>

  비가 그치고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그새 해가 제법 길어졌다. 거의 한시간은 늘어난 듯. 이제 17:00까지는 쉽게 달릴만 하다.

<코소보 해방군 UÇK의 묘소>

  마지막 마을에서 멈췄어야 하는건데, 아직 어둡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그냥 가다보니 산악지대가 나타나고 해가 져버렸다. 갓길도 없고, 텐트칠 공간도 없고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최대한 빨리, 안전하게 산지를 지나칠 수 밖에.

<산지 직전의 마을 16:44. 이때 멈췄으면?>

  그나마 다행인건 대체로 내리막이고 터널이 있어서 크게 힘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명이 없어 어두컴컴한 터널로 들어갈 때에는 거대한 악마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산지 시작. 아직 해지기 전>

  작은 라이트 하나에 의지하며 조심조심. 마침내 길게 느껴졌던 산길이 끝났고 Hani i Elezit이라는 마을이 나타났다. 지도를 보니 마케도니아 국경에서 불과 1km 떨어진 곳이다.

  밤중에 국경을 넘는것 보다는 여기에서 쉬는게 나을 듯 한데, 어디 적당한 곳이 없을까?

  주위를 둘러보니 주상복합 아파트가 보인다. 1층 유리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가 보니 리모델링하는 식당인것 같다. 여기서 쉬면 좋겠는데 가능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마침 공사중인 자재를 정리하러 사람들이 들어왔다.

  숙영을 문의하니 흔쾌히 허락해 줬다. 덕분에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은 식당으로 개조하는 중인듯 한쪽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쌓여있는 곳이었다. 구석에 텐트를 치고, 하루를 정리했다.(1월 20일. 주행거리 64.84km, 누적거리 7,982km)

<리모델링 중인 식당에서 휴식>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루를 보내고 출발준비를 마쳤는데 밖에는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다. 밥을 짓고 기다려봐도 도무지 그칠 것 같지 않은 비. 남은 거리가 멀지 않으니 비를 맞더라도 출발하기로 했다.

<비맞으며 출발 결정. 편안한 숙소 앞에서>

  우중 주행은 여간 골치아픈게 아니다. 몸이 젖고 추운것도 문제지만 도로에 흙이 많아서 바지끝과 Wing은 진흙 투성이가 된다. 특히 운동화가 젖으면 쉽게 마르지도 않는데…….

  생각한 방법은 운동화 대신 샌들을 신고 가는 것. 양말을 비닐봉지로 싸고 샌들을 신으니 적당히 보온도 되고, 비닐봉지는 스패츠마냥 바지가 진흙에 더럽혀지는것을 막아주니 꽤 괜찮은 방법이다.

<국경마을 Hani i Elezit. 하니와 엘레제?>

  판초우의를 두르고 출발. 금새 국경이 나타났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받아 코소보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코소보 국경. 허름한 출입국 사무소>

  제각각인 정보와 치안상태가 불안하지 않을까 입국을 끝까지 망설이게 만든 코소보. 알고보니 매우 안전한 곳이었다. 물가도 저렴한 편이며, 코소보 사람들은 친절하고 외국인에 매우 개방적이었다. 프리슈티나 대학에서도, 공원이나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온다. 특별한 계기 없이 현지인들과 이렇게 쉽게 친해질 수 있는 나라도 드문것 같다.

<코소보 국기보다 더 흔하던 미국, 호주, 영국, 알바니아기>

  코소보는 독립 후 한동안 UN의 통제하에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프리슈티나 시내에는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리고, 얼마 안되는 미국에 호의적인 이슬람국가다.

  지금은 UN이 철수했지만 거리에서 UN 차량이 가끔 보인다. 마치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미 군정기가 이러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코소보는 독립은 쟁취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프리슈티나 시내에서는 매일밤 정기적으로 단수가 되고, 종종 정전이 된다. 파괴된 건물도 재건해야하고 기차도 다니지 않을 정도니 국가 기반시설과 인프라 등 정비해야할게 많다.

<이건 전쟁의 흔적인가?>

  들판은 비옥해 보이지만 사용하지 않는 빈 땅이 많았다. 어쩌면 인구가 부족해서 땅이 노는건지도 모르겠다. 인구밀도를 조사해보면 아마 상당히 낮을 듯 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소수의 세르비아인 등 민족갈등도 많이 해결되었고 혼란에서는 일단 벗어난 듯 보인다.

<평화로워 보이는 이름모를 작은 마을>

  짧은 경험으로 단정짓기는 매우 성급하고 위험한 일이지만, 코소보에서 딱히 감명받을만한 문화재, 건축물, 휴양지는 보지 못했다. 코소보에서 볼 것은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나라. 그리고 희망을 버리지 않고 삶을 일구어가는 사람 그 자체인듯 하다.

  Tip. 코소보 의회를 견학하고 싶으면 최소 5일 전에 신청서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합니다.(http://www.assembly-kosova.org에서 우측 상단의 English 선택 후, 우측 메뉴의 Public Service 선택, 양식 작성 후 musli.krasniqi@assembly-kosova.org로 전송)

<지금 코소보는 건설 붐>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과거로 돌아간 듯한 나라. 하지만 새롭게 일어서고 있는 젊은 나라 코소보. 언제가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때에는 살기좋은 나라가 되어 있겠지?

<코소보 주행 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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