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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Macedonia)

106. 호부호형을 원하는 마케도니아

  그동안 시도만 했으나 형편과 일정이 맞지 않아서 연결되지 않았던 웜샤워(Warm Showers)를 마케도니아에서 처음 하게 되었다. 웜샤워는 카우치 서핑처럼 여행자와 호스트를 연결해 주는 사이트이지만, 자전거 여행에 특화된 서비스로 대부분 호스트들은 자전거 여행을 했거나 꿈꾸고 있는 사람들이다.

  카우치 서핑보다는 테마가 제한적이므로 상대적으로 호스트 숫자가 적지만,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자전거 여행 정보도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유리하기도 하다.

  생면부지의 여행자들을 초대하여 여행중에 길 위에서 받았던 대접을 다시 돌려주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웜샤워 첫번째 호스트인 Bojan은 도시계획 관련한 일을 하는데 재택근무가 대부분이라서 시간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첫번째 웜샤워 호스트 Bojan의 집>

  그는 멋진 자전거도 여러대 소유하고 있으며, 구 유고슬라비아 국가를 자전거로 돌아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전거를 보면 늘 듣던 Crazy Guy 소리를 들을 일은 없었다.(마트카에서 물에 빠진 생쥐꼴로 돌아온 후 결국 Crazy 소리를 듣기는 했다.)

  집에서 직접 만든 치즈 등으로 식사도 하고, 빨래 등 부족한 부분도 채우며 호사스러운 대접을 받았다.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케도니아에 대해 이해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운전석 옆이 비어있는게 특이한 마케도니아의 2층버스>

  어쩌다 스코페의 동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게 되었다.

  수많은 동상은 도시미관 개선을 목적으로 정부 주도 하, 최근 몇년 사이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졌다고 한다. 사실 스코페를 둘러보면서 멋지기는 하지만 억지로 치장한 느낌을 받기는 했다.

<고고학 박물관 앞. 가로등 사이사이로 도열해 있는 동상>

  정작 시민들은 수많은 동상을 반기지 않는데, 이유는 프로파간다(정치선전)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게다가 마케도니아에 할 일도 많은데 세금으로 동상만 만들고 있는것도 불만인듯 하다.

<이런 집도 흔한데 동상만 만들텐가?>

  동상 중에서 특히 인상적인 것은 Ploštad Makedonija 광장에 서 있는 커다란 동상이었다. 당장이라도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 처럼 앞발을 치켜든 말 위에 올라탄 고대 전사 복장의 남자. 누가 봐도 부케팔러스와 알렉산더 대왕이다.

<부케팔러스와 알렉산더 대왕>

  하지만 이름은 Warrior on Horse. 그냥 말 탄 전사다. Unity 호스텔 직원은 동상 이름을 알렉산더대왕으로 바꾸면 아마 그리스에서 폭격할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었다.

<알렉산더 대왕 하단. 여름에는 분수가 가동된다고 한다>

  강 건너편에도 Warrior라는 상이 있는데, Bojan의 말로는 이 주인공은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이며, 그 앞의 아기를 안고 있는 여자는 알렉산더 대왕의 어머니인 올림피아라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어쩌다가 동상 이름도 마음대로 정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그리스와의 관계 때문이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와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문제로 역사분쟁 중인데, 고대 마케도니아 제국을 두고 그리스와 마케도니아가 서로 자신의 역사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름을 마음대로 부르지 못하는건 동상 뿐만이 아니다. 이 나라가 독립하면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그리스에서 반대하여 공식적인 나라 명칭도 FYROM(Former Yugoslav Republic Of Macedonia)이 되었다. 뜻은 (고대와는 무관한) 구 유고슬라비아의 마케도니아.

  마케도니아면 마케도니아지 FYROM은 무슨 눈가리고 아웅인가 싶지만, 그리스는 자국의 북부 지방을 마케도니아로 칭하고 있다. 정작 마케도니아에서는 누구도 FYROM이라고 부르지 않지만, 공식적으로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을 쓰지 못하다니. 이건 21세기의 홍길동이 아닌가?

<이름모를 고대 마케도니아 전사>

  이 뿐만 아니다. 처음 마케도니아에서 사용하던 국기는 알렉산더 대왕의 상징인 태양기였으나 역시 그리스의 반대로 국기를 바꿔야만 했다. 결국 현재 사용하는 국기는 과거 일제의 욱일승천기와 비슷한 기를 사용한다.

<구 마케도니아기가 걸려있던 길거리 기념품 가게>

  또 그리스는 마케도니아의 EU나 NATO 가입을 반대하는 등 사사건건 간섭하고 있다. 이유는 마케도니아라는 이름의 독립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이다.

  정작 고대 그리스 인들은 마케도니아를 야만인으로 불렀다. 플루타크 영웅전의 유명한 웅변가 데모스테네스 역시 마케도니아를 무시했다. 아마 그들은 마케도니아를 그리스 연합의 일부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은 도시국가(폴리스)도 아니었고, 민주정도 아니었다.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했고 특히 테베시는 철저히 파괴되었으나 지금 그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을 자처하고 있다.

<오스만 시대(1492) 지어진 Mustafa Pasha Mosque>

  마케도니아에서는 그런 식으로 따진다면 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시아, 바빌론, 이집트 등을 정복했으니 중동 전체가 알렉산더 대왕의 후예일거라고 한다. 또한 그동안 만난 세르비아인들은 그리스의 마케도니아 개입이 코메디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현재 마케도니아인 역시 슬라브족이므로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과는 얼마나 관계가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스코페의 올드 바자르(Old Bazaar)>

  어쨌든 마케도니아는 전쟁을 겪지 않고 평화롭게 독립하여 다행이라고 했더니 Bojan은 정색하며 마케도니아도 최근 전쟁을 치뤘다고 한다. 바로 2001년의 코소보-마케도니아 전쟁.

  '어라? 코소보 전쟁당시 마케도니아에 난민 캠프가 설치된 것으로 보아 서로 우호적이었을텐데?'

  믿을 수 없어서 되물어 보았더니, 코소보 전쟁 당시 마케도니아에서 코소보 난민을 받아주었으나, 이후 코소보는 영토확장을 꾀하며 스코페 전방까지 밀고 내려왔다는 것이다.

  정말 국제관계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맞는가보다. 그동안 만난 세르비아인, 코소보인, 마케도니아인 하나하나는 참 좋은 사람들이었는데 국가간 이해관계가 겹치면 돌변한다. 또한 약자로 생각하여 동정심을 갖고 있던 코소보의 이미지도 조금 달라졌다.

<올드 바자르 일대 이슬람의 흔적. Sultan Murat Mosque>

  이야기를 계속하다가 Bojan이 한가지 제안을 했다. 다음날 도시계획 관련 학회에서 자전거 활용방안에 대한 발표가 있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다. 정장도 없고, 이런 복장으로 가도 괜찮냐고 했더니 아무도 그런것에는 신경쓰지 않는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걸려있는 호텔 로비>

  학회는 TCC Grand Plaza호텔에서 열렸다. 불청객이었으나 사람들은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행사라 딱딱할줄 알았는데 발표에 형식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발표한다.

<안건을 발표하는 Bojan>

  하지만 진짜는 사후 강평이었다. 관심 주제별로 그룹을 나누어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다리를 꼬기도 하고 일어서거나 음료를 마시는 등 분위기는 자유로웠지만, 질문과 반박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웬만큼 준비해서는 대응조차 어려울 것 같다. 학생때 본 우리나라의 (일부)학회보다 훨씬 실질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토론 중>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에게 철저하게 검증받는 시간. 비록 마케도니아어로 진행되는 발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오, 식사까지 제공~>

  Bojan과 스코페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설명을 들었다. 시내 남쪽에는 반파된 건물이 있었다. 원래 기차역이었으나 1963년 대지진으로 무너졌고, 지금은 리모델링 후 박물관으로 사용중이다.

  건물 외벽의 시계탑은 17:16을 가리키고 있는데, 지진이 일어난 시간이라고 한다.

<원래 기차역이었던 스코페 시티 박물관>

  1층에는 스코페 대지진과 관련된 자료가 전시되어있었다.

<국제적십자사, 적신월사의 활동>

  당시의 처참한 상황과, 주변 국가의 도움, 재건 과정이 나타나 있었고, 한편에는 구호에 참가한 나라가 기록되어있었다. 도움의 손길에는 미국도 포함되어 있었다. 한국은 공산권 국가와 수교 전이므로 목록에 없는데 흥미로운건 북한도 없다. 같은 공산권인데 여기에 삐져서일까? 대형 지도에는 통일된 한국이 그려져있고, 평양은 없었다.

<스코페 구호 참가국과 한국>

  지하에는 스코페의 고고학 유물이, 2층부터는 큰 볼거리 없는 생활용품들이다. 타자기, 전화 교환기, 텔레비전 등 한 30년 후에는 흥미로운 전시물일듯 하다.

  정교회(Orthodox)국가 답게 스코페에도 멋진 성당이 서 있었다. 바로 Minster Temple St. Kliment Ohridski다. 이 성당은 독특하게 생겼다. 건물 지붕의 돔이 아예 흘러내린듯한 모습이다.

<화려한 St. Kliment Ohridski 성당>

  건물 자체도 멋있었지만 이 성당에서 인상깊었던건 마케도니아의 결혼식을 본 것이다. 예식은 사제의 주도 하에 엄숙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

<신랑신부를 축복하는 사제>

  스코페의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온다. Bojan은 출장이 있어서 스코페를 떠나고 나도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었다.

  마지막 저녁, 올드 바자르 근처에서 맥주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중간에 Bojan의 여자친구 단야도 참가했다. 단야는 비상식량으로 큼직한 초콜릿을 챙겨주었다. 그녀는 치과 의사이며 요가 강사도 하고 있는데 놀라운건 나이 차이가 열살이 넘는다. 역시 문화가 다르구나.

<올드바자르 근처 Bojan, 단야와 함께><주르륵 주르륵 비내리는 올드바자르의 야경>

  며칠간 Bojan의 집에서 편안히 쉬었고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 

  Bojan은 마지막까지 앞으로 경로 등 꼼꼼하게 알려주었고, 기념품으로 포제 마케도니아 기도 하나 챙겨줬다. 나는 눈이 제법 많이 내리고 있어서 근처 저렴한 호스텔에 며칠 더 있다 출발하기로 했다.

  눈이 내려도 나는 Lucky Guy라고 한다. 원래 마케도니아의 겨울은 눈이 많이 내리고 심할때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기도 한다는데 올해는 이상기후로 눈도 적게오고 영하로 떨어진 날도 별로 없어서 그나마 여행하기 좋다는 것이다.

<차량형 항타기. 추운 날씨에도 작업 중>

  악수를 나누고 헤어지는 길. 아마 Bojan을 못만났으면 스코페는 그냥 동상이 많은 나라로만 기억했겠지. 덕분에 참 즐거웠고, 마케도니아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다.

<친절히 맞아준 Bojan>

  좋은 인상을 심어준 마케도니아와 스코페. 그리스와의 갈등을 원만히 해결하고 당당히 호부호형, 아니 마케도니아임을 외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알렉산더 대왕이 서 있는 Ploštad Makedonija 광장 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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