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IH)

135. 모스타르의 특산품은 볼펜?

  모스타르(Mostar) 시내에 진입하려니 특이한 벽화가 보인다. 각각의 전통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손에 손잡고 지구촌을 둘러싸고 있다.

<손에 손잡고 세계 평화를 위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iH, Bosnia i Hercegovina) 남부 헤르체고비나 지방에 위치한 모스타르는 크로아티아계(가톨릭)와 보스니안(무슬림)이 공존하던 곳이다. 보스니아 전쟁 초기에 이들은 연합하여 세르비아(Serbia)가 주축인 유고슬라비아(Yugoslavia)군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곧 서로 분열하여 동맹이 깨지고 서로 죽이게 된다. 이 벽화는 역설적으로 과거 분쟁의 상징이다. 그러고 보니 벽화에서 세르비아 복장은 보이지 않는다.

<모스타르 구 시가로>

  Pavel의 뒤를 따라 모스타르 시내로 향했다. 금세 자갈로 포장된 구 시가(Stari grad)가 나왔는데 자전거를 타기 무리라 끌고 가기로 했다.

<구 시가 진입>

  아니, 끌기도 힘들다. 좁은 골목길인데다 각종 상점과 관광객으로 가득 차 있어서 차라리 몸만 다니는 편이 낫겠다. Stari Most(Old Bridge) 근처 식당에는 호객행위가 많았는데, 호객꾼에게 Wing을 맡겨두고 시내 관광을 시작했다.

<좁은 골목길과 자갈 포장도로>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바로 앞 Stari Most. 이 다리는 오스만(Osman) 제국에 의해 세워져 거의 500년을 버텨왔으나 보스니아 전쟁 당시 크로아티아계의 포격으로 파괴되었다. 도시 주민들이 자폭한 셈이다. 재미있게도 오스만이 만든 이 다리는 전후 터키의 도움으로 재건되었으니 계속해서 터키의 영향을 받고 있는 셈이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Stari Most>

  별 것 아닌 다리 같지만 Stari Most 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이 다리는 도시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사실 Mostar라는 이름도 Stari Most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리 위에서. 눈부셔서 표정이 엉망이다>

  반면 관광객이 북적이는것과는 다르게 모스타르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오래된 건물은 인위적으로 구워 낸 기와나 슬레이트를 쓰는 대신 넓고 평평한 돌판을 까는 경우가 많았다. 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써 왔으니 안전은 어느정도 검증 되었을 것이다.

<돌판을 얹은 석조건물>

  덕분에 늘 봐 오던 붉은 지붕 대신 회색 지붕이 대부분이다. 울창한 푸른 나무와 BiH에서 자주 보아 오던 바위산이 어우러져 건물도 자연 환경의 일부로 조성한 느낌이다. 이슬람은 주민 생활에 완전히 파고들어 있는 듯 여기저기 모스크가 많이 보인다. 모스크는 하나같이 소박하여 첨탑만 없다면 외관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얼핏 보면 조금 긴 굴뚝으로 보일 정도의 작은 첨탑 역시 위압감을 주지 않고 마을과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뒷산과 어우러져 마치 위장이라도 한 듯한 모습>

  거기에 눈부신 햇살과 다리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푸른 강물이 더해지니 그 자체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전쟁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BiH지만 잠깐의 인상만으로도 관광객이 많은 이유를 알 듯 했다. 어르신들로 구성된 한국 단체 관광객도 많았다.

<그림같은 모스타르 전경>

  각종 공예품이 진열된 상점이 즐비한 좁은 골목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다. 게다가 동행이 있으니 더욱 즐거웠다.

<독특한 양식의 석조 건물><각종 기념품 가게>

  오스만 제국이 모스타르에 이슬람을 전파하고 다리를 건설해 준 만큼 오래된 터키 모스크도 보인다.

<터키 모스크>

  모스타르는 참 아름다웠지만 안타깝게도 곳곳에 전쟁의 상흔이 눈에 띈다. 부서진 건물, 총탄 자국이 가득한 벽, 군수품을 파는 상점은 볼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너덜너덜해진 건물들>

  특히 한 기념품 가게의 구리 볼펜이 인상적이었다. 어디서 본 듯한 디자인은 바로 탄피를 연결해서 만든 것이다. 처음에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다 싶었지만, 볼펜이 주는 무게감이 상당하다. 이제는 전쟁의 아픔마저도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한 것일까? 아니면 혹시 이런 것 까지 팔아야 할 정도로 산업 기반이 파괴되었고 생활이 어려운 것일까?

<탄피 볼펜>

  저런 걸 만들어 팔기 위해 굴러다니는 실탄이나 탄피를 줍다가 지뢰를 밟거나, 혹은 불발탄 장약을 제거하다 다친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그렇다면 그 대상은 어린아이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더욱 마음이 편치 않다.

  박물관에 전시된 각종 무기나 전쟁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소개한 사진 보다도 때로는 이런 볼펜 한 자루가 마음을 더 움직이니 그것도 신기한 일이다.

<현재는 평온한 모스타르 거리>

  대부분 기념품은 가격이 터무니없거나 비 실용적이고 저렴한 제품은 품질이 조악한 경우가 많다. 특히 기념품 한켠에 자리잡은 여행지와는 전혀 관계없는 Made in China(요즘은 이 문장의 이미지 때문에 Made in PRC를 쓰는 경우도 있다) 글자를 보면 더욱 허무하다. 게다가 자전거 여행은 짐 무게에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장기 여행에서는 한두 푼의 지출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기념품 따위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이유다.

<안어울리는 조합. 성모 화와 철모>

  하지만, 이 볼펜은 왠지 끌린다. 옆을 보니 Pavel도 흥미있는 눈치다.

  그냥 돌아서려니 아쉽다. 딱히 필요한것도 아니지만 갖고싶은 욕구, 욕망의 결과는 다시 짐이 되어 발길을 무겁게 한다. 자전거 여행은 이런 작은 욕심을 다스리는 과정이기도 하다.

  '비싸다. 다른 볼펜이 있다. 당장 필요하지 않다. 공항 X-ray 통과시 문제될 수도 있다. 무겁다. 심 교체는 불가능할 것이다. 노출되면 문제시 되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는 적성국가 군수품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사지 말아야 할 이유를 몇 가지나 만들어 붙인 끝에 겨우 가게를 돌아설 수 있었다.

  '휴, 그래도 상술에 낚이지 않았어!'

<아랍어처럼 써 놓은 알리바바 찻집>

  햇살은 더욱 강해지고 너무 덥다. 다리 아래 Neretva 향했다. 구석진 곳에서 잽싸게 환복하고 귀중품은 Pavel에게 맡겨두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일행이 있어서 이럴 때 더욱 좋다.

<다리 아래에 선 Pavel>

  BiH의 강변을 주의하라는 말은 들었지만 사람들이 수영을 즐기는 강이라고 하니 지뢰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강 바닥을 밟으면 안된다.

<더운 날씨, 따뜻한 햇살, 푸른 강>

  그런데 밖에서는 잔잔해 보이던 강물은 직접 들어가 보니 유속이 너무 빨라서 수영을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손발을 움직여도 뒤로 떠밀린다. 얼마 전 홍수때문에 위험하다고 나오라는 말도 들었다. 결국 수영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물살에 몸을 맡기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평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Stari Most에서 다이빙을 즐긴다고 한다. 또 누군가 올드 브릿지에서 뛰어내리면 사람들이 돈을 모아줬다고 한다.

  길에서 공연을 할 정도로 노래를 잘 하거나 악기를 다루지도 못하지만 고소공포증은 없는데……. 홍수만 아니었으면 밥이라도 한 끼 제대로 먹을 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도 하다. 아니, 이재민이 많다는데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한심한 일이다.

<멋진 동행자 Pavel>

  어느새 Pavel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도 끝나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나는 남서쪽 Međegorje로, Pavel은 남동쪽 트레비녜로 간다. 자전거 두 대를 지켜 준 친구들도 있고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워 그 식당에서 차 한잔 마시기로 했다.

<자전거를 지켜 준 친구들>

  화장실에서 젖은 옷도 갈아입고, 사진 교환도 하고,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서 조금이나마 대화 시도도 하며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구글 번역기. 인터넷만 접속되면 처음 접하는 언어도 간단한 결과는 도출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필담을 편안히 나누기에는 무리다. 번역 시도는 금세 집어치웠다. 자전거 여행자라는 동질감 때문인지, 짧았지만 함께 야영하고 달린 시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눈을 바라보며 과장된 몸짓을 하는게 더 나은 소통방법이다. 기술은 단어를 빠른 시간에 찾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감정을 번역하지는 못한다.

<헤어지기 전 기념 사진 한 장>

  마지막 기념 촬영 후, 모스타르 외곽 Bulevar 도로 갈림길.

  여러마디 말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마지막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각자의 길로 나선다.

  마지막 까지 안전하고 즐거운 여행 되시기를~.

<짧아서 더욱 애틋하던 모스타르와 Stari Most>

  다음글 ☞ 136. 메주고리예로 가는 험난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