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vel을 보내고 다시 홀로 선 길. 분명 같은 길임에도 더 멀어보인다. 다시 지도를 들여다 보니 지름길이 보인다. 이 길을 이용하면 오늘 중에 Međugorje(메주고리예)에 도착할 수 있을것 같다.
바로 경로를 변경하여 샛길로 들어섰다.
<지름길로 가자>
그런데 이건 좋지 않은 선택이었다. 곧 오르막이 나타났다. 지도상에는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경사가 가파르다.
자전거를 끌며 쉬엄쉬엄 올랐으면 좋으련만 빨리 가겠다는 생각에 기어를 낮추고 낑낑거리며 힘들게 산을 오른다.
그 때, 뒷바퀴에서 갑자기 매우 맑은 ‘팅’소리가 들린다.
‘익숙한 소리인데 설마?’
곧 이어 누군가 자전거를 잡아당기는 듯 한 느낌. 으으. 급히 Wing에서 내려 뒷바퀴를 살펴보니 아니나다를까, 스포크(바퀴살) 한개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하필이면 정비하기 힘든 톱니 세트(스프라켓 카세트) 쪽이다
'으으. 왜 하필이면 이런 곳에서? 갓길도 없는데'
주위 작은 바위를 주워 바닥에 몇 번씩 내던지며 지뢰 확인을 하고서야 정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어라? 잘 살펴보니 스포크가 부러진게 아니라, 스포크를 림(바퀴 테)에 고정시키던 니플이 부러진 것이다.
<산 중턱에서 내 기분과는 반대로 경치는 좋다>
인도, 네팔에서 스포크 파손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다행히 터키에서 앞 페니어를 구입하여 짐 무게를 분산했고, 이후 한동안 괜찮았었다.
루마니아에서 달마와 함께 달리며 보니, 달마의 자전거는 바퀴 스포크가 36개 1조로 구성되어 있었다. 내건 32개. 달마는 스포크 문제가 크게 없었다고 한다.(Tip. 전문 여행용 자전거는 대부분 36홀 림을 사용합니다. 짐과 체중을 고려하여 36홀 림을 사용하는게 이후 문제를 줄일수 있습니다.)
림이 갈라져서 루마니아에서 교체할 때, 36홀짜리를 고려했으나 허브(바퀴축)까지 바꾸어야 하므로 지출이 커져 실행하지는 못했다.
대신 예비 4개를 포함한 2조. 즉 스포크와 니플을 각각 72개, 스프라켓 고정 도구, 스프라켓 탈거용 키와 큼직한 스패너까지 들고다닌다. 족히 5kg는 될 것이다
‘가만보자. 니플이 부러졌으면 스프라켓까지 제거할 필요는 없고, 니플만 바꿔주면 될 게 아닌가? 어쩌면 바퀴조차 빼지 않아도 되겠다.’
<너덜거리는 스포크와 부러진 니플>
귀찮은 일을 줄이고자 짐도 풀지 않고 작업에 들어갔다. 바퀴 바람을 빼고, 타이어를 누른 틈으로 니플만 바꿀 수 있겠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타이어는 너무 딱딱했고, 틈새는 좁아 도무지 니플을 밀어넣을 수가 없었다. 으으 결국 짐을 다 풀고 바퀴를 빼야 하나?
이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다른 스포크에 니플을 조여 홀을 통과시키는 방법. 일종의 바느질이다. 몇 번 시행착오 끝에 드디어 성공.
그러나 아직도 할 일이 남아있다. 양쪽에서 동일하게 바퀴를 잡아주던 스포크가 부러지면 바퀴가 휘어버린다. 교체 작업보다 바퀴 정렬이 더 어렵고 많은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
<슬슬 날이 저물어간다>
거기다 더 마음에 안드는 건, 부러진 니플 머리와 실수로 떨어뜨린 니플 두어개가 림 안에 들있는 것이다. 바퀴를 굴릴 때 마다 나는 ‘또르르’ 소리는 괜시리 신경쓰이게 만든다.
그래도, 니플이 부러지는게 스포크가 부러지는것 보다 백배 낫다. 나는 스프라켓만 빼는 전용 도구가 없어서, 제대로 교체하려면 허브까지 분리하는 대공사를 해야 한다. 그랬다가는 축의 좌 우 여백, 조여주는 강도 등 미세하게 조정해야 할 부분이 너무 많아진다.
어느정도 손보고 다시 출발하려니 벌써 해가 지려고 한다. 혹시 또 스포크가 부러질까 경사가 심한곳은 자전거를 끌며 힘겹게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이윽고 정상. 아 힘들었다. 이제 능선을 타고 달리기만 하면 되고, 당분간 급경사는 없을 것이다. 멍하니 노을을 보고 있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아차, 쉴 곳을 찾아야 하는데?
<정상의 기쁨을 만끽하며>
신경을 많이 써서일까 배도 고프다.
혹시 지뢰가 있을지도 모르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iH; Bosnia i Hercegovina)에서 밤중에 숙영지를 찾는 것은 위험하다. 좋은 곳이 없을까?
그런데 아무리 달려도 수퍼마켓 하나 없다. 가로등 없는 도로 주변은 텐트를 칠 공간도 없다. 어쩔 수 없이 계속 달릴 수 밖에 없다.
<마음이 급하지만 놓칠 수 없는 석양>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마을이 하나 나타났고, 마을 중앙에는 증축 중인 가게가 하나 보인다.
‘저기 구석 빈 공간이 딱 좋은데. 허락해 줄까? 기다리다가 가게 문 닫으면 조용히 하룻밤 자고 나갈까? 다른 공터는 없나?’
일단 상황을 살펴보기로 하고 가게에 들어갔더니 실망스럽게도 까페. 밥은 없겠네.
<드디어 쉼터가? 밥이라도 먹고 보자>
나는 사람 없는곳에 조용히 텐트치는건 익숙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때문인지 아직도 아쉬운 소리를 하는건 쉽지 않다.
촌닭마냥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마침 나에게 흥미를 보이는 친구들이 있다. 현지인들이 자전거 여행에 흥미를 보인다는건 좋은 징조다. 단, 인도를 제외하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한 마디씩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되었다. 간단히 통성명을 하고, 이제껏 여행 경로를 말하자 대단하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이때다.
<결정적인 도움을 준 Ivan Bevanda(좌측)>
"밥먹고 메주고리예에 가려고 했는데 너무 늦었네? 혹시 근처에 쉴 곳이 없을까? 옆에 빈 방 정도면 좋을것 같은데"
그러자 Ivan Bevanda라는 친구가 나섰다. 까페 주인에게 사정을 설명하더니 금세 허락을 받아주었다. “텐트치고 짐 풀고 잘 준비 하고 다시 와. 가게 안쪽에 화장실이 있으니 거기에서 씻으면 될거야.”
'와, 성공이다. 씻는 것 까지 해결되는구나.'
<까페 구석 증축중인 격실에서 숙영>
스포크 시간을 많이 소모하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고마운 친구 덕분에 편히 쉴 수 있게되었다.(5월 25일 주행거리 60.84km, 누적거리 9,443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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