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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Hungary)

160.부다페스트, 뜻밖의 활로(活路)

  에릭은 맥없이 돌아온 나를 보고서 밤에 파티가 있다면서 놀러가자고 한다. “지금 나랑 장난하나? 내가 놀러갈 기분으로 보여? 무엇보다 나는 땡전 한 푼 없다고!”

  하지만 에릭은 돈 없는것은 이미 알고 있으며 기분이 안좋을수록 더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곧이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펍 중 하나라는 심플라(Szimpla)라는 곳을 소개했다. 고맙게도 모든 요금은 에릭이 지불했다.

  심플라가 있는 Kazinczy가 주변에는 유대인(Jewish)의 회당인 시나고그(Synagogue)와 그들의 율법에 따른 코셔(Kosher) 식당이 여럿 보인다.

<도하니(Dohány) 시나고그><코셔 푸드 판매>

  사실 부다페스트는 유대인이 많이 거주해 한때 주다페스트(Jewdapest)로 불릴 정도였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대인들이 밀집한 만큼 나치(Nazi)의 홀로코스트(Holocaust)에 의해 막대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에 부다페스트에는 홀로코스트 추모관(Holocaust Memorial Museum)도 있다.

<히브리어처럼 디자인한 안내소 간판>

  반면 낮에 유대인 거리인 이 일대는 밤이 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펍이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겔레르트 언덕(Gellért-hegy)에서 야경도 보고 이곳에서 에릭 및 친구들과 밤새 어울리니 조금이나마 기분이 나아졌다.

<부다 왕궁의 야경>

  음주가무에는 한국이 제일이라고 익히 들었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 슬라브 계열 친구들은 라키아(Ракија 는 Rakija)라는 독주를 즐겼으며 나는 이날 압생트(Absinthe)라는 독주를 몇 잔 마셔야 했다.

<잔잔히 흐르는 도나우강>

  압생트는 투명한 초록빛을 띄고 있다. 화려한 독버섯처럼 함부로 마시면 안될 것 같은 예쁜 색상이다. 게다가 그 맛과 향은 마치 플라스틱을 녹여 마시면 이렇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괴이한 맛이었다. 이유는 아니스(Anise)라는 향신료 때문이다. 터키나 그리스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재료로 나는 웬만한 음식은 가리지 않지만 아니스만은 감당하기 힘들었다.

<내 마음을 대변한 조각, 소매치기 잡히면 그냥 콱!>

  압생트는 맛도 문제지만 알콜도수 70도가 넘어간다. 마시는 법 또한 특이하다. 국자처럼 목이 구부러진 차숫가락에 각설탕을 올려놓는다. 이를 압생트에 적신 후 불을 붙이고, 다시 압생트잔에 담궈 불을 끈 후 단숨에 들이킨다. 알콜이나마 좀 더 날려보려고 불을 한참 가져다대고 있었는데 에릭은 마치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빨리 마시라고 한다. 도무지 요령이 통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바로 쓰러졌으나 정열의 나라 브라질에서 온 에릭은 지치지도 않고 마르깃(Margit) 섬에 수영하러 갔다. “오늘 밤도 압생트?”라고 묻는데는 혀를 내둘러야 했다.

<흐린 날의 마르깃 섬>

  전날 압생트를 마셨다는 말을 전해 들은 스위스 친구들이 좋아한다. 알고보니 압생트는 스위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스위스 친구들은 압생트에 마약 성분이 들어있고 시각 이상까지 일으킨다면서 겁을 준다.

  이들에 따르면 압생트는 빈센트 반 고흐가 사랑했던 술이라고 한다. 고흐는 압생트를 오래 마신 결과 정신착란을 일으켰고 끝내는 귀를 잘랐다는 것이다. 또한 해바라기 등 작품에 노란색을 과하게 사용한 것도 압생트의 영향이라고 한다. 압생트가 계속 문제를 일으키면서 한때 제조가 금지되기도 했고 현재 유통되는 제품은 마약성분이 빠져있다고 한다.

<부다페스트 오페라 하우스>

  쓰린 속과 마음을 부여잡고 폴리스리포트를 찬찬히 들여다보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여느 유럽국가처럼 이름+성 순서를 쓰는 대신 성+이름으로 작성된 것이다. 실수인가? 분명 Family Name과 Given Name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신기한건 또 있다. 일/월/년 대신 년/월/일로 쓰며 주소도 국가-시-구-동-번지 순으로 표기한 것이다. 혹시 이게 동양에서 기원한 마자르족의 흔적이 아닐까?

<폴리스 리포트 일부>

  이름 표기법에서 시작한 대화가 꼬리를 문다. 함께 머물던 친구 중에는 이란에서 온 사마네(Samaneh)도 있었다. UAE와 오만에 체류했었으며 이란에 가려다 비자를 못받았는 이야기도 나왔고 아랍어 몇 글자를 안다고 자랑도 했다.

그러자 사마네는 아랍과 이란은 다르다고 지적한다. 아랍어와 페르시아어(이란어)도 다르다. 우에서 좌로 쓰며 문자 형태가 비슷해서 내가 보기에는 큰 차이가 없다. 아마 같은 로마알파벳을 쓰지만 영어와 헝가리어가 다른것과 비슷한 듯 하다.

<페스트 지역 야경>

  아랍어로 내 이름(كون طوين)을 써 보이자 사마네는 배를 잡고 웃는다. 성으로 쓴 كون이 아랍어로는 별 뜻 없지만 페르시아어로는 나쁜 욕설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이란에 가게 되면 کوان로 쓰라면서 알리프(ا, 아 발음)를 하나 추가해줬다. 

  하지만 헝가리가 성+이름을 쓰던 아랍어와 페르시아어 표기가 다르던, 내 상황은 전혀 달라지는게 없다.

  다시 한번 경찰서를 방문한다. 역시 좋은 소식은 없다. 포기하면 편하다던데 편하기는 커녕 도무지 대책이 없다. 교회에서 기도까지 했지만 내가 기대한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해결책은 뜻밖에 가까운 곳에 있었다.

<중앙이 에릭, 에릭 우측은 조지>

  에릭의 집에는 매일같이 새로운 친구들이 방문했다. 그 중에는 여행중에도 늘 바지를 빳빳히 다려입던 오스트리아 신사 Georg Himmlmayr도 있었다. 조지는 내 사정을 듣더니 흔쾌히 돈을 빌려주겠다고 한다.

  나중에 오스트리아에 방문하게 되면, 또는 한국에 돌아가면 갚으라고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데 대체 뭘 믿고?

  일이 해결되려고 하니 스위스 친구들도 한 몫 거들었다. 스위스 로잔에 오면 들리라고 초대한다. 사실 물가 비싼 스위스 횡단은 애당초 계획에도 없었다. 마음만 받고 정중히 거절하기는 했으나 절망 속에서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다. 안타까운건 그때 이것저것 챙길 정신이 아니라 고마운 스위스 친구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스위스 친구들>

  다행히 이들에게 신세질 일은 없었다. 부다페스트를 누비던 중 KDB라는 간판을 발견한 것이다. 혹시?

  설마설마 하면서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산업은행 카드를 넣어보니 인출이 되는 듯 하다. 바로 은행 창구로 향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아 잊고 있었던 한국 계좌에는 잔액도 남아 있었다. 위험 부담은 물론이고 유로로 다시 환전하면 손해지만 마지막 기회다 싶어 모조리 인출했다.

  이로서 350,000 포린트(약 150만원)가 생겼다. 이제 급한불은 껐다. 아껴쓰면 상당기간 버틸 수 있는 금액이다.

<기적처럼 눈앞에 나타난 산업은행 부다페스트 지점>

  창구 직원은 부다페스트 지점이 최근 생겼으며 여기서 1,000km 이상 떨어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도 지점이 있다고 한다.

  교민, 유학생, 여행자 등 한국인을 상대로 한다면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훨씬 더 유리할거고 현지인을 상대로 경쟁하기에는 초록간판 은행(OTP Bank), 노란간판 은행(Raiffeisen Bank) 등 유럽 전역에 영업망을 갖고 있는 기존 현지 은행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질 것이다. 왜 굳이 헝가리에 먼저 진출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정말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기분이었다. 으쌰! 다시 힘 내고 갈 수 있는데까지 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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