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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India)

035. 악몽같은 무릎통증이 오다.

  3월 4일 월요일. 사르나트(Sarnath)를 출발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서였을까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그새 근육이 다 풀렸나보다. 그리고 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다. 하지만 녹야원 주지 스님이 해주신 말씀 - '기대가 욕심을 만든다. 남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나를 바꿔라'를 생각하며 달리기로 했다.

  과연 아무 기대없이 달리니 마음은 편하다. 길이 엉망이라도 그러려니…. 그런데 이런 사고방식이면 적응하기에는 편한데 아무런 발전이 없을 듯 하다.

  112km(누적거리 2,364km)을 달려 Jianpur 3km 전방에서 빈 건물을 하나 찾았다. 마침 2층이라 여기에 숙영하면 주위사람들 눈에도 안띌 듯 하다.

  2층에 올라가 보니 학교였다.칠판하나가 달랑 있는 학교 교실.

  또 학교 앞에는 펌프도 있어서 시원하게 샤워까지 할 수 있었다. 깨끗히 씻고, 보나까페 사장님이 싸 주신 김치를 곁들여 라면으로 석식을 해결했다. 단 하나 단점. 인도에는 교실이 부족하여 2~3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가 많던데 수업에 방해되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내일 아침에는 5시에는 일어나야 할 듯 하다.

  날이 밝았다.

  문득 학교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인생을 바꾼 학교(국립목포해양대학교)는 물론이고, 현재 나는 대학 휴학생 신분이 아니던가.(방송통신대학교). 학생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짐을 다 싸 놓고 기다리는데, 뜻밖에 아무도 오지 않는다. 괜히 일찍 일어났다고 후회하며, 책이나 보며 조금 기다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전날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해 준 학교

  그런데 아침부터 흙이 곱게 깔린 비포장도로가 나온다. 으 먼지. 손수건을 묶어서 코와 입을 가리고 달리면 방독면 쓰고 달리는 기분이라 좋아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방독면을 요구하게 만드는 흙먼지 자욱한 도로

  인도에서 자전거를 타면 던전 게임하는 기분이 든다. 첫판왕은 오르막길, 2판왕은 스포크 고장, 3판왕은 World Toughest Road, 4판왕은 다리없는 강.

  하루살이 떼들이나 지나친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흔한 고블린(Goblin) 수준이고, 하나하나 미션 클리어하는 기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청객이 찾아왔다. 이번 5판왕이다.

  바로 가장 두려워하던 무릎통증이다. 왼쪽 무릎 앞부분이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한다. 한참을 쉬어도 별 차이가 없다.

  안장 높이가 맞지 않으면 통증이 발생할 수 있다던데 이 높이는 지금까지 2,000km 넘게 달리면서 한번도 문제가 없었던 높이이다. 일단 네임펜으로 현재 위치를 표시해 놓고 안장높이를 조금씩 바꾸면서 달리기로 했다. 안장을 너무 올리니 통증이 더 심해지고, 낮추니 통증 위치가 뒤로 이동하는것 같다. 안장을 약 1.5cm 정도 올리니 더 이상 심해지지는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상태가 지속될지, 무슨 문제가 있는게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했다. 여기서 못움직이게 되면 아무 대책도 없다. 바라나시(Varanasi)에서 너무 오래 쉰 후 갑자기 무리해서인가? 일단 최대한 천천히 달리면서 조금이라도 안좋으면 무조건 쉬기로 했다.

  마침 길가다 짜이가게를 발견하여 파스를 한장 붙이고 짜이를 주문하는데 생강차를 무료로 주셨다. 감사합니다. 짜이가게에서는 탯줄이 채 떨어지지도 않은 새끼염소들의 장난을 보면서 거의 한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했다.아기염소형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다 보면 주 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것들이 몇가지 있는데 소똥도 그 중 하나다.

  마하라슈트라(Maharashtra) 주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고, 마댜 프라데시(Madhya Pradesh)주에서는 접시처럼 얇게 펴서 말렸는데, 여기 우타르 프라데시(Uttar Pradesh) 북부에서는 벽돌처럼 빚는다. 단지 사각형으로 빚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마치 탑처럼 가지런히 쌓아놓은 모습이 재미있다.소똥으로 만든 탑

  인도에도 산은 있지만 대부분 고원 형태로 지평선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나주평야에서나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을까?3월의 푸른 들판

  천천히, 기어는 아주 가볍게 하여 달리는데 저녁 무렵이 되니 고락푸르(Gorakhpur)이라는 도시에 도착했고, 통증도 많이 가라앉았다. 고락푸르는 네팔로 가는 관문과도 같은 도시이다. 일단 무리하지 않기로 하고, 호텔을 찾는데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른다. 최소 700루피~1200루피가량. 론니 플래닛에는 200루피 정도로 나와있는 숙소들이다. 그냥 야영하기로 하고 고락푸르를 떠나기로 했다.

  고락푸르를 통과하는것도 난관이었다. 복잡하고 시내 주변은 도로공사중이었다. 골목길을 이용하여 시내를 통과하니 금새 어두워졌다. 잠자리를 찾을 시간이다.

  중간에 계란장수를 만나 라면에 넣으려고 계란(5루피)을 하나 사서 비닐봉지를 핸들에 걸고 달리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툭 하는 소리. 비닐봉지가 계란 하나의 무게를 못이기고 터진 것이다. 초박형 인도산 비닐봉지 덕분에 언젠가 자칭 깡패에게도 굴하지 않고 지켜냈던 5루피가 깨져버렸다. 세상에….

  또다시 쓸데없는 오기가 생겼다. '내가 오늘 계란 먹고만다. 계란가게까지는 달리고 보자.'

  한참을 가서 다시 계란을 사고, 똑같이 비닐봉지를 핸들에 걸고 달렸다. 생각해 보면 정말 쓸데없는짓 잘하는것 같다. 그리고, Raypur이라는 곳에서 대나무를 쌓아놓은 창고같은 건물이 있었다. 덕분에 이틀연속 이슬맞지 않고 잘 수 있게 되었다.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지만 편안한 숙소를 제공해준 창고?

  마침내 계란넣은 라면을 끓여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3월 5일. 주행거리 106.98km 누적거리 2,471km. 자전거 여행 시작 2개월이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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