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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Nepal)

046. 토룽 라(Thorung La)에 올라서서(안나푸르나 라운딩 3)

  4. 8. 여섯째 날인 이날은 고도 적응을 위해 하루 쉬어가는 날이다. 밀린 빨래를 하고 마낭(Manang) 마을을 둘러봤다.

평화로운 마낭

  오후에는 강가푸르나 근처의 Chongkor 뷰포인트로 향했다. 뷰 포인트는 석성이 있는데 여기에 진을 치고 화살을 쏘면 어떤 적도 막을 듯 하다. 

이 높이에 성을 쌓은것도 대단하지만, 성을 쌓았어야만 하는 환경도 안타깝다.

  뷰포인트 위로 조금 더 올라가 보기로 했다. 얼마 못가 진흙때문에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지도를 펼쳐 위치를 확인 해 보니 대략 3,840m정도 되는 듯. 이정도면 고도적응 완료다.

강가푸르나 호수

  산에 눈이 녹으면서 진흙탕이 되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괜히 높이 올라온 듯 하지만 기가막힌 전망이 모든것을 이해시켰다.

해는 나와 마주하는게 부끄러운 듯 산 뒤로 숨었다.

  4. 9. 일곱째날이다. 일찍 일어났으나 10시가 되어서야 마낭을 떠났다. 이유는 단지 추웠다. 고도가 높아지다 보니 새벽에는 쌀쌀하다. 또 오늘 목표 거리가 짧다는 이유로 이불 속에서 늑장을 부렸기 때문. 오늘 목표는 단 9km 뿐, 식량소모로 짐도 상당히 줄어있다.

  걷다보니 당나귀 한 쌍을 만났다. 이들은 자기 그림자를 바라보며 얌전히 서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은 자기 그림자를 보고 흥분한 뷰케팔러스를 뒤로 돌림으로서 길들일 수 있었다던데 당나귀는 순한가 보다. 그나저나 내 뷰케팔러스 - Wing은 잘 있을까? 

자기 그림자를 바라보고 있는 길 위의 당나귀

  전망이 기가막힌 Ghunsang에서 중식으로 뚝바 한그릇을 시켰다. 뚝바는 칼국수 같은 느낌의 티벳 음식이다. 뚝바가 나올 때 까지 여기저기 식당을 둘러보는데 대형 파라볼라(접시형) 안테나 위에 누군가 주전자를 올려놓은것이 보인다.

식당의 삽살개를 닮은 강아지와 안테나(?)

  흥미가 생겨 가까이 가보니, 안테나가 아니었다. 태양 집열판이라고 해야 하나? 태양열을 이용하여 물을 끓이는 기구였다. 그런데 저걸로 끓이려면 하루 종일 걸리겠다.

Ghunsang에서 설산을 배경으로

  다시 설렁설렁 출발. 어느새 목적지 Yak Kharka(4,018m)에 도착했다.(9km) 생각같아서는 더 가고 싶지만 참아야 한다. 여기는 옆 산보다 고도가 높은데 신기하게 눈이 녹아 있었다. 춥지는 않겠구나 생각했으나 큰 착각. 방에는 서늘한 냉기가 가득하고, 아니나다를까 창 밖에는 눈이 얼음이 되어 쌓여있었다.

  4.10. 여덟째 날.

  출발해야 하는데 눈이 내린다. 짜파게티 하나 먹으며 추이를 살펴보니 어쩔 수 없는 듯 하여 길을 재촉했다. 눈은 곧 그치는가 하더니 다시 굵어진다. 3시간 걸어 Thorung Phedi(4,450m)에 도착했다. 다음 마을 High Camp(4,925m)는 500m차이. 전날 잔 Yak Khaka가 4,018m이니. 하루에 900m 올라가는 건 무리가 아닌가 망설였으나 마낭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므로 믿고 가 보기로 했다. 

  마지막 구간은 정말 힘들었다. 아니, 힘들다기보다 숨이 가쁘다. 마치 물 속에서 고개만 내밀고 숨쉬는 기분.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바람과 눈까지 내려 시야 확보도 안되고 상당히 고생스러웠다. 한시간 가량의 사투 끝에 목적지에 도착.(8km) 여기는 트래킹 시작 후 가장 비싼 숙소다. 1인당 140루피(약 1,820원)로 3명을 한 방에 몰아줬다. 하지만 여기는 마을도 아니고, 트레커만을 위해 4,925m에 만든 숙소임을 감안하면 오히려 매우 저렴한 금액이다.

누가 소에 담요를 덮어놨나 했더니 원래 털이었다. 이 녀석의 정체가 야크

  언제부턴가 두통이 느껴진다. 고산병 징후가 두통이라는데 어쩌지? 일단 젖은 옷을 말리려 방에 펼쳐놓고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는데 이불이 얼음같다. 이불 속에서 덜덜떨며 가까스로 잠들었다.

  자고 깼는데도 두통은 여전하고, 뒷목도 당기고 열도 있는 듯 하다. 따뜻한 음식이 생각나서 라면 1개를 먹었다. 민소매티로 시작한 라운딩은 이미 내복에 내피까지 껴 입어도 추운 날씨로 변해있다. 내복과 내피, 양말까지 착용 가능한 것은 모조리 껴 입고 침낭에 이불까지 덮고 잠을 청했다. 

  4.11. 아홉째 날

  먼 길을 위해 04:00에 기상. 여전히 머리가 아프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눈이 그쳤고, 맑다. 무엇보다 전날보다 덜 추워서 좋다. 이불이 침대밑에 떨어져 있었는데도 잘 잔 것을 보니 확실히 덜 추운것 같다.

High Camp에서 바라보는 일출아랫마을 Thorung Pedi를 내려다보며

  나는 어릴 때는 자다가 더우면 이불을 걷어 차 버리고는 추워서 웅크리고 잤다. 보다 못한 어머니께서는 아기 때 쓰던 포대기를 원통형으로 말아 바느질하시고 어깨 끈까지 달아서 전용 이불을 만들어주셨다. 어느샌가 습관은 바뀐 것 같지만 기숙사와 군 생활, 여행다니는 지금까지도 어릴 때 처럼 침낭에 들어가서 잠을 자고 있으니 신기한 일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파란 하늘과 새하얀 땅.이제는 멀어진 High Camp

  어쨌든 토룽 라를 위해 준비한 날씨인것 같다. 하지만 전날 내린 눈이 쌓여있는 길은 쉽지 않았다. 운동화는 눈에 파묻혀서 젖어버렸고 미끄럽다. 숨이 가빠서 속도를 내기도 힘들다.

눈에 달린 고드름을 본 적 있는 사람?한없이 부드러워 보이는 눈눈이 얇게 쌓인 바닥은 바람의 영향으로 마치 갯벌처럼 보인다.

  몇 개의 언덕을 넘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였다. 마침내 토룽 라 5,416 고지에 도착한 것이다. 주위에는 눈이 1미터 이상 쌓여 표지판이 파묻혀 있었다. 

4월에 이정도이면 한겨울에는 대체 어떨까?내 능력으로는 감히 설명할 수 없는 풍경지금 나는 구름속에 있다이빨사진? 너무 추워서 상의탈의는 생각도 못한다.

  눈 위에 글자를 써 보기도 하고, 아예 드러누워 보기도 하며 토룽 라에서 한시간 가량 머무른 것 같다. 아쉽지만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눈에 새긴 대한민국, 국립목포해양대학교, 대한민국해병대설인과 함께 눈속에 파묻혀서

  그나마 올라오는 길은 수월했으나 내려가는 길은 악몽같았다. 몇번이나 멈추고 싶을 정도. 내리막에 전날 내린 눈까지 더해져서 미끄러웠고, 서쪽이라 그런지 눈길은 끝날줄 모른다.

  수차례 미끄러지며 겨우 Charabu에 도착. 이제야 흙이 보인다. 그런데 눈은 없지만 진흙때문에 힘들다. 그런데 이상한건 두통은 여전하다. 여긴 4,200m밖에 안되는데, 고산병은 200m만 내려가도 효과가 있다고 들었데 왜 이럴까?

  Charabu에서 묵티나트(Muktinath, 3,760m)까지 가는 길은 수월했다. 마침내 대부분 트레커들이 쉬어가는 묵티나트에 도착. 바람은 여전하지만 갑자기 온기가 느껴진다 더 이상 눈도 진흙도 없다.

묵티나트에서 베 짜는 할머니

  신기한건 두통도 사라진 것. 아마 고산병이 아니라 춥다고 움츠러 있어서 머리와 목이 당겼던게 아닐까? 이래서 고어텍스 자켓과 등산화가 필요한 것이었구나. 아직 시간이 이르니 조금 더 가기로 했다.

암모나이트 화석을 팔고 있다. 설마 먼 옛날, 이 높은 산이 바다였었나?

  묵티나스 근처에서 태극기를 봤다. 반가운 마음에 올라가 보니 태극기는 거꾸로 게양되어 있었고, 반으로 잘려 있었다. 무슨 일인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여기서 누군가 죽었을 거라면서 너희 국기냐고 되묻는다.

  박영석 대장처럼 유명한 등산가도 아니었을 것이다. 묘비도, 이름도 없이 위치만 표시되어 있다. 어쩌면 내 또래 아니면 나보다 더 어린, 알바도 하며 한푼두푼 돈을 모아서 소원이었던 트레킹을 하다가 유명을 달리했을지도 모른다. 문득 울컥해지며 나는 살아서 이런 호사를 누리는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매듭을 풀어 태극기를 바로 매달고 잠깐의 묵념 후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부디 좋은곳에서 편안하시길

  언제부터인가 눈에 덮힌 산은 사라졌고 보이는 광경은 황무지같은 황량한 산이다. 설산이 드디어 '생얼'을 드러낸 것인가? 단점은 먼지가 너무 많이 날린다는 것.

크림케익에서 초코케익으로 변한 산

  이제 내 앞에도 나를 뒤따르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모두 묵티나트에서 쉬나보다. 카그베니(Kagbeni, 2,800m)에 도착할 때 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숙소는 대부분 만원이라는 것. 대체 이 사람들은 다 어디서 나타난거지? 한 시간 전에 출발한 사람을 따라잡을 속도로 걸었는데 더 빨리 출발한건가? 아니면 전날 묵티나트에서 카그베니까지 달랑 10km 이동하고 쉬는건가? 모를일이다. 하지만 출발할 때 아마 한 시간만 늑장부렸으면 비 쫄딱 맞을 뻔 했다.

  다행히도 200짜리 숙소에 빈 방이 있다. 여긴 가스샤워가 지원되는, 오랜만에 보는 괜찮은 호텔이다. 가격은 2배이지만 비싼 가격을 하니 그나마 다행이었다.(2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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