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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에미레이트(UAE)

062. 아랍 에미레이트와 다이어트의 진수

  6월 4일. 오만 국경을 넘자 바로앞에 UAE 국경이 보였다. 입국 도장을 받기 위해 마치 고속도로 톨게이트 같이 생긴 입국 사무소로 갔다.

  히잡을 두른 여직원이 앉아 있었는데 도장은 찍어주지 않고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까르르 웃으며 "자전거로 왔냐?", "난 자전거로 국경 넘는건 본적이 없다", "진짜 자전거로 다닐거냐?" 등 끝없이 질문을 해 댄다. 뭐, 이해 못하면 물어 볼 수도 있겠지만, 대체 내 여권을 들고 있으면서 국적과 이름은 왜 물어보는건지? 또 결혼했는지? 여자친구는 왜 안데리고 왔는지? 직업은 뭐냐? 왜 이러고 다니냐? 잠은 어디서 자냐? 등 질문이 끝없이 이어진다.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서 때로는 무례할 수도 있는 부분까지 물어보며, 비웃는 것 같기도 하는 듯한 반응이라서 평소같으면 "네 일이나 똑바로 하라"고 쏘아붙였겠지만, 이 친구, 너무 예쁘게 생겼다. 히잡 사이로 보이는 얼굴은 인기있는 걸그룹의 멤버와 닮았다. 뭐 그러면 다 용서되는 법. 최대한 성의껏 대답해 주고 마침내 입국도장을 받았다.

  드디어 국경을 통과하는데 이번에는 앞에서 지켜보던 보안요원이 잡는다. 남자에게 같은 질문을 받으면서 시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약간 불쾌한 인상으로 대응했는데, 뜻밖에 초소 안으로 잡아끈다. 고생한다면서 물병에 물을 찬 물로 바꿔주고,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까지 덧붙였다.

<물을 채워준 보안요원은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선입견으로 또 고마운 친구를 오해할 뻔 했구나. 반성하면서 고마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현재 위치는 칼바(Khalba)라는 도시로 샤르자(Sharjah) 에미레이트의 통치영역. 처음 입국한것도 샤르자 국제 공항이었는데 두번째 입국도 샤르자를 통하는구나. 통치영역이 동 서로 나눠져 있으므로 통치가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목적지는 동쪽 해변가에 위치한 에미레이트인 푸자이라(Fujairah). 국경에서 약 30km가량 떨어진 곳이다.

  오만과 연결된 끝자락이라서 그런지 전방 좌측에는 UAE에서 보기 힘들었던 산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산을 한번 넘어야 할 듯. 마치 한국처럼 동쪽 호랑이 등뼈 위치에 산맥이 위치한게 재미있어서 이 산은 태백산맥으로 부르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아랍 에미레이트. 저 산은 태백산맥?>

  오만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시가지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훨씬 더 정돈된 느낌이고, 무엇보다 칼바는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해변공원의 모습은 반할 수 밖에 없었다.

<잘 정비된 해안도로><칼바의 한 모스크>

  기분좋게 해변 드라이브를 즐기며 칼바를 지나 푸자이라도 향했다.

<칼바의 도로 모습>

  아랍 에미레이트에서도 동부와 서부의 분위기는 매우 달랐다. 두바이나 아부다비처럼 화려고 부유한 모습도 아니고, 알 아인(Al Ain)과 같은 사막의 오아시스도 아닌, 해변을 낀 평화로운 도시였다. 

<푸자이라의 도로>

  칼바도, 푸자이라에서도 해변은 정말 아름다웠다. 하지만 너무너무 더웠다. 여름이 다가오면서인지, 아니면 위치 자체가 원래 더 더운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길 다니기 힘들어서 해변 어시장 근처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대전엑스포에서 본 듯한, 신기한 모습의 모스크>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시 앉아있다 보니 어느 새 눕게 되었고, 눈을 떠보니 두시간 가까이 지났다. "이거 야단났다. 잠시 쉴 생각이라 자전거는 잠궈놓지도 않았고, 반쯤 열려있는 핸들바 가방에 여권, 지갑, 카메라, 핸드폰 등 중요한 물건이 다 들어 있는데……."

  당황하여 짐을 다 확인했는데 거짓말처럼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근처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었는데. 아무튼 긴장의 끈을 놓아버린 나에 대해 반성하며, 또, 이 나라 사람들의 정직함에 놀라고 감사하며 다시 길을 나선다.

  먼저 들어간 곳은 푸자이라 뮤지엄.

<전혀 박물관같지 않은 입구>

  푸자이라 뮤지엄은 생각보다 조촐한 규모였고, 전시는 고고학 유물관 + 푸자이라 문화가 소개된 방 두개로 구성되어있었다. 뭔가 너무 잡다하다는 느낌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푸자이라의 모든 문화를 소개했다는 느낌도 있지만, 무엇보다 좋았던건 다름아닌 시원한 에어컨이었다.

<고고학적 발견물은 물론><심지어는 전통 응접실 전체, 배 모형까지 전시되어있다>

  이후에는 푸자이라 포트와 시가지 구경을 했다.

<푸자이라 포트의 모습>

  푸자이라의 인상은 다른 에미레이트에 비해 훨씬 소박하다는 느낌과, 개발이 덜 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자가 짧은 기간에도 각 에미레이트 간의 소득 격차나, 개발 수준의 차이를 현저하게 느낄 정도이니 역시 연합국을 통치하기는 쉽지 않을 일인것 같다. 아랍 에미레이트에서는 어디서나 에미레이트 국기가 휘날리고, 대통령과, 각 에미레이트 지도자의 초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이것은 자발적인 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다는 어쩌면 공통점 만큼이나 차이점도 많은 각 에미레이트를 하나로 묶어두기 위한 방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직 공사중인 모스크><마치 장난감인 듯 비현실적이던 모습>

  다시 숙소를 찾을시간. 아침의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산자락 근처를 헤메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말 기가막힌 곳을 발견했다. 바로 푸자이라 시티센터 근처의 폐차된 2층버스.

<이곳은 최고의 숙소>

  겉보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쉬어가기 최적의 장소였다. 굳이 텐트치지 않아도 되고, 또, 처음 만난 버스호텔을 제대로 즐기기 위해 샤워는 2층에서 잠은 1층에서~ 이렇게 푸자이라의 하루가 저물었다.(주행거리 77.77km, 누적거리 4,586km)

<버스호텔의 내부>

  푹 쉬고 있어나 더위를 피해 쇼핑몰로 들어갔다. 바로 푸자이라 시티센터

<푸자이라 올드 타운><푸자이라 시티센터의 야경>

  시원한 시티센터 내에서 밥도 먹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시원해 질 때까지 기다렸다.

  한 건강보조식품점에는 무료로 체성분측정을 해주길래 시도해 봤는데.. 바지 입을때나, 허리가방이 남는것으로 보아 살이 많이 빠졌다고는 생각했는데, 이럴수가.

  분석지에 의하면, 체중은 10kg나 줄어 있었지만, 그래도 5kg정도 추가 감량을 권하고 있었다. 뼈만 남으라는건가? 보통 다이어트 하면 체지방을 줄이는 것을 생각할 텐데 재미있게도 이번 분석지는 오히려 체지방을 1.2kg정도 늘리라는 권고.

  대신 S.L.M.(Soft Lean Mass)를 6.1kg정도 줄이라고 한다.

<이상한 체성분 분석 기록지>

  실제로 분석지 좌측 상단에 보면 체중과 B.M.I.(Body Mass Index)는 Optimal 범위 내에서 과한 편이지만 P.B.F(Percent Body Fat)는 Under에, S.L.M.은 Over에 위치하고 있다.

  살다살다 근육을 줄이고 지방을 늘리라는 이런 이상한 분석은 처음 받아본다. 자전거 타기가 다이어트에 상당한 도움이 되는 듯 하다. 어쨌든 살을 좀 더 찌워야겠다. 

  최종 분석은 You have the best recommendable body type. therefore please maintain present body condition.(넌 최고의 추천할만한만 몸상태이므로 현 상태를 유지해라) 유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준비. 

  그런데 작은 사고가 발생했다. 안장을 조금만 낮추고 가려고 렌치를 돌리는데 시트 포스트 클램프(안장을 연결하는 고리형 부품)의 볼트가 끊어져버렸다. 세상에 이게 말이 되나?

<끊어져 버린 볼트>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기분이다. 안장 없는 자전거를 타고 100km을 갈 수도 없고, 이를 어쩐다. 물론 예비 볼트는 있었지만, 나사 산 사이에 꽉 끼어있는 부러진 볼트 토막을 꺼낼 수가 없으니 무용지물이었다.

  펜치가 있으면 뽑아낼 수 있을 듯 한데……. 괜히 안장을 건드렸다고 자책하며 운전자들을 잡고 혹시 OVM 공구가 있는지 물어보았으나 모두 없다고 한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마침 옆에 잠깐 담배피우러 나온 패스트푸드점 직원에게 펜치가 있는가 물어봤다. 못 알아들은건지, 역시나 신통찮은 반응을 보였다. 당연하지. 패스트푸드점에 펜치가 있을리 있나. 그런데 잠시 후, 놀랍게도 그가 공구통을 들고 나온것이다.

<대체 음식점에 왜 공구통이 있었을까?>

  갖은 시도 끝에 니퍼를 이용하여 간신히 부러진 볼트끝을 빼 낼 수 있었다. 또 문제가 생길까봐 WD-40을 듬뿍 뿌리고 새 볼트를 이용하여 안장을 조립. Wing은 다시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이윽고 뚜르 드 아라비아의 마지막 목적지, 두바이(Dubai)를 향하여 출발한다. 자칭 태백산맥을 넘어 두바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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