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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에미레이트(UAE)

063.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갑작스레 발생한 볼트 파손으로 인해 출발이 늦어졌다. 오늘도 별을 보며 달려야 한다. 뭐. 가로등 설치만 잘 되어 있으면 차라리 야간 주행이 더 쾌적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예상대로 산이 나타났다. 지도를 봐서 알고 있었지만, 아는것과 직접 넘는것은 다르다. UAE의 태백산맥과 씨름하기를 두 시간여. 마침내 정상이 나타났다.

<이게 UAE의 태백산맥 자락>

  근처에 공터가 있기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밤이라 뜨겁지도 않고, 오히려 바람이 많이 불어 시원한 곳이었다. 마지막 남은 라면을 끓이고, 인도에서 산 커피가 한봉지 남았길래 커피까지. 그리고, 달궈진 버너가 식을 때 까지 잠시 눈을 붙이고 가기로 했다.

<100km 전방에 두바이>

  시계를 보니 새벽 4시. 잠시라고 계획했던 시간은 어느 새 4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카페인을 섭취하고도 등만 붙이면 자는건 대체 무슨 조화인지 모를 일이다. 주섬주섬 짐을 정리하고, 자칭 뚜르 드 아라비아(le Tour de Arabia) 마지막 목적지. 두바이로 출발한다. 이제 남은 거리는 약 80여 km. 잘 포장된 도로는 내리막길이고, 지나가는 차는 전혀 없다. 덥지도 않고 주행하기 최적의 조건이다. 해 뜨기 전까지 두바이에 도착할 듯 하다. 

  약 한달간의 아라비아 자전거 여행. 이 넓은 대륙을 제대로 알기에는 턱도 없이 짧은 시간이고, 반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발도 붙이지 못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UAE 사이에는 Empty Quarter라는 거대한 사막이 있고, 그나마 도시가 형성된 일부만 돌아다녔으니까.

<북두칠성 모양의 뚜르 드 아라비아 경로>

  그래도 두바이(Dubai)-아부다비(Abu Dhabi)-알 아인(Al Ain)-부라이미(Buraimi)-소하르(Sohar)-무스카트(Muscat)-푸자이라(Fujairah). 7개 도시를 북두칠성 모양으로 돌면서 그 어느 곳보다 고생도 많이 했고 기억에도 많이 남을 듯 하다. 특히 저렴한 숙소를 구하지 못해 시작된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숙박비를 한 푼도 쓰지 않겠다."는 이상한 계획 아래, 그나마 합리적인 가격의 무스카트(무트라 지역 약 4만원)와 푸자이라(유스호스텔 도미토리 약 15,000원)에서도 숙소를 잡지 않으면서 커피숍이나 쇼핑몰 화장실에서 빨래하고, PET병으로 샤워. 심지어는 화장실의 뒷처리용 샤워기로 씼고, 땀띠로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등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것 같다.

<아부다비에서 만난 네팔 노동자들. 네팔을 다녀왔다고 하니 더 반갑게 맞아줬다>

  불법 체류자 취급도 당하고, 한 달 30만원 가량 버는 노동자들에게 노잣돈을 받을 뻔 하질 않나, 더워서 텐트조차 치지 못하고, 벤치, 바위 틈, 해변에서 먹고 자면서, 대체 거지와 나의 차이가 뭘까? 생각했다. 답은 아마, 그래도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 내가 진정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일까?

<무료로 식수를 공급해준 UAE의 음수대>

  삶의 의미를 찾아보겠다고 시작한 여행. 편도 티켓을 사면서 구체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벌써 처음 귀국 목표였던 6월이다. 그 동안 나는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고생하고 철 들려고 했지만 과연 그러한가?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 부모님 몰래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고 다시 준비한 수능시험부터 국립목포해양대학교에 입학하여 학업, 동아리활동, 운동, 아르바이트 등 여러마리의 토끼를 쫒으면서 나름대로 성과도 있었다. 국립목포해양대학교 생활은 내 삶을 바꾼 계기였으며 지금까지 삶의 원동력이 되었으니까.

  자신도 있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군 입대 후에도 가끔 속칭 '꼰티'를 낼 때도 있었지만, 열심히 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고, 심지어는 제대로 걷지조차 못할 환경에 처해버리지 않았나?

  군 입대를 준비했던 대학생활은 전역과 동시에 모두 부정되었다. 대학 생활로 얻은 것도 많았지만 '최첨단'이라는 학문은 약 7년간의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것이 달라져 있었다. 차라리 이 시간과 비용으로 대학원을 다닐 것을 그랬나?

  삶의 의미를 찾으면서 필연적으로 종교와 연관될 수 밖에 없었다. 2,500년 전, 석가모니가 품었던 질문을 서른 셋에 다시 하게 되었다. 인도에서 뭔가 깨달음을 줄 것 같았던 힌두교는 많은 힌두인들의 삶을 보면서 오히려 흥미가 없어졌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라는 책을 들어본 것 같은데, 오히려 '힌두교가 죽어야 인도가 산다'는 결론을 내렸다.

<가네샤. 넌 내가 찾던 길이 아니야>

  인도에서 정직하고 부지런한 시크교에 관심을 두었으나, 그들은 식사를 대접하고 여행자를 재워주는 등 자선은 베풀지만 적어도 나에게 포교하기 위한 노력은 없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서도 호랑이를 보지 못했다.

<음식은 고마웠지만 당신들도~>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 초전법륜지 사르나트 등에서 사원도 찾아다니고, 스님께 좋은 말씀도 들었지만, 그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된다'는 교리는 '나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좌절을 겪은 후에 큰 위안을 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접했던 교회는 의문점도 많았고, 어떤 체험도 없었다. 오히려 독실한 신자라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 큰 실망만 돌아왔을 뿐이고, 믿는다면 정통 교회. 개신교의 뿌리가 되는 천주교에 관심이 갔으나 천주교 역시 몇가지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대리인(신부)을 겨쳐 죄 사함을 받는 고해성사라는 시스템이나 심지어는 사생아를 갖고 있던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이나, 불충분한 이유로 스스로 사퇴한 최근의 베네틱토 16세 까지 투표로 뽑는 신의 대리인 교황 등의 존재도 의구심이 드게 사실이었다.

  역사가 짧아서인지 모순이 없어보이고 교리가 깔끔한 이슬람에도 관심을 가져봤으나 결국 드는 생각은 기독교의 구약을 기반으로 취사선택하여 잘 다듬었다는 느낌일 뿐이었다. 특히 짐 진 자가 타인의 짐을 대신할 수 없다는 이슬람은 내 해답이 아니었다.

<머리까지 땅에 대는 이슬람식 기도>

  여행중에 수많은 좋은 사람과 좋은 기회를 만났다. 힘들면 그곳이 어느 곳이던 내가 쉴 곳이 나왔고, 먹을 것이 있으며 도움의 손길이 나타났다. 아파서 쓰러졌을때는 의사에게 데려간 친구도 있었다. 가로등도 없고, 도로조차 정비되지 않은 인도의 시골길에서는 오토바이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내 길을 밝혀주었고, 심지어는 에스코트 해주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호기심 때문이었겠지만, 나에게는 너무나 고마운 등불이었다. 교통사고를 수차례 목격했지만, 그 험한 인도의 길에서도 넘어진 일 조차 없었고, 자칭 '건달'이라고(힌디어 '다꾸 다꾸 해') 주장하던 사람, 질이 좋지않은 사람과의 만남조차 험한 일 없이 넘어갔다.

  한 두번은 우연이었다. 하지만 이런 우연이 계속해서 발생할 확률은 얼마일까? 내가 다닌 길이 조금 힘들지만, 자전거로 혼자 다닐 만 한 길이라고 누군가에게 권할 수 있을까?

  인도 중부지방부터 누군가 나를 강하게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가 하나님이던, 알라이던, 인도까지 와서 헤메는것을 가엽게 여긴 시바이건, 부처님이건. 그러나 그 존재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연스레 절대자-신-진리를 찾고 싶었다.

  자전거 안장 위에서 그 간의 삶과 여행길을 되돌아보자 울고 싶은 기분이다. 이룬 것도 얻은 것도 없이 사막 중턱에서 혼자 헤메고 있구나.

  탄식은 어느샌가 외침으로 변하고 절규로 변했다. 노력했으나 내 뜻대로 되지 않았던 주변 상황에 대한 호소였다. 그리고 형식은 이상했지만 기도 아니 신에 대한 항의였다.

  자전거 위에서 소리치며 달리는 여행자. 누가 봐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지만, 만난 사람도 없었다. 어느 새 날이 밝아오고 있었고 익숙한 두바이의 풍경이 나타났다. 잘 뻗은 내리막길을 달려서인지 속도계의 최고속도는 70km/h가 찍혀 있었으며 주위를 보니, 도로의 파손된 부분도 제법 있었다. 이런 위험한 길에서 집중하지 않고 달렸다니 순간 오싹해졌다.

<모래기반의 도로 가장자리는 자주 패어있었다.>

  마침내 116.06km(누적거리 4,702km)을 달려 김선용 목사님댁에 돌아왔다. 6월 6일 현충일. 3주간의 아라비아 여행이 끝난것이다. 맡겨둔 짐을 찾고 인사드리러 갔다. 여전히 사모님은 한국에 계셔서 방은 비어있는 상태. 게다가 누군가 빈 방을 채워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는 목사님.

  목사님과 상의 후 조금 더 머물기로 했다. 목사님 댁에 머물면서 성경을 읽어보기로 했다. 성경을 읽기로 한 생각은 진리에 대한 목마름도 있었지만, 나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목사님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이 더 큰 이유였다.

<오랜기간 체류했던 두바이 KM센터>

  그런데, 한 일주일이면 대충 읽겠지 하며 시작한 성경은 생각보다 더 읽히지 않았다. 분명 훑고 지나간 부분인데 이게 무슨소린지, 다시 앞으로 돌아가길 반복하며 목사님 퇴근 후에는 질문도 많이 했다. 물론 질문 내용은 의구심과 반 기독교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으나 목사님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다.

  그러면서 한 달 반이 훌쩍 지나버렸다. 누군지도 모를 나를 위해 방을 내어주시고, 무례한 질문까지 대답해 주시면서. 심지어는 기간 중 열흘 정도는 출장으로 집을 비우기까지 하시며 나를 믿어주셨다. 처음에는 '목사'라는 직책의 권위에 의해 매우 어렵게 생각했는데, 함께 운동하고, 식사하면서 또 본인의 인간적인 약점에 대해서까지 말씀해주신 목사님을 보면서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여러 이유로 머나먼 이곳의 열악한 상황하에서 믿음을 지켜가는 두바이 한인교회의 청년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에서 교회에 대해 가졌던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두바이 한인교회 Al Barsha 성전>

  또, 교회 청년들과 오만의 무산담(Musandam)으로 여행을 다녀오며(자동차 이용) 그 동안 내 삶의 중심이며 인간관계의 촉매였던 술 없이도 정말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오만에 다시 다녀오면서 UAE 체류기간이 다시 한 달 연장되었다), 바쁜 중에도 자신의 휴가시간, 비용을 투자하여 케냐로 아웃리치를 다녀오는 모습을 보며 또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되었다.

<차창 밖 무산담 가는 길>

  군 후배인 김태형 형님은 내가 인도에서 체류하던 2월의 어느 날, 느닷없이 카카오 톡을 이용하여 복음설교를 듵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매주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그때는 '힌두교 판에서 설교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면서 웃어넘겼다. 이 형님은 다 좋은 데 자꾸 교회와 연관시켜서 가끔 피곤하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몇달 후 실제로 이슬람 판에서 복음설교를 듣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이 경로가 그냥 우연일까? 뭔가 깨닫겠다며 각종 종교의 사원을 찾아다녔고 만족하지 못했는데, 아무 기대없이 온 교회는 열려 있었다. 나의 모든 걸음은 누군가가 보호해 주고 있었다. 이곳은 계획없이 온 곳이었으며, 심지어는 이슬람 국가인 아랍 에미레이트이다.

<어디를 둘러봐도 모스크. 처음에는 초승달을 스패너로 생각하고 공구상인줄 알았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이제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기독교에 가장 동의할 수 없었던 부분. '나는 죄인이다', '내 삶의 주인은 예수님이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이건 내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닌가?

  하지만, 죄의 의미가 살인, 강도, 절도 등 강력 범죄가 아닌, '하나님과 멀어진 상태' 라는데는 큰 거부감 없이 동의할 수 있었고, 이번 여행 중에도, 군 생활 중에도 삶과 죽음의 경계가 한 끗 차이로 달라지는 모습을 봐 오면서 또 삶의 허무함에 대해 고민하면서 결국은 나의 삶의 키를 포기한다는데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슬람의 본거지. 현지 복장 구트라(Ghutrah)라는 보자기를 쓰고>

  그리고 지금. 나는 여전히 기독교인이라고 말하기에는 떳떳하지 못하게 지내고 있다. 또, 향후 진로 등 많은 어려움도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내가 기독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예전에 즐거워했던 유흥에도 여전히 관심이 남아있고, 좋은 지도자가 없하면 금세 원위치 되는 상태이다. 교리 일부분에 의문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친구. 심지어는 처음 만난 호텔 직원을 믿고도 중요한 여권을 맡기기도 한다. 그에 대해 아는건 호텔에서 일한다는 것 뿐인데. 하나님에 대해 다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의 작은 경험과 또 내 결심에 대한 준수의 의미에서라도 이제는 제대로 믿어 보기로 했다. 귀국하면 교회를 찾아가고 제대로 신앙 생활을 해 볼 생각이다.

  이번 여행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과연 내가 찾고자 하는 길을 찾았는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이 먼 아랍 에미레이트에까지 돌고 돌아 와서 이제서야 내가 돌아갈 곳을 찾은 기분이다.


-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 잠언 16:9

-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이사야 43:1~3 


  이걸로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이 글을 빌어 신철범 목사님, 김선용 목사님, 이종찬 목사님, 김경원 목사님, 김상욱 전도사님과 최문환 씨, 서형일 씨, 손영 씨, 함지선 씨, 이은숙 씨, 박지선 씨, 신재환 씨, 김미정 씨 등 모든 두바이 한인교회 가족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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