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머물렀던 두바이를 떠날 시간이다.
최초 계획한 여행 종료시점이었던 6월도 지났고, 삶의 의미를 다시 찾는다는 목적도 어느정도 달성한 것 같다. 하지만, 자전거여행이 즐거웠던 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았고 이런 여행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귀국과 여행지속을 저울질한 끝에 약 3개월가량 여행을 더 하기로 했다.
<두바이 몰 분수대의 야경>
UAE에서 출발하는 저렴한 항공편은 많고, 가보고 싶은 곳도 많지만, 육로로 아시아 대륙을 가로지르겠다는 계획은 파키스탄과 이란 비자를 받지 못하면서 무산되었고, 이집트에 가고 싶지만 주위에는 리비아, 시리아, 이라크 등 여권사용 제한국가들이 포진하고 있어서 비행기를 한 번 더 타야 한다는 부담에 결국 포기했다. 이집트-그리스 페리만 있었어도 좋았을 텐데…….
결국 터키 이스탄불로 바로 날아가기로 했다. 다행히 출발 직전에 발권했음에도 라마단 기간이라 그런지 공석이 많아 최저가 수준으로 티켓을 구입할 수 있었다.
<이동 경로. 다음은 터키로~>
그리고 7.16. 마침내 김선용 목사님 댁을 떠났다. 목사님께 많은 신세를 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해 드릴 수 있는게 없다는 생각에, 머물렀던 방을 열심히 청소하고 나왔다.
바로 공항으로 갔으면 편할텐데, 한동안 머물렀던 오픈 비치의 노숙이 생각나서 마지막 하루를 더 노숙하기로 했다. 아주 이상하고 쓸데없는 결정을 하는데는 선수다.
<좀비를 보면 빗당겨치기를 하라!???>
그런데 그 새 오픈 비치의 상황은 많이 변해 있었다. 7월 중순의 아라비아 반도는 너무너무 더웠다. 더위에 잠을 설치다 결국 새벽 3시에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바닷물도 목욕탕 온탕 수준이고, 온수가 나오던 샤워장은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있었다. 단지 태양열로 물이 이렇게 가열되다니.
하지만 이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두바이 몰의 세계 최대 분수쇼>
7.17. 제헌절. 에어 아라비아의 터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샤르자 공항으로 향했다. 한낮의 기온은 50도에 이른다. 낮시간의 UAE는 너무너무 더웠다. 준비했던 2ℓ의 물은 순식간에 소진되고, 줄줄 흐르는 땀과, 갈증은 피로를 증폭시켰다. 결국 샤르자 공항을 약 20km가량 앞두고 E311 도로를 빠져나와 길가의 한 가게에 갔으나 라마단이라고 해 질때 까지 기다리라면서 물을 팔지 않았다.
같은 UAE이지만, 두바이와 샤르자는 라마단에 대한 태도가 다른 것 같다. 두바이에서는 음성적으로 영업하던 가게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라마단 기간에 가림막을 치고 운영하던 힐튼 호텔>
내가 듣기로는 임산부, 체력 저조자, 여행자 등 라마단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은 라마단 적용 예외로 알고 있는데, 거의 쓰러져가는 사람을 앞에 두고 물을 팔지 않다니…….
알라신의 지시라기에는 너무 가혹한 지시다. 결국 사정사정해서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서 마시기로 하고 겨우 구입할 수 있었다. 더위에 지친 나머지 생수 1.5ℓ를 단숨에 들이키고 음료수까지 2캔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출발.
<두바이 몰 앞의 Wing>
운동중에 물을 많이 마시면 안된다는것은 알고 있었는데. 이건 정말 실수였다.
전해질 불균형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 후 쥐가 나기 시작했다. 좌 우측 종아리와 허벅지.
종아리에 쥐가 나면 무릎을 쭉 펴고, 허벅지는 무릎을 구부리면 된다. 근육을 쭉 늘여주면 되는데 두 곳에 동시에 쥐가 나니 풀 방법이 없었다. 무릎을 구부릴 수 없을 정도의 강력한 근육 경련이었다.
통증을 참으며 겨우겨우 자전거를 타고 샤르자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주행거리는 46.75km밖에 안되지만 두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너무너무 힘든 길이었다.(누적거리 4,880km)
<마침내 완주해냈다. 웃고 있었지만 매우 괴로웠던 상황>
다행히 공항 직원은 시원한 공항 청사 내부로 자전거 반입을 허락했고,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전거를 분해하여 탑승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아랍 에미레이트에서의 생활은 세계에 대한 이해를 한층 넓혀주었다. UAE의 첫인상은 초 고가의 호텔 뿐이었다. 출장 온 직장인이나 신혼 여행자들에게는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배낭여행을 다니기에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서울 2호선을 연상시키는 지상의 두바이 메트로>
반면 생활물가는 의외로 저렴한 편이었다. 대부분 공산품과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비싸지 않아 고급 레스토랑을 찾아다니지 않거나, 직접 조리한다면 생활비는 낮출 수 있다. 1.5ℓ물 한 병에 300원(AED 1) 정도이니 생활비의 부담은 적은 편이다.
<맥 아라비아는 약 6,000원>
또, 사람 살기 힘든 기온과 척박한 땅을 가졌지만 돈만 있으면 매우 쾌적하게 살 수 있는 곳이다. 사막 위의 신기루 같은 나라라고 할까? 아무튼 신기한 곳이다.
7개 에미레이트의 연합체이지만, 각 국의 경제력 차이는 큰 편이다. 게다가 외국인이 90%에 달하는 나라이다. 아마 세습되는 지도층의 권위를 유지하는 수단도 필요할 것이고, 상황이 다른 국가 연합을 유지하려면 엄청난 정치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디서나 에미레이트 국기가 휘날리고 대통령과 각 국의 셰이크 사진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국가질서 유지를 위해 매우 엄중하게 법 집행을 한다. 신호위반 벌금이 AED 600(약 18만원)이라고 적힌 표지판도 봤고 심지어는 차를 압류하기도 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푸자이라처럼 석유가 거의 나지 않는 에미레이트도 있고, 두바이처럼 외자 유치와 금융업,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초대형 토건 사업으로 이어진 부동산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곳도 있다. 이슬람에서는 이자놀음을 금지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금융업과 부동산 사업이 활성화된게 아이러니다. 국민소득이 4만 5천달러에 이르지만 3D 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가혹하며 임금 수준도 형편없다고 밖에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침내 바이크 샵을 찾아 뒷 스포크 32개를 모두 교체했다>
살인적인 무더위에 근로자들의 죽음이 계속되자 낮 시간에 과한 육체노동을 할 수 없게 하는 법을 제정한것도 최근이라고 한다. 다행히 한국인들은 대부분 실내에서 일하는 전문 사무직이거나 관리자급 이상으로 일하고 있어 뿌듯하기도 하고 덜 위험할 듯 하다. 하지만 한국인이 이만큼 인정받는건, 어려운 환경에서 성실하게 일해 온 부모님 세대의 노력 때문일 것이다. 70~80년대에는 근로조건도 훨씬 열악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육체노동을 전담하는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노동자에 비해 한국은 상대적으로 추운 만큼 기후에 적응도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어디서나 노동량과 성실함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한국의 기술로 지은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칼리파>
에미레이트는 이슬람 국가이다. 어디서나 모스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모스크 수용 가능인원이 아마 인구 수 보다 많을 것이다. 이슬람 국가이니만큼 라마단도 준수한다. 라마단은 이슬람력 9월로 해가 떠 있는 동안 금식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약자를 생각한다고 한다. 취지는 좋은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많이 변질된 느낌이다. 상업이 활성화 된 두바이에서는 라마단 전 후로 쇼핑몰에 세일이 이어지고, 낮에는 배고픈 운전자들이 과속하면서 교통사고가 늘고, 낮에 못먹은 것을 만회하듯 밤에 과식으로 이어져서 라마단 후에 오히려 살이 찐다고 하니 최초 의도와 많이 벗어나지 않았는가? 하긴 더워서 운동량도 거의 없는 사람들이 야식까지 즐기면 살이 안찌는게 이상하겠지.
<라마단을 맞아 세일이 이어지는 두바이 몰>
한편, 이웃의 사우디 아라비아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는 텍스트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심지어는 침도 삼키지 않기 위해서 손수건으로 계속 침을 닦아낸다고 한다. 바로 옆에 붙은 나라지만 살아가는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언어는 영어 만으로도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없는 곳이었다. 심지어는 아랍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아마 영어는 이주 노동자를 위한 언어이리라.
. 아랍어는 쓸 일이 없으므로 배울 기회도 없었지만, 감사합니다가 슈크란이다. 인도에서는 슈크리아였는데, 어원이 비슷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 영향을 받은 건지도 모를 일이다.
كون طوين. 아랍어로 쓴 내 이름이다. 아랍어는 우에서 좌로 쓴다. 하지만 숫자는 좌에서 우로, 숫자에 붙는 단위는 왼쪽 끝에 붙인다.
외국인이 많아서인지 모든 표지판은 아랍어와 영어가 혼용되어있다. 처음에는 지렁이나 암호처럼 보인 아랍어지만 영어와 대조해서 자꾸 보다보니 ك : [k], ن : [n] 등 몇가지 발음은 눈치로 대충 알게 되었다. 또 아랍어가 특이한건 같은 글자도 붙여 쓰면 모양이 바뀌고 모음이 발달되지 않았다. 일례로, 내 성인 '권'을 쓸 때, k에 해당하는 글자는 ك 이지만, 모음 و와 함께 쓰면 كو 로, S자 비슷한 모양이 된다. 심지어는 글자를 붙여쓰면 처음, 중간, 끝의 위치에 따라 모양이 또 바뀐다. كو의 발음은 [kwo]도, [ko]도 아닌 이상한 발음이다. 아랍판 코카콜라 역시 كو로 시작한다. 배우기 무지 어려운 글임에는 틀림없다. 정확한 통계를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문맹률이 낮지는 않을 것이다.
<아랍어로 씌어진 한국 과자 이름. K, N 음가 확인 가능>
아랍 에미레이트는 마지막 공항행까지 고생의 끝을 보여준 나라였지만, 그 곳에서의 즐거운 기억도 많고, 삶에 중대한 결심을 하게 만든 고마운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누가 자전거 여행을 문의한다면, 특히 한여름에는 절대 피하라고 권할 것이다. 잊지 못할 에미레이트에서의 라이딩 기억과 두바이 한인교회에서의 좋은 만남들을 뒤로 하고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받음으로서 아랍 에미레이트에서의 생활을 마감했다.
<출발 준비 완료. 샤르자 국제공항>
Tip. 공항으로 출국하는 경우 출국세를 요구하지 않지만, 육로 출국의 경우 AED 35를 요구한다. 나는 출국세를 처음 접하면서 거짓말인줄 알고 안내겠다고 버텼더니 면제되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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