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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Bulgaria)

070. 불가리아에 울려퍼진 강남 스타일

  이번 목적지는 불가리아 플로브디프(Plovdiv)였으나 그리스 국경을 넘은데는 이유가 있었다.

  우선 불가리아로 가는 길이나, 그리스를 경유하는 길이 거리차이가 거의 없을 뿐만 아니라, 터키-불가리아 국경은 입국심사가 까다롭다는 말을 들었다. 국경에서 장시간 대기하고 싶지도 않았고,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는 쉥겐(Schengen)국가이다. 유럽에서 쉥겐 조약에 가입한 25개국은 국경 검문소도 폐지했고, 한국인은 최초 입국일로부터 180일 중 90일간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유럽에 오래 머무를 계획은 아니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180일 카운트를 먼저 시작한 것이다.

<단독주택이 많은 Καστανιές시의 모습>

  터키-그리스 국경은 입국절차가 까다롭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면세점이 있는 것. 수차례 국경을 넘었으나 면세점이 있는 육로국경은 처음이라 더욱 신기했다. 물론 쇼핑에 관심이 없었으므로 바로 지나쳤다.

<그리스의 이름모를 강>

  그리스의 첫 느낌은 터키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단지 표지판마다 보이는 그리스 알파벳이 국경을 넘었다는 것을 알려 줄 뿐이다. 국경근처의 작은 마을을 지나자 끝없이 밭이 펼쳐져 있었다. 경치는 참 좋다.

<그리스의 산과 밭>

  그리고, 어느새 불가리아 국경이 나타났다.

  그리스와 불가리아 사이에도 면세점이 있었다. 불가리아는 아직 쉥겐 가입국이 아니므로 아직 검문소가 남아있었다. 물론 대한민국 여권은 바로 통과. 여행을 다니다 보면 한국 여권이 최고다. 대부분 나라와 사증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있어서 비자 수수료 지출도 없고, 입국도 쉽다. 게다가 앞으로 갈 유럽 국가들은 대부분 무비자 체류 가능하다.

<수풀 사이의 철도>

  그나저나 하루에 국경을 두 번 넘는 날도 있구나.

  인도에서 네팔로 가기 위해 약 2개월이 걸렸고, UAE를 지나 오만에서는 입국도장을 받기까지 약 40여 km을 달린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국경을 넘으면서도 큰 감흥도 없었고, 오히려 귀찮은 검문소만 두 번 겪었다는 기분이다.

<하루에 도장 4개 획득>

  불가리아. 과거 오스만 제국의 통치하에 있었고, 냉전시대에는 동구권-사회주의 국가였다. 사회주의가 이 나라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불가리아의 첫인상은 터키-그리스와 비슷하지만 뭔가 더 낙후된 느낌이다. 마을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묘한 분위기다. 도로 상태도 좋지 않고, 뭔가 텅 비어버린듯한 느낌.

<불가리아의 국경마을>
  
이스탄불에서 만난 민수씨에게 받은 불가리아 동전을 이용하여 물은 샀으나 돈도 더 필요하다. 마침내 한 마을에서 환전소를 발견하여 약간 남은 터키리라를 모두 불가리아 레바로 바꾸고, ATM을 이용하여 자금을 보충했다.

<기합빠진 해바라기는 해를 피해 고개숙이고 있다>

  그런데, 불가리아 물가가 제법 비싸다. 동유럽은 저렴하다고 들었는데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단 맥주는 매우 쌌다. 500ml에 약 800원. UAE에서는 기름값이 생수와 비슷했는데, 여기는 맥주값이 생수와 비슷하다.

  조금 더 달려 Любимеч라는 곳 5km 전방의 어느 밭 가운데서 숙영하기로 했다. 그나저나 길에서 보이는 불가리아 알파벳은 도무지 읽을 수가 없다. 러시아어와 비슷한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데 영어 알파벳과 비슷하여 더욱 헷갈린다.

  그러고 보니 도로에서 이렇게 깊숙히 들어온건 처음인듯 하다. 

  대신 주위 가로등이 없고, 차 소리도 안들려 푹 잘 수 있을 듯 하다. 하긴 시끄럽다고 못 잔 적은 없었구나…….

  여기 달도 붉으스름하다. UAE에서의 데자부를 겪는 기분이다.

<불가리아 첫 숙영지의 월출>

  별이 잘 보여서 참 좋았고, 혼자 다닐때처럼 심심하지도 않다. 간단히 식사 후 민규형님과 맥주 한 캔씩을 나누고 잠을 청했다.(8월23일 주행거리 63.49km, 누적거리 5,512km)

  그런데, 여기 일교차가 상당하다. 밤에 제법 춥다. 그동안 침낭 없이 잤는데 침낭을 꺼내야만 했다.

  8월 24일. 불가리아의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짐을 꾸리고 다시 출발.

  얼마나 달렸을까? 가게가 하나 보여 물을 사기 위해 잠시 들렀는데 아주머니가 잡는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언어와 대부분의 수화(?)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동네 주민들도 합세한다.

<불가리아의 한 마을에서>

  신기한건 어딘지도 모를 이 촌구석에서도 '코리아' 하니 '강남 스타일'을 외치는 것. 노래를 틀어주니 모두 신났다. 특히 가만히 보고 계시던 할머니까지 일어나셨고, 손을 들고 덩실덩실 춤추는 모습은 한국과 동일했다.

  할머니는 연세가 83세인데도 정정하셨다. 장수국가는 뭔가 다르구나. 요구르트가 비결일까?

<강남 스타일에 할머니도 신나셨다>

  '나지예' 아주머니는 커피도 타 주셨고, 펜도 하나씩 주셨다. 마침내 아쉬운 작별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불가리아의 도시는 뭐랄까? 오와 열이 맞는다고 할까? 매우 규칙적이고 단정하다. 과거 공산정권 시대 계획도시가 아닐까?

<불가리아 한 마을의 모습>

  실제로 얼마 못가 나타난 공원에는 낫과 망치-소비에트 마크가 있었다.

<공산주의의 상징. 저건 무슨 기념물일까?>

  계속 달리는데 불가리아도 산악국가인가 보다.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꼬불꼬불한 길이 계속 이어진다.

<불가리아 도로>

  정상에는 빈 집이 있어서 햇볕을 피해 잠시 쉬어 갔다.

<산길 정상에서>

  불가리아의 시골 마을 인심은 참 좋은 것 같다. 한 과일장수 아저씨는 0.5레바(약 400원)에 토마토를 한봉지 가득 담아주셨다.

<토마토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약수터에서 물도 보충>

  불가리아의 젊은이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해외로 떠났다고 한다. 현재 인구는 단 700만명. 그래서인지 빈 집도 많이 보인다.

<황량한 마을과 거친 도로>

  이날은 Върбича park라는 공원에서 쉬기로 했다.(주행거리 69.86km, 누적거리 5,581km). 근처에는 수돗가도 있어서 씻을수도 있는 최적의 장소. 지나가는 주민에게 캠핑 가능여부를 물은 후, 나름대로 엄폐물을 찾아 큰 비석 뒤에 텐트를 쳤다. 나중에 보니 무덤 같기도 하다

<대충 엄폐 완료>

  텐트를 치고, 취사를 하려는데 다시 동네 청년들 눈에 띄었다. 뭐라 말을 걸어오길래 또 귀찮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라? 이번에는 예쁜 여자다. 내 여행에 관심갖는 여학생을 처음 만났다. 그런데 알고보니 17세. 이게 어딜 봐서 고등학생이냐?

<불가리아 세븐틴과 함께>

  밥과 국으로 식사 후 간만에 후식으로 커피까지 한 잔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커피 한잔의 여유~>

  8월 25일. 이제 목적지 플로브디프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충 주위를 정리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한참을 달리는데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소리쳐 부르고 있다. 보니 가판대의 과일장수 아주머니다. 밥을 먹었다고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다짜고짜 비닐봉투에 토마토, 자두, 청포도 등을 가득 담아주신다.

  "?? 불가리안 ???????"라고 하시면서.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불가리아의 인심이야'라고 말하시는듯 했다. 감사함의 표시를 하고 돌아섰다. 중식으로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고마운 과일장수 아주머니와>

  그리고 마침내 나타난 플로브디프.

<전방에 플로브디프>

  목적지는 4km Motel이라는 이름의 캠핑장이다. 가이드북에 위치는 나와 있지 않아서, 주인이 같다는 한 호텔에 들렀다. 호텔에서 지도도 주고, 위치도 찍어줬다. "테크노 폴리서"라는 쇼핑몰 건너편에 있다고 한다.

  음. 대략적인 위치는 알겠는데 일단 출발. 얼마 후 한 건물이 보인다. 삼성 간판이 있는. 저게 키릴문자로 테크노 폴리서인가? 길 건너편에는 또 알 수 없는 글자가 적혀 있다. 확실한 건 숫자 4 하나.

<테크노 폴리서와 4km Motel 표지판>

  저기인가 보다. 예상대로 캠핑장이 나왔다. 아, 이런 감이 시험볼때도 나왔으면 나도 공부 잘 했을 텐데!!!

  전기사용, 샤워에 Wi-fi까지 가능한 이곳은 1박에 단 4레바(3,200원). 와! 이정도면 거저다. 캠핑장에 짐을 풀고 플로브디프 생활을 시작했다.(주행거리 65.06km, 누적거리 5,646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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