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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Bulgaria)

071. 쓸쓸하고 아름다운 플로브디프

  캠핑장을 나서 본격적인 플로브디프(Пловдив) 구경을 시작했다. 플로브디프는 불가리아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이며 오래된 도시이다.

<7성급 텐트 알 아랍은 2성 방갈로 캠핑장에서 등급 하락>

  기원전 5,000경 유몰피아스(Eumolpias)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어 BC342년에는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Philip II)가 점령하면서 필리포폴리스(Philipopolis)라는 군사도시를 건설했는데, 이게 플로브디프의 원형이라고 한다. 필리포스 2세는 저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의 아버지이다.

  하지만 플로브디프의 첫인상은 황량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었다. 길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었고, 거리에는 폐허에 가까워 보이는 빈 집들이 널려 있었다. 같이 있던 민규 형님은 유령도시라고까지 표현 할 정도였다.

<플로브디프의 거리>

  조금은 실망스러운 마음을 억누르며 플로브디프 올드 타운을 향해 나섰다. 먼저 나를 맞은 것은 오데이온(Odeon).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인데, 주변의 부지 터만 복원되어 있었으며, 주위는 차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오데이온 터의 모습>

  그나마 극장 자체는 원형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관중석과 무대>

  고대 로마제국의 유물을 여기서까지 볼 수 있는것이 흥미로웠으나 오데이온 자체는 큰 흥미가 없었다.

  올드타운 중심부로 들어가니 분수가 반기고 있었다. 여기에 오니 도시의 을씨년스럽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많고, 특히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이 많았다.

<올드타운의 한 분수대>

  이런 광경은 그동안 터키에서까지는 볼 수 없었기에 비로소 새로운 문명권에 들어왔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아. 드디어 동유럽에 왔구나!

<이제 본격적인 동유럽의 느낌이 나는 거리>

  동유럽풍 거리를 걷기 시작하니 지하에 뭔가가 있다. 돌덩이 같은데 뭐지?

  가까이 가 보니, 로마시대의 경기장이었다. AD 2세기에 건축된 이 경기장은 오랜 시간 지하에 묻혀있다가 최근에 발굴되었으며, 길이 240m에 3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전차경기장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관중석 일부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나저나 고대 유물은 왜 꼭 땅을 파야 나올까? 지진? 산사태? 화산폭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땅 속에 파묻혀 버렸는지 신기할 뿐이다. 하지만 땅 속의 고대 경기장은 나름대로 주위 분위기와 어울렸다.

  근처에는 이슬람의 모스크도 있었다. 역시 UAE나, 터키식 모스크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사실 첨탑과 어렴풋이 보이는 돔, 그리고 지도가 아니었으면 모스크라고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부는 특별할 것이 없이, 다른 모스크와 대동소이했다. 유럽에 넘어오면서 대부분 공중화장실이 유료였는데, 이 곳은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었다. 사실 급한 용무해결용이 아니라, 사원 들어가기 전 얼굴과 손발을 씻고, 청결하게 하기 위한 시설이리라.

  플로브디프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것은 카지노였다. 이곳에서는 카지노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고, 호텔에도 많았지만, 주택가 사이사이에도 소규모 카지노가 있었다.

  과거 공산정권이 사행성 카지노를 허락했을 것 같지는 않고, 관광객의 주머니를 노리기 위해 설치한 것일까? 하지만, 관광객에게 흥미를 끌기에는 너무 작은, 동네 오락실같은 소규모 카지노도 많았다.

<오락실같은 카지노들>

  다음 목적지는 Svesti Konstantin & Elena Church. 4세기에 세워진 이 교회는 플로브디프의 가장 오래된 교회이며 기독교 공인과 거의 발맞추어 건축되었다. 특히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와 그 어머니 엘레나(Svesti Helena)에게 헌정된 교회라고 한다.

<구시가지의 거리. 콘스탄틴&엘레나 성당 가는 길>

  그런데 도무지 교회를 찾을 수 가 없었다. 지도상에는 분명히 이 곳이 맞는데? 한참 두리번거리니 성벽 망루같은 곳 위에 조그만 십자가를 볼 수 있었다. 무슨 교회가 이렇지?

  그래도 들어가 보니 근사한 곳이었다. 특히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꿈에서 계시를 받는 모습을 만화처럼 그려놓은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었다.

<콘스탄틴&엘레나 성당과 프레스코>

  한참 교회를 둘러보는데 한 사제님이 나타났다. 그는 낯선 영어발음 덕분에 더 위압감을 주는 목소리로 나에게 어디서 왔냐 등 이것저것을 물었다. 종교에 대해서도 질문하더니 개신교라고 하자 매우 측은해하는 표정으로 '개신교는 한 200년 되었을 것이다. 정교회(Orthodox church)는 2000년이 넘은 정통 교회이다. 만일 정교회에 입문한다면 내가 이 자리에서 세례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는 정교회 성당도 거의 없고, 정교회에 가입해도 유지할 수 없다고 대답하니 매우 안타까워하는 사제님을 보니 정교회에 대한 궁금증이 일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종교이고, 천주교나 개신교와는 뭐가 다를까?

<발코니가 돌출된 형태가 특이한 주택들>

  콘스탄틴&엘레나 성당을 빠져나오니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가이드가 'Free Plovdiv Tour' 표지를 들고 있었길래 나도 합류했다. 하지만 거의 끝나는 시간이었고, 마지막 Nebet Hill을 끝으로 투어 프로그램은 해산했다.

  처음 설명을 다 놓친게 아쉬워서 다음날에는 처음부터 설명을 들었다. 플로브디프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된 유익한 시간이었다. Mel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는 플로브디프를 알리기 위해서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하며, 놀랍게도 고등학생이었다.

  나중에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싶은 꿈을 갖고 있고, 이를 위해 불가리아어, 영어,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자기 고장을 알리기 위해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고등학생때는 뭘 했을까도 돌아보게 되었다. 창피하게도 가치있는 일을 한 기억은 별로 떠오르지 않았다.

  (Tip. 무료 투어는 매일 18:00에 중앙 우체국 앞에서 시작하여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더 자세한 정보는 http://www.freeplovdivtour.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플로브디프의 남북을 가르는 Maritsa river>

  처음에는 황량해 보이던 플로브디프는 찬찬히 살펴보니 고대와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공원에는 체스를 두거나 여유로이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탑골공원과 흡사한 분위기이다.

<체스판이 기본 탑재된 공원 벤치>

  하지만, 청년들은 일자리를 위해 외국으로 빠져나갔다. 많이 배웠다던가 아니면 외국에 친지가 있거나 기회만 되면 외국으로 가고 싶어한다. Mel 역시 독일의 대학 진학이 목표였다. 불가리아에 괜찮은 일자리가 없나 보다. 그러고 보니 아직 대형 공단을 본 기억이 없는 것 같다.

<아름다운 플로브디프 중심가><곡선 기와지붕이 인상적인 한 성당의 담벼락>

  내가 본 불가리아 사람들은 참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플로브디프역시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한 만큼 살기좋은 땅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불가리아 사람들은 왜 고향을 등져야만 할까? 약 30년간 지속된 공산주의의 결과인 것인가?

  유몰피아스에서 그리스 시대 필리포폴리스로 건설되어,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경기장, 극장 등은 그 시대의 영광을 보여주며 아직도 남아있다. Roman Amphitheatre는 2세기 트라야누스(Trajan)황제에 의해 지어진 원형극장으로 6천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도 받았다.

  아,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해결된 궁금증. 왜 콘스탄틴&엘레나 성당은 높은 담으로 가려져 있을까? 이슬람이 국교인 오스만 제국 시대에 성당임을 숨기기 위해 높은 담을 쌓았고, 그 덕분에 아직까지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고대 유몰피아스의 흔적(성채와 돌무더기)이 남아있던 Nebet Hill에서 바라본 석양 역시 장관이었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이었다. 아마 여기서 Mel로부터 들은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오스만 제국의 주력부대였던 예니체리 군단의 대부분이 불가리아에서 납치된 아이였다는 것.

  이슬람으로 개종된 예니체리 군단은 오스만 제국의 핵심이 되지만, 결국은 제국을 흔든 것도 예니체리였다. 심지어는 술탄을 폐위하기도 할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예니체리의 복수라고 할 수 있을까?

<운치있는 골목길>

  어느덧 해는 졌고, 캠핑장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올드타운의 야경 역시 매우 아름다웠다.

  아, 고대 유적은 땅 밑에 묻혀 있기만 한 건 아니다. Amphitheatre는 오히려 언덕 위에 있었다. 도로를 내기 위해서 유적 아래에 터널을 뚫어서 교통과 문화재 보존을 한 번에 해결했다.

<도로에서 올려다 본 Amphitheatre>

  Amphitheatre 주변은 바위 언덕이었는데, 내 눈에는 목포의 노적봉과 비슷하게 보였다.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깃든 목포 노적봉을 닮은 바위 언덕>

  어딘가 쓸쓸하여 더 애잔하고 아름다웠던 플로브디프. 마지막 밤은 슈퍼마켓에서 사온 빵으로 간단하게 마무리 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쉽게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리고, 날이 밝자 짐을 꾸려 다음 목적지 -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향해 출발했다.

<다시 달리는 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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