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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리아(Bulgaria)

072. 소피아. 만남과 헤어짐

  다시 자전거 안장에 올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번 목표는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 소피아는 불가리아의 서쪽에 치우쳐 있는 도시로, 소피아 이후에는 인접한 마케도니아로 갈 계획이었다.

<터널 덕분에 산 하나 쉽게 통과>

  8월 28일. 이날은 92.54km을 달려(누적거리 5,767km) Ихтиман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마을 축제인지 전체가 떠들썩했고,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인도에서 늘 그랬던 것 처럼. 일단 저녁 해결을 위해 가게에서 식빵과 물만 사고 급히 마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어두워진 시간. 천천히 조금씩 전진하다 보니 도로 아래에 공터가 보였고, 여기서 하루 신세지기로 했다.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밤에는 침낭이 필요할 정도다.

<공터에서 하룻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여기도 목초지였다. 양치기가 수많은 양떼를 몰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다시 출발.

  가는 길에는 기차 레일도 자주 보인다. 기찻길은 어딘지 모르게 낭만적이다.

<잘 깔린 기차길>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새 산과 들은 사라지고, 저 멀리 마을의 흔적이 보인다. 소피아에 가까워진 것이다. 그리고, 플로브디프를 떠난지 이틀만에 소피아에 도착했다.(주행거리 55.18km 누적거리 5,823km)

<저 멀리 보이는 소피아>

  소피아 시내에서는 호스텔 모스텔이라는 숙소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스탄불에서 만난 여행자들로부터 많은 추천을 받았기 때문이다.

  가장 저렴한 가격때문에 내무실 느낌이 나는 18인실 도미토리를 사용했는데, 매우 편안한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게다가 조식, 석식까지 제공한다.

<18인실 내부의 모습>

  호스텔 모스텔에서는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았다. 바로 라면.

  이스탄불의 신밧드 호스텔 지마형님이 소피아에 오는 여행자 편으로 라면을 보내주신 것. 해외에서 구입하면 비싼 가격도 가격이지만 이렇게 챙겨주신 것도 고맙고, 라면을 묵묵히 전달해 준 혜린씨도 참 고마웠다.

  터키에서 온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소피아 시내 구경을 시작했다.

<소피아의 트램>

  지난번 플로브디프와 같이, 소피아에도 무료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이 있었다.(http://www.freesofiatour.com) 여기에 참가해서 소피아 이곳저곳 설명을 듣고, 지리도 익혔다.

  가이드는 Martin이라는 친구였는데, 불가리아식 영어 억양에다가 말이 너무 빨라서 이해하기 쉽지 않았지만, 정말 열정적으로 설명을 이어갔다.

<4세기의 교회를 설명하는 Martin>

  소피아에서 인상깊은건, 시내 중심부 반경 1km 안에 가톨릭 성당, 정교회 성당, 이슬람 모스크, 유대교 시나고그(Sinagogue)가 몰려있었다. 종교간 화합이 잘 되어 평화롭게 공존한다는 뜻인가?

<시나고그(좌)와 모스크(우)>

   이슬람교도와 싸우고, 종교개혁으로 분열하여 기독교끼리 싸우고, 2차대전 중에는 유태인들을 학살할때도 눈 감아 주는 등 대부분 종교는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었고, 유럽 역사는 종교다툼의 연속이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니 소피아(Sofia) 사람들은 참 지혜(Sofia)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의 여신 소피아. 예전에는 레닌 동상이 서 있던 자리였다>

  소피아 시내 중심에 위풍 당당하게 자리잡은 건물. 알고보니 예전 공산당 당사였다.

<으리으리한 공산당 당사>

한때는 천하를 얻은 듯 했겠지만 몰락해버린 공산주의와, 공산당 당사. 게다가 공산당 당사 앞에서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공산 정권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겠지?

<본인들도 시끄러웠는지 귀마개를 하고 호각을 분다>

  무슨 일로 모였을까? 인파는 점점 늘어나고, 뭐라뭐라 구호를 외치면서 시가 행진을 한다. 알고보니, 총리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라고 한다.

  Narodno Sabranie 광장 앞에는 더 흥미로운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각종 구호와 피켓들. 그리고 텐트를 쳐 놓고 드러눕는건, 한국의 정당에서도 하고 있다던데. 하지만 전혀 폭력적이지는 않았고, 피아노를 치면서 시위하는 모습은 매우 독특한 문화였다.

<피아노 치는 시위대>

  소피아에 이런저런 흥미거리가 많았지만, 역시 소피아의 상징은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Alexander Nevski Cathedral)이었다.

<네프스키 성당 옆모습>

  세르비아의 Cathedral of Saint Sava 다음으로 발칸반도에서 두번째 규모의 정교회 성당이라고 하는데 규모와 화려함이 과연 소피아를 대표할 만 하다. 내부 역시 화려했지만,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었다.

<네프스키 성당>

  이 성당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불가리아 독립을 위해 싸운 러시아,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몰도바, 핀란드, 루마니아 연합군을 기리기 위해서 지었다고 한다. 플로브디프에서는 오스만군이 수많은 불가리아 아이를 납치해서 예니체리 군단에 편입시켰다고 들었는데, 여기는 오스만과 싸운 추모 성당이 있다. 역시 유럽 입장에서는 turk라는 단어가 괜히 나온게 아니다.

마침 내가 간 날에는 네프스키 성당 주변으로 자전거 경주가 열리고 있었다.

무슨 대회인지는 모르겠으나, 소피아 곳곳을 누비면서 시합을 하는게 참 멋지게 느껴졌다.

<질주하는 선수들>

그래서 나도. 물론 경기를 방해한 것은 아니다. 조깅으로 소피아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로 했다. 역시 선수들과 같은 기분은 아니겠지만, 네프스키 성당 주변을 돌아 달리는 기분 역시 짜릿했다.

<소피아에서의 조깅 코스>

  인터넷을 찾아보니 소피아에도 한인 교회가 있었다. 마침 일정이 맞았기에 시간과 장소를 확인하고 갔다.

  소피아에는 교민 수가 적어서인지 교회 역시 매우 작았고, 따라서 낯선 사람에게 시선이 집중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두 친절했고 식사도 제공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된 좋은 시간이었다.

<소피아 한인 교회의 내부>

  소피아 호스텔 모스텔은 여행자의 쉼터 같은 곳이었다. 매일같이 흥미로운 친구들이 들어왔다.

  이스라엘의 이티엘 부부는 자전거로 함께 여행을 하고 있었고, 누워서 타는 자전거를 갖고 온 친구도 있었다.

<출발 직전. 이티엘 부부와 함께><신기하게 생긴 리컴번트>

  자전거 여행자들도 매우 많아서, 소피아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의 집합소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인도, 네팔, UAE, 오만을 거치면서 자전거 여행자를 거의 만나지 못했지만, 이스탄불과 소피아에서는 자전거 여행자를 만나는게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었다.

  아마 날씨도 좋고 코스도 좋아서 그런 게 아닐까?

<자전거 여행자의 집합소 호스텔 모스텔>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가장 아쉬운 헤어짐은 내 생일에 찾아왔다.

  바로 불가리아를 함께 다니던 민규 형님이 이스탄불로 돌아가시기로 한 것. 각자 처한 상황도, 앞으로의 삶의 방향도 다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더 좋은 곳에서 더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게 아쉽기도 하고, 괜히 나때문에 이런저런 장비를 구입하고 시간과 비용 낭비만 시켰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했다.

<떠나는 트램과 택시>

  좋은 사람들은 함께 있을때 보다, 떠나고 난 빈자리가 더 큰가 보다.

  그동안 함께 다니면서 심심할 틈도 없었고, 잠자리를 잡을때나 가게 등에 들어갈 때도 더 안심할 수 있었고, 여러모로 즐거웠다. 늘 혼자 다녔기에 익숙한줄 알았는데, 막상 형님이 가고 나니 말할수 없이 허전했다.

  사실 형님이 소피아까지만 함께 할 거란 것은 이미 이야기가 되어 있었지만, 아는 것과 실제로 보내는 것의 차이는 컸다.

<민규형님과 마지막 컷.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함께 한 보름동안 안전하게 잘 다녔으니 다행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바로 출발할 기분도 아니었다. 마음을 추스릴 시간이 필요하여 이후 계획은 모두 연기하고, 소피아에 한동안 틀어박혔다.


※ 루마니아 티미쇼아라에서 간만에 여유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글을 올리는 중. 또 가슴아픈 소식을 들었다. 우리 중대원 오유택(1140기) 해병이 백혈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것. 전역한지 1년 남짓 되었을까? 아직 할 일도 많고, 하고싶은 것도 많은 나이에 너무나 일찍 떠난 유택이. 착실하고, 무난한 성격이었기에 오히려 더 신경쓰지 않게 해준 유택이. 그래서 더더욱 미안할 뿐이다. 함께 있는 동안 따뜻한 말이라도 한마디 더 건넸어야 하는건데……. 부디 좋은 곳에서 편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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