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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Croatia)

151. 자그레브 알아가기

  군수 청소년회관(Logistic Youth Center)에 머무르면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LYC는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저렴한 숙박비와 편한 시설로 인해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또 한번 들어오면 블랙홀 마냥 계획 이상으로 머물고 가는 친구들이 많다.

<자그레브 거리>

  그러던 중 심규범 군에게 연락이 왔다. 이 친구는 해병대를 전역하고 해외 자전거 여행을 준비하다가 SNS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왔는데 당시 나는 사용이 익숙하지 않았고 자주 로그인하지 않아 확인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내가 군수 청소년회관으로 옮긴 현충일에 다시 연락을 준 것이다. 크로아티아(Croatia) 두브로브니크(Dubrovnik)에 머무르고 있다면서…….

<반 옐라치치 광장의 농구경기>

  무심하게도 거의 반년동안 답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연락을 주다니. 진작 알았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도 있었을텐데. 그래도 규범군은 혼자서 준비를 잘 하고 유럽으로 날아와 자전거여행을 시작했고 이렇게 연락이 된 것이다.

<자그레브 트램길>

  꼭 만나서 식사라도 한끼 대접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열흘가량 지나 자그레브에서 다시 연락을 받았다. 이제 막 자그레브를 떠나려는 찰나였다. KFC 앞에서 잠시 만나기로 했다.

  간만에 한국인·전우·자전거여행자인 규범군을 만나 정말 반가웠고 짧은 대화도 즐거웠다. 마침 비가 내려 LYC에서 하루 묵어가기로 했다.

<동태탕으로 함께 식사>

  즐거운 시간을 가진 후 다음날 규범군은 슬로베니아(Slovenia)의 수도 류블라나를 향해 출발했다.

<자전거 여행자 심규범 군>

  며칠 후에는 크로아티아어를 전공하는 이진영·유지은 양이 LYC를 찾았고 교환학생으로 기숙사 배정받기 전 잠깐 머물다 나갔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 친구들 덕분에 크로아티아 대학교를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도 여느 발칸반도의 대학처럼 건물이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다. 한국처럼 대형 캠퍼스를 보유한 학교는 아직 못봤다. 간만에 찾은 대학은 방학과 주말이 겹쳐 학생이 없었지만 흥미로웠다.

<자그레브 대학의 홀>

  고맙게도 학생들은 떠나기 전에 한국 음식도 몇 개 주고 갔다. 유학생활을 하려면 분명 한국음식이 생각나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체면상 극구 사양했으나 내 눈빛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예전에 마시멜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에게 마시멜로를 주고 갔을 때 바로 먹어치운 아이들과 참은 아이들 중 끝까지 유혹을 이겨낸 아이들이 미래에 더 나은 성취를 이루었다는 이야기.

  레토르트 포장이 되어 보관도 간편하다. 분명 편안한 호스텔보다는 길에서 힘들 때 먹는게 나을 마시멜로였다. 그런데 이건 무려 ‘3분카레’다. 사실 카레는 인도에서 수없이 먹었으나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이건 ‘고기’가 들어있는 한국 카레다.

  나는 마시멜로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었던 3분 카레. 고맙습니다>

  유혹에 넘어갔으나 다행히 금세 또 다른 마시멜로가 주어졌다.

  자그레브에 머무르는 중 주말을 맞아 자그레브 한인 교회를 찾았다. 사실 매우 조촐한 규모다. 크로아티아에는 한인 가구가 채 40가구가 되지 않으며 그 외에 약간의 유학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방학을 맞아 유학생들도 죄다 귀국해버렸고 교회는 한적했다. 가끔 독실한 여행자들이 방문하는 정도다. 어떨때는 목사님 가족이 전부일때도 있다.

<크로아티아 교회에서>

  그동안 선교사님, 목사님들께 늘 대접을 많이 받아왔고 선교사님 댁에서 머문 적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알바니아(Albania) 이후 교회를 찾지 않았다.

  무엇보다 선교사님 생활도 넉넉하지 않은데 갈때마다 후하게 대접해주시는게 부담스러워서였다. 폐만 끼친다는 생각이 커서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중 자그레브에서 한동안 머물게 되며 다시 한 번 찾아갔다.

<자그레브 꽃 광장(Cvjetni trg)>

  자그레브 교회에서도 귀한 대접을 많이 받았다. 목사님은 한국 음식도 많이 싸주셨고 멋진 친구들도 만났다.

  특히 터키(Turkey) 이스탄불에서 온 길바울군. 이 친구는 대중교통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도보와 가끔 히치하이킹을 이용해 유럽을 돌고 있다. 정말 대단한 친구들이 많다.

  목사님 댁에 초대도 받게 되고, 하루는 야룬(Jarun) 호수에서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했다. 호수에서 먹는 김치를 곁들인 삼겹살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야룬 호수><삼겹살 굽는 바울군>

  그다지 볼게 없다던 자그레브 시내도 구경거리가 넘쳐났다.

  반 옐라치치(Ban Jelačić) 광장에서 북쪽으로 5분 정도만 걸어가면 자그레브 대성당(Zagrebačka Katedrala)이 나온다.

<대성당 앞 광장>

  11세기에 지어진 이 성당은 수차례 외세의 침략으로 수난을 겪었고 19세기말에는 지진으로 크게 파손되었지만 그때마다 재건했다고 한다. 사실 지금도 보수공사 중이다.

  성당 한켠에는 당시 무너져 내린 첨탑이 보존되어 있었다.

<자그레브 대성당>

  고딕 양식인가? 뾰족한 첨탑을 가진 성당에는 모자달린 두루마기를 입은 수도사들이 돌아다녀 더욱 중세느낌을 부각시켰다.

  허리에 세 번 매듭지은 새끼줄을 감고 다니는걸로 보아 프란치스코(Francesco) 수도회인가 보다. 중세 소설에나 나오는 이름인줄 알았는데 아직도 존재할 줄이야.

<프란치스코회로 짐작되는 수도사들>

  잘 가꾸어진 시가지 구경도 흥미롭다. 특히 반 옐라치치 광장 남쪽에서 낯익은 사람의 동상을 발견했다.

  바로 세르비아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그러고 보니 이 길 이름도 테슬라 거리(Ul. Nikole Tesle)이다.

<뭘 연구하려는지 고민에 빠진 테슬라>

  사실 테슬라에 대한 크로아티아인의 인식이 궁금했으나 의외로 크로아티아에서는 테슬라의 국적에는 크게 비중을 두지 않는 듯 했다. 대신 크로아티아인이라고 주장하는 유명 인물은 따로 있었다.

  바로 ‘동방견문록’을 남긴 마르코 폴로(Marko Polo).

  지금까지 베네치아(Venezia) 공화국 사람으로 알고 있던 마르코 폴로가 크로아티아인이라는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자그레브에서 마르코 폴로 동상은 찾지 못했다.

  디노는 현재 크로아티아 영토인 코르출라(Korčula) 섬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정설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코르출라 섬에는 마르코 폴로 호텔이 있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가 아니라 Benedikt Kotruljević(15세기 라구사 공화국의 상인·학자·외교관)>

  관광지로 유명한 곳은 아니지만 반석군이 추천해준 미로고이(Mirogoj) 공동묘지도 가볼 만 했다. 사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에서 지겹도록 본게 공동묘지지만 이곳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외벽은 큰 성벽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규모였으며 규칙적으로 십자가가 세워진 돔이 배치되어 있었다.

<십자가 때문에 마치 성당처럼 보이는 미로고이 공동묘지>

  묘지 내부는 세르비아와는 또 다른 크로아티아의 장묘문화를 잘 보여준다. 특이한건 유태인식 묘지가 종종 보였으며 남쪽 돔에는 유태인의 상징인 다윗의 별(육각별)이 설치되어 있다. 이 지역에 유태인이 상당수 있었나보다.

<석관이 노출된 크로아티아 묘역><다윗의 별이 새겨진 묘비>

  하지만 무엇보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인상적인건 공원이다. 자그레브 서쪽에는 막시미르(Maksimir)라는 커다란 공원이 있었고 Hrvatske Bratske Zajednice 도로 한복판에 분수대가 설치된 길쭉한 공원도 인상적이었다.

<막시미르 공원의 호수>

  각종 공원과 녹지가 많아서 자그레브 자체가 거대한 공원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막시미르 공원>

  자그레브에 한동안 머물다 보니 자연스레 지리에도 익숙해졌다. 버스터미널 주위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면 자그레브에 살고 있는 양 길도 찾아주고 조깅도 즐기며 커다란 공원에서 하루하루 즐거운 나날을 이어갔다.

<차도 사이의 분수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