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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Croatia)

150. 행운의 메달과 톰슨, 그리고 우스타샤

  크로아티아(Croatia) 친구들이 도무지 알려주지 않는 ‘행운의 메달’의 정체를 밝혀보기로 했다.(관련글) 우선 반 옐라치치(Ban Jelačić) 광장 앞의 관광안내소가 떠올랐다. 메달을 목에 걸고 광장으로 향했다.

  벤치에서 잠시 쉬는 데 갑자기 어여쁜 아가씨가 웃으며 다가오더니 메달에 대해 묻는다. 선물받은 ‘행운의 메달’인데 사람들이 이 메달에 관심이 많다고 대답하자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끝내 메달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아, 대체 이 메달은 뭘까? 궁금증이 더해간다.

  관광안내소에 가자 직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메달에 대해 물어보니 그저 베네딕토 성인이 새겨졌다고만 한다. 아니, 단순한 가톨릭(Catholic) 성인인데 왜 크로아티아 친구들이 이렇게 좋아하는걸까?

<성 베네딕토 성인이 새겨진 행운의 메달>

  재차 물어보니 이 메달은 ‘어린 친구들 일부’가 좋아하는 톰슨(Thompson)이라는 가수의 상징이라고만 한다. 더 이상의 대답은 없다. 톰슨? 어제도 얼핏 들어본 것 같은데? 톰슨이 누구지?

  이번에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의 진짜 절반 크로아티아인인 이반(Ivan)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메시지를 보내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톰슨의 ‘Bonja Čavoglave’라는 곡을 먼저 들어보라고 한다.

  그가 알려준 유튜브 링크를 통해 본 Bonja Čavoglave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조악한 화질의 영상에서 민병대가 모여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행히 영어 자막이 있어 어느 정도는 내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참고로 가사에 등장하는 칼라쉬니코프(Kalashnikov)는 AK-47 소총 발명자이고 즈브로요프카(Zbrojovka)는 체코산 구경 9mm 권총이다.

- Bonja Čavoglave 챠보그라베 대대(大隊∙Battalion) -


For homeland Ready

조국을 위해, 준비


In Zagora at the source of the Čikola river,

We, the brothers, took up arms to defend our homes.

자고라, 취콜라 강의 근원에서

형제여, 조국을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드세


There stand Croat next to Croat, we’re all brothers!

You will not get into Cavoglave as long as we are still alive.

크로아티아인 그 옆의 크로아티아인 우리는 모두 형제니

우리가 살아있는 한 너희는 절대 챠보그라베에 발붙일 수 없어


Fire your Tompson, Kalashnikov and Zbrojovka!

Toss the bomb, chase the bandits away beyond the spring!

톰슨 기관총과 AK-47 소총 그리고 CZ 권총을 쏴

수류탄을 던져, 강 건너로 강도를 몰아내세


Step forward, get rifle ready, and let’s all start to sing

For our homes, brothers, for our freedom, fighting we are

전진 앞으로! 사격 준비! 모두 노래를 시작해!

조국과 형제, 자유를 위해 우리는 싸우네


Listen you gang of Serbian volunteers and chetniks

Our hand will reach you even in Serbia!

너희 세르비아 건달과 체트닉은 잘 들어

너희가 세르비아로 도망쳐도 우리 손길을 피할 수 없지


God’s justice will reach you, everybody knows that by now

You will be judged by the fighters from Cavoglave!

누구나 알 듯이 신이 너희를 심판할 것이며

챠보그라베 전사들 또한 너희를 심판할테니까


Listen now to the message from Saint Elias

You will not get into Cavoglave, as you never did before!

당장 엘리야 선지자의 메시지를 들어봐

예전에도 그랬듯이 너희는 절대 챠보그라베에 발붙일 수 없어


Hey Croats, dear brothers from Cavoglave

Croatia will never forget you fighters

챠보그라베에서 형제, 크로아티아인들이여

크로아티아는 우리 전사들을 영원히 잊지 않으리


Never ever

절대로, 절대로


  한마디로 조국을 지키자는 내용인데 중간에 세르비아(Serbia)와 체트닉(Chetnik)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어렴풋이 상황이 이해되었다.(관련글)

  Bonja Čavoglave를 보고 나니 비로소 Dino가 설명에 나섰다.

  톰슨은 마르코 페르코비치(Marko Perković)라는 사람이 결성한 락 밴드로 쉽게 말하면 크로아티아 극우 음악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 당시 국가방위군(National Guard)에 지원했고 이때 톰슨 기관단총을 잡게 된다. 사격 실력이 상당했는지 전우들은 그를 톰슨이라고 불렀다. 영상에서 어깨에 걸치고 있는 총이 톰슨으로 윈스턴 처칠(W. Churchill)을 마치 마피아 두목인 듯 만든 바로 그 총이다.

<윈스턴 처칠과 톰슨>

  Bonja Čavoglave는 그가 동료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군 복무중 쓴 곡이다. 물론 그는 정훈업무만 한게 아니다. 크로아티아군 142 Drniš 여단 소속으로 드르니스(Drniš)와 크닌(Knin) 탈환전에 참가해 세르비아군에 점령당한 시가지에 가장 먼저 진입했다. 크닌은 얼마전 우주여행자와 헤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Bonja Čavoglave는 크로아티아 독립의 상징이 되었고 노래와 함께 실제 전투에서 활약한 그는 수많은 팬을 얻게 되었다. 2007년 자그레브(Zagreb)에서 열린 톰슨의 콘서트에는 무려 60,000여 관중이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크로아티아 인구는 420만명이며 그 중 70만명이 자그레브에 살고 있다. 전 국민 1.4%, 자그레브 주민의 10%가 콘서트에 모였다니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러자 디노는 당시 실황을 크로아티아 중앙방송 HRT에서 촬영한 영상을 보여줬다.

 공연용으로 편곡된 Bonja Čavoglave는 보다 세련된 락 음악이 되었으나 첫 영상만큼의 강렬함은 없었다. 이 중 눈길이 간건 바로 톰슨(마르코)의 가슴에서 빛나는 ‘행운의 메달’이었다.

  톰슨의 음악적 배경은 가족∙조국∙가톨릭이며 메달의 성 베네딕토 성인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하다.

  성당 건축을 위해 모금활동을 해왔으며 콘서트때 크로아티아 가톨릭 교회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특히 2009년 11월 11일(1차 세계대전 종전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예방하는 등 가톨릭계에서도 인지도가 상당한 듯 보였다.

<크로아티아 문장이 장식된 자그레브의 한 공원>

  여기까지만 보면 단지 애국자일 뿐이다. 대체 왜 그렇게 크로아티아 친구들이 톰슨에 대한 설명을 꺼렸을까?

  바로 ‘우스타샤(Ustaša)’ 및 ‘체트닉(Chetnik)’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번 이반의 친구들은 스스로를 Young Ustaša라고 일컫어 나를 놀라게했다.(관련글이반에게 우스타샤의 정체를 물어보며 나치(Nazi)를 언급하자 펄쩍 뛴다.

  많은 크로아티아인은 반파시스트이며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크로아티아인은 히틀러와 싸워 이겼다는 것이다.(“But most part of croats are antifasist. It’s a complicated for you but croatian are fight against Hitler and Win.”)

<자그레브 시내>

  우스타샤에서 히틀러까지 범위가 확대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르비아는 전쟁 이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이 점령하고 있던 현재의 크로아티아와 슬로베니아를 병합하면서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왕국(Kingdom of Serbs, Croats and Slovenes)으로 거듭난다. 반면 크로아티아 입장에서는 독립하자마자 세르비아의 수중에 떨어진 듯한 상황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긴 국호가 보여주듯 세 구성원의 역학관계가 대등해 보였다. 하지만 곧 ‘크로아티아’라는 단어는 사라진다.

<반 옐라치치 광장>

  왕국은 유고슬라비아 왕국(Kingdom of Yugoslavia)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뀐건 명칭만이 아니었다. 국왕 알렉산다르 1세(Aleksandar Karađorđević)는 세르비아 우선주의를 바탕으로 전제군주정을 추구한다.

  그러자 크로아티아는 왕국에 등을 돌려버렸다. 여기에는 1차 세계대전으로 민족주의 성향이 고취된 것도 한몫했다. 게다가 이탈리아가 크로아티아를 부추겼다.

<자그레브 외곽의 낡은 벽돌집>

  이때 안테 파벨리치(Ante Pavelić)라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사상은 가톨릭 신앙과 극우 민족주의가 혼합되어 있었다.

  가톨릭과 무솔리니의 지원을 받은 파벨리치는 우스타샤라는 무장조직을 결성하고 반 왕국 활동에 나섰다. 결국 알렉산다르 1세는 우스타샤가 연관된 암살로 생을 마감한다. 참고로 이 사람은 친오스트리아 정책을 펼쳤던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1세(Aleksandar Obrenović)와 이름도 같고 암살당한것도 같지만 다른 사람이다.

  마침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고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추축국에 전차에 짓밟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무솔리니는 이 지역에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라는 괴뢰국을 세우고 파벨리치를 수장으로 앉혔다. 애당초 무솔리니에 의해 옹립된 파벨리치의 길은 사실상 정해져 있었다.

<베어그릴스조차 생존할 수 없던 과거 크로아티아>

  우스타샤는 ‘세르비아인 1/3은 죽이고 1/3은 개종시키고 나머지 1/3은 추방시킨다’는 어이없는 목표를 세웠다. 날마다 세르비아인과 정교회 신도를 상대로 학살이 이어졌고 여기에는 여자와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스타샤는 야세노바츠(Jasenovac)라는 곳에 나치와 같은 강제수용소를 운용했으며 심지어 가톨릭 사제들도 여기에 동참했다. 훗날 성인으로 시복된 스테피나츠(Aloysius Stepinac) 추기경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스테피나츠 추기경의 동상>

  당시 우스타샤의 잔혹함은 나치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세르비아인 75만명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세르비아측 주장. 통계마다 다르며 크로아티아에서는 10만명 정도로 주장한다.)

  독일군과 우스타샤 양쪽에서 살해당하던 세르비아는 곧 체트닉이라는 자경단을 조직해서 반격에 나선다.

  악명을 드높이던 우스타샤는 ‘크로아티아 출신’ 요시프 티토(Josip Broz Tito)의 빨치산(Partizan)에 의해 명맥이 끊긴다. 추축국에 협력하고 나치 못지않은 활동을 한 우스타샤는 더 이상 입에 올릴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원래 평범한 가톨릭 국가였던 크로아티아>

  한편 가톨릭이 파벨리치를 지원했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당시 교황청은 수상쩍은 행보를 보였다.

  히틀러에게 협조했다는 의혹도 있으며 교황 비오 11세는 바티칸 독립을 위해 무솔리니와 라테란 조약을 체결하고 이후 파시스트의 활동에 침묵했다.(훗날, 히틀러의 전차에 가장먼저 짓밟혔던 폴란드 출신 요한 바오로 2세가 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고 한다.)

  또한 가톨릭은 정교회(Orthodox)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따라서 이 대립은 민족갈등과 동시에 종교분쟁이기도 했다.

<멀리 대성당이 보이는 자그레브 시내>

  문제는 전후에도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아니, 또 다시 그만큼의 피를 흘려야 했기에 해결할 수 없었다.

  티토는 처벌과 복수 대신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를 섞는 민족동화정책을 펼쳤다. 이 정책은 그럭저럭 유지되었으나 그가 죽자 상황은 급변했다.

  전쟁이 터지자 과거 우스타샤의 만행을 기억하던 세르비아계 주민은 자구책을 찾아야했다. 억눌려온 한(恨)에 따른 복수심도 있었을 것이다. 곧 체트닉이 재결성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체트닉이 선을 넘었다.

  크로아티아 독립전쟁과 보스니아 내전을 거치면서 체트닉은 크로아티아인과 무슬림의 씨를 말리려 했다. 지난번 미쿨리치의 골수 공산주의자 마르코마저 눈물짓게 만든게 바로 이 사건이다.(관련글)

  체트닉은 방화, 약탈은 물론이고 ‘인종청소(Ethnic Cleansing)’를 위해 학살에 강간공장까지 운영했다. 세르비아는 전 세계로부터 지탄받았으며 현재 대외 이미지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자그레브 시내의 부코바르(Vukovar) 학살 추모비>

  복잡하고 아픈 과거에 대한 내 생각은 이렇다. 지금 한국은 민주국가이지만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 공산당과 손을 잡은 독립투사도 있었다. 또한 모든 크로아티아인들이 우스타샤를 옹호한 것도 아니었으며 티토 등은 대 나치 투쟁을 벌였다.

  태평양 전쟁 당시 강제징용으로 일본군에 복무한 희생자들을 전범으로 볼 수 없듯 ‘독립’을 위해 단순 가담한 우스타샤를 추축국의 일원으로 분류하기는 힘들지 않을까? 이래서 크로아티아는 추축국과 손잡았지만 나치와 싸웠다는 모순적인 이야기가 나온게 아닐까 한다.

  결국 우스타샤는 파시스트와 손잡았지만 최초 의도는 크로아티아의 독립운동이었다고 결론짓고 이반에게 물어보자 그게 맞다(Thats it)고 한다.

<애국심 넘치는 크로아티아>

  사실 우스타샤나 체트닉 모두 비정규군이었다. 이런 집단이 제네바 협약 등 전쟁법을 준수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제대로 훈련받고 교육받지 않은 집단이 통제능력 이상의 힘과 증오심을 갖게 되자 최악의 방향으로 발산된 것이다.

  물론 정규군으로서 만행을 저지른 일본군의 행위는 우스타샤나 체트닉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크로아티아는 한동안 잊고 있던 금단의 이름-우스타샤를 떠올리게 되었고 우스타샤에 대한 동정만큼이나 체트닉에 대한 평가는 가혹하다.

<돌의 문 근처 성 게오르게의 기마상>

  크로아티아에서 가장 심한 욕설이 바로 Jebi Se Četnik(예비 쎄 체트닉)으로 직역하면 Fuxx you Chetnik이다. 우리로 치면 ‘일제 앞잡이’정도의 의미랄까?

  재미있는 것은 크로아티아에서도 한국처럼 더러 ‘친근감’의 표시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물론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비공식적으로 이뤄진다.

  크로아티아와 무관한 내가 톰슨 메달을 걸고 Jebi Se Četnik을 외치면  그들을 이해한다는 동질감의 표시가 되어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하긴 나 같아도 제3국 친구가 어설픈 우리말로 일본놈을 언급하면 너털웃음을 터뜨릴 것 같기도 하다.

<묘소에도 보이는 문장. Mirogoj 공동묘지>

  다시 Bonja Čavoglave로 돌아가면 첫부분에 ‘Za dom, Spremni’라는 외침이 들린다.

  단어 하나하나는 전혀 문제될 일 없는 ‘조국을 위해서, 준비’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문장은 바로 우스타샤의 구호로 유럽에서는 절대 금기시된다.

  마치 북한 때문에 의미가 변질된 ‘동무’ 정도라고 할까? 아니, 아랍어로 ‘신은 위대하다’라는 ‘알라후 아끄바르(Allahu Akbar)’가 테러리스트의 상징이 된 것과 더 비슷하겠다.

  결국 톰슨은 극우파시스트 또는 신 나치주의로 몰리면서 네덜란드 콘서트가 취소되고 스위스 등 쉥겐 국가에서는 입국조차 금지당했다고 한다. 아마 이런 부분 때문에 처음에 톰슨에 대한 설명을 꺼린 것 같다.

<어딘가 박격포가 연상되는 조형물>

  이 구호와 관련된 유명한 사건은 2013년 자그레브에서 열린 브라질 월드컵 지역예선이다. 당시 크로아티아팀 주장이었던 요시프 시무니치(Josip Šimunić)는 승리의 기쁨으로 ‘Za dom’이라고 외쳤고 수많은 홈 관중들은 입을 모아 ‘Spremni’라고 응답했다.

  이 사건 때문에 시무니치는 엄청난 벌금과 함께 월드컵 참가조차 금지되었다. 한국에서는 시무니치가 나치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되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크로아티아인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우스타샤를 소환한 것이다.

  하지만 이 구호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브라질:크로아티아 경기 당시 반 옐라치치 광장에 거대한 깃발이 등장했다. 깃발에는 ‘ZA DOM! SPREMNI’가 선명하다.

<축구경기에 등장한 문제의 구호>

  톰슨의 ‘행운의 메달’ 덕분에 크로아티아와 우스타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선입견과 달리 직접 경험한 세르비아는 참 좋은 나라였고 나는 세르비아를 좋아하는 만큼 크로아티아 역시 좋아한다. 하지만 제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보려 해도 잘잘못을 판단할 수 없었다.

  정교회(Orthodox) 신앙을 바탕으로 오스만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나치 제3제국 등 당대 최강국과 끈질기게 싸우며 살아남은 세르비아. 그리고 그들의 분노!

  가톨릭을 받아들이며 서구화되었으나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사이에서 나라를 유지해온, 그러나 세르비아에 흡수되고 저항한 크로아티아. 말 그대로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까지.

  각국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되니 선입견은 줄었지만 더욱 안타깝다.

<크로아티아에서만 유효한 행운의 메달>

  그러고 보니 많이 배웠고 크로아티아 친구들과도 더 가까워진 만큼 이건 ‘행운의 메달’이 맞긴 한가보다. 확실한건 이 ‘행운의 메달’은 크로아티아 외에서는 절대 착용하면 안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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