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 갖혀버렸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인도와 중국 모두 비자가 없고 결국 비행기로 네팔 탈출을 결정. 한 달 생활비도 함께 내 주머니를 탈출한다.
이후 희망 목적지는 이란. 이란은 여러 여행자들로부터 좋다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었고, 또 어릴때부터 상상 속에 존재하던 페르시아 제국이 있던 곳이다.
저가 항공을 알아보니 대부분 아랍 에미레이트(United Arab Emirates; UAE)를 경유. 가장 저렴한 Air Arabia를 선택했는데, Air Arabia는 샤르자(Sharjah)라는 곳을 모항으로 사용한다. 네팔에서 이란을 간다면 카트만두-샤르자, 샤르자-테헤란 이런 식이다. 어차피 두 번 비행할거, UAE에 머물면서 아랍세계를 좀 둘러볼 수 있을까?
저가 항공이라지만 출발이 임박하여 예약하니 제법 비싸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전에 미리 예약했어야 하는건데……. 항상 미리 준비하고 다니라던 어머니 말씀. 역시 틀린게 하나도 없다.
에어 아라비아 항공사의 에어버스 항공기
알고보니 UAE의 메리트는 많았다. 우선 UAE에는 이란 대사관이 있다.(네팔에는 이란 대사관이 없었다) 아마 같은 아랍권 국가니 비자도 더 쉽게 받겠지? 이란 비자를 받게 되면 UAE에서 이란 반다르 압바스 항까지 페리도 있다. 뱃길로 이동하면 비행기보다 여러모로 편하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분해하지 않아도 된다.
설령 이란 비자를 못받더라도 상관없다. 여러 항공사의 허브역할을 하므로 제일 저렴한 항공편을 알아보고 가능한 나라로 가면 된다.
이런 이유로 느닷없이 아랍 에미레이트의 샤르자가 다음 목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안읽히는 영어 가이드북을 한줄 한줄 공부하듯 읽어 나가는데, 헛, 호텔 숙박비가 최소 100달러. 잠이 번쩍 깨는 듯 했다. 야 이거, 이란 비자 나오는 동안 잠만 자도 100만원은 날아갈 듯. 어쩌지? 그냥 항공권 취소할까?
Al Diar Regency Hotel Dh700-1400 약 21만~42만원 One to One Dh 800-1200
뒤늦게 인터넷으로 두바이 등 여행기를 검색해 보니, 사진부터 다 비싼 느낌이 난다. 세계 최고 건물, 최고급 호텔, 최고급 쇼핑몰. 갑부들의 별장……. 으아…….
신기한건 두바이 여행기 작성자는 유독 여성들이 많았다. 이슬람 권은 여성이 여행하기 쉽지 않은 나라일텐데? 어쩐 일일까?
배낭여행자는 드문 듯 하다. 유럽 여행 중 비행기 스탑오버로 잠시 들러 사막 사파리 즐기고 나가는 정도? 신혼여행으로 가는 사람은 제법 있는것 같다.
무엇보다 UAE에서 자전거 여행을 했다는 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자전거 여행자들이 두바이를 외면했다면 뭔가 이유가 있는거다. 아마 물가때문? 아 이거. 내가 큰 실수를 한 모양이구나.
5월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부랴부랴 카우치서핑(Couchsurfing)과, 웜샤워(Warm Shower) 호스트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답은 없었다. 급한 마음에 혹시 컨테이너라도 있나 해서 UAE 해병대 전우회까지 검색해 보았으나 역시 찾을 수 없었다.(당연한건가?)
그 동안 여행하면서 생긴 원칙 아닌 원칙은 도시에서는 숙소, 시골에서는 야영이었다. 이유는 간단한데, 인도 네팔의 도시에는 야영 할 만한 공간이 없고 방해자가 너무 많았다. 하긴 한국도 서울 시내 한복판에 텐트치고 자면 이상하잖아?
또한, 어딘가 실내를 구경하러 들어갈 때에도 짐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도시에서는 늘 숙소를 이용한 것. 하지만 UAE에서는 그게 불가능 할 것 같다.
'에구, 빈 공간은 있으려나? 한국의 대형 마트처럼 무료 코인라커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어느 새 5월 1일. 출국일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라면, 식빵 등 음식물을 최대한 챙겼다.
그리고 도착한 트리부완 국제공항. 나는 왜 공항만 오면 시간에 쫒기는지 모르겠다. 느긋하게 Wing을 분해하다 보니 늦을 것 같아 결국 대충 쑤셔넣어야만 했다.
분해 전 Wing. 짐을 내려놓고서
검색대에서는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쓰다 남은 부탄가스를 빼앗긴 것. 가스는 그렇다 쳐도 버너까지 요구한다. 버너도 안되나? 뭐, 그래도 상관없다. 네팔에서 산 것, 원래 쓰던 것 두 개니까. 설마 버너 두 개 들고 다닐거라고는 생각 못했겠지?
버너 하나를 주고 나오는데 검색 요원은 웃으면서 Thank you라는 것. 뭐가 고맙다는 거지? 바로 감이왔다. 혹시 이 녀석???
바로 가서 따지기 시작했다. 이유는 라이터(점화 플러그)가 있어서 안된다는 것.
"Yes, I know that gas can is very dangerous. So I can give up it. But stove is safety without gas. Lots of airlines allow to carry stove. Why do you need my stove? Will you put it in fuel tank?"
"Even though in my country, national airline allow Rifles without bullet because it's not dangerous.(미안하다, 이 항공사는 대한민국 공군이다.) If you can burn this paper to use stove without gas, I'll give you this stove and ₹1,000. If you can't, you will pay ₹1,000 to me. Do you want to bet with me?"
(의도 - 그래 가스는 위험하니까 안가져간다. 하지만 가스없는 버너는 안전해서 항공사들도 허용한다. 대체 왜 버너가 안되는거냐? 혹시 항공유 탱크에 넣어갈거냐? 심지어는 한국 국영 항공사는 총알 없으면 총도 반입 허용한다. 왜냐면 안 위험하니까. 만약에 네가 가스없는 버너로 이 종이를 태울 수 있으면 버너랑 천 루피를 줄게. 못하면 니가 천 루피 주는 내기할래?)
영어로 한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국. 버너를 돌려받았다. 꼭 말다툼할때는 폭풍 영어가 가능하다. 아직 본 적은 없지만, 토익 스피킹 주제가 '사기꾼과 다투시오' 면 고득점도 가능하겠지?
드디어 가방에 들어간 Wing. 샤르자에서 다시 만나자.
짐을 부치는데 수화물 38kg, 배낭 9.8kg. 기가 막히게 한도 내 들어왔다.(Tip. 에어 아라비아는 기내 반입 10kg, 45,000 정도만 더 내면 수화물을 40kg로 업그레이드 가능합니다.) 좌석은 1A를 받았다. 와. 이코노미 석이지만 발 쭉 뻗고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보딩패스 하단의 1A. 비즈니스석이 부럽지 않은 최고 좌석이다트리부완 국제공항의 공항패션.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어느 새 샤르자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바로 수화물을 수령하고, 혹시 파손된 곳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봤다. 이상 무. 다행이다.
입국 심사대 요원들은 사진으로만 보던 흰 두루마기에 흰 천을 두르고 있다.
'아, 이제 진짜 아랍이구나. 이거 복잡해지는거 아냐?'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Oh, Korea" 한마디 하더니 여권에 도장을 쾅 찍어줬다.(Tip. UAE에서 한국인은 무비자로 30일 체류 가능합니다.)
UAE 입국 도장. 지렁이 기어 간 듯 한 아랍어 앞에서 그냥 까막눈이다.
시간은 어느 새 2:00이 넘어 있었다. 잠 잘 곳을 찾아 샤르자 국제공항을 둘러보는데, 이게 왠걸.
공항 규모에 비해 홀은 매우 작았고, 내부에서 잘 곳은 전혀 없었다. 물론 공항 내에서 자는 사람도 없었다. 공항에서 많이 잔다고 들었는데. 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중동 석유부자들은 체면 안살게 공항에서 노숙따위는 안하나 보다.
일단 공항을 벗어 나 주위를 둘러보는데, 공항 밖 한켠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호라. 여기였구나.
그런데 그들은 팔걸이 있는 벤치라 눕지도 못하고, 목을 뒤로 꺾은 채 졸다가, 작은 소리에도 깨기를 반복하며 괴로운 밤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용의 꼬리보다는 닭 대가리라는 속담. 최고급 스위트룸이 아니면 7성급 호텔에 안가겠다. 하지만, 여기서는 내 자리가 최고다. 왜? 난 캠핑도구가 다 있으니까.
벤치 한켠에 카트를 묶어놓고, 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판초우의를 덮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그 증거로 한 번도 안깨고 내가 제일 늦게까지 잤다.
Sharjah International Airport의 스위트룸. 난 석유재벌도 부럽지 않은 공항 노숙자 중 최고 부르주아
눈을 떠 보니 피곤에 찌든 표정의 주위 사람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본다.
'야, 이거 생각보다 편한데? 경찰도 계속 돌아나니니 안전하고. 매일 여기서 잘까?'
조식은 네팔에서 사온 식빵으로 해결하고, 공항 화장실에서 주행을 위한 복장으로 환복. 드디어 쫄바지의 등장이다. 그런데, 이거 시선이 다 나한테 쏠리는 듯 하다.
아마, 격식있는 자리에 핫팬츠만 입고 간 여자가 이런 기분일까? 일단 민망함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반바지를 위에 덧입었다.
진정한 공항패션의 결정판 - 쫄바지. 이러고 돌아다니려니 민망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목이 마른데, 마침 공항 내에 매점이 있어서 잔돈도 바꿀 겸 음료수와 생수를 한 병 샀다.
음료 한 캔 Dh2.(여기 화폐 단위는 디르함. 1디르함≒300원). 생수 1.5ℓ에 Dh3. 생각보다 크게 비싸지는 않은 것 같다. 잔돈을 거슬러 받는데, Dh50 지폐 한장, Dh10 지폐 네장.
그리고 Dh0 한 장? 이건 왜 준거지? 유효숫자 맞추려고 하나?
과연 0 디르함일까?
멍하니 지폐만 바라보고 있었더니 카운터 직원이 아랍어 모르냐고 묻는다.
"Of course."
아랍어가 그렇게 당연하게 알 만한 언어는 아니잖아?
그러자 직원은 지폐를 뒤집어 줬다. 5라고 씌여 있다. 순식간에 바보가 된 기분이다. 음. 네팔에서 환전하고 100디르함 한 장 받았을때는 그렇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다시 100디르함을 보자고 하니 ١٠٠ 이라고 씌어 있다. 아마 100이랑 비슷해서 글꼴 차이인줄 알고 생각없이 받았었나 보다. 그런데 아랍에서 아라비아 숫자 쓰는거 아니었어?
그럼 대체 아라비아(에서 사용하는) 숫자는 뭘까?
나중에 알고보니 아라비아 숫자는 ٠ ١ ٢ ٣ ٤ ٥ ٦ ٧ ٨ ٩ (0~9) 이렇게 쓴다. 재미있는 건, 아랍 문자는 우에서 좌로, 숫자는 좌에서 우로 쓴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에서 만들어졌지만, 아랍을 통해 유럽에 전파되었기 때문에 아라비아 숫자라고 한다고 들었다. 덧붙여, 인도 숫자는 ० १ २ ३ ४ ५ ६ ७ ८ ९(0~9) 이렇게 생겼는데 지폐나 도로 표지 등 내가 필요한 정보는 아라비아 숫자가 사용되어 몇 달을 체류하면서도 인도 숫자에 적응할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아무 상처없이 수화물로 도착한 Wing.
공항 밖으로 나와 본격적으로 Wing 조립에 들어갔다. 어느 새 다 닳아버린 브레이크 패드도 바꾸고, 여기저기 닦아내다 보니 어느 새 금새 12시가 되었다.
아라비아의 Wing. 출발 준비 완료
자, 이제 뭘 하지? 일단 이란 비자부터 받아야 한다. 얼핏 듣기로 한국 대사관의 추천장이 필요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 일단 한국 영사관이 있는 두바이(Dubai)로 가자. 바쁜 대사님이 추천장을 써 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정보는 알 수 있겠지.
샤르자 국제 공항
인도 문화권을 벗어나 이제 중동이다. 다시 출발~!!!
샤르자 국제 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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