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피아에는 공원이 무척 많았다. 사실 공원이야 불가리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특히 소피아에는 더 많았다.
<공원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네프스키 성당 근처의 공원에는 노점상들이 즐비했다. 구형 카메라, 타자기, 바이올린, 장신구 등 각종 골동품이 많았는데, 흥미로운건 각종 무기까지 판다는 것.
<공원의 노점상>
구 소련군, 독일군의 철모와 방한모는 물론이고, AK-47 소총에 착검 가능한 각종 대검류와 접이식 칼은 날이 잘 서 있었고, 각종 너클, 손도끼나 표창까지도 팔고 있었다. 군수품이기도 하고, 무기인데 이렇게 아무나 팔아도 되는 걸까?
나치의 철십자 훈장과 소련의 훈장들도 나와 있었다. 처음 받은 당시에는 가문의 영광이었을 텐데, 공산주의가 붕괴한 후 의미도 없고, 생활도 어려워서 결국 시장에서 굴러다니게 된 훈장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온갖 골동품이 진열되어 있다>
또 한 공원은 작은 언덕을 그대로 살려 놓았다. 큰 도로가 인접하여 접근도 편하고, 포장 안된 오솔길이 그대로 살아 있어서 숲속에 들어온 기분을 도시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었다.
<도심 속의 숲><주인 잘못만나 산악자전거로 변신한 Wing>
소피아에 머무르며 다음 루트를 고민하다 일단 목적지를 변경하기로 했다. 서쪽의 마케도니아 대신 북쪽의 루마니아에 먼저 가기로 한 것. 발칸 반도 상황 때문에 조금 돌아가더라도 이 경로가 나을 듯 하다.
대신 마케도니아 가는 길에 들릴 계획이었던 릴라 수도원이 애매해졌다. 릴라 수도원은 많은 분들이 추천해 주신 만큼 꼭 가보고 싶었다. 거리는 소피아에서 120km가량 떨어져 있는데 자전거로 왔다갔다 하고 싶지는 않아서 결국 버스를 이용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했다.
소피아 서쪽 외곽의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데, 요금은 11레바(약 8,000원)였다. 약 3시간 가량 달리니 산 한 가운데의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이 나타났다.
<산을 병풍처럼 두른 릴라 수도원><릴라 수도원의 동유럽 스타일 프레스코화>
10세기부터 지어진 이 수도원은 수차례 파괴되어 19세기에 다시 지어져서 현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발칸 반도에서 가장 큰 수도원이며, 건물 자체도 멋지지만, 역사적 의미가 더 큰 수도원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이슬람을 강요했지만 이 수도원만은 건드리지 않았고, 따라서 종교 뿐만 아니라 불가리아의 문화와 정신을 계승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참 멋진 곳이라 돌아가기가 아쉬웠다. 방도 내 주던데, 여기서 하루 묵어 갈 걸 그랬다.
<불가리아의 정신을 유지해 온 릴라 수도원><릴라 수도원에서 만난 이탈리아 스쿠터 여행자 마테오와 치아라 부부>
릴라 수도원 기행을 마치고, 호스텔 모스텔로 돌아와 또다시 멋진 친구들을 만났다. 여름방학이 끝나서 한국인들은 거의 없었는데, 며칠만에 만난 한국인 이윤수 씨.
조금 이야기를 해 보니, 내가 전입하기 얼마 전에 같은 대대에서 복무하다 전역한 전우였다. 반가운 마음에 이야기는 길어지고……. 처음에 짐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일행이 5명이나 되는 팀으로 한국을 알리는 취지의 활동을 하는 글로벌 청년 문화 수교단-세이울이라는 팀이었다.
얼마 후 한자리에 모인 멤버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고, 다음날 소피아에서 30분 가량 떨어진 Bankya라는 곳에서 활동하는데 나도 따라 가기로 했다.
어마어마한 짐을 들고, 끌며 간 Bankya는 한가로운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에서의 활동에는 소피아 대학교 한국어의 보이꼬 교수님과, 한국 선교사님이 도와주셨다.
<보이꼬 교수님과 선교사님>
공원에 자리를 잡고, 짐을 풀었다. 엄청난 짐의 정체는 바로 악기, 앰프, 발전기, 홍보물품 등이었다.
기타와 대금, 키보드 연주를 하며 홍보물품인 부채에 서예로 이름을 써 주기도 하고, 투호 등 민속놀이 체험도 시키면서 보람있는 활동에 함께 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특히 한국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소리내기도 힘든 대금을 배우고 연주하는게 대단해 보였다.
<세이울 팀의 공연><자기 이름이 씌여진 부채를 들고 좋아하는 불가리아인><투호 체험하는 꼬마>
팀장인 남석현 씨는 이미 예전 모나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에서 동해 표기를 위해 전 세계를 돌며 서명운동을 펼친적이 있는 멋진 청년으로, 그 경험을 토대로 청춘발작(청춘의 발걸음이 만드는 작품)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고맙게도 나에게 이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새이울 멤버들과 함께>
Bankya에서의 공연을 마지막으로 세이울 팀은 불가리아의 활동을 마치고 루마니아로 이동했다. 나는 차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공원에서 책을 읽으며 정말 멋지고 열정적인 청년들의 활동을 보며 많은 감명을 받았다.
이제 소피아를 떠나려 했지만 소피아는 나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바로 비가 며칠씩 연이어 내린 것.
<소피아 국립극장-National Theatre>
며칠 이어진 비로 소피아에 갖혀 있었다. 그리고, 소피아의 마지막 만남은 다분히 엽기적이었다.
불가리아는 21시 정도면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고, 통행량도 뜸해진다. 어쩌다 보니 01시경 주변 산책을 하게 되었고,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공산주의 시절 세워진 동상>
돌아보니 어떤 여자였는데 뭔가 이상했다. 외모도 부자연스럽고, 성매매를 권하는데 이 안어울리는 목소리는 말로만 듣던 성 전환자-트랜스젠더였다.
별 일이 다 있다 생각하며 거절하고 돌아섰지만, 얼마 후 다시 다른 녀석이 잡는다. 또 성 전환자였다. 그 근처 거리가 그런 녀석들 집합소인가 보다.(Tip. 늦은 시간 Vazrazhdane 광장 근처에서 배회하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살다가 성 전환자를 볼 일이 있을까? 신기해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으슥한 구석에서 손가락을 물고 괴이한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Free for you. I love you.
참을 수 없는 역겨움이 몰려왔다. 백 번 양보하여 자신의 성 정체성에 혼돈을 겪었다고 해도. 그래서 심지어는 수술까지 했으면, 멋진 여자로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주류 사회에서 배척받으며 이 시간에 이런곳을 배회하며 외국인에게 성 구걸이나 하고 있다니.
생각같아서는 한 대 치고 정신교육 좀 하고 싶었지만, 그럴 가치도 없기에 말로 했다.
Hey Man. When you was born, your mom ate seaweed soup with lots of happiness. She is very poor.(야 이 XX야. 너같은 XX 낳고 좋아서 미역국 드셨을 네 어머니가 불쌍하다.)
If you don't want to be beaten by this brother, you must change your mind.(이 형한테 맞기 싫으면 정신상태 뜯어 고쳐라.)
<소피아에서 만난 성전환자 두 명 - ‘지나다’님 조언에 따라 얼굴 가립니다 16.1.27.>
나중에 생각해 보니 말도 안되는 콩글리쉬지만, 주먹까지 들고 말하는 분위기를 느꼈는지 그는 더 이상 잡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다. 대체 게이에 이어 성 전환자까지. 왜 이런 녀석들만 나한테 모이는거야? 난 이런 녀석들 정말 싫고 혐오한다고!!!
<공원에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이상한 녀석들을 보내고, 며칠만에 맑은 하늘을 보게 되었다. 이제는 진짜 소피아를 떠날 시간.
이런 저런 이유로, 어쩌다 보니 오래 머무르게 되었지만, 지겹기는 커녕 머무를 수록 소피아를 떠나는게 너무나 아쉬웠다.
<멋진 알렉산더 네프스키 성당의 돔>
하지만 이것도 새옹지마인가. 뜻하지 않게도 이상한 녀석들 덕분에 소피아에 정이 뚝 떨어져서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소피아의 자전거 도로를 타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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