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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마니아(Romania)

083. 혁명의 도시 티미쇼아라

  티미쇼아라(Timișoara)에는 또 다른 멋진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건축감독으로 일하는 보그단(Bogdan Dubina).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통해 알게 된 그는 자전거를 타고 마중을 나왔고, 우리의 짐을 보더니 자신의 집이 좁다면서 친구의 아파트에 데려다 주었다.

  더 놀라운건, 며칠간 친구와 함께 생활하겠다면서, 친구 집을 비우고, 키까지 준 것. 아니, 대체 뭘 믿고?

<며칠간 묵게 된 아파트>

  덕분에 편히 쉬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티미쇼아라의 첫 밤을 편히 보내고, 다음날 보그단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티미쇼아라 시내를 둘러보았다.

  먼저 간 곳은 1989년 12월 16일 길(B-dul 16 Decembrie 1989)에 있는 헝가리 개혁 교회(Biserică reformată)였다.

<헝가리 개혁 교회>

  89년 12월 15일. 차우셰스쿠(Nicolae Ceaușescu)의 부패한 정권에 맞선 이 교회의 라즐로 목사의 체포를 계기로 그동안 억눌려있던 시민들이 일어서기 시작했고, 이 시위는 금세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시위는 결국 루마니아 혁명으로 이어져 차우셰스쿠를 몰아내고, 현재의 루마니아 공화국이 수립된다.

  벽 한편에는 명판이 새겨져 있었다. 정확하진 않지만 대충 "독재(Diktatur)를 끝낸(Ende) 혁명(Revolution)이 시작(Begann)되었다."는 의미인것 같다.

<이건 어느나라 말? Hier Begann die Revolution, die der Diktatur ein Ende setzte>

   그리고 개혁 교회 앞에서 7,000km 주행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음, 7,000km이라>

  티미쇼아라 역시 공원과 광장이 매우 많은 아름다운 도시였다.

<승리 광장에서 달마와>

  승리 광장 끝에는 특이하게 생긴 교회가 보인다. 바로 메트로폴리탄 성당(Catedrala Mitropolitană)이었다.

<메트로폴리탄 성당>

  어딘가 러시아 성당 같다고 했더니 보그단은 몰도바 양식이라고 한다. 몰도바는 왈라키아, 트란실바니아와 함께 과거 루마니아를 구성하던 나라였다고 한다.(현재는 독립하여 별도의 나라를 이루고 있다.)

  외관도 특이했고, 내부 역시 멋진 곳이었다.

<호화로운 메트로폴리탄 성당><승리광장 주변 건물>

  혁명이 시작된 곳이라 그런지 자유 광장(Piața Libertății), 승리 광장(Piața Victoriei), 단결 광장(Piața Unirii), 1989년 혁명의 길(B-dul Revoluției din 1989) 등의 이름이 많아 아직도 그날의 열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자유 광장(Piața Libertății)><사회주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동상>

  건물 벽에는 손가락 모양 스프레이 칠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가까이 가 보니 역시 89년 승리의 마크였다.

<혁명의 그날을 기리며>

  보그단과 커피를 마시러 단결 광장(Piața Unirii)으로 들어서니 여기에도 뭔가 작은 시위를 하고 있었다.

<광장 중앙을 점유한 천막>

  보그단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89년 혁명 이후, 사회 체제가 급변하면서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사람. 특히 나이많은 분들 가운데서는 예전 차우셰스쿠 시절의 사회주의 체제를 그리워하는 움직임도 있다고 한다.

  아하, 그래서 나한테 공산주의자냐고 물은 사람도 있었구나. 차우셰스쿠랑 친하던 북한 사람인줄 알고 반가워하면서…….

<단결 광장의 한 까페에서 보그단, 달마와>

  왜 차우셰스쿠 시절을 그리워할까? 루마니아는 사회주의와 독재에 맞서 자유는 쟁취했으나, 세계와 경쟁하기에 그동안 너무 뒤쳐져 버린 것이다.

  산업기반은 미흡한데 유럽 연합 가입에 따라 유로화 사용 및 쉥겐(Schengen) 조약으로 국경 철폐도 준비하고 있지만, 서유럽과 대등하게 움직이기에는 아직 내 외부 문제가 너무 많다.

  한 명의 무능하고 탐욕스런 지도자가 남긴 영향이 이렇게 크다니!

<단결 광장에서 여가를 즐기는 사람들>

  게다가 당시에는 백여발의 총탄을 퍼부어 처형했던 차우셰스쿠 정권 하의 생활이 현재보다 나았다는 사람들은 과연 어떤 생각일까? 아마 남북 통일 후에도 북한 주민들은 비슷한 생각을 가질수도 있겠지? 그럼 남의 문제만은 아닌것이다.

  정말 그때가 편했을까? 

  나도 어린시절을 돌이켜 보면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정말 즐거운 시절이었다. 깡통을 차고 놀기도 하고, 소독차를 따라 뛰기도 하고……

<단결 광장. 그리고 수많은 비둘기>

  지금보다 여러모로 부족하고 불편했지만 좋았다고 느끼는건 무슨 이유일까? 현재에 대한 불만족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어렸기' 때문에 걱정이 없어서였나? 아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나름대로 고민거리는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는 지금보다 좁고 약하던 어깨를 짓누르기에 충분한 무게였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를 그리워하는건 인간의 본능일까? 어쩌면 차우셰스쿠를 그리워하는 사람들도 그 시대가 정말 편해서였다기 보다는, 그 시대에 두고 온 불의에 항거하던 당시의 열정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티미쇼아라를 관통하는 베가(Bega) 강>

  이야기는 무르익었으나 너무 진지하면 재미가 없다. 다시 주변 구경에 나선다.

  단결 광장 한켠에는 가톨릭 성당(Domul Romano-Catolic)도 있었다. 노란 성당이 인상적이라 들어가 봤다.

<광장 구석의 노란 가톨릭 성당>

  확실히 잘 모르는 내 눈에도 정교회 성당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가톨릭 성당의 내부>

  하지만 더 인상적인건 따로 있었다. 바로 비둘기.

  주위에는 수많은 비둘기들이 있고, 배설물이 유서깊은 건물들을 오염시키고 있었는데 유독 이 성당만 깨끗한 것이다.

  가까이 가 보니 비둘기가 앉을 만한 곳에 수많은 침을 꽂아 놓았다. 난 왜 이걸 보며 거북선이 떠오른걸까?

<거북선과 같은 성당 구조물>

  보그단과 며칠간 좋은 시간을 보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보그단 부모님에게 초대받은 것.

  빈 손으로 가기가 미안하여 과일가게에서 사과 몇개를 사 갔다. 허, 그런데 집에 사과나무가 있을줄이야!

<사과나무가 있는 정원>

  보그단 어머니는 오히려 무농약 재배한 사과를 더 싸 주셨다. 함께 식사도 하고 이야기도 하며 반나절을 함께 했다.

<식사 준비> <루마니아 요리. 감사히 먹었습니다.>

  정원에는 국화가 피어 있어서 가을이 왔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국화는 그다지 좋아하는 꽃은 아니다. 나는 코스모스가 좋다.

<꿀 빨고 있는 벌. 나도~>

  혁명의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보그단이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 편안하고 즐거운 4박 5일을 보냈다. 또 많이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결국 다가온 티미쇼아라를 떠날 시간.

  보그단은 마지막까지 배웅을 나와 주었다. 고맙고 즐거운 기억은 가슴에 담아두고, 다시 길을 나선다.

<보그단 가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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