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미쇼아라(Timisoara)에서의 잊지 못할 즐거운 기억을 남겼다. 또한 세탁기를 이용하여 그동안 밀린 빨래도 모두 할 수 있었으며, 떠나기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 구보로 티미쇼아라를 둘러보았다.
<티미쇼아라 구보 코스>
다시 길을 나서기로 예정된 시간이다. 보그단은 마지막까지 환율 좋은 환전소에 데려다주는 등 갖은 편의를 베풀어 주었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보그단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티미쇼아라 뿐만 아니라 루마니아와도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티미쇼아라에서 루마니아 국경은 60km가량 떨어져 있다. 아마 오늘 중에 루마니아 국경을 넘을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이제 달마와의 즐거운 여행도 끝. 나는 세르비아(Serbia)로 갈 계획이지만, 달마는 이미 세르비아를 경험했고, 북쪽 헝가리로 갈 예정이다.
<떠나기 아쉬운 루마니아 길>
하지만 달마도 헤어짐이 아쉬웠던지 세르비아 국경은 함께 넘어주기로 했다. 조금 돌아가는 길이다.
<국경을 향해 출발>
거리는 멀지 않지만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아마 내 발걸음을 잡는 것은 달마와의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이리라.
남은 거리는 점점 좁혀지고, 루마니아 마지막 도시 Jimbolia에 도착했다. 그동안 국경 근처에서 야영은 최대한 자제하였다. 아랍 에미레이트에서 자다 깨서 여권검사를 당한 기억도 있고, 여하튼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서이다.
<멋진 동상이 서 있던 Jimbolia>
다행히 아직 시간은 많이 남아았고, 국경을 넘기에 무리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으면 곧 달마와의 이별이다. 달마와 상의하여 마지막 밤을 함께하기로 했다. 마침 Jimbolia 초입에 아파트처럼 생긴 빈 건물을 봤다. 다시 길을 돌아선다.
<오호, 청약없이 아파트 당첨>
쓸만한 빈 격실을 발견하여 자리를 잡고, 마지막 만찬을 준비했다.
<달마와 마지막(?) 만찬>
식사 후 텐트에 누워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는 끊기지 않는다. 그동안의 여행을 되새기기도 하고, 앞으로의 일정과 미래 계획까지. 그러다 나도 모르는 새 잠이 들었다.
<이건 언제 찍은거지? Good night>
눈을 떠 보니, 텐트도 안닫고 잔 것이다. 다행히 모기에 물리지도,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다.
이제 진짜 루마니아 마지막 날이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길을 나선다.
<아파트를 뒤로하고 다시 출발>
루마니아의 마지막 주행길. 국경까지 거리는 불과 5km. 하지만 맞바람이 불어서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루마니아의 첫날에도 바람이 많이 불었었다. 우리가 떠나는것을 루마니아도 서운해 하는지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마침내 국경에 도착했다. 검문소에 여권을 제출했는데 무슨 문제인지 좀처럼 여권을 돌려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우리 뒤에 온 사람들은 쉽게 통과하고 있다.
<드디어 나타난 루마니아 국경 검문소>
다른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해서 영문 재학증명서를 보여줬다. 문화교양학과. Dep. of Culture and Liberal Arts. 검문소 직원은 재학증명서의 Arts를 보며 'Oh, Artist!' 하더니 역시 진전은 없다. 무슨 오해를 한건가 대체 무슨 일이지?
약 한 시간 가량 경과 후 여권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이로서 루마니아 출국. 세르비아는 루마니아보다 한시간 빠르다. 딱 국경에서 소모한 시간 만큼 번 셈이다.
이로서 9월 20일 Giurgiu로 입국하여 10월 11일 Jimbolia까지, 약 3주간의 루마니아 여행을 마무리했다.
<루마니아 입,출국 도장>
처음 선입견으로 음산하리라 생각한 루마니아는 오히려 지금까지의 어떤 나라보다 편안한 전원 풍경을 느낄 수 있는 나라였다.
<양떼가 한가로이 노니는 들판>
역사 또한 오래되에 고대 다키아(Dacia) 왕국을 세우고 로마제국에 맞서왔으나, 트라야누스(Trajan) 황제의 원정으로 인해 로마제국의 속주가 된다.
다키아는 루마니아의 뿌리이고, 현재는 다키아 자동차회사가 그 이름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지정학적 위치는 매우 불리하였다. 로마제국은 다뉴브 강을 1지대 방호선으로 삼았다. 즉 다키아 속주는 로마제국의 최전방이었던 셈이다.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이후 중세 삼국시대(트란실바니아, 왈라키아, 몰다비아)를 거쳐 오스만 제국의 통치를 받게 되고, 인근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수많은 전쟁의 무대였을 루마니아 들판>
독립 이후에도 발칸 전쟁과 세계대전을 겪어야만 했으며, 2차대전 과정에서 다시 소련의 위성국으로 전락하고, 몰다비아는 소련에 빼앗기고 만다(소련붕괴 후 몰다비아는 몰도바로 독립).
<루마니아 주행 경로, 그리고 1시방향 몰도바>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현재 루마니아인의 대부분은 루마니아 정교를 믿는 것으로 보아, 정교회(Orthodox)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아담한 루마니아 정교회 성당><성당은 루마니아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루마니아하면 떠오르는 3대 인물.
드라큘라로 알려진 블라드 체페슈(Blad Țepeș), 독재자 차우셰스쿠(Ceaușescu) 그리고 체조선수 코마네치. 그들은 루마니아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보그단과 이야기한 결과 현재도 블라드 체페슈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는 루마니아의 영웅이었다. 드라큘라 영화에 흡혈귀로 묘사되는 부분을 이야기하자, 불쾌해 하기는 커녕 영화를 통해 루마니아와 영웅이 더 많이 알려졌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내가 블라드 king이라고 하자 prince라고 수정해 줬다.
"Prince(왕자)가 이후 king(왕)이 된거 아니냐?"
"아니, 계속 Prince of Wallachia(왈라키아 공)다."
영단어 Prince는 흔히 왕자로 해석하지만 알려져 있지만 '공작'이라는 뜻도 있다. 왈라키아는 왕국이 아니라 공국이므로, King of Wallachia가 아니라 Prince of Wallachia라는 것.
그럼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이므로, 왈라키아 공(Prince) 블라드가 드라큘라 백작(Count)이 된건 두단계 강등된 셈이다.
<왈라키아 공작과 강등어버린 드라큘라 백작. 출처 : Between Hero and Vampire 링크입니다.>
<트란실바니아 지방. 눈이 덮힌 산>
두번째,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를 통치하며 일부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살아있었다. 노동의 질과 양에 따라 차등적 대우를 받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시간만 대충 때워도 무상으로 배급받던 시절이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현재 루마니아는 300만명 이상의 집시들이 살고 있고, 유럽 최대라고 한다. 좀처럼 일하려고 하지 않는 집시들 역시 사회문제인데, 서유럽까지 진출했다가 각국의 집시 추방 정책에 따라 다시 루마니아로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루마니아 각지에서 형형색색의 복장을 하고 돌아다니는 집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루마니아 공장지대>
추가로 루마니아가 쉥겐(Schengen)에 가입하여 국경이 열릴 경우 집시 역시 쉽게 서유럽에 다시 진출할 수 있기 때문에, 집시문제 역시 루마니아의 쉥겐 가입을 가로막고 있다고 한다.
<한진의 컨테이너>
특이한건 이 집시문제의 씨앗도 차우셰스쿠가 뿌렸다는 것.
차우셰스쿠는 인권을 옹호하는 인민들의 천국을 강조하기 위해 대외 선전용으로 집시들을 불러들였고, 5~10명 가까이 다산하는 집시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불어났다.
개중에는 교육을 받고, 근로를 하며 정계에 진출하거나 부를 누리고 있는 집시도 있지만, 대부분 집시들의 삶은 변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주택을 제공하면 내장재까지 다 팔아치우고, 다시 달라고 요구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해당 국가에 동화되려 하지 않고 자기 방식만 고수하려는 이민족 집단이 골칫덩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낙후된 루마니아의 마을>
또 한명, 루마니아가 낳은 세계적 스타 코마네치는 89년 11월 차우셰스쿠 정권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불과 한달 후, 차우셰스쿠는 실각하고 성탄절에 처형된다.
우수한 인재를 배척하고 자국민은 괴롭히면서, 전 유럽에서 배척받는 집시를 포용하는 관대함은 나로서는 도무지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태극기를 들고, Făget의 한 공원>
하지만 이상한 녀석은 차우셰스쿠 뿐, 내가 만난 루마니아인들은 비록 풍족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같이 친절하고 베풀 줄 아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주행하고 있으면 집 앞 벤치에서 쉬었다 가라고 하고, 눈이 마주치면 어김없이 손을 흔드는 사람들. 왔던길을 되돌아가 식수를 채워주고, 마을에서도 흔쾌히 캠핑을 허락하여 여행하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루마니아 마을. 독특한 형태의 지붕><식수공급원 약수터>
루마니아인의 친절함은 역사에도 나온다.
외교통상부의 루마니아 안내 책자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에 "먼 서쪽에 있는 늑마니 나라는 집안의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일이 없으며 누구든 손님으로 융숭히 대접한다."라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늑마니가 루마니아다. 먼 서쪽의 루마니아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루마니아인들이 친절한 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루마니아와의 관계는 계속되어 현재 한국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중에 있고, 길에는 대우자동차가 흔하다.
<루마니아 자막과 함께하는 대조영. Național TV>
친구 달마와, 또 친절한 사람들로 인해 루마니아 여행은 정말 즐거웠지만, 한가지 불편한 점도 있었다. 바로 유기견.
인도만큼은 아니지만, 어디서나 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고, 개는 이상하게 자전거만 보면 쫒아온다. 심지어는 바로 앞에 뛰어들어 개를 칠 뻔 한 적도 있었다. 대부분은 소리를 지르거나 잠시 멈추면 따라오지 않았지만, 끝까지 죽어라 쫒아오는 녀석도 있고 아무튼 자전거 여행에 개는 여러모로 골칫덩이다.
불과 3주. 짧은 루마니아 여행을 통해 또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되었다.
잘못된 체제와 사욕만을 채운 지도자로 인해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스스로 자유를 쟁취한 로마의 후손 루마니아. 89년의 혁명을 일구어낸 저력으로 당면한 각종 문제를 해결하고 당당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발전하기를 바란다.
<루마니아 Jimbolia 국경 앞에서 달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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