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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Albania)

111. 알바니아와의 첫만남

  언덕 위에 위치한 국경을 넘어서 알바니아에 도착했다. 선입견과 달리 알바니아 국경은 번듯하게 잘 꾸며져 있었다. 국경 근처 환전소에서 알바니아돈을 약간 환전하고 본격적인 알바니아 여행길에 올랐다.

<알바니아 국경 통과>

  코소보에서 알바니아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알바니아의 독재자 엔베르 호자(Enver Hoxha) 집권기에는 길에 지갑이 떨어져 있어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전 국민이 AK 소총을 갖고 있으니 주의하라고 한다.

  공산주의 국가였으나 소련, 중공, 유고슬라비아 등 모든 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소련의 침공을 대비하여 전국에 수많은 방공호를 건설했다고도 했다.

  예전에 이원복 교수님의 유럽에 관한 책을 읽은적이 있는데, 거기에 소개된 알바니아는 북한과 비교될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이며, 명예살인도 일어난다고 본 기억이 난다.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도 들었고, 마피아로도 유명한 알바니아. 여기서는 항상 긴장해야겠다.

<멀리 설산이 보이더니>

  잠시 오르막이 나오더니 가장 먼저 눈에 띈건 오흐리드(Ohrid) 호수. 마케도니아의 오흐리드 시에서 멀리 보이던 서쪽 방면이다. 오흐리드 시처럼 잘 꾸며놓은건 아니지만 자연 그대로의 호수는 정말 멋있었다.

<산 위에서 호수를 보니 백록담이 떠오른다>

  호수를 지나자 긴 내리막이 이어졌다. 도로 상태도 아주 좋아서 거칠게 없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기분은 더할 수 없이 짜릿하다. 그동안 힘들게 올라온 보상을 받는 듯 하다.

  길가에는 말로만 듣던 방공호도 보이고, 내리막길은 꼬불꼬불 계속 이어진다.

<전 국민을 수용할 만큼 만들었다는 알바니아의 방공호><돌산을 배경으로 한 컷>

  하지만 내리막길이 이어지자 문득 걱정이 된다. 대체 얼마나 내려가는거지? 또 언젠가 이만큼 올라와야할텐데…….

  하지만 그건 나중 문제고 일단 시원한 내리막길은 참 좋다. 그리고, 길 아래로 보이는 농촌 풍경. 우와.

<와, 넓은 밭이다>

  작은 저수지도 있고, 구획이 반듯하게 잘 정비된 밭. 이거 정말 유럽 최빈국이 맞나? 도로 상태또한 의구심을 자아낸다. 대부분 도로 상태는 그 나라 경제 사정에 비례하던데 여기는 도로가 너무 좋다. 공산주의 시절 사회간접자본에 열심히 투자했나? 그렇게 오래 된 도로같지는 않은데?

<저 길을 내려왔구나>

  금새 저수지에 도착했다. 이곳도 정말 운치있는 곳이라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맞바람을 가르며 내리막을 달릴때는 몰랐는데 날씨는 마치 봄날씨처럼 따뜻하다. 고도차이 때문인가? 그러고 보니 주위의 경치가 매우 독특했다.

<알바니아 농촌 풍경>

  설산은 사라진지 오래다. 대부분 민둥산으로 보이는데 그 형태가 뾰족하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둥글둥글한 산은 뒷동산처럼 포근하게 보인다. 저수지는 빨려들어갈 듯 한 청색이고, 흙은 붉은빛이 조금 감도는것 같다. 뭐라고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으로 색감이 진한것 같다.

<파아란 저수지><그리스 신전처럼 보이네>

  새파란 하늘에는 벌써 달이 떠올라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였다.

<낮에 나온 반달~>

  저수지 근처에서 넋놓고 쉬다가 다시 길을 나섰다. 산길을 지나 마을이 나타나면서부터 비로소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다는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익숙한 느낌이다.

  아, 이건, 어딘가 모르게 인도와 매우 비슷하다. 허물어질 듯한 노점 가건물도 그렇고, 길에 떠돌아다니는 상처입은 유기견도, 삼륜차도 인도에서 보던 흔히 모습이다. 긍정적인 대답을 할때 고개를 좌우로 까딱까딱 하는것도 그렇다.

<인도를 연상시키던 노점상>

  벼랑끝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건물은 네팔의 주택과 비슷하다.

<대체 왜 이런데 건물을 지을까?>

  하지만 사람들은 친절한것 같다. 눈이 마주치면 미소짓거나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람들 덕분에 즐겁게 달릴 수 있었다.

<눈이부셔 한껏 인상을 쓰고 있는 꼬마>

  이제 숙소를 찾아야 하는데 멀리서 보면 짓다 만 건물이 많이 보인다. 와, 저기서 자면 좋겠다. 그런데 가보면 하나같이 1층은 사용중이다. 그런데 대체 왜 건물을 짓다 말고 1층만 사용할까?

  게다가 짓다만 건물에는 작은 깃발이나 인형이 매달려있다. 대롱대롱 매달린 곰돌이는 교수형 당한것 같은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쉴 곳을 찾아 달리다가 Xibrakë라는 마을 외곽에서 빈 주유소를 하나 발견했다. 여기다! 바로 텐트를 치고 하루를 정리했다.(2월 7일 주행거리 78.57km, 누적거리 8,356km)

<알바니아 첫 숙소는 폐 주유소>

  다음날 다시 주행을 시작했다. 날씨가 마케도니아보다 따뜻하다고는 해도 아침에는 여전히 쌀쌀하다. 길가의 작은 까페에서 커피 한잔(50렉≒550원)으로 몸을 녹이고 슬슬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Tirana)를 향해 출발했다.

<따뜻한 난로가 있던 까페><자 다시 출발>

  얼마 후 엘바산(Elbasan)이라는 도시가 나타났다.

  엘바산 시내 중심에는 옛 성벽이 남아있었고, 야자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야자수가 있는걸로 보아 확실히 따뜻한게 맞는가보다.

<야자수가 인상적인 엘바산><하늘이 심상치 않다>

  그런데 조금씩 먹구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거, 빨리 가야겠는데?

<엘바산 외곽>

  엘바산을 지나니 큰 산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다. 전날 신나게 내려왔는데 다시 올라가나보다.

<아, 이번 미션은 저 산인가?>

  산길은 매우 험했다. 꼬불꼬불 오르막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신기하게 생긴 소나무>

  지쳐서 산 중턱에 주저앉았다.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 있는데, 근처에서 일하던 두 명이 다가왔다. 안드레아와 알반.

  이들은 포크처럼 갈라진 나무막대를 이용하여 나뭇가지를 나르고 있었다. 알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반갑지 않은 정보. 앞으로도 산길은 한참 남았고 매우 힘들거라고 한다.

<지게가 더 편할텐데><안드레아와 함께, 이 막대기로 나뭇가지를 나른다>

  참, 이들을 통해 빈 건물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우선 1층부터 짓고 생활하다가 돈이 모이면 조금씩 공사를 이어나간다고 한다. 일단 형편되는대로 1층이라도 사용하는게 어쩌면 합리적인것 같기도 하고, 추가 공사하면 소음도 상당하고 불편할텐데 아무튼 특이한 문화다.

  완성되지 않은 건물에 인형을 걸어놓는 건 행운을 비는 의미라고 한다.

<인형을 대롱대롱 매단 건물>

  산길은 과연 듣던대로 힘들었다. 넘어야 하는 산이 해발 800m가량 되므로 전날 내려온 만큼 올라가는 셈이다.

<와, 길좀봐라. 으으>

  한참 고생하여 정상에 올랐다. 지도를 보니 이제는 내리막길. 힘들게 올라온 길을 순식간에 내려간다.

<자, 여기가 정상입니다>

  산길이 끝나고 마을이 보일때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굵어진다.

  근처 처마 밑으로 급히 피신했다. 조금 기다려 보았으나 쉽게 그칠것 같지 않다. 어쩔 수 없지. 판초우의와 비닐봉지를 두르고 다시 출발.

  비를 흠뻑 맞으며 한시간쯤 달리자 드디어 Baron Hotel이 나타났다.(주행거리 63.39km, 누적거리 8,419km)

  호텔답게 정장을 입은 직원은 매우 정중하게 맞아 주고 짐도 들어주었다. 함께 운영하는 도미토리는 8유로. 서비스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다.

  그나저나 완전히 젖어버렸다. 이렇게 쏟아지는 비에는 우의로는 감당이 안된다. 그나마 춥지 않아 다행이지만, 뒷정리가 골치아프다.

  자, 과연 티라나는 어떤 곳일까? 기대를 가득 안은 채 젖은 옷을 빨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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