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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Albania)

114. 거대한 놀이동산 티라나

  알바니아(Albania)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건 바로 '색'이었다.

<알바니아의 들판>

  단지 나의 착각일지는 모르겠지만, 흙은 붉은빛이 더 강하고 거기에 대비되어 풀색 역시 더 진하게 느껴졌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은 모나기 보다는 둥글둥글하다. 거기에 한결 온화해진 날씨가 겹쳐져서일까 바라보는 마음도 편안한 곳이다.

  이런 자연환경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있을까? 자연환경의 영향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는 모르겠지만, 알바니아에 첫발을 들이고도 뭔가 다르다고 느낄 정도면 분명히 영향이 있었겠지?

  불가리아부터 과거 공산권 국가를 거쳐오면서 느낀건 무채색이었다. 근대 이전에 지어진 건물은 화려했지만, 공산주의 이후의 건물은 획일적인 아파트에 심지어는 콘크리트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회색의 연속이었다. 이런 경향은 특히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형형색색 티라나 외곽의 주택가>

  그러나 알바니아에 들어오면서 무채색은 사라졌고, 오히려 더욱 화려해졌다. 건물마다 형형색색으로 도색되어 있는데 심지어는 형광연두, 밝은노랑 등 이런 색으로 집을 칠하나 싶은 색까지 과감히 사용한다.

<파스텔톤으로 도색한 아파트><조금 더 과감해진 색상>

  이런 경향은 도시뿐만이 아니라 작은 마을에서 더 심하게 나타나는데, 길은 들판 사이로 꼬불꼬불하게 나 있고, 그 사이에 무질서하게 들어선 알록달록한 건물을 보면 그동안 구 공산권 국가에서 보이던 획일성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예 반반 나눠 칠한 주택><화려한 주택가>

  건물 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복장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눈길을 끈 건, 무슬림 여성들의 복장이다. 현대적인 복장을 한 경우가 대부분인데 간혹 머리를 가리거나 혹은 전신을 감싸더라도 그동안 본 무슬림의 시커먼 천이 아니었다.

  다양한 색상으로 개량한 복장을 보고 있으면 묘한 생각이 든다.

<검정색을 탈피한 무슬림 여성들>

  교통경찰이 시인성을 위해 형광조끼를 입는 것은 놀라울 게 없지만, 정모까지 형광색을 사용하는것도 신기한 일이다. 화려한 복장 덕분에 경찰관의 위엄은 덜 느껴진다.

<정모까지 형광색>

  알바니아의 또 다른 차이점.

  자전거 여행을 해오면서 자주 들리는 곳 중 하나는 주유소다. 기름때문이 아니라, 주유소는 작은 슈퍼마켓이나 식당을 갖추고 있으며 화장실도 있다.

  게다가 바쁜 운전자들에게 짐을 주렁주렁 단 자전거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며 집시나 좀도둑들도 굳이 주유소를 찾지는 않으므로 가게나 화장실을 이용하더라도 신경이 덜 쓰인다.

  다른 상점이나 마을이 없는 산길 또는 심지어 사막길에서도 중간중간 주유소가 있어서 식수나 음식물을 구입하고 처마에서 비를 피할수도 있고, 주유소 한켠에서 잔 날도 많다. 여러모로 휴게소의 역할을 한다. 아라비아에서는 주유소를 만날때 마다 세수를 하고 물을 보충했으며, 발칸에서는 Wi-fi를 공개하고 콘센트까지 밖으로 빼 놓은 주유소가 많아서 늘 주유소를 거쳐가게 된다.

<알바니아에 흔히 보이는 연두색 IT Oil>

  그런데 알바니아의 주유소는 상점을 함께 갖춘곳이 거의 없다. 제법 큰 주유소도 사무실과 주유기만 있다. 주유소 역시 밝은 색을 사용하여 눈에는 쉽게 띄지만 이 나라에서는 주유소에 들릴 일은 없는 셈이다.

  어쩌면 대(對) 알바나아의 가장 유망한 사업은 페인트 수출일지도 모르겠다.

<페인트를 한껏 바른 티라나 시내><아무리 가난해도 페인트는 칠해야 제맛!>

  티라나(Tirana) 시내 진입로에는 커다란 인공호수(Artificial Lake)가 있었다. 인공호수 역시 화려한 색의 향연이 이어졌다. 

<티라나의 인공호수>

  대체 왜 이런 호수를 만든 것일까? 저수지로? 아니면 홍수 방지? 도무지 알 수 없었으나 시민들은 낚시도 하고, 산책도 하는 등 호수를 즐기고 있었다.

<세월을 낚기도 하고><음악을 듣거나 담소를 나누기도 하는 곳>

  조깅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호수 한켠에는 조깅을 위한 피니쉬 라인이 설치되어 있었고, 호수 한바퀴는 약 5km으로 누구나 부담없이 뛸 수 있는 거리였다.

<조깅 트랙과 산책로><호수 한켠에는 조깅을 위한 피니쉬 라인이 설치되어 있다>

  나도 호수 둘레를 따라 조깅을 하면서 호수를 즐겼다.

<한폭의 그림같은 인공 호수>

  티라나에서 발견한 또다른 흥미거리는 놀이동산이다.

<티라나 시내를 가르는 바이킹>

  시내의 공터에 놀이기구를 가져다 놓고 운영하는 곳인데 이런 형태의 작은 놀이동산이 시내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규모는 작지만 접근성이 좋고 알록달록한 티라나 시가지와 어우러져 심지어는 티라나 전체가 놀이동산처럼 보인다.

<호수 주변의 놀이동산>

  왜 놀이동산이 아니겠는가? 이벤트를 위해 입은 듯한 형형색색 무슬림 여성들, 형광색 경찰과 주유소, 알록달록한 주택, 껍데기만 남은듯 한 짓다 만 건물, 게다가 사람이 파서 만든 호수까지 있는데!

  놀이동산을 둘러보다 마침 BB탄 사격장을 발견! 만발(滿發) 상품으로 작은 인형을 받기도 했다.

<표적은 깡통 10개, 이정도 쯤이야><가스활대 후퇴 실탄장전 사로 봐!><베레타 권총과, 상품은 물개 인형>

  내 자전거 Wing은 기동성을 더해 주어 손쉽게 티라나 놀이동산을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 화려한 건물이 이어진다.

<연두색 오토바이 정비소><아예 크레파스로 칠해버린 듯한 아파트>

  알바니아의 다채로움은 하늘로도 이어진다. 갑자기 무지개가 뜬 것. 사진으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무지개를 본게 대체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티라나 놀이동산의 무지개는 나를 오랫만에 동심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다.

  어느 새 화려한 색상의 티라나 놀이동산 폐장시간이 다가왔다. 폐장 이벤트는 레이저 쇼가 아닌 태양쇼였다. 석양은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 심지어 먹구름의 도움을 받아 보라빛까지 만들어냈고, 나는 넋을 잃고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티라나 놀이공원 폐장 이벤트>

  다양하고 화려한 색으로 가득찬 티라나를 체험하며 이 나라에 대한 흥미는 더욱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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