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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Albania)

117. 유럽 진출의 교두보 알바니아

  쉬코드라(Shkodra)에서도 며칠간 비가 내리더니 간만에 날이 개었다. 출발준비는 다 마쳤고, 이제 알바니아와도 작별의 순간이 다가온다.

<몬테네그로를 향하여>

  국경은 멀지 않다. 쉬코드라 시가지를 벗어나자 한적한 시골길이 이어진다. 밭에는 이름모를 노란 꽃이 피어있다. 유채꽃인가?

<흐드러지게 핀 노란 꽃>

  통행도 드물 정도이지만 방공호가 수없이 보인다. 국경은 국경인가 보다.

<길 위의 Wing>

  그런데 이 방공호는 골칫거리다. 엔베르 호자(Enver Hoxha) 집권시에 소련과의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소련의 침공을 대비하여 방공호 설치를 구상하게 된다. 이때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엔지니어에게 시험적으로 방공호를 만들게 하고, 그 안에 들어가도록 한다. 그리고 방공호에 그대로 포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집 앞마당에 방공호>

  사격이 끝나고, 방공호에서 걸어나오는 엔지니어를 보며 대단히 만족한 호자는 전국에 동일한 방공호를 만들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이 방공호는 전국에 설치된다. 그리고 너무 튼튼한 이 방공호는 부수는 것도 어려워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버린다.

  특히 집 앞마당에 있는 방공호는 골칫거리다. 더 이상 쓸모도 없는 시설이며, 방이나 창고로 활용하기에는 너무나 작고, 부술수도 없다. 재활용한다면 개집 정도가 다일 것이다.

<포 사격에도 안전한 개집이라니>

  주민 대피가 목적이라면 차라리 지하실을 튼튼하게 만들 일이지, 형태로 봐서는 사격 진지정도가 고작인데 이런 유개호를 왜 집 마당에까지 만들었을까? 전 국민을 소총수로 훈련시키기라고 했나?

  드디어 작은 광장에 마지막 방공호가 보이고 국경이 나타났다. 여권에 출국 도장을 받고 몬테네그로에 진입. 이것으로 알바니아와 인연은 끝인줄 알았는데…….

<국경 앞 알바니아 마지막 방공호>

  헉 이럴수가. 국경 근처 몬테네그로 상점에 들어갔더니 물가가 훨씬 비싸다. 다시 알바니아로 귀국. 음료수와 비상식량을 조금 더 챙기고 다시 출국장으로 향했다. 직원은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왜 자꾸 왔다갔다 하냐면서 출국 수속은 해 줬지만 도장은 다시 찍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로서 진짜로 알바니아 여행이 끝났다.

<알바니아-몬테네그로 국경>

  AK소총과 알바니아계 마피아. 전국에 설치된 콘크리트 유개호. 폐쇄적인 이미지. 하지만 내가 경험한 알바니아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하고 개방적이었으며, 어느 나라보다 정이 많은 나라였다. 유럽보다는 아시아와 비슷한 정서를 가진 듯 하다.

<집시로 보이는 알바니아 사람들>

  자국을 찾은 외국인을 보며 먼저 다가와 웃으며 알바니아 좋냐고 물어본다. 가게에서 파 한쪽, 오렌지 하나씩 사면 "이건 20~30렉이라 돈 받기도 애매한데. 그냥 가져가"라는 주인 때문에 미안해서 여러개를 몰아서 살 수 밖에 없다.

  알바니아의 물가는 저렴하다. 특히 농산물 등 노동집약적 제품이나 서비스 비용이 싸다. 생활물가는 주변 발칸국가보다 조금 더 저렴한듯 하다. 하지만 공산품, 특히 다국적 기업 제품은 그렇지 않다. 이 나라 경제규모나 국민소득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비싼 셈이다.

<저렴한 과일과 채소>

  150렉(1,700원)에 이발을 했다. 컴퓨터 가게에 붙어있는 프로그램 재설치 비용은 800렉(9,000원). 휘발유 1리터에 2,000원 정도. 기름값은 한국과 비슷하다.

<포맷과 프로그램 재설치 합니다>

  즉 저렴한건 인건비 뿐이다. 바꿔 말하면 간단한 기술과 노동력만 가진 사람은 매우 힘든 환경이다. 평균 임금이 월 200유로정도라고 들었다. 기름값이 비싸니 차를 굴리는 자체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생활하기 쉽지 않을듯 하다.

<마차도 흔하다>

  이 나라는 렉이라는 화폐를 사용하는데 1렉은 약 1,100원 정도이다. 가치가 없어서 알바니아 외에서는 환전조차 어렵다고 들었다. 재미있는건 렉의 디자인이다.

  유로와 비슷한 크기, 비슷한 디자인을 사용한다. 금색 은색 투톤 동전까지. 이건 터키 리라도 마찬가지. 두 나라 다 유럽연합(EU)에 가입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는 것을 볼때, 향후 유로 사용시 이질감을 줄이기 위한 처사가 아닐까?

<알바니아 렉, 동전은 위에서부터 알바니아 렉, 유로, 터키 리라>

  혹은 과거, 우리의 500원과 일본 500엔이 비슷해서 일본 자판기에 500원을 사용한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기도 한다.

  알바니아는 올해 7월에 유럽 연합 가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한다. 유럽연합에 가입하더라도 유로는 너무 비싸서 한동안은 알바니아 렉을 사용할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불가리아나 루마니아도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독자적인 화폐를 사용하고, 유로를 도입하면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것을 볼 때 비슷한 방식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전 한국에도 있었다던 삼륜차>

  유럽연합 따라하기는 여권 입출국 도장에서도 나타난다. 거의 똑같다고 보이니까. 차이점은 나라이름 주위에 별 대신 원이 그려진것 정도? 이것 역시 유럽연합 가입을 대비하여 사전에 조치한걸까? 그만큼 유럽연합 가입이 국민적 숙원인것 같기도 하다.

<위는 입국, 아래는 출국, 유럽연합은 좌측상단에 선 대신 별이다>

  길 근처에 쓰레기를 마구 집어던져서 길은 매우 지저분하다. 분명히 쓰레기통도 있고, 정기적으로 비우는 분들도 계신데 왜 길가에 버리는지 모를일이다. 쓰레기가 쌓인 곳에는 떠돌이개가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쓰레기를 뒤지는 개>

  과거에는 이런 모습은 아니었다고 한다. 대놓고 공산시절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없지만, Korea? North? South? Communist?라고 물어보는 사람들에게서 과거에 대한 향수가 느껴질 때가 있다. 아마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자유를 접하면서, 국가가 통제하지 못하며 수입으로 연결되지 않는 부분에는 방종으로 변해버린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100년 전, 유럽을 배회하던 공산주의의 유령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부작용을 남긴게 아닌가 생각하면 섬찟할 때가 있다.

<페달달린 오토바이>

  전 국민이 AK소총을 갖고 있다는 말은 과장되었지만 한때는 맞는 말이었다. 시위 중 무기고가 털리면서 총기가 흩어졌고, 100% 회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가끔 사설 경비원이 소총을 들고 근무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총을 든 침입자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산 중턱의에서 Wing>

  한국처럼 24시간 불편없이 살 수 있는 나라는 드물었다. 어느 나라나 대부분의 상점은 22:00 이후에 영업하는 경우가 드물다. 알바니아도 마찬가지다. 밤에는 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신 밤을 지배하는건 개다. 낮에는 축 늘어져 있던 개가 노는건지 싸우는건지 시끄럽게 짖어댄다. 인도에서도 흔히 보던 모습이다.

<길가에서 발견한 강아지>

  유기견도 많지만 고양이도 많다. 터키에서부터 길에 고양이가 많이 보이는데 동유럽 고양이는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어쩌면 고양이가 흔한것도 오스만 제국의 영향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티라나에서도 고양이와 인연이 있었다. 어느날 차 바퀴 밑에 손바닥보다 작은 하얀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흰 쥐인가? 신기해서 다가가 보니 새끼고양이였다.

<각도에 따라 강아지 같기도 하다>

  혹시 차가 움직이면 위험할 것 같아서 꺼내놓았으나 다시 바퀴 밑으로 숨어든다. 다른 쉴 만한 곳이 없을까? 주위에 구두 한 짝이 버려져 있길래 가져놓으니 그 안에 쏙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

<밀림의 왕자 레오처럼 수풀을 헤치고 벼랑 앞으로>

  급히 주위 가게에 달려가 우유를 한 병 사왔다. 그런데 도무지 먹지 않는다. 사람이 있기 때문인가 싶어 뚜껑에 우유를 조금 부어놓고 멀찌감치 떨어져 살펴보는데 도무지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내가 멀어지자 곧 개들이 와서 우유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죽쒀서 개줬다.

<그야말로 죽 쒀서 개줬네>

  이런 알바니아에서 희망을 찾자면, 구걸하는 사람이 다른 나라보다 적다. 자존심이 강해서일까 아니면 다 같이 가난해서 그런걸까? 또 사람들이 부지런하고 교육열도 높아 보인다. 체계가 좀 더 갖춰지면 발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세계를 품은 알바니아>

  아직 공터도 많다. 한국 기업이 진출하면 아직은 저렴한 인건비에 괜찮은 인적 자원과 넓은 부지를 저렴하게 활용할 수 있을것 같다. 위치도 괜찮고 주요 도로도 새로 닦았으니 유럽 수출시 물류수송도 원활할 것이고, 특히 유럽연합에 가입한다면 관세나 여러가지 규제도 줄어들 것이다.

<빈 건물도 많다>

  물론 쉽지는 않겠지. 자주 정전이 되므로 안정적인 전력 확보도 중요할 것이다. 실제로 얼마나 유리할 지는 모르겠지만, 엘바산(Elbasan) 근처에는 공단도 있고, 중국 기업이 상당수 진출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중국 기업은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민 정서 면에서도 한국 기업이 들어갈 틈새는 있어보인다.

<동네의 단촐한 모스크>

  무슬림이 많지만 예전 종교탄압의 영향인지 강경파는 거의 없다. 종교로 인한 문화적 차이나 이질감으로 인한 장벽 역시 낮은 셈이다.

<모스크와 재미있는 치과 덴티스탄불. 터키 출신 의사인가?>

  국가 상황도 한국식 성장 모델이 몇십년은 통할 것 같다. 전력 생산과 공급, 거의 사용되지 않는 철도망 재구축, 통신망 구축, 고속도로 건설, 건축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도 조만간 요구될 것이다. 게다가 육로로는 유럽으로, 해상으로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진출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위치조건까지.

<알바니아 자전거 여행 경로>

  알바니아 자전거 여행을 마치며 드는 생각은 어쩌면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일지도 모르겠다.

<알바니아의 전성기를 이끈 영웅 스칸데르베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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