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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IH)

126. 고즈넉한 트레비녜와 혼란스런 스릅스카 공화국

  언덕 위에 위치한 Ivanica 국경을 통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 BiH)에 진입했다. 국경은 매우 초라했다. 국경만은 그럴듯 했던 알바니아는 물론이고, 지금까지 만난 국경 중 가장 허술해 보인다. 검문소 직원은 심심했던지,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통행도 거의 없다.

<드디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국경을 넘어 가게에서 빵 하나로 식사. BiH가 물가가 더 저렴하다기에 기다려 온 참이다. 역시 예상대로 크로아티아보다 싼 물가가 마음에 든다. 사람들도 먼저 웃으면서 말을 건네는게 크로아티아보다 더 친절해 보인다.

<벽돌 쌓다 잠깐 쉬며 함께 식사한 주민들>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출발. 길은 산길인데 왼쪽은 회색빛 바위산이고, 우측 절벽 아래로는 크로아티아가 내려다 보인다.

<바위산 기슭의 주택>

  게다가 도로 상태도 좋지 않고, 가드레일은 녹이 잔뜩 슬어 있는게 이 나라 경제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것 같다.

<바위를 깎아 만는 절벽길로 달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c of Srpska) 표지판이 나타난다. 검문소는 고사하고 달랑 표지판 하나 뿐이다. 지도를 보니 여기가 경계선이었다.

그래. 이곳이 바로 말로만 들었던 스릅스카 공화국이구나.

<스릅스카 공화국 입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a i Hercegovina)는 특이한 정치 시스템을 갖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 나라지만 내부에는 두 나라로 이루어진 1국가 2체제이다. 구성국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Federacija of Bosne i Hercegovine)과, 스릅스카 공화국(Republika Srpska)이다.

  스릅스카 공화국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코소보에서 본 그라카니카(Gracanica)와 같은 세르비아 마을 정도일까? 아니면 아랍 에미레이트의 각 토후국 정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마케도니아 이후 오랜만에 보는 키릴(Cyrillic) 문자가 괜히 반갑다.

  반가움도 잠시. 키릴이고 뭐고 뙤약볕 아래에서 자전거로 오르막을 오르기는 쉽지 않다. 땀을 비오듯 페달을 밟는데 도로에 흙덩이 같은게 보인다. 다가가 보니 거북이였다.

<엉금엉금 거북이>

  엉금엉금 한걸음 한걸음. 아마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괜히 안되어 보여서 차도 밖으로 옮겨 줬다. 녀석은 곧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그러고 보니 저 거북이도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구나. 거북이한테 질 수야 없지. 힘내자.

  사실 여기서 도로 상태나 오르막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BiH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다름아닌 지뢰(Land mine).

  이 지뢰는 20세기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던 보스니아 내전 중에 매설된 것이다. 일반적인 전쟁은 외적과 싸우면서 국민을 단결시키지만, 내전은 어제까지의 친구조차 오늘의 적으로 만들어버린다.

  보통 지뢰는 적의 이동을 차단하거나 속도를 늦추고 전투의지를 꺽기 위해 전술적으로 설치하는 무기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전쟁의 성격처럼 수많은 지뢰가 아무데나 무차별적으로 매설되었다. 심지어는 침입자를 막기 위해 집 앞마당에 설치하기도 했다고 한다.

<키릴로 씌여진 지뢰 경고 표지>

  특히 BiH의 지뢰는 부비트랩(Booby trap)형이 많다고 한다. 부비트랩은 진화하면서 적의 시신은 물론이고 인형이나 장난감에까지 설치되어 전투행위와 관련없는 어린이들까지 노린다.

  전쟁이 끝난지 20년이 되어가는 현재, 상당 수 제거했지만 아직도 전 국토의 3%가 지뢰지대이며 피해도 종종 발생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지뢰밀도가 높은 곳(DMZ)을 안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도 통일 후 지뢰제거가 큰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BiH의 지뢰 상황도. BHMAC의 자료>

  마케도니아의 보얀 역시 지뢰가 떠내려올 수 있으니 특히 물가를 주의하라고 했다. 하긴 서해안에도 가끔 북한의 목함지뢰가 떠내려온다지?

  론니 플래닛에서는 아스팔트를 벗어나지 말고, 전쟁으로 파손된 건물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권한다. BIH의 지뢰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BHMAC(http://www.bhmac.org)에서 볼 수 있다.

  이거야 원. 바퀴자국이나 인적이 없는 흙은 함부로 밟을 수도 없으니 제대로 쉬기도 힘들겠네. 그렇다고 지뢰덧신이나 포민스(POMINS)를 갖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런게 있더라도 지뢰 따위를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기이하게 생긴 소나무. 저 나무는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을까?>

  얼마 후 도로변에 비석을 설치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칸지역에서는 도로변에 비석이 자주 서 있다. 도로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주로 교통사고)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는데 사진을 붙이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돌에 사진을 새기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런 경우였다.

<비석을 세우고 정비하는 모습>

  오토바이가 그려진 비석. 얼마 전 오토바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동생을 기리고 있다는 것이다. 도로에서 이륜차는 항상 약자다. 늘 주의해야 한다. 어딘가 남의 일 같지 않아서 잠시 묵념을 하고 돌아섰다.

  트레비녜(Trebinje)가 가까워 오자 산은 멀찍이 물러나고 한적한 농촌 풍경으로 바뀌었다.

<트레비녜 외곽 농촌 풍경>

  얼마 후 드디어 트레비녜에 진입.

  고즈넉한 트레비녜는 참 편안한 곳이었다. 이곳에 머물 계획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조금 더 둘러보기로 했다.

<어느 집 앞의 표지판. 무슨 뜻일까?>

  트레비녜를 관통하는 Требишњица(트레비스니차)강에서도, 주위 풍경 어디에서도 전쟁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는 곳이었다.

<그림같은 트레비스니차 강>

  근처에 Stari Grad(스태리 그라드;구 시가지)가 있다기에 그곳으로 향했다.

  커다란 정교회(Orthodox) 성당도 보인다. 양파같이 생긴 돔 위에 결핵협회 마크 같은 가로 2획의 십자가. 역시 세르비아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다. 반가운 마음에 성당 내부도 둘러보고 뒤로 돌아가니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정교회 성당 내부>

  공원에서 잠시 쉬며 지도와 도시 정보를 확인하는데, 작은 공같은걸 차고 있는 무리가 보인다.

  옆으로 가 구경하는데 함께 하지 않겠냐고 권해 온다. 덕분에 같이 어울리게 되었다.

  그들이 차고 있던것은 Pek(펙)이라고 부르는데 운동회때 쓰던 콩주머니 같은 것이다. 손을 제외한 몸의 모든 부위를 사용하여 떨어뜨리지 않고 차고 노는데 공처럼 탄력이 있지는 않아서 힘 조절이 쉽지 않았다.

<함께 펙 차고 노는 중>

  한참 차고 놀다 공원에서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친구들은 각각 Marija, Goran, Jgor, Veya라고 한다. 트레비녜가 고향이고, 스릅스카 공화국의 수도인 바냐 루카(Banja Luka)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인데 부활절 방학을 맞아 집에 왔다고 한다.

  펙 차기는 트레비녜 지방의 민속 놀이라고 한다. 이 펙은 마리야의 할머니가 직접 뜨개질 하여 만든 것으로 안에는 쌀이 들어있다. 마리야는 기념품이라며 펙을 선물로 줬다.

<마리야가 준 수제 펙>

  뜻하지 않은 만남 덕분에 이 나라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내 여행에 대해 물어보며 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왔냐고 묻는다. 그저 흥미있어서 왔다고 하니, 대체 왜 흥미가 있냐고 한다. 어감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잘 왔어'가 아니라, '대체 왜 하필 이런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냐'는 투다.

  그러고 보니 길에서도 왜 보스니아라는 질문을 몇 번 들었다. 아무래도 이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 대해 만족하지 않고 있는가보다.

<트레비녜 시내 음수대. 물 채우는 중>

  그저 정치 시스템이 신기해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대답했다. 1국가 2체제. 흔하지 않은 시스템일 뿐만 아니라 현재 한국도 분단되어 있다. 모두가 통일을 원하는데 그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통일을 원하기도 한다. 그 비슷한 모델이기에 보스니아에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정치 체제에 대해서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Fxxxing Politics!" 정치는 엉망이라는 것이다.

<까페가 즐비한 시내>

  이 나라는 북부 보스니아와 남부 헤르체고비나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라 이름에 들어가는 i는 'and'라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해석하면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 정도가 될 것이다.

  BiH는 두 개의 정부를 갖고 있다. 하나는 세르비아인으로 구성된 스릅스카 공화국이며, 또 하나는 크로아티아인과 보스니아인으로 구성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이다.

  이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두 나라는 화폐 외에는 모든게 다르다고 한다.

<녹음이 무성한 공원>

  BiH의 수도는 사라예보(Sarajevo)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의 수도이기도 하다. 그런데 사라예보의 일부는 스릅스카 공화국의 영토라고 한다. 과거 동독과 서독이 베를린을 공유하며 장벽을 쌓았던것을 생각하면 되려나? 아무튼 신기한 곳이다.

  스릅스카 공화국은 키릴 문자를 쓰며,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은 라틴 알파벳을 차용해 글을 쓴다.

  BiH의 주 종교는 세르비아인의 정교회, 크로아티아인의 가톨릭(Catholic), 보스니아인의 이슬람(Islam) 3개다.

  놀랍게도 BiH는 대통령이 3명이다. 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에서 각각 대통령을 선출하여 8개월씩 돌아가면서 임무를 맡는다고 한다. 8개월은 너무 짧다. 아마 각 대통령은 자기 출신집단만 대변하고 도무지 국정에 연속성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 누가 대통령이라고 물으니 모른다.

<역시 세르비아, 스릅스카의 주 종교는 정교회>

  대통령에서 보듯 BiH의 구성원은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그리고 보스니아인이다.

  그런데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는 민족에 따른 차이지만, 보스니아인은 단지 무슬림(Muslim)을 일컫는 말이다. 지역으로 나눈 개념도 아니기에 헤르체고비나인이라는 말은 쓰지 않으며, 현재 보스니아인들은 오히려 헤르체고비나 지방에 더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나라 이름이 너무 길기 때문에 외국인들은 흔히 BiH 사람들을 보스니아인이라고 부르는데 내부적으로 보스니아인은 무슬림을 의미하므로 오해의 가능성이 있다. 스릅스카 사람에게 보스니아인이라고 부르면 불쾌해 할 수도 있으니 가급적 세르비아인이라는 표현을 써 달라고 정중히 부탁한다.

<고즈넉한 트레비녜>

  실제로 두브로브니크부터 여기까지 내가 거쳐온 길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 격렬한 전투의 현장이었으며, 크로아티아인이나 보스니아인에 대한 감정도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스릅스카 공화국은 BiH로부터의 독립, 또는 세르비아와 합병을 원한다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아 보이는 애들끼리 서로 치고 받고 싸우며, 아주 가지가지 하며 잘 논다'

<트레비녜 공원 앞 거리>

  그런데 그런 생각도 잠시, 이번에는 이 친구들이 나에게 묻는다.

  "한국은 민족이 몇 개야?"

  "음. 우리는 한 민족이야."

  "그래? 그럼 종교는?"

  "종교는 자유야. 아무도 자신의 종교로 인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

  "그러면 큰 문제 없었겠네. 그럼 너 북한에 가봤어?"

  "아니, 못 가"

  "못간다고? 같은 민족이고 종교 문제도 없는데 왜 못 가? 대체 왜 싸우는거야?"

  순간 멍해졌다. 방금 전까지 똑같은 녀석들끼리 헐뜯는다고 비웃었는데……. 밖에서 보면 우리도 똑같겠구나.

<트레비녜의 거리 왼쪽 담장 내부는 Stari Grad>

  그러게. 대체 우린 왜 싸운거지? 분명 2차대전 추축국은 일본인데 분단되어야 한다면 일본이 분단되어야 하는거 아닌가?

  뒤늦게 변명을 해 본다.

  "이념 차이였다. 소련의 스탈린은 한반도 공산화를 원했고, 김일성을 앞세워 괴뢰 정권을 수립했다. 한국전쟁 당시 통일을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중공의 모택동이 끼어들었다.

  빌어먹을 김일성 모택동 스탈린 때문에 한국은 전쟁을 겪고 아직까지 분단되어있다."

  그런데 단지 이념 차이로 한 민족이 싸운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가 보다.

  생각해 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Yugoslavia)시절 BiH는 공산국가였지만 지금은 민주국가이다. 그런데 티토의 유고슬라비아는 스탈린과는 전혀 다른 노선을 걸었고, 유고슬라비아 붕괴는 공산권 붕괴와 시기적으로 겹쳤지만 이념문제가 아니라 민족과 종교 문제의 성격이 더 강했기 때문다.

<겉보기에는 더 없이 평온한 트레비녜>

  고즈넉하고 평온한 트레비녜의 분위기처럼 BiH는 겉보기에는 평화롭게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스릅스카 공화국은 BiH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독립 시도를 할 경우 다시 전쟁으로 확대될테니 실제 행동에 옮기지는 못할 뿐이다. 상황에 따라 언젠가 다시 시도할 지도 모른다.

  겉보기에만 평온한 스릅스카 공화국은 냉전 시대 핵에 의한 평화처럼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리고 발칸반도가 유럽의 화약고라는 말이 새삼 느껴졌다.

<화약고라기에는 너무 평온한 해질 녘 트레비쉬니차 강>

  여차저차 하다보니 시간이 제법 늦었다. 혹시 근처에 캠핑 가능한 곳이 있는지 물어보니 학교 기숙사 뒤편 공터로 직접 데려다 줬다. 덕분에 쉴 곳을 쉽게 구했다.

  마지막으로 마리야는 큼지막한 초콜렛을 주고 떠났다. 장소는 확인했으나. 아직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았으니 도시를 좀 더 돌아보기로 했다.

<작은 터널이 있는 Stari Grad의 주택가>

  스태리 그라드는 아주 작았다. 부드바(Budva)나 코토르(Kotor), 또는 두브로브니크(Dubrovnik)처럼 관광지화 된 스태리 그라드와는 거리가 멀다. 그도 그럴것이 사실 볼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가 어쩐지 트레비녜에 더 잘 어울리는것 같다.

  또 특이한건 작은 모스크가 두 개나 보이는 것. 인종 청소까지 벌였던 세르비아에서 용케도 모스크가 살아남았네?

<정교회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은 모스크>

  스태리 그라드 앞에는 중국 잡화점이 하나 있었다. 정말 신기한건 중국 가게 또는 식당은 발칸의 이름모를 작은 도시에도 있다. 내전 때문에 위험한 나라였고, 정보도 별로 없었을 텐테 중국인들은 왜, 언제, 어떻게 여기까지 와 있는걸까?

  하지만 중요한건 중국 디아스포라가 아니다. 혹시 여기에 싼 신발이 있으려나?

<중국 잡화점>

  그동안 오랜 여정에 신발 밑창이 종이처럼 얇아졌고, 앞꿈치 부분은 이미 찢어져서 청테이프로 붙이고 다녔었다. 마침 3유로짜리 크록스형 신발을 발견!

  드디어 제대로 된 신발을 신고 다닐 수 있겠구나!

<그러나 역시 중국산. 금세 끈이 떨어져서 케이블타이로 보수>

  뜻하지 않게 얼마 달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펙도 차고 이 나라에 대해서 알게 된 좋은 하루였다. 또 고마운 친구들 덕분에 좋은 은신처를 찾아서 편히 하루를 마무리했다.(주행거리 37.42km, 누적거리 8,958km)

<나도 기숙사 구성원? 학교 기숙사 뒤편에서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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