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크로아티아(Croatia)

122. 썩 반갑지 않은 크로아티아의 첫모습

  중립지대가 꽤 길다. 몬테네그로(Montenegro) 국경을 빠져나온지 한참이 지났는데 주위에는 산 뿐이다. 어느나라의 영토도 아닌 곳. 문득 여기서 캠핑해도 멋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잘못하면 스파이로 몰리려나? 음. 여기에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어느 나라의 경찰도 건드리지 않을 것 같긴 한데…….'

  해가 지고있으면 실행에 옮겼겠지만 아직은 한참 더 달릴 수 있는 시간이다.

  몬테네그로를 빠져나온 후 거의 2km가량 산길이 이어졌고 정상 부근에 드디어 멀리 국경이 보인다. 그보다 먼저 나타난 표지판은 여기부터 다시 유럽 연합(EU)이 시작됨을 알리고 있었다.

<톨게이트 같이 생긴 크로아티아 국경>

  한국에서는 크로아티아(Croatia)로 부르지만 이 근처에서는 대부분 크로에이시아라고 발음한다. 현지에서는 흐르바츠카라고 부른다. 정식 명칭은 흐르바츠카 공화국(Republika Hrvatska)

<흐르바츠카 공화국 표지판, 그리고 유럽연합>

  한때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The Socialist Federal Republic of Yugoslavia)의 구성국이었으며 독립 과정에서 세르비아(Serbia)와 극도로 대립했던 나라다. 세르비아에서 크로아티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세르비아와의 악연은 유고슬라비아 연방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때는 우스타샤(Ustasa)라는 크로아티아 극우세력이 나치(Nazi)의 편을 들어 세르비아인들을 학살했다고 한다. 세르비아가 좋아져서일까? 나라 이름도 이상하고 어째 정이가지 않는다.

<이제 크로아티아다>

  지금 들어온 이곳은 크로아티아의 월경지이다. 그믐달같이 생긴 크로아티아의 하단,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Bosnia i Hercegovina)에 의해 분리되어 본토와 떨어진 땅이다.

  정치적 상황과 전쟁이 얼마나 치열했으면 섬도 아닌 육지에 월경지가 있을까?

  하지만 자전거 여행자로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건 물가. 누가 유럽 연합 아니랄까봐 물가도 비싸다고 한다. 몬테네그로에서 확인한 정보로도 숙박비가 상당하다. 사실 크로아티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앞으로의 경로는 점점 더 비싸질 것이다. 어떻게 다녀야 할지 걱정이다.

<크로아티아도 산지의 연속>

  다행히 오늘은 갈 곳이 있다. 웜샤워(Warm Showers)를 통해 국경 근처 Mikulići라는 곳에 사는 마르코(Marko Bradvica)라는 호스트와 연락이 되어 있다. 이 친구는 자전거 여행자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하다. 마케도니아의 보얀도 마르코를 만나보라고 했고, 그동안 만난 자전거 여행자들이 대부분 마르코의 집에서 묵었다고 했다.

  며칠 묵어가기 위해 마르코에게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지금 자전거 여행을 하고 있으며 이전에 마케도니아(Macedonia)의 보얀(Bojan)에게 소개를 받았다. 어쩌고 저쩌고…….'

  그에게서 온 답은 단지 'OK. Welcome.'이 끝.

  편한 시간도, 어떻게 찾아가는지 정보도 전혀 없다. 웜샤워에 등록된 주소는 미쿨리치 자연공원(Nature Park Mikulići)인데 구글 지도에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았다.

  '이 녀석, 대체 어쩌라는거지?'

  어떻게 찾아가야 하냐고 다시 물었더니 전화번호를 보내 줄 뿐이다.

  어쩔 수 없다. 일단 미쿨루치라는 마을에 가서 찾아 보기로 했다.

<미쿨루치를 향하여>

  국경이 산꼭대기에 있는 덕분에 내리막길이 나타났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다시 오르막길의 연속.

  국경을 넘어서니 경치가 확 바뀌었다. 나무는 길고 뾰족하다. 몬테네그로의 바위산은 온데간데 없고 푸른 산이 보인다. 평온해 보이는 풍경이지만 뾰족한 나무는 가시돋힌것 처럼 보인다. 마치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는 듯. 비는 그쳤지만 아직 그대로 남아있는 먹구름은 내 마음을 그대로 투영한듯 하다.

<뾰족한 나무가 들어선 크로아티아>

  Mikulići 마을로 가는 샛길은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힘들다. 멧돼지가 그려진 교통 표지판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함부로 아무데서나 숙영하면 위험할수도 있겠구나'

  여러가지로 기분이 별로 좋지 않고, 이 나라에 어떤 기대도 생기지 않는다. 그 중 크로아티아가 불편한 가장 큰 이유는 옹졸하게도 비싸다는 물가에 대한 경계심이 70% 이상이다. 

<작은 다리와 멧돼지 표지판>

  한참 낑낑거리며 올라가는데 누군가가 부른다. 소리나는 곳을 보니 매우 반기면서 물을 가져다 준다.

  '혹시 이친구가 마르코인가?'

  하지만 마르코는 아니었고, 미쿨루치 자연공원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단지 짐을 많이 싣고 오르막을 오르는게 힘들어 보여서 불렀다는 것. 루카라는 이 친구는 힘내라면서 1.5ℓ 탄산수 한 병을 챙겨주었다.

<고마운 친구들, 왼쪽부터 유리치, 루카, 시호>

  '크로아티아인이 생각만큼 차갑지 않구나. 그래, 크로아티아에서도 좋은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을거야'

  조금은 나아진 기분으로 한걸음씩 나아간다.

  언덕을 다 올라가니 푸른 바다가 나를 반기고 있다. 와. 여기 멋진 곳이구나.

<탁 트인 아드리아해가 나타났다>

  바다를 바라보며 달리는데 곧 외딴 집 한채가 나타났다. 벽에는 Couch surfing, W.Showering라고 씌여 있고, Marko라는 이름도 보인다. 바로 여기구나!

<마크코의 집 도착>

  생각보다 쉽게 마르코의 집을 발견했다. 종을 치니 개 한마리와 함께 마르코가 나타났다. 그는 사무실을 내어 줬는데 불이 켜지지 않는다.

  아무렴 어떠냐. 시간이 늦었기에 간단히 식사만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4월 30일. 주행거리 46.90km, 누적거리 8,810km)

  다음글 ☞ 123. 마르코와의 만남과 화해